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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65화 (165/221)

165화.

왜인지 데보라를 데리고 멀찍이 떨 어진 미하일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는 록사의 주위로 둘러앉 아 그의 꾸러미 안을 구경했다.

록사는 하데스의 부탁으로만들어 놓았던 물약 거의 전부를 챙겨 루버몬트로 왔다고 하는데, 이미 쓸 만한 건 하데스가 다 챙겨 갔고 남은 건최대로 2차 개방 이능을 발동시키는 약뿐이었다.

그렇지만 이것들이라도 어딘가. 공격 능력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나에게는 퍽 반가운 것들이었다.

나는 발화의 이능을 사용할 수 있는 화속성 물약과 작풍의 이능을 사용할 수 있는 풍속성 물약을 고이 챙겼다.

나와 같이 한참 물약을 고르던 아벨 은, 오묘한 색을 내는 것 하나를 집었다.

록사가 흠칫했다.

“공자님! 그거는 너무 비싸서 안 되지라!”

“아, 그, 그래요?”

아벨이 민망한 표정으로 집었던 물 약을 내려놓았다.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록사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이건 뭔데요?”

“소원을 들어주는 물약이지라.”

“……네? 약으로는 속성 마법만 발 동시킬 수 있는 거 아니었어요?”

“맞긴 한데예. 처음 능력을 개방할때에 한해서 속성 마력과 같이 방출되는 오오라가 있지라. 아직 연구가 덜 되어서 그 본질은 모르지만, 지는 그거를 ‘간절한 정신의 집약체’라 부 르고 있어라.”

“간절한 정신의…… 집약체?”

“예. 첫 개방만큼 인간의 의지가 중요한 순간은 없거든예. 그래선지 처음 능력을 개방할 때에 자주 방출되 곤 하는 ‘속성 외 마력’인디, 그거를 차곡차곡 모아 약으로만들어놓은 것 이지라.”

“속성 외 마력이라……. 그럼, 이거먹으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아녀, 아녀. 지도 안 먹어봐서 모 르지라. 다만 여기 깃든 마력이 ‘의 지’에 기반을 두니까네, 아무래도 비 슷한 능력치가 발현되지 않을까 예상 만해보는 거지라.”

“아아……. 이해했어요. 뭔가 특정 한 능력치를 갖고 있는 약은 아닌 거 네요?”

“예. 사실 마신다고 능력을 발동시 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긴 한데, 모으기가 워낙 힘든 종류라가지고…….”

“뭐야? 그러면 먹어봤자 뭐가 좋은 지도 모른다는 거 아닌가? 도움이 되 기는커녕 마법 시전도 안 될지 모르 고?”

멀리서 듣고 있던 아자르가 끼어들 었다.

“색깔만 보기 좋은 쓰레기구만 뭘 비싸게 굴어? 공자님 드려라.”

“아자르. 괜찮아. 나 필요 없어.”

아벨이 손을 크게 휘저었다.

그 ‘소원의 물약’은, 확실히 무슨 능력치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는 종류였지만 색이 예쁘긴 했다.

이리저리 돌려보는 대로 붉은빛, 푸 른빛, 노란빛, 초록빛을 냈는데 설마 진짜로 소원을 들어줄 리는 없어 보였고 아자르의 말대로 ‘예쁜 쓰레기’ 정도 될 듯했다.

어째 아자르의 말에 동의하는지, 록사는 들고 있던 물약을 가만히 내려 다보다가 그것을 불쑥 아벨에게 내밀 었다.

“그람 그랍시다. 공자님 가지고 계 셔예.”

“네, 네에? 저 괜찮아요.”

“아녀라. 어차피 지가 갖고 있어봤 자 쓸 일도 없어라. 벌써 몇 년째 묵 혀오고 있는 거였지라.”

“그래도비싼 거라고.”

줄 때 받아, 아벨.

나는 록사의 손에서 냉큼 그것을 받 아 아벨의 손에 옮겨준 뒤 말했다.

“고마워요. 돌아가면 꼭 백지수표 로 갚을게요, 록사 씨.”

“하하! 예……. 한디, 지 살아서 돌 아갈 수는 있겠지라?”

울상이 된 록사가 중얼거 렸다.

걱정스러워하는 그에게 당연하죠, 대답해주려던 나는 멈칫했다.

사실 저주를 푸는 것까지는 바라지 도 않고, 가이오니아를 만나 무릎 꿇 고 빌어서라도 하데스와 나머지의 목 숨을 구걸해볼 생각이었다.

한데 그것도 그 자리까지 살아있어 야 가능한 일이지.

‘가이오니아의 앞에 도착하기 전까 지는 확실히 모두 무사할 거야. 그런 데 록사는…….’

오르쿠스로 가는 여정에 록사가 말 려들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

가이오니아를 마주하기 전에 안전 한 곳에 떼어놓고 가야 하는 걸까?

아니, 그것보다는 록사를 집중적으 로 보호하는 게 맞겠지. 우리 중 유일 하게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사람이 니까.

나는 속마음을 숨긴 채, 그가 걱정하지 않도록 최대한 밝게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마세요.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말을 마치고 나는 록사의 어깨에 가 볍게 손을 얹었다.

백속성의 마력이 흘러들어가자 무 언가 느낀 록사가 바짝 굳었다.

내가 록사에게 걸어준 건, 지금 하데스에게 걸어놓은 것과 같은 지속형의 무효화였다.

“아니…….”

“건강하세요, 록사씨.”

“부인……. 이런 감동이…….”

내가 무효화를 걸어줬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록사가 실눈 위로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했다.

그가 코끝을 훌쩍이며 덧붙였다.

“예, 건강해야지라. 돌아가서 백지 수표 받을라믄…….”

지옥문 앞에 와서도 변함이 없는 돈을 향한 욕망에, 듣고 있던 나와 아벨 은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웃던 아벨이 아, 탄성을 내뱉 으며 물었다.

“그런데 마법사님은 돈도 만들어낼 수 있는 거 아니예요? 굳이 힘들게 돈 버시는 이유가 뭐예요?”

“어머.”

듣고 보니 그랬다. 나도 궁금한 눈 이 되어 록사를 바라봤다.

“아, 그거는…….”

록사가 멋쩍게 웃고 있자, 뒤에 서 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아자르가 또 끼어들었다.

“저 수전노 새끼가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이미 그 지랄을 해서 제국을 한번 뒤집어놨습죠.”

“응?”

고개를 갸웃하는 아벨에게 아자르 가 덧붙였다.

“공자님이 루버몬트로 들어오기 전의 일입니다. 아니, 태어나기도 전이 려나? 10년쯤 전에 제국에 통용되던화폐들이 싹 다 바뀌었거든요. 아주 혼란의 도가니였습죠.”

“……왜?”

“아니, 저 불멧돼지는 왜 다 지나간 얘기를 꺼내고 지랄이지라?”

“저 새끼가 창조의 이능을 개방한 토속성 능력자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까발려진 이유기도 하고요.”

“그만혀라?”

“돈 만들었던 거예요?”

내가 묻자, 록사가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망설이다가 헛기침했다.

“예, 뭐. 능력 개방하자마자 돈 찍 어내느라 바빴어예. 적당히 했어야 했는디, 하도 신나게 찍는 바람에 화 폐 수요가 안 맞아버린지라 걸리긴 했지마는…….”

“와, 록사 씨. 불법이란 불법은 다 저지르고 다녔군요.”

“아니! 내 능력 사용해서 내가 풍요 롭게 산다는디 그거가 와 불법이지 라? 아무튼 불법이라고는 말하더라 고예…….”

“그래서요?”

“잡혀갔지라. 다행히도 스승님이 해결해주셔가 그때 한 번 목숨 부지하고…….”

“스승님이라면 황실의 마탑주 말인 가요?”

“예. 창조의 이능을 악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황실이 뒤집어졌 지라. 해서 화폐를 다시 찍어냈어예. 스승님께서 새 화폐에 창조하는 데 엄청난 마력이 드는 수식을 새겨서 이제는 쉽게 못 만들지라. 황실 산하 조폐기관에서밖에는예.”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다니.

록사 트리볼트, 그도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한 사람이 었다.

“지금은 범죄자지만.”

“아니, 저 새끼는 왜 사사건건 시비를 털고 저라지라? 못생긴 게…….”

“뭐야?!”

“그만!”

아자르가 욱하며 달려들려 하자 내가 말렸다.

모두가 한곳에 모인 적은 처음이라 몰랐지만, 둘은 사이가 아주 안좋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전부터 아자르가 록사 얘기를 할 때면 꼭 욕이 따라붙곤 했는데, 모르긴 몰라도 둘 사이에 뭔가 앙금이 있는 모양이었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우리끼리 싸워봤자 무슨 이득일 텐가.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록사 씨는 왜 이렇게 돈에 집착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모은 돈 만해도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 은데 말이야. 뭐 빚진 거라도 있어 요?”

“아녀라. 빚이 있었어도 진작 옛날에 다 갚았겄지라.”

“그런데 왜요?”

화제를 돌리려고 한 질문이었지만 정말 궁금하긴 했다.

록사는 내 질문에 갑자기 침묵했다. 감은 눈으로 한참 뭔가를 생각하던 그는, 곧 킬킬 웃었다.

“살면서 뭔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 겄어라. 돈은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니 겠어예?”

“그러다 배 터져 뒤지지. 죽으면 가 지고 갈 수도 없는 거.”

“하믄 니는 지금처럼 하루 벌어 하루 처먹고 살다가 구질구질하게 뒤지 시든가.”

“뭐?”

순간 록사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 고 아자르가 발끈했다.

앉아있던 록사는 아자르를 올려다보며 비죽 웃었다.

“니가 아직 덜 비참해봐서 모르는 가베. 그때 돈 없어서 질질 짜면서 내 앞에서 무릎 꼻은 거 다 까먹어부렀 냐?”

“뭐, 이 새끼야?”

“응. 쳐라, 쳐!”

불쑥 다가오는 아자르를 록사는 피 하지 않았다.

일어난 록사가 그를 조롱하듯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방글방글 웃으며 말했다.

“전하께 느 이야기를 첨 들었을 때 얼마나 등신 같다고 생각했는지 아 나? 세상에 모지란 놈 많지만 너만큼 모지란 놈은 없을 거라 생각했제.”

대번에 멱살이 잡히고서도 록사는 태연했다. 그는 바짝 굳은 나와 아벨을 돌아보며 말했다.

“굳이 이방인이 살기 힘든 제국까지 기어 들어와가 무시란 무시는 다 당하고 굴러먹는데, 이유가 뭔지 아 셔라?”

풉, 웃음을 터뜨리며 록사가 덧붙였다.

“지 나라에 줄줄이 딸린 동생들 먹 여 살려야 해서 그런다네예?”

아자르의 사정은 처음 듣는 거였지만 결코 조롱할 내용은 아니었다.

한데 록사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아자르의 과거까지 들먹 여가며 그를 비웃기 시작했다.

“모지란 새끼. 니 인생은 니 것이 여, 이 빡대가리 새끼야. 피붙이도 아 닌 것들 먹여 살릴라고 구르고 자존 심 버리면 결국 니한테 뭐가 남냐? 아, 고생하다 뒤지면 동생들이 울어는 주겠다마는…….”

“록사 씨, 그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다. 니 인생 제대로 살려면, 5년 전 그때 짐덩어 리 같은 느이 동생들 기냥 편하게 뒤 져부는 게 맞았어야.”

말리려던 나보다 아자르의 주먹이 올라가는 게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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