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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73화 (173/221)

173화.

「아, 흑……. 하…….」

오열하는 이그니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가이오니아가 물었다.

「왜 울고 있느냐, 내 아들아.」

「아버, 아버지…….」

이그니스는 가이오니아의 발치에 머리를 붙이고 연신 사죄했다.

「제가, 제가 그녀를, 죽이, 죽이고 말았어요. 제가, 제가…….」

「그래. 한데 왜 괴로워하느냐? 너의 연인은 어차피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이그니스는 벌떡 일어나 호소했다.

「아버지, 전능하신 아버지, 제발, 제발 그녀를 살려주세요. 되돌려주세요. 제발…….」

「뭐라고?」

참으로 한결같이 바보 같은 마음이 어라.

가이오니아는 이그니스를, 도무지이해할 수 없었다.

「너와 사랑할 연인을 만들어 달라 하지 않았느냐. 한데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 연인을 되살려 무엇 할 것이냐?」

「제발…….」

미쳐버린 이그니스에게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결국 가이오니아는 또 자식에게 져줄 수밖에 없었다.

「되살리면 네 마음이 더 이상 슬프 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 대신 네 연인의 자유의지는 빼앗는 것이 좋겠구나. 영원히 너를 사랑하 도록 만들어주마.」

그러나 행복해할 줄 알았던 이그니스는, 고민조차 없이 고개 저었다.

「그것은 제가 바라는 게 아닙 니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가 사랑하니까.」

「뭐라고?」

「그냥 살려만 주세요. 저 불쌍한 존재를. 제발, 아버지…….」

또 분노가 일 었다.

자신이 처음 만든 자식들은, 이토록 아름답고 완벽한 존재들이 었다.

형제가 갖고 싶다고 하던 프로크레아토르도, 자식이 갖고 싶다고 하던 제누스도, 연인이 갖고 싶다고 하던 이그니스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생겨난 수많은 다른 인간들과 달리, 그들의 순수한 애정에 충실했다.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가이오니아는, 그들을 누구 보다 사랑했던 거였다.

영원히, 아버지인 자신을 사랑하고 따라줄 한결같은 존재들이었기에.

가이오니아는 처음으로 자식의 부탁을 거절했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괘씸한 인간을 되살려줄 생각은 없다. 차라리 아주 새로운 연인을 만들어주마.」

오열하던 이그니스는 울음을 멈추 고, 텅 비어버린 눈으로 가이오니아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저변에는, 가이오니아를 이 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

「…….」

「그런 게, 아닙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진흙으로 빚어 만드셨지만, 우리는, 인간은, 아버지께서 의지를 부여하신 이후로 더 이상…… 인형 같 은 존재가 아니 게 되 었잖습니 까.」

「…….」

「사라지면 다시 만들고, 다시 만들 어진 새로운 연인을 사랑하고, 그런, 그럴 수는, 없어요. 아버지.」

이그니스는 가이오니아를 이해할 수 없었고 가이오니아는 이그니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이오니아는 신이었고, 이그니스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이그니스는 가이오니아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것을 알았다.

「못난 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연인이 떨어진 절벽 위에 서 있던 이그니스는, 웃으며 그대로 몸을 뉘 었다.

하릴없이 아래로 추락하던 이그니스의 몸을 건져 올린 가이오니아는 분노로 울부짖었다.

하늘이 갈라지고, 지축이 흔들렸다.

「이그니스!」

「이 어리석은 아이야!」

「너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왜 이 렇게 짓밟는 것이냐!」

「어째서, 그 따위 존재를 위해, 내가 준 목숨을 쉬이 내던진다는 말이 냐!」

「어째서!」

가이오니아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 렸다.

괴로움, 그리고 분노.

그 사이에서 요동치는 감정으로 가이오니아는 말했다.

「너는 절대로 죽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영원한 형벌의 굴레에 갇혀 괴로워하리라.」

정확히는 이그니스가 아닌, 이그니스의 연인에게 내린 형벌이었다.

아버지인 가이오니아보다, 자신의 목숨보다 연인을 사랑했던 이그니스.

감히 그 사랑을 독차지하고도 이그니스를 배신한 존재의 영혼이.

끝없는 윤회 속에서도 결코 자유롭 지 못하도록.

***

솜니페르와 정신이 연결된 동안 미하일이 돌려받은 ‘첫 살인의 기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 했다.

원래부터도 그랬지만, 더욱 크게 번 진 듯한 가이오니아를 향한 살의.

그리고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 다’며 단호하게 말하는 태도.

변심한 연인의 마음을 견디지 못해 저지른 그 첫 살인에, 우리가 몰랐던 비밀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재차 미하일에게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가이오니아를 만나고 싶은지, 무서운 시련에 주저하는 우리들을 아랑곳 않고 훌쩍 포 털로 뛰어들었다.

“그니까네 저 불멧돼지가 마무리를 제대로 못 해가 거미 괴물이 살아있 었고, 고것 땜시 다들 죽을 뻔했던 거 여라?!”

“야, 이 새끼야. 내가 알았냐?”

잔뜩 긴장하고 미하일을 따라 들어 갔지민, 이번 시련은 왜인지 전과 달 랐다.

포털 너머는 똑같은 풍경이었고 우리는 한참 직진하며 솜니페르의 숲에 서 서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 나눴다.

록사가 솜니페르에게 당할 뻔했고, 아자르가 겨우 그를 구해낸 모양이었 는데 왠지 둘 사이에는 전에 없던 유 대감이 엿보였다.

여전히 투닥거리는 건 변함없었지 만.

“그런데 그 마수, 덩치만 컸지 무력 적으로는 썩 강한 놈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부지런히 걸으며 아자르가 말했다.

“네. 기본적으로 정신을 조종할 대 상이 없으면 혼자서는 할 게 없는 마 수거든요. 아마 핵을 깨뜨리지 않았 는데도 아자르랑 록사 씨가 숲의 환 상에서 벗어난 건, 솜니페르가 더 이 상 가망이 없다고 여겨서였을 거예요.”

“아, 촉새의 정신을 지배하는 데 실 패했으니까?”

“그렇죠. 아자르에게 시도하지 않 은 건, 정신력이 강해 머릿속에 균열을 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테 고요.”

“헹! 그럼 그렇지, 정신 약한 놈들이나 휘둘리는 거였구만!”

콧대가 높아진 아자르가 어깨를 으 쓱하며 말하자, 우리는 모두 앞서 걷 던 미하일의 눈치를 보며 침묵했다.

“크홈. 눈치 없는 새끼. 아무튼 할 줄 아는 거라곤 힘쓰는 것뿐이지라.”

“뭐야?!”

“한디 대신관은 완전히 정신이 먹 혀븟다 글드마는 어찌 살았대예? 불 멧돼지 말 들어보니까네 괴물을 죽여 블믄 거미줄에 묶인 인간도 훅 가버 린다 하더만. 역시 거짓말이었지라?

멍충한 불멧돼지는 또 그걸 믿고 아 주…….”

“이 새끼는 진짜 구해줘도…….”

또 싸우려는 둘을 말리며 내가 말했다.

“아뇨. 틀린 말은 아니예요. 그렇지 만…….”

우리가 받고 있는 벌과 그 원리를 잘 모를 둘이니, 미하일이 살아남은 게 의아할 터였다.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둘의 등을 떠 밀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살았어요. 아무튼 아자르가 고생 많이 했어요. 둘이 같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록사 씨는 꼼짝없이 죽을 뻔했다고요. 록사 씨, 고맙단 말은 했죠?”

“아, 하믄예. 지가 은혜 입은 건 또 확실히 갚는 놈이지라. 요 불멧돼지 가 지 팔을 숭덩 자르고 울먹울먹하는이디…….”

“내가 언제 그랬냐?!”

록사는 숲의 환상에서 벗어나자마 자 아자르의 팔을 붙여준 제 영웅담을 벌써 스물아홉 번쯤 늘어놓는 중이었다.

슬슬 지루해진 내가 대충 알겠다고 웃으며 조잘거 리는 둘을 이끌었다.

“악!”

뒤를 보며 걷던 나는, 데보라를 안 은 채 우뚝 멈춰 선 미하일의 등에 부딪혔다.

“뭐야, 왜…….”

그의 어깨 너머를 내다본 나는 놀랐다.

“어, 어머니. 이리 오세요.”

뒤에 바짝 따라붙어오던 아벨이 잔 뜩 경계하며 내 몸을 당겨 자기 뒤로 숨겼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시커먼 하나의 덩어리인 줄로만 알았다.

포털 색과 비슷해 그곳으로 향하던 중이었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아니 었다.

“저, 저게 진짜 뭐시당가?”

길쭉한 인간의 팔다리와, 온몸이 새 카맣게 뒤덮인 피부. 얼굴에는 눈코 입이 없었다.

3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키를 가 진 ‘그것’들은 갈지자로 비틀비를 걸 으며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흐으…….”

겁먹은 데보라가 미하일의 품으로 파고들며 울었다.

그것은 데보라뿐 아니라 우리 모두 겁먹게 할 수 있을 만한 생김새였다.

분명 인간의 몸이긴 한데 너무 거대 한 데다 이목구비도 없고, 결정적으 로 새카만 전신이 거부감을 들게 했다.

게다가 모여서 이 주변만 배회하고 있으니, 멀리서 볼 땐 몰랐던 사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이는 머릿수다.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에 잔뜩 놀라 아벨의 뒤로 바짝 숨어들 었을 때였다.

그것들 중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우리 쪽으로 걸어오자, 아자르가 번개처럼 뛰어나가 검을 휘둘렀다.

서걱!

왠지 공격성이 없어 보이던 그것은 아자르의 검에 맥없이 허리가 끊겨 두 동강 났다.

하지만…….

“오우, 신이시여.”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록사의 입에서 허망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단칼에 잘린 그것의 단면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허리가 잘렸는데 고통을 느끼는 것 같지도, 피를 흘리지도 않았다.

꼭 진흙 인형처럼 반으로 갈라진 그 것은, 거짓말처럼 다시 꾸물꾸물 움 직여 육체를 회복했다.

아마 무한 재생되는 인간형 마수인 모양이었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럴 수가.”

무심코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퍽 절망적이었다.

옆에 서 있던 록사가 중얼거렸다.

“딱 봐도 수백 마리는 돼 보이는디 금세 한 마리 더 늘려부렀냐. 하여튼 일 치는 데는 뭐 있지라.”

타박하는 그의 말에도 아자르는 대 꾸하지 못한 채, 허망하게 벌어진 입술을 달싹였다.

갈라져 두 개가 된 그것의 육체는 따로따로 재생되었기 때문이다. 죽지 도 않고 비척비척 일어난 그것은 두 마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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