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60화 (160/221)

160화.

「정답! 하데스 루버몬트!」

「정답, 하데스!」

「루우버몬트 공작 저은하아!」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강하고 자애로운 존재, 하데스 루버몬트의 은혜로 아이샤 일행이 무사히 오르쿠스에 진입했을 무렵.

정작 문지기의 머리 두 개를 베어내 고 당당히 지옥에 입성한 하데스는, 고전 중이었다.

“형, 무거워?”

“말이라고 하냐?”

푸른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소 년, 아틀라스는, 오르쿠스 안의 세계 ‘문두스’를 짊어진 채 땀을 뻘뻘 흘리는 하데스를 보며 히죽 웃었다.

“겨우 한 시간 들어놓고 엄살은.”

아틀라스의 손에는 붉고 탐스러운 사과 한 개가 들려 있었다.

아삭, 그가 그것을 한 입 베어 물며얄밉게 웃었다.

“넌 내가 검만 쥐면 죽는다.”

“헤에……. 그거 말이야?”

아틀라스는 하데스의 발치 옆에 굴러다니는 그의 검을 가리켰다.

꽤 무서운 협박이었지만, 지금은 그 저 우스울 뿐이었다.

거대한 세계를 받치고 있느라 두 손 이 자유롭지 못한데 어찌 검을 쥘 텐 가.

그렇다고 내려놓으면?

아틀라스는 땡볕 아래서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는 수많은 어린아이들을 돌 아보며 안타까운 듯 울상 지었다.

“내려놓게? 이 불쌍한 아이들이 다 깔려 죽을 텐데?”

“…….”

“헤헤……. 처음 우릴 도와준다고 할 때부터 느꼈지. 형은 이 아이들이 죽는 거, 절대 못 봐. 그냥 나 대신, 영원히 그거나 짊어지고 있어. 난 몸 이 다 자라면 가볼 테니까.”

과연 아틀라스의 말대로, 사과를 먹 은 이후로 그의 키는 벌써 한 뼘이나 자라 있었다.

대충 보니 반나절도 안 되어 ‘어 른’이 될 터였다.

‘돌겠군.’

하데스는 이를 악문 채 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됐는지 천천히 곱씹기 시작했다.

아무튼 안이한 제 탓이었다. 어쩌면 연인의 이름에 약해졌는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이 답답한 상황은, 다 ‘제누스의 무덤’에 도착하고 나서 벌어 진 일이었다.

***

세세푸우의 관문을 통과하자마자 하데스가 본 건, 허공에 떠 있는 거대 한 하나의 ‘세계’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메마른 지평선뿐이었던 오르쿠스와는 사뭇 다른 모습.

그곳은 꼭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와 같았다. 수많은 인간의 영혼들이 분 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전부 들여다 보였다.

정작 거기 살고 있는 인간들은, 이 곳을 보지 못하는 듯했지만…….

하데스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뭐야, 저건?’

멀지 않은 곳에 수백 명은 되어 보 이는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땡볕 아래에서 맨손으로 밭을 갈고, 물을 긷고 있었다. 마른 밭을 헤집는 손끝에서는 피가 났고 작은 우물까지 왔다 갔다 하는 발들 은 퉁퉁 붓고 부르터 있었다.

‘대체 뭐 하는 거지?’

깡마른 아이들이 마른 땅에서 길러 내고자 하는 것은, 아무래도…….

‘뭐가 저렇게 커?’

생명이라곤 없어 뵈는 황폐한 이 공 간에서 유일하게 생기 넘치는 그것.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자라 있는 나무 한 그루였다.

성인 남성 다섯 명이 에둘러도 다 감싸 안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나무 가까이로 다가간 하데스는 놀랐다.

나무 기둥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 었다.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여자의 얼굴이었다.

무심코 하데스의 손이 여자의 뺨으 로 가 닿았다. 낯선 얼굴이었지만 낯 설게 느껴지지 않는 어떤 기시감이 묘했다.

“어른이다.”

“우와.”

“어른이 왔어.”

그때 하데스의 주변으로 몇몇 아이 들이 몰려들었다.

전부 대여섯 살 남짓한 어린아이들이었고, 간간이 아벨 또래의 키가 큰 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하나같이 부르튼 손과 발을 한 아이 들이 눈을 빛내며 하데스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어른이야.”

“우와…….”

“문두스로 가려고 온 건가 봐.”

“……문두스?”

의아한 듯 묻는 하데스에, 어느 한 아이가 깡마른 손을 뻗어 허공 위를 가리켰다.

“어른들만 갈 수 있는 곳이에요. 저 위에 가서 착하게 살면, 가이오니야 께서 환생시켜주거든요.”

“아하.”

아무래도 저곳으로 올라가야 가이오니아를 만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데스는 다시 걷기 시작했고 아이 들은 흥미로운 얼굴로 그의 뒤를 따 랐다.

“그런데 어른이 어떻게 여기에 왔 지?”

“그러게. 신기하다.”

“왜. 여긴 다 너희 같은 꼬맹이들뿐 인가?”

“네. 어른은 처음 봤어요. 아이들이 면 몰라도 어른은 이곳을 통과해서 문두스로 가지는 않거든요.”

“아틀라스! 이것 봐! 어른이 왔어!”

멀찍이 보이던 ‘문두스’와 가까워졌을 무렵, 한 아이가 소리쳤다.

그제야 하데스는 무언가를 발견하 고 인상을 찌푸렸다.

‘저게 뭐야?’

허공에 살짝 떠 있는 줄 알았던 그 문두스라는 망자들의 세계는, 가까이 서 보니 떠 있는 게 아니 었다.

퍽 기괴한 광경이었다. ‘아틀라스’라고 불린 열 살 남짓한 소년이 두 팔을 들어 문두스를 받쳐 들고 있었다.

“어? 정말이네? 우와…….”

그는 아벨보다도 더 마른 몸으로 저큰 공간을 짊어지고 있었다. 퍽 안타 까운 모습이었다.

대번에 인상을 찌푸린 하데스가 아틀라스에게 물었다.

“넌 뭐냐?”

“아틀라스요.”

“아니, 이름 말고. 왜 이러고 있냐 고.”

“아! 가이오니아께서 내린 벌을 받 고 있는 중이에요. 저도, 여기 있는 아이들도요.”

벌?”

“네. 여기는 ‘제누스의 무덤’이에요. 가이오니아께서 제일 사랑했던 따님의 이름이죠.”

“뭐야?”

“저 나무 보이시죠? 저게 원래는 제누스 님이었대요. 스스로 목숨을 끊 은 제누스 님이 그리워서 일주일 밤 낮을 우시던 가이오니아께서…….”

“시체를 저렇게 박제해 놨다고?”

정말이지 알면 알수록 정신 나간 신 이 아닐 수 없었다.

하데스는 여자의 형상을 닮은 나무를 보고 느꼈던 기시감을 뒤늦게야 이해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러고 있 나? 들어봤자 별것도 아닐 것 같지 만.”

“저랑 저 아이들은 모두 ‘부모를 죽 게 만든 죄’를 저질렀어요. 대부 분…… 태어날 때 어머니를 죽게 만 든 아이들이 많죠.”

“뭐라고? 그게 왜…….”

아이를 낳다 죽는 인간들은 꽤 많다.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태 어난 어린아이들의 잘못은 아닐 터였다.

황당해하던 하데스가 또 헛웃음을 터뜨렸다.

애초에 정신 나간 신이 아니었던가. 그를 이해하려고 드는 것이 멍청한 짓일 테지.

“가이오니아께서는, 제누스 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자식 때문 이 라 하셨어요. 해서 여기 있는 아이 들은 전부 부모에게 속죄하는 마음으 로 ‘제누스의 무덤’을 지키게 되었 죠.”

“뭔…….”

……개뼈다귀 같은 소리지?

“얼마나 이러고 있었지?”

노한 하데스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아이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나?”

“얼마나라니?”

“우리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지?”

“몰라?”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다들 저보 다는 어리다는 거예요. 제가 가장 처음으로 여기 왔으니까요.”

방긋 웃는 아틀라스를 보며 하데스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옥이 처음 생길 때 부터 있었다는 머리 세 개 달린 문지 기만큼이나 나이를 많이 먹은 아이들 인 모양이었다.

“아무튼 여기 어른이 들어온 건 처음이에요. 어른은 아이들과 달리 문 두스로 들어갈 수 있어요. 이쪽으로 가면 돼요.”

아틀라스는 제 뒤를 돌아보며 턱짓 했다.

과연 세세푸우가 열어줬던 문과 같은 생김새의 포털이 아틀라스의 뒤에 존재했다. 그가 짊어진 문두스로 이 어지는 문이었다.

‘진짜 가지가지 하는군.’

땡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는 어린 아이들의 영혼이 안타깝긴 했으나 당장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하데스는 애써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곤, 아틀라스가 가리킨 포털을 향 해 걸었다.

“우와, 부럽다.”

“아틀라스, 우리도 자라면 저기 들 어갈 수 있는 거 맞지?”

아틀라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문두 스는 허상처럼 만져지지 않는 대신 눈에는 선명히 보였다.

그곳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많은 인 간들은 모를 터다.

그들의 발밑에 되지도 않는 벌을 받 고 있는 아이들의 영혼이 이렇게나 많이 존재한다는 걸.

아틀라스는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으옹……. 그러엄……. 나무가 시 들지 않게 열심히 지키면 돼. 언젠가는 열매가 떨어질 테니까.”

“맞아! 일하자!”

“맞아, 맞아! 제누스 님이 우리를 어른으로만들어주실 거야!”

포털로 발을 들여놓으려던 하데스 가 멈칫했다.

돌아보자, 아틀라스가 퍽 부러운 눈으로 하데스를 훔쳐보고 있었다.

“벌을 마치고 여기로 들어간 아이 들은 있나?”

“……네?”

아틀라스가 당황한 얼굴로 제 주변에 모인 아이들의 눈치를 봤다.

“성인이 되면 지나갈 수 있다며?”

“저……. 귀 좀.”

아틀라스는 계속 아이들의 눈치를 보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데스가 귀를 빌려주자 아틀라스 가 속삭이듯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아무도 여기서 나갈 수 없어요. 이 곳의 아이들은 절대 자라지 않거든요.”

“뭐야?”

어른이 되면 끝나는 벌. 그러나 절 대 자라지 않는 아이들.

실은 처음부터 끝나지 않는 형벌이 었던 거다. 아이샤나 미하일이 받고 있는 끝없는 벌처럼.

“뭔 말도 안 되는…….”

“아, 그렇지만 다들 희망을 가지고 버티고 있어요. 나무를 시들지 않게 가꾸면 언젠가는 열매가 떨어지게 될 거예요.”

“열매?”

“네. 제누스 님의 사과나무에는 황 금색 사과가 열려있거든요. 언젠가 그게 떨어지면 이곳에 다시 심어야 해요. 그러면 아이들의 영혼 수만큼사과가 열릴 테고, 그걸 먹으면 우리는 자랄 수 있다고 했어요.”

“누가. 정신 나간 도마뱀 새끼가 그 렇게 말했나?”

명백히 가이오니아를 칭하며 뱉어 진 말에, 아틀라스가 흠칫 놀랐다.

그는 곧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틀라스의 표정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하데스의 시선이, 천천히 제누스의 시체를 박제한 끔찍한 나무 로 향했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올라갔다.

‘미친 새끼.’

이 힘 없는 아이들이 어찌 사과를 딸 수 있을 텐가.

열매가 맺혔는지 안 맺혔는지도 보 이지 않을 만큼 키가 큰 나무는 허공에 유유히 흐르는 구름까지 뚫고 높 이 뻗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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