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록사는 왜 여기에 있을까.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오르쿠스로 옮겨오는 과정 자체가 내가 상상 못 했던 그림이었으니까.
평범하게 문이 생기고 그걸 따고 들 어가면 오르쿠스가 나오겠거 니, 안이 하게 생각한 게 멍 청했지.
데보라가 펼친 책장이 마지막까지넘 어가자마자 지옥의 입구는 그 근처에 있던 우리 모두를 삼켰고, 당연히 록사도 휘말린 것이다.
‘생각도 못 했어. 록사가 같이 오르쿠스에 오리라고는.’
내가 본 최후의 미래에 분명히 록사는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없었다는 건.
상상하기 싫지만 아마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미래에서 그의 안위에 문 제가 생겼을 확률이 높았다.
“하아…….”
야속한 신은 내가 울컥한 감정에 젖어들 여유도 없게 했다.
불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왜인지 첫 걸음부터 불발인 느낌이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록사의 비명이 다시 이어지던 그 순 간이었다.
돌연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 위로 드 리우는 느낌.
내가 마지막으로 느낀 건, 그것뿐이 었다.
바로 다음,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내 몸을 낚아채 움직이는 게 느껴졌 고, 놀랄 새도 없었다.
쾅!
엄청난 폭음.
방금까지 나와 아벨, 데보라가 있던 자리로 큰 불덩이가 떨어졌다. 갑자 기 위가 어두워진 건 저것 때문인 모양이었다.
너무 놀라 입을 틀어막은 내 시야에 펼쳐진 건, 폭발로 인해 일어난 모래 바람과 주변으로 흩어진 몇 점의 작 은불꽃들.
황급히 옆을 돌아보니 아자르가 서 있었다. 그는 한 팔에는 아벨을, 다른 한 팔에는 나를 안은 채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느낀 그는 본능 적으로 나와 아벨을 데리고 순간이동 한 모양이었다.
‘데, 데보라는?’
아직 사라지지 않고 시야를 가린 모래바람과 아자르를 번갈아 바라보자, 나만큼이나 당황한 눈으로 그가 천천히 말했다.
“젠장, 손이 두 개라서요.”
“그, 그런…….”
몸을 피한 건 나와 아벨, 아자르.
의문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은 채 저 모래바람 속에 남아있는 건 데보라와 미하일, 그리고 록사.
“사, 사제님!”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아벨이 아자르의 팔에서 벗어나 다급히 소리 질 렀다.
폭발에 자욱하게 일어난 모래 안개 가 가라앉을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 이 걸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천천히 걷힌 시야에서 세 사람은 무사했다.
불덩이를 온전히 막아낸 듯한, 모래 로만들어진 크고 단단한 벽.
그 뒤에 몸을 숨긴 미하일과 데보라, 록사는 옷차림이 조금 더러워졌을 뿐 별다른 부상은 없어 보였다.
“캑, 캑……. 야, 이 불멧돼지 새끼 야! 치사하게 니만 튀면 다여? 뭐 저 리 인정머리 없는 새끼가 다 있남?”
주먹으로 기침 나오는 입을 막으며 록사가 빽 소리 질렀다.
벽을 세워 순간 공격을 막은 건 록사의 능력인 모양이었다.
천국과 지옥에 번갈아 발을 담그는 익숙한 기분.
나는 겨우 가슴을 쓸어내리며 무너 져 앉았다.
“사, 살았으면 됐지. 그런데 딴 놈 도 아니고 네놈이 인정머리를 운운하 냐? 돌아버렸나?”
“시끄라!”
티격태격하는 아자르와 록사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그들의 말다툼에 집중하지 못하고 긴장했다.
자욱한 모래바람 너머로, 거대한 그 림자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옅어진 모래바람이 다 사그 라졌을 때.
“미친, 저게 뭐야.”
아자르가 홈칫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오마나, 어머니, 아버지, 신이시 여……. 대체 저게 뭐시지라…….”
모래 방벽을 거둔 록사의 입에서도 힘없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건, 몸집이 10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괴수였다.
사자의 몸, 악마의 날개. 그리고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는 머리.
원래라면 왼쪽에는 마수의 머리, 가운데는 인간의 머리, 오른쪽에는 사 자의 머리가 달려있어야 하는 저 괴 수의 이름은 ‘세세푸우’.
다른 말로는 스핑크스. 대한민국에 있을 때 나는 저걸, 고대 오리엔트 신 화에 등장하는 괴물이라 알고 있었다.
물론 프로크레아토르가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만 달려 있는 괴물 신 화로 재창조한 것이겠지만…….
‘여기 오르쿠스가 맞긴 하구나.’
그는 가이오니아가 만들어낸 ‘첫’ 마수이자 지옥의 문지기였다.
“사람 살려라아아……!”
록사는 꽁지가 빠져라 우리 쪽으로 달려왔고, 미하일은 그 자리에서 그냥 데보라를 안아든 채 세세푸우를 마주했다.
“저게…… 뭡니까.”
아자르의 물음에 나는 아주 오랜 옛 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옥에서 본 건 아니었지만 세세푸우를 만난 게 처음은 아니 었다.
가이오니아가 처음 세세푸우를 만 들었을 때, 직접 그를 본 적이 있으니 까. 물론 대화도 해 봤다.
나는 굉장히 신사적이었던 그가 갑 자기 왜 공격부터 했는지 조금 의아 한 마음이 들었다.
“오르쿠스의 문지기예요. 이름은 세세푸우. 머리 세 개를 가진 태초 마 수들의 조상이죠. 죽지 않고 오르쿠스로 들어온 자들을 잡아먹는 일을 해요.”
“예에?! 죽지 않고? 그거 우리잖아 요?”
“네.”
“오자마자 저 괴물한테 잡아먹혀야 한다고요?”
아자르가 질겁하며 물었다.
“오르쿠스를 궁금해했던 살아있는 인간들이 이곳에 들어온 기록이 없진않아요. 조건이 있지만…….”
“저게, 저게, 저게 뭐시지라?!”
허둥지둥 달려온 록사가 내 뒤로 냉 큼 숨어 바들바들 떨었다.
“조건이 뭔데요?”
못마땅한 듯 록사를 노려보며 아자르가 또 물었다.
“왼쪽 마수의 머리로는 저렇게 불을 뿜어 공격하고, 가운데 인간의 머리로는 난해한 수수께끼를 내요. 맞 히면 오르쿠스의 문을 열어준다고 알 고 있어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뭐, 뭐라고예? 못 맞히면예?”
내 옷깃을 붙든 록사가 벌벌 떨며 물었다.
“산 채로 잡아먹죠. 오른쪽에 달린 사자 머리로.”
“그, 그치만 어머니…….”
사색이 된 얼굴로, 아벨이 나를 올 려다보며 말했다.
“마수의 머리밖에는 안 남아있는데요.”
그래, 내가 의아한 점은 한 가지만 이 아니었다.
지금의 세세푸우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달랐다.
원래라면 세 개의 머리가 달려있어 야 하는 그에게는, 왼쪽 마수의 머리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두 개의 머리가 반드시 잘린 곳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피가 웅덩이처럼 고여 있었다.
[죽지 않은 인간들이여.]
세세푸우가 하나 남은 마수의 머리 로 말했다. 주변이 웅웅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어, 어머니!”
“부, 부인! 어디 가셔예!”
나는 천천히 미하일과 데보라에게로 걸어갔다.
기본적으로 세세푸우는 대화가 불 가능한 지능 낮은 마수들과는 달랐 고, 앞서 말했듯 상당히 신사적이었다.
왜 대번에 우릴 공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유가 있을 터.
가까이 다가가자 세세푸우가 마수의 대가리를 움직여 가까이 들이밀었다.
미하일에게 안겨 있던 데보라가 흠칫 놀라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 저주받은 이그니스와 불쌍한그의 연인이구나.]
눈알을 굴려 나와 미하일을 찬찬히 바라보던 세세푸우가 말했다.
영혼을 꿰뚫어볼 능력이 없는지라 내가 제누스인 것까지는 못 알아본 모양이었다.
[무슨 일로 오르쿠스에 왔느냐? 연 인을 데려온 것을 보니 아버지께 저 주라도 풀어 달라 발요량인가 보구 나. 어리석은 것.]
“대가리 두 개는 어디 갔냐?”
“힉……!”
무심한 눈으로 미하일이 묻자, 어느새 뒤따라온 록사가 흠칫 놀랐다.
“아니, 자애의 상징인 대신관 말본 새가 왜 이러시지라……. 죽고 싶어 환장을 했는가베.”
미하일의 질문에 한참 침묵하던 세세푸우가 대답했다.
[……알 거 없다.]
마수의 머리에는 표정이랄 게 없었 지만, 왠지 무척이나 수치스러워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네놈 대가리가 날아갔건 말 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가이오니아를 만나러 왔으니까 문 열어.”
[그럴 수 없다. 오르쿠스로 들어가 려면 내 질문에 대답해야 해.]
“그럼 질문하든가.”
[그럴 수 없다.]
미하일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 어 넘겼다.
문제를 맞히지 않은 ‘산자’를 오르쿠스로 들여보낼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세세푸우는 문제를 낼 수가 없 었다.
문제를 낼 수 있는 ‘인간의 머리’가 없으니까.
나는 삐딱하게 나가려는 미하일의 팔을 한 번 때려 눈치를 주곤, 앞으로 나섰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군요. 불 쾌하지 않다면 내가 조금 도와드려도 괜찮을까요?”
최대한 상냥하게 그의 의사를 묻자, 조금 망설이던 세세푸우가 말했다.
[과연 매 생에서 죽임을 당하고도 이그니스를 용서하는 다정하고 멍청 한 인간답구나.]
그게 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퍽 온화한 세세푸우의 태도에 안심하고, 나는 그의 발치로 다가 가 손을 붙였다.
약간의 마력을 흘려 넣자 흉측하게 잘린 환부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이미 베어져 없어진 머리를 다시 되 돌려놓을 재간은 없었던지라, 그저 상처가 아문 게 전부였지만.
“저희는 오르쿠스에 들어가야 해요. 어떻게 안 될까요?”
[방법이 없다.]
“멍청하게 인간에게 당한 건 네놈인데 왜 우리가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하지? 문제를 낼 수 없는 건 네 잘못이니 잔말 말고 빨리 비켜.”
미하일이 짜증 내자 세세푸우가 불 쾌한 모양인지 큰 소리로 한 번 울었다.
“윽!”
“아으…….”
시끄러운 괴성에 모두가 귀를 틀어 막고 괴로워했다.
“인간에게 당했다고……?”
귀를 틀어막은 채 인상을 찌푸린 아자르가 중얼 거 렸다.
[미친놈이었지.]
세세푸우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인간은 처음부터 들여보내줄 생각이었다. 가이오니아께서 그 인간을 맞을 준비를 하라 하셨기 때문에…….]
세세푸우는 이를 갈며 덧붙였다.
[그러나 원칙상 문제를 내야 했기 때문에 누구라도 대답할 수 있는 질 문을 하였지.]
“뭐였는데?”
미하일이 공격적으로 물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고귀하고 강하 고 자애로운 존재의 이름을 대라고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렇게 쉬운 문제라니.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답은 가이오니아다.
살아있는 몸으로 오르쿠스까지 찾 아온 인간이 그 질문의 답을 모를 리 없었다.
“못 맞힌 건가?”
미하일이 묻자 세세푸우가 또 이를 갈았다.
[안 맞힌 것이겠지.]
“무어라 대답하였는데?”
[‘나.’]
“뭐?”
[자기라고 하더군. 그런 미친 인간 은 태어난 이래로 처음 보았지.]
세세푸우의 말에 우리는 일제히 침 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