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답이 뻔히 보이는 질문에 그런 황당 한 대답을 한 게 누군지.
답을 맞히는 대신 세세푸우의 머리 두 개를 베어버리고 오르쿠스에 당당 히 난입한 그 존재가 누군지.
우리는 시선을 나누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거 렸다.
“그래. 알겠네. 그 인간을 잡아먹으 려고 들이민 사자 대가리가 잘렸고, 또…….”
미하일이 비어있는 세세푸우의 오 른쪽 머리를 가리켰다가, 가운데를 바라봤다.
[그렇게 강한 인간은 처음 보았다. 다른 문제를 내겠다고 했더니 맞힐 생각 없다며 대번에 머리를 잘라버리 더군.]
“한 개 남은 것까지 잘리면 뒤질 테 니 황급히 문 열어줬겠어. 안 봐도 뻔하군.”
[…….]
“그럼 우리도 남은 머리 하나 베고 들어가면 되는 건가?”
[네가?]
세세푸우가 미하일을 내려다보며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내 꼴이 말이 아니지만 네놈들 막을 여력은 있다. 그 인간이야 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었지만 너는 아니 지, 이그니스.]
“…….”
[알지 않느냐? 제법 강한 인간들을 모아온 것 같다만, 나는 아버지의 은 혜로 그들의 능력에 구애받지 않는다.]
오르쿠스의 문을 지키기 위해 가이오니아는 세세푸우에게 철벽과도 같 은 능력을 선물했다.
무효화와 비슷한 방어 능력은 모든 속성 마법을 통하지 않게 했다.
다시 말해 내 정신 지배도 무용지물이라는 것.
그렇다면 하데스처럼 물리적인 방 법으로 세세푸우의 목숨을 위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우리 중에 누가?’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정신계 계열 능력과 회복의 이 능이 전부인 나는 무력적으로 도움이 될 확률 따윈 없고…….
가장 가능성 있는 건 아자르.
그러나 그렇게 안 생겼는데 그는 근 접 싸움에는 취약하다. 원거리 활잡이니까.
멀리서 활로 세세푸우의 머리를 저 격한다? 말도 안 되지. 저 단단한 가 죽도 못 뚫고 고꾸라질 것이다.
그럼…… 미하일?
아니, 이런 말 하면 좀 미안하지만우리 중에 제일 무용지물이다. 어차 피 쓸모없을 테지만, 심지어 내 제약 때문에 암속성 능력도 못 쓴다.
안타깝지만 내 형제는 이번 관문뿐 아니라 앞으로도 쭉 쓸모없을 예정이다.
‘미치겠네.’
내 시선이 미하일의 품에 안긴 데보라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책을 읽은 후유증과 갑작스 러운 세세푸우의 공격에 거의 제정신 이 아니었다.
문득 또 데보라가 안쓰러워져서, 나는 미하일에게 안긴 그녀의 손을 천천히 붙잡았다.
온기가 느껴졌는지 데보라가 감은 눈을 뜨고 내 손을 꽉 마주 잡았다.
‘괜찮아.’
나는 떨고 있는 데보라를 향해 웃으 며 말해줬다.
그때, 데보라만큼이나 떨리는 손길 로 누군가가 내 다리를 붙잡아왔다.
아벨.
그래, 아무리 막강한 남자 주인공이 라지만 지금 그는 고작 열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순식간에 자신을 둘러싼 이 무시무시한 상황에 떨지 않을 수가 있을 텐가.
“괜찮아, 아벨.”
나는 소리 내어 그를 달래주었다.
우리 아벨은 정확히 말하면 강해질 ‘예정’이었다.
이미 마력 수치는 하데스 정도의 수준이지만…….
고작 열 살인 작은 몸으로는 세세푸우에게 ‘물리적 타격’을 입힐 수 없다. 산트크리아의 보검이랑 키가 비 슷한 수준인걸.
“하아…….”
막막하던 내 마지막 시선이 록사에게 닿았다.
여전히 겁먹은 얼굴로 쪼그라들어 있는 그는…….
‘아?!’
순간 떠오른 방법이 있어 나는 짝 손뼉을 마주쳤다. 모두가 나를 돌아보았다.
“저기,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 요? 인간의 머리를 다시 달아드릴 테 니 문제를 내주세요.”
[뭐? 네가 무슨 수로?]
“아뇨, 제가 아니고…….”
나는 록사를 돌아보았다.
그가 휘둥그레진 눈을 깜빡이다가 검지로 제 얼굴을 가리켰다.
“저, 저예?”
[아아……. 아버지의 전능함을 축복으로 타고난 자인가?]
창조의 이능을 가진 토속성 능력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신에게는 우리의 능력이 통하지 않으니, 허락해주어야 도와드릴 수 있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하……. 나야 듣던 중 반가운 제 안이지. 그렇지만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쉬운 문제를 내줄 생각은 없다. 나는 원래 이 오르쿠스를 통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문제를 내는 존재 이기 때문이지.]
“네. 문제를 못 맞히는 건 우리 잘 못이니 어쩔 수 없죠. 그럼 그렇게 하 시겠어요?”
[좋다!]
세세푸우가 흔쾌히 대답했고 나는 록사를 돌아봤다.
그는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 내 품 안에서 주판을 꺼냈다.
곧바로 아자르가 욱했다.
“저 또라이 새끼가 또…….”
아자르를 말리고, 나는 주판을 잡은 록사의 손을 쥐 었다.
“나 지금까지 고액 신뢰 거래만 했 는데 이번 한 번만 후불 어떻게 안 될까요? 무사히 돌아가면 백지수표 한 장 드릴게요.”
“예?! 배, 백지수표예……?”
“네.”
“으음…….”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록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원래는 제가 후불 절대 안 하는이디……. 부인께서 첫 예외심다.”
“와, 고마워요.”
가슴을 쓸어내리는 나를 향해 킬킬 웃어준 록사가 세세푸우를 바라보았다.
“한디 원래 대가리가 어떻게 생겼 는지 모르겠어가……. 대강 지가 상 상한 대로 붙여드리겠어라.”
정신을 집중한 록사가 손가락을 한 번 튕겼고, 그 순간 세세푸우의 가운데 목에 인간의 머리가 생겨났다.
“와우.”
새로 생긴 세세푸우의 인간 머리는 젊은 미남형의 얼굴이었다.
그을린 피부와 날카로운 콧대, 도톰 한 입술이 사막 국가 카지트 어디쯤 살 것 같은 미청년 느낌이었다.
대머리는 내 취향 아니었지만.
“머리카락까지 구상하려면 힘 빠져 서라.”
[하하하하하……!]
잘린 머리가 다시 생겨난 게 반가운지 세세푸우가 인간 머리에 달린 입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그냥 가볍게 웃었을 뿐인데도 천지가 진동하고 귀가 아팠다. 우리는 전부 같은 포즈로 귀를 틀어막았다.
[좋다! 하하하! 인간에게 도움을 받 았군! 내 기꺼이 문제를 내어주마!]
“그만 처웃고 빨리 내.”
데보라의 귀를 대신 막아주던 미하일이 신경질적으로 채근했다.
[자, 보자…….]
세세푸우는 급한 미하일과 달리 느긋한 얼굴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침에는…….]
그의 입이 열린 순간 나는 심각한 상황인 것도 잊고 웃음이 터졌다.
내 손을 꼭 붙들고 있던 아벨이 의 아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아침에는 네 다리로 걷고, 낮에는 두 다리로 걷고,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있다. 이것이 무엇이냐?]
허허…….
역시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질문. 이래서 시험을 대비할 때에는 기출문제를 미리 풀어봐야 한다.
오르쿠스에 와 세세푸우를 만나본 적은 처음이라 그가 어떤 문제를 낼 지 전혀 몰랐지만, 내게는 프로크레아토르가 남겨준 저 세계의 지식이 있지 않은가.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스핑크 스, 하면 떠오르는 그 유명한 문제를 내가 모를 리 있나.
“정답!”
내가 웃는 얼굴로 번쩍 손을 들자 전부 갸웃하고 있던 주변 이들의 시 선이 모여들었다.
나는 훙분한 얼굴로 말했다.
“사람~!”
1초의 고민도 없이 나온 정답에 세세푸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맞죠?”
[…….]
“왜, 왜 사람인데요?”
아벨이 나와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
“우리 귀여운 아벨이 아기일 때는 손발을 다 써서 기어 다녔지. 그리고 지금은 두 발로 섰잖아.”
“아! 그런 뜻이었구나. 그럼 세 발은…….”
“노인들은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구! 정답, 사람! 맞죠, 맞죠?!”
자존심이 단단히 상한 듯한 세세푸우가 침묵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과연 수수께끼의 정답을 맞히자 자 존심 상해 자살했다는 설도 있는 고 대신화의 괴물다웠다.
[맞다. 사람의 일생을 비유한 말이 지. 다음 문제를 내겠다.]
“와, 진짜 사람이었어라? 부인, 대 체 어떻게 아셨어라? 지는 상상도 못했는데예…….”
“이게 바로 기출문제풀이의 힘이 죠.”
“……예?”
록사가 갸웃했다. 동시에 미하일이 짜증을 냈다.
“다음 문제라니 뭔 개소리야? 문제 가 몇 개나 돼? 여러 개 낸다는 말은 없었잖아.”
[나는 이곳의 수호자다. 이곳에서는 내 말이 법이지.]
“이 새끼가 진짜…….”
욱하는 미하일의 팔을 내가 잡아 말 렸다.
“야, 걱정 마. 내가 다 맞혀.”
아직 문제를 내지도 않았지만 답을 알 것 같은 이 기분.
똑똑한 내 형제 프로크레아토르의 몇백 수 앞을 내다본 안배를 잘 꿰고 있는 나를, 세세푸우는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누가 알았겠어. 대한민국 사람이라 면 모르는 게 이상할 스핑크스의 수 수께끼가, 오르쿠스의 첫 관문이라는 걸.
[자매가 서로를 낳는다. 한데 그 자 매는 서로를 잡아먹지. 언니가 동생을 잡아먹으면 죽은 동생이 새로 태 어나 괘씸한 언니를 다시 잡아먹는다. 이 자매는 누구냐?]
“흐으…….”
일견 무시무시한 문제에, 미하일의 품에 안겨있던 데보라가 질겁해 오그 라들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내두르는 건 아자르와 록사, 아벨도 마찬가지였다.
식인하는 자매 이야기라니, 듣기만했을 때는 일견 잔인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정답!”
또 웃는 얼굴로 내가 번쩍 손을 들 자, 세세푸우가 흠칫했다.
“낮과 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