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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76화 (176/221)

176화.

“내려놔! 내려놓으라고!”

울며 소리쳤지만 아벨은 아랑곳하 지 않았다.

그가 금세 포털에 도착했고 미하일 은 기다리고 있었던 듯 말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공자님.”

아벨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꺾인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얼굴을 쳐든 채 소리 질렀다.

“야, 이 개새끼야! 빌어먹을 이그니스!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뭐? 남의 무덤을 밟고 살아갈 생각은 없다 면서? 그래놓고 이래? 너는 내가 죽 여 버릴 거야!”

“내 형제인 부인의 무덤이라고 했 지, 남의 무덤이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이 빌어먹을 새끼! 넌 사람도 아니 야!”

“가이오니아를 죽이면 다 해결될 일입니다. 우리는 꼭 성공할 테니 걱 정하지마세요.”

“입 닥쳐! 이거 내려놔! 아벨!”

미친 듯 몸부림쳤지만, 날 붙잡은 아벨의 손에는 더 힘이 들어갈 뿐이 었다.

“다들 준비는 됐습니까?”

미하일이 무심한 목소리로 나머지 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모두 미쳐버린 게 아닐까?

미하일도, 아벨도, 록사도…….

정말 아자르를 남겨두고 우리만 떠나는 데에 동의했다고?

“제발!”

“저, 대신관님.”

그때 끼어드는 록사의 목소리가 들 렸다.

“왜요?”

“한시가 바쁜 와중에 죄송한데예, 저…… 불멧돼지한테 마지막 인사를 못 한 것 같아가지고, 얼른 1분만 갔 다 오면 안 되겠어라?”

뭐라고?

그의 말에 문득, 나는 불길해졌다.

“아, 안 돼요.”

“그렇게 하세요. 공자님, 괜한 짓 못 하게 단단히 붙들고 계십시오.”

“…….”

“가, 감사하지라. 얼른 댕겨올게 예.”

“로, 록사씨…….”

“야, 이놈아! 잠깐 기다려봐라!”

아자르를 향해 소리치며, 나를 휙 스쳐지나가는 록사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록사가 없었던 ‘미래’가 다시 금 떠올랐다.

‘안 돼.’

마수들 사이로 작아지는 그의 뒷모 습을 보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가 없었다.

***

‘하데스 루버몬트, 그 인간이랑 얽힌 게 내 평생의 한이지라! 한!’

록사 트리볼트는 생각했다.

“제단 위에 올라가 있으면 무사할 수 있는 게 맞소?”

“이미 부인이 저렇게 말하고 갔으 니 거짓말은 의미가 없군요. 부인이 말한 대로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무거운 표정의 아자르를 보니 벌써 부터 흔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 미친놈이 죽을지도 모를 자리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 거여?!’

아마 아자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 으리라.

피붙이도 아닌 동생들을 위해 무릎 깛기도 했고, 만나기만 하면 잡아먹을 것처럼 달려드는 자길 위해 주저 없이 팔을 내던지기도 하지 않았는 가.

‘정말이지 이해 안 되는 놈.’

아니지.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하데스 루버몬트, 그 인간이지라!’

대체 뭘 위해서 지옥 불구덩이에 뛰 어든 건가 했는데, 저주를 풀기 위해 서란다.

제게 걸린 저주도 아닌데.

‘세상에서 제일 냉정한 대악마 아니 었남?’

차라리 자기가 남겠다고, 남이 죽는 꼴은 절대 못 보겠다며 제단으로 달 려가던 아이샤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그녀를 위해서겠지?

‘히야……. 사랑은 참 대단한 것이 지라.’

그놈의 사랑 때문에 몇 명이 피해를 보는 건 지.

록사는 하데스와 얽 힌 기구한 제 팔 자를 탓하며 한숨지었다.

“저…….”

그때 우물쭈물하고 있던 어린 사제, 데보라가 미하일의 옷깃을 잡고 말했다.

“기사님과 마법사님보다 제가 더 쓸모없을 거예요. 제가 남을게요.”

“아, 그건 좀 아니지라!”

“네, 그건 안 돼요.”

기겁한 록사가 말렸고 미하일도 고 개를 저었다.

“여기 있는 이들 중 무조건 살아남 아야 하는 건 데보라 사제랍니다. 사제는 ‘신을 믿지 않는 자’로서, 우리 들 중 유일하게 가이오니아의심장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존재거든요.”

“네, 네? 제, 제가요?”

“아, 물론 사제더러 가이오니아를 잡으라고 하는 건 아니예요. 루버몬트 공작 전하께서 성공하시겠죠. 그 래도 사제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꼭, 가이오니아의 앞에 가셔야 합니다.”

빙긋 웃는 미하일의 얼굴을 보고 록사는 오소소 소름 돋았다.

데보라를 살려두는 이유마저도 그녀가 불쌍한 어린아이라서가 아니라, ‘필요해서’이기 때문이라니.

‘사람이 저래 겉과 속이 다를 수도 있구만. 무서버라…….’

갈등하는 아자르를 알아챘는지 미하일은 재촉했다.

“찾아봤자 다른 방법 같은 건 없습 니다. 한명이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 예요. 저것들이 제물을 공격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되도록 오래 버틸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 남는 게 좋겠죠. 지금은 공자님이 아닐는지 요?”

“미쳤어? 부인이 잘도 공자님을 남 겨두고 간다 하겠군.”

“사실 부인은 별 걱정 안 하셔도 됩 니다.”

“뭐요?”

“힘없는 여자 한명 들쳐 메고 포털 로 달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요.”

“미친…….”

“생각해보니 공자님이 적격이겠군요. 죽지도 않으실 테니.”

“이봐! 미쳤어?!”

아벨을 설득하려는지 걸음을 돌리는 미하일을, 아자르가 잡아 세우고 노발대발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록사는 한 숨지었다.

아무래도 저 대신관은, 아자르를 몰 아붙여 그를 남겨두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바보 같은 아자르는 아벨을 들먹이 니 욱할 수밖에 없을 테고…….

‘에휴, 이게 뭔 일이다냐…….’

서로 죽겠다고 나서는 안쓰러운 아이샤나 데보라.

와중에도 냉정하게 한명을 내다 버 리 겠다는 미하일.

‘확실히 이 험난한 오르쿠스의 끝을 볼라믄, 냉정하게 대신관은 있어야겄 제.’

참으로 무서운 자였지만, 마음 약한 이들을 이끌어줄 만한 인물로는 적격이었다.

‘내가 뭔 죄를 지어가…….’

아무튼 다 하데스 탓이다.

록사는 푹 한숨을 내쉬며 불룩한 주머니를 만지작거 렸다.

별 필요 없을 듯한 약만 남은 무거 운 꾸러미를 내다 버리고, 딱 한 개 챙겨왔던 물약.

아벨에게는 하나밖에 없다고 했었 지만, 실은 하나가 더 있었다.

처음 마력을 발현할 때 생기는 인간의 의지를 모아 만든, 소원의 물약.

효과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던 약의 효능은, 아벨이 입증해주었다.

이게 도움이 되면 좋겠는데.

고민하던 록사는 계속 다투는 둘의 눈치를 보다 그것을 몰래 들이 켰다.

그리고는 몸 안에 휘도는, 제 속성 과는 다른 낯선 마력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고 빌었다.

‘우리 모두 무사히 다음 관문으로!’

‘열려라포털!’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 그러면…… 봉인된 마력이라도 풀어주시그라!’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시련으로 진입하자마자 턱 막혀버린 마력은 여 전했다.

‘역시…….’

록사는 두려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원을 들어주는 물약도 무용지물 일만큼, 오르쿠스의 ‘시 련’은 무서우리만치 치밀하게 짜인 곳이었다.

시련의 법칙에 위배되는 소원은 발 동되지 않는다.

만약 아벨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 게 해 달라’고 빌었다면 분명,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시련 속에서는 마력을 발동시킬 수 없으니…….

‘시련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 서……. 아니, 그럼 빌 게 뭐 있어!’

답, 없다. 한명이 희생하지 않고서는 절대 여길 빠져나갈 수 없었다.

‘하이고야…….’

요동치는 물약의 효력은 몸 안에 느 껴졌지만, 시련의 법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딱히 빌 소원이라곤…….

그 후로도 모두가 무사히 탈출할 수 있는 꾀를 내어 몇 번이나 소원을 빌 어보았으나, 다 허사였다.

“괜찮으시 겠어요?”

“걱정하는 척은 됐고. 가이오니안 지 뭐시긴지나 꼭 잡으쇼.”

“감사합니다.”

록사가 상념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뭔가 대화가 마무리된 듯 아자르가 움직였다.

당황한 록사가 허둥지둥 달려가 아자르의 팔을 붙잡았다.

“뭐, 뭣 헐려구 그러냐?”

“뭘 하긴 뭘 해. 한시가 바쁘다는데 여기서 방법도 없이 주구장창 앉아있을 순 없잖아.”

“아니, 야! 야! 불멧돼지!”

아자르는 붙잡는 록사를 떨쳐내고 주저 없이 제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야, 왜 멍하니 서 있냐는데도? 왜왔냐고.”

고민도 없이 죽으러 가던 아자르의 뒷모습을 떠올리던 록사가, 재촉하는 그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게. 내가 왜 왔을까.”

“뭐야. 돌았나?”

마지막 인사를 하겠답시고 아자르 에게 오긴 왔는데, 사실 정말 인사를 하러 온 건 아니 었다.

‘내가 진짜 정신이 나갔나.’

록사는 낡은 제단을 멍하니 바라보 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빨리 가라. 아까 대신관이 하는 말 못 들었냐. 멍청한 주군이 맨손으로 신을 잡으러 갔다고. 공자님이 갖고 있는 검, 그거 한시라도 빨리 가져다 드려야 한다.”

“어어, 알지라. 곧 죽을지도 모르니 께는 인사하러 왔지라.”

“하, 웃기는 녀석.”

멍하니 제단만 응시하고 있는 록사의 옆에서 아자르가 검을 꺼내 휘휘 휘둘렀다.

나머지들을 무사히 다음 관문으로 보낸 뒤, 수백 마리의 마수들을 상대하며 버티기 위해 몸을 푸는 모양이 었다.

말이 좋아 상대하는 거지, 베어도 죽지 않는 마수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야, 불멧돼지.”

“뭐.”

“죽을 때 됐은께는 말하는디, 내가 여태껏 막말했던 거 싹 잊어부러라.”

“됐다. 나도 네놈 사정 전혀 몰랐으 니 잘못 있어.”

“그, 부인이 나한테 백지수표 주기 로 했거든.”

난데없는 소리에 아자르가 미간을 좁혔다.

“와중에도 돈 얘기냐?”

“거 너한테 양도할란께 니 동생들 맛난 거 많이 사주그라.”

“……뭐?”

아자르를 마주 본 록사가 천천히 제 단 쪽으로 뒷걸음질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아자르가 바짝 굳었다.

“뭔…….”

“니도, 전하도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으니까네…….”

“야.”

잡을 새도 없었다.

뒤돈 록사가 제단 위로 손을 짚더니 훌쩍 뛰어올랐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뭐 하는 거 야!”

“여우 같은 마누라랑 토끼 같은 자 식들이 갖고 싶긴 했는디……. 일단 아직은 없자네, 나는. 지켜야 할 게.”

“시발! 안 내려와?!”

당황한 아자르가 핏발 선 눈으로 소리 질렀다.

급히 록사를 따라 제단 위로 올라가 려던 그 순간.

제물이 오른 제단 위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정처 없이 배회하던 마수들이 일제히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제단 위에서 아자르를 내려다보며 록사가 웃었다.

“죽지 말그래이.”

다음 순간, 록사를 향해 팔을 뻗은 아자르의 몸이 순식간에 포털 앞으로 이동했다.

“이게 무슨…….”

아자르가 천천히 뒤돌았다.

이미 열린 포털로 넘어간 나머지들 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뭔!”

“공자님!”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미하일이 소리 쳤고, 다시 제단을 향해 달리려 던 아자르의 몸은 아벨에게 붙잡혔다.

휘청, 대비하지도 못하고 큰 힘에 중심을 잃은 몸이 뒤로 기울었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 께 아자르의 몸이 순식간에 포털을 넘어갔다.

쾅!

공격하려던 마수들은 포털을 넘어올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부딪히고 나자 그들은 금세 나머지들 에게 흥미를 잃었다.

대신…….

붉은 눈을 번뜩이며 일제히 록사가 남은 제단을 향해 몸을 틀기 시작했다.

“안 돼!!!”

그것을 끝으로, 아자르의 눈앞에서 포털이 굳게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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