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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62화 (162/221)

162화.

“넌 왜 그러냐?”

다들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한 표정이건만, 시냐라고 불린 여자아이만은 어째선지 참담한 얼굴이었다.

“시냐, 왜 그래?”

“어디 아파?”

“으응, 아냐. 아, 아틀라스는 어디 로 갔어?”

“저 나무 꼭대기에 황금 사과를 따 러 갔어!”

“그렇구나. 그럼 우리는 아틀라스 가 돌아올 때까지 다시 일을 하자. 쉬 면 안 돼.”

“왜? 아틀라스가 사과를 따오면 더 이상 나무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되잖 아?”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서 사과를 품고 있던 제누스 님의 나무 에게 미안하잖아. 무사히 자랄 때까지는 계속 돌보아야지.”

“아, 맞아.”

“맞아. 시냐 말이 맞아.”

“알겠어. 일하러 가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삼삼오 오 발을 맞춰 멀어졌다.

주변에 모여 있던 아이들을 전부 멀 리 보내고 나서야 시냐가 주저앉았던 몸을 일으켜 하데스의 앞으로 다가왔다.

시냐는 손을 벌벌 떨며 물었다.

“왜, 왜 이걸 대신 들고 있는 거예요?”

“뭐?”

“왜 아틀라스의 벌을 대신 받고 있 냐고요.”

“아니, 벌을 대신 받는 게 아닌데. 녀석이 황금 사과인지 뭔지를 따올 동안만 대신 들고 있는 거야.”

불안해 보이는 시냐를 달래려고 하데스는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 했지만, 그녀는 더 덜덜 떨 뿐이었다.

“아틀라스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벌을 끝마치길 바라왔어요. 돌아와서 다시 순순히 문두스를 받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왜 당신이랑은 관계도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이런 짓을 했어요?”

“뭔 소리야. 그녀석이 돌아오지 않을 거란 말이냐?”

“아니요. 돌아오겠지만 다시 이 형 벌을 돌려받지는 않겠죠.”

하데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시냐라는 아이는 왜인지 아틀라스를 바짝 경계하고 있었는데, 하데스는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애가 이걸 짊어지기 싫어서 날 속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사과인지배인지를 먹으면 너희들이 자랄 수 있다는 게 거짓말이라고?”

“아뇨. 거짓말이 아니예요.”

“그럼 뭐가 문제지? 녀석이 그걸 가 져오면 너희가 자라는 건 시간문제일 테고, 기다렸다가 다 함께 저 포털을 통과하면 되지 않나? 혹 그 시간을 견디는 게 싫어서 녀석이 이걸 되돌 려 받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건가?”

황금 사과를 심고, 나무를 길러내 고, 아이들 머릿수만큼의 사과가 열 리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하데스도 알 수 없었다.

만약 시냐의 걱정대로, 문두스를 받 치고 있는 형벌이 싫었던 아틀라스가 딴 소리를 한다면 조금 곤란하겠지 만…….

‘오래 살았다곤 하지만, 여기 있는 아이들 모두 몸 따라 정신도 덜 자란 것 같으니.’

다른 아이들보다야 어른스러워 보였지만, 시냐의 걱정대로, 아틀라스는 두 번 다시 문두스를 받치기는 싫 다 생떼를 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키지는 않아도 아틀라스를 겁박해야 할 테다.

못 쓰는 건 두 팔뿐이지 능력을 사 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하데스가 시냐에게 물었다.

“녀석은 풍속성 능력자였지. 혼자 살 궁리를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너 희들을 위해서 평생 이걸 받치고 있 던 녀석 아니냐? 너는 그 앨 못 믿는 건가?”

“저희를 위해서라고요? 아뇨.”

시냐는 단호히 고개 저었다.

“여기 있는 아이들 중 자의로 부모를 해친 아이들은 없어요.”

“알아. 죄도 아닌 걸 죄랍시고 벌주는 게 빌어먹을 도마뱀의 특기니까.”

“그런데 유일하게 아틀라스만은 아니예요. 그 애는 자기를 낳고 기른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을 졸라 죽였어요.”

“뭐?”

“그래서 문두스를 받치는 형벌을 받게 됐어요. 그 애가 아이들이 깔려 죽을까 봐 문두스를 내려놓지 않은 줄 아세요? 문두스가 땅에 닿는 순간 아틀라스는 소멸해요. 아버지가 내린 형벌을 이행하지 않았으니까요.”

“잠깐. 그러니까…….”

“여기 있는 아이들은 몸만 자라면 무사히 문두스로 갈 수 있지만, 아틀라스는 아니라고요. 그 애에게는 형 벌의 끝이 약속되지 않았어요.”

하데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니까 아틀라스는, 아이들이 깔 려 죽을까 봐 평생 문두스를 짊어지 고 있었던 게 아니란 말이다.

이걸 짊어지고 있는 그 자체가 그에게는 형벌. 문두스가 땅에 닿는 순간 자신이 소멸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이걸 받치고 있었던 거다.

“잠깐. 생각을 좀…… 해보자.”

마냥 순수했던 아틀라스의 눈빛을 떠올리던 하데스가 지그시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안 어울리는 짓을 하면 이렇게 문제가 생기고야 마는 거다.

‘그렇지만 이 꼬맹이들을 모른 척하 고 가버리는 것도…….’

무심코 시냐의 얼굴을 바라보던 하데스가 멈칫했다.

「어른은 처음 봤어요. 아이들이면 몰라도 어른은 이곳을 통과해서 문두 스로 가지는 않거든요.」

지나치듯 들었던 그 말이 사실이라 면…….

어쩌면 세세푸우의 첫 관문을 통과 한 하데스가 이곳으로 오게 된 건 음 흉한 도마뱀 신의 계획일지도 몰랐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소리를 들 으며 살아왔던 그에게 처음으로 생긴 약점은 아벨이었다.

아이샤를, 결국은 아벨을 살리기 위 해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지옥까 지 온 그였으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원래라면 냉정히 지나칠 수도 있었을 아이들을 측은히 여긴 건, 그들의 얼굴에서 아벨을 보았기 때문이었지.

과연, 이런 식이라면 가이오니아의 앞에 도착하기 전까지 적잖이 난항을 겪을 터였다.

‘쥐새끼 같은 놈.’

일그러진 얼굴로 가이오니아를 향 해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던 하데스 가, 여전히 참담한 표정을 한 시냐를 향해 말했다.

“네 말은 잘 이해했다. 그렇지만 걱 정할 필요는 없어. 두 팔만 못 쓴다뿐이지, 그 어린 녀석의 목숨 하나쯤 위협할 힘은 충분히 있으니 말이다.”

“…….”

“정말 괜찮다니까. 소멸하는 게 싫 어서 평생 이걸 떠받치고 있던 놈 아 닌가? 죽음이 두려운 놈은 죽음으로 협박하면 될 일이지. 정말 날 속인 거 라면 내 앞에 왔을 때 머리통을 태워 주면 된다.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시냐의 말이 맞는다면 아틀라스의 목적은 하데스로 하여금 계속 문두스를 받치고 있게 하는 거였다.

문두스가 땅에 닿으면 아틀라스 그자신이 소멸하기 때문에.

하지만 하데스는 아틀라스가 눈에 보이자마자 그를 불태워 죽일 능력이 있었다.

죽기 싫어 평생 문두스를 떠받치고 있던 놈이니, 결국은 살기 위해 이걸 돌려받지 않겠는가.

“네…….”

그러나 시냐는 하데스의 능력을 믿 지 않는 모양인지,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왜인지 애틋한 표정으로 한참 하데스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의 곁에 가 몸을 앉혔다.

“저기, 만약 뜻대로 되지 않으면요.”

“…….”

“문두스를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지 마세요. 할 일이 있어서 여기 오신 거 잖아요.”

“뭐?”

“아이들이 안타까워도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여기서 지체할 시 간은 없으시잖아요.”

“그만.”

도대체가.

제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는 이들만 왜 이리 주변에 그득한지, 하데스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옆에 앉은 시냐를 무심하게 내 려다보며 말했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은 없어. 네 가 여기서 깔려 죽을 일도 없다.”

“네…….”

시냐는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오랫 동안 침묵했다.

아틀라스를 기다리며 지루한 고요 가 이어지는 동안,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하데스는 물었다.

“너는 왜 여기에서 벌을 받고 있 지?”

“음…….”

시냐는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아주 옛날에 저는, 부모님보다 먼저 죽고 말았어요. 제가 없어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라버니랑 행복하게 지낼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 에요.”

“…….”

“제가 죽은 게 너무 슬프셨나 봐요. 어머니가 저를 그리워하다가 피를 토하고 돌아가셨대요.”

“그게…….”

……부모를 죽게 만든 죄라고?

하데스는 순간 험한 말이 튀어나오 려는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그 후로는, 둘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했다.

다시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멀 리 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의 환호성 이 들려왔다.

아틀라스가 돌아온 것이었다.

시냐의 말 때문에 하데스는 바짝 긴장하고 그를 맞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아틀라스는 미안한 얼굴로 헐레벌떡 달려오기 시 작했다.

“하아, 하아……. 형! 많이 힘들었 지?”

“…….”

무릎을 짚으며 숨을 고르는 아틀라스를 빤히 바라보던 하데스가 대답했다.

“괜찮다. 황금 사과인지 뭔지는 가 져왔냐?”

“당연히 가져왔지!”

방긋 웃은 아틀라스가 품 안에서 사과를 꺼 냈다.

“황금사과는 아니지만.”

아틀라스가 붉은 사과를 든 채 비죽 웃었다.

“뭐야.”

당황할 새도 없이 시냐가 한달음에 자리를 박차고 아틀라스에게 달려들 었다.

그리고는 작은 몸으로 아틀라스의 멱살을 쥐고 소리 쳤다.

“이 나쁜 놈!”

“어어, 시냐. 오랜만이야.”

“나쁜 놈! 망할 놈!”

어느새 둘의 주위로 몰려든 아이들 이 맞붙은 시냐와 아틀라스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 왜 이래?”

뻔뻔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는 아틀라스의 가슴팍을 향해 시냐가 작 은 주먹을 내질렀다.

허우적거리는 작은 움직임이 가소 롭다는 듯 픽 웃은 아틀라스가 손에 약간의 마력을 실어 시냐를 쳐냈다.

“아악!”

날카로운 바람이 칼날처럼 시냐의 복부에 생채기를 내며 작은 몸을 마 른 땅 위로 내동댕이쳤다.

무심코 시냐에게로 가려던 하데스 가 멈칫했다. 문두스를 받치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저 개 같은, 새끼가 진짜…….”

히죽 웃는 아틀라스를 향해 욕지거 리를 내뱉는 것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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