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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54화 (154/221)

154화.

“……전하.”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무작정 하데스의 팔을 붙잡고 흔들어 봐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전하.”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 지?

혼란스러워 머리가 새하얗게 비어 버렸다.

하데스는 이곳에 있다. 그렇지만 동 시에, 이곳에 없는 느낌이었다.

몇 번 더 하데스를 흔들어 깨우다가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자르를 돌아보았다.

“피, 피곤해서, 잠을…….”

“말이 됩니까? 토벌할 때 사흘 밤낮을 깨어있었으면서도 야영 중에 불침 번 섰던 사람입니다, 주군이. 벌레 하나 기어가는 소리에도 자다 깬다고요. 그런데 이 소란을 피웠는데도 안일어난다고?”

“…….”

“대답해보십쇼. 왜 미친 사람처럼 여기로 달려온 겁니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죠? 당장 말하십쇼.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흥분한 아자르가 내 어깨를 붙잡고 다그치자 뒤에 서 있던 미하일이 불 쑥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린 채 미하일 이 말했다.

“공작이 자고 있든 뒤졌든 그게 얘 탓이야? 너랑 똑같이 당황한 거 안보여? 어디서 겁박질이야.”

“……뭐, 요?”

상냥한 대신관의 반전에 아자르는 놀랐다. 그의 휘둥그레진 눈이 황당 한 듯 몇 번 깜빡였다.

“지금 뭐라고…….”

신경질적으로 아자르의 팔을 내친 미하일이 나를 돌아봤다.

“공작이 어떻게 하겠다고 했어? 신을 죽이기 위해서 뭘 하겠다고…….”

“그런 말, 안 했어.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았고…….”

“그걸 왜 물어서 들으려고 했는데? 너 바보야? 자기 입으로 그걸 말하겠 어?”

왜 정신을 지배해 계획을 실토하게 만들지 않았냐는 다그침이었다.

나는 핑핑 도는 시야를 겨우 붙잡고 말했다. 금세 눈가가 젖어든 게 느껴 졌다.

“그럴 수가…… 없었어. 이 사람에게 능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나한 테 제약을 걸어서…….”

“뭐? 그게 무슨 멍청한 소리야?”

“……그러게.”

모든 게 후회가 됐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하데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게 아니 었는데.

내다봤던 미래에 그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 나는 떠나버릴 하데스를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을 거라 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미래를 봤었거든. 이 사람이 가이오니아를 만나러 갔고, 나도 그 자리에 있었고, 그래서…….”

“…….”

“……그래서 내가, 내가 같이 가는 줄 알았어. 그랬는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자, 미하일이 불쑥 소매를 들어 내 눈가를 훔쳤다.

어느새 흐른 내 눈물을 조금 거친 손길로 닦아내며 미하일이 말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해. 아무 튼 너도 가이오니아의 앞에 갔다는 거 아냐? 그걸로 됐어. 일단…….”

“이봐요, 대신관. 지금 이게 다 무 슨 말입 니까? 둘만 아는 얘기 그만하 고 나도 좀 이해시켜보십쇼.”

아자르가 불쑥 끼어든 때였다.

열려있던 집무실 문 쪽에서 작은 기척이 났다. 우리의 고개가 동시에 그 쪽으로 돌아갔다.

“어, 왜 문이 열려있지? 아버지, 저…….”

아벨이었다.

지금 하데스의 상태를 그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나는 당황해서 허둥거 렸다.

그렇지만, 어색하게 움직이던 나와 아벨의 시선은 미하일과 아자르 사이 로 정확히 맞물리고 말았다.

아직은 눈물 자국이 선명할 텐데.

급히 눈가를 훔쳤지만 늦은 모양이 었다. 아벨이 별안간 무시무시한 표 정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고. 공자님. 잠깐 밖에 나가 계시는 게 어떻……. 억!”

나와 같은 판단이 섰는지 하데스의 모습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아벨을 막아서던 아자르가, 별안간 강한 힘으로 튕겨나갔다.

마치 가벼운 사람이 강한 태풍에 휩 쓸리듯, 멀찍이 날아간 아자르의 몸 이 집무실 바닥 위로 나동그라졌다.

놀란 표정으로 아자르를 보고 있는 내 앞에, 아벨은 그대로 다가와 물었다.

“왜 우세요. 누가 그랬어요.”

“아벨, 그게…….”

당황하는 내게 향해 있던 아벨의 시 선이 옆에 선 미하일에게로 향했다.

누구라도 당장 잡아 죽일 것처럼 무 시무시하게 빛나는 눈빛을 가만히 마 주 보던 미하일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별 거 아닙니다, 공자님. 공작 전하께서 많이 피로하셨는지 정신을 잃 으셨는데 부인의 걱정이 커서 그랬답 니다.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제야 아벨의 시선이 하데스에게 로 가 닿았다.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그를 빤히 바라보던 아벨이 가만히 중얼거 렸다.

“……아버지가요?”

“네, 신경 쓰실 일이 많아 피로하셨 는지…….”

“피곤해서 정신까지 잃으셨다고요. 아버지가.”

전혀 믿지 않는 목소리였다.

아벨은 말리는 미하일의 팔을 내치 고 하데스에게로 성큼 다가갔다.

“아버지.”

불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축 늘어진 하데스의 왼팔을 붙잡은 아벨 이 다시 그를 불렀다.

“아버지.”

“…….”

“아버지가 왜 이러세요?”

바로 미하일을 돌아본 아벨이 날카 롭게 물었다.

그의 걱정을 잠재우려는지, 어린아이를 달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미하일이 대답했다.

“정말로 별일 아닙니다. 제가 전하의 기력을 확인해봤습니다만, 아무 문제도 없으시고…….”

“어머니.”

아랫입술을 악문 아벨의 얼굴이 부 들부들 떨렸다.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아버지, 그때 말씀하셨던, 어 디 가신다던……. 이런, 이런 뜻이었 어요? 아버지에게 지금 무슨,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

“어머니, 제발 말씀해주세요.”

나를 붙잡고 매달리는 아벨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 또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 민, 이 작은 아이 앞에서는 누구보다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했다.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 같은 숨을 겨 우 다잡아 쉬며 나는 억지로 웃었다.

“맞아. 그런 것 같아. 그치만 걱정하지마, 아벨. 내가, 내가 어떻게든, 어떻게든 할게. 내가…….”

“…….”

“내가…….”

“공자님.”

미하일이 아벨의 손을 붙잡아 내게 서 떼어냈다.

“사실 우리도 방금 전하를 발견했 습니다. 누구보다 놀라셨을 분은 부인이시니 부디, 어른스럽게 굴어주세요.”

퍽 단호한 미하일의 말투에 아벨은 멍해졌다가, 곧 억지로 눈물을 삼키 며 입을 열었다.

“죄송, 해요. 어머니…….”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이리 와, 아벨.”

나는 아벨을 끌어안고 천천히 다시 심호흡했다.

안고 있는 아벨의 너머로 다시 하데스의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당신, 지금 어 디 있어요. 대체…….’

소파에 죽은 듯이 길게 드러누운 하데스는 그저 옅은 잠에 든 사람처럼 보였다.

긴 다리를 소파 팔걸이에 비스듬히 걸친 시건방진 포즈마저도 놀라울 정도로 한결같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금 그가 잠시 지쳐 눈을 붙이고 있다고 오해할 테다. 차라리 정말, 그런 거라면 좋으련 만.

“제발 그만 좀 울어. 운다고 뭐가 해결이 돼?”

옆에 서 있던 미하일이 다소 신경질 적인 손길로 내 눈가를 쓸었다. 힘없는 고개가 뒤로 밀렸다.

어느새 다가와 그의 옆에 심각한 표 정으로 서 있던 아자르가 발끈했다.

“이보쇼, 대신관. 내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는데, 부인에게 왜 이리 무례하게 구는 거요? 둘 이 무슨 사이야?”

미하일의 정체는 물론이고 그와 나의 관계도 알지 못하는 아자르였으니 발끈할 만도 했다.

미하일은 그저 표정 없는 얼굴로 아자르를 한 번 쓱 훑고 말았다.

“표정 뭔데?”

“너, 공작이 떠날 걸 짐작은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내게 미리 말하 지 않았어?”

아자르를 간단히 무시한 미하일이 내게 추궁하듯 물었다.

나는 입술만 달싹이며 망설이다 겨 우 말했다.

“너한테 말하면 뭐가 달라져? 어차 피 이렇게 말도 없이 갔을 사람이 야.”

“그래도……!”

“어머니.”

미하일의 말을 끊으려는 듯, 안겨있 던 아벨이 나를 부르며 품으로 더 파 고들었다.

힘 없는 팔로 아벨을 안자 그가 천천히 나를 달랬다.

“아버지는 괜찮을 거예요……. 강한분이잖아요.”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충격 받았을 아벨이었다. 나는 괜찮은 척 웃고 그를 안아 달랬다.

“그래, 그렇지.”

“아오, 씨. 진짜. 부인! 진지한 와중에 끼어들어서 정말 죄송한데, 저한 테도 설명을 좀 해주십쇼. 주군께서 지금 정확히 뭔 상태인지, 부인은 이 얼굴만 번드르르한 시정잡배 대신관 이랑 무슨 사이인 건지. 예?”

가슴 앞으로 턱하니 팔짱을 낀 아자르가 험악한 표정으로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알 거 없습니다.”

“뭐야?!”

미하일이 성가시다는 듯 대꾸하자 아자르가 발끈했다.

나는 미하일의 팔을 잡아 말리고 끼 어들었다.

“당황했죠. 말하자면 길어요. 지금 전하는, 전하는 저를 위해서, 저를…….”

어디로…… 간 걸까.

말문이 막혔다.

설명해주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건 아자르와 매한가지 니까.

그때 미하일이 조용히 말했다.

“내가 짐작하고 있던 곳이 있어. 대 충은, 가이오니아가 그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오고 있었는데……. 공작 이 대체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거기 간 건지는 모르겠고.”

“짐작하는 곳? 어디인데?”

순간 동아줄이라도 잡은 심정이었다.

다급하게 묻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던 미하일이 한숨 쉬며 덧붙였다.

“아버지가 인간의 육체를 잃은 뒤에, 우린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 었지. 이 세계에서 우리가 못 가는 곳이라면 딱 하나뿐이지 않나?”

“뭐?”

순간 숨이 멎을 것처럼 놀란 나는 본능적으로 중얼거렸다.

“……. 오르쿠스?”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던 미하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덜덜 떨렸다.

오르쿠스.

죄를 저지른 영혼들과 죽은 마수들 이 모여 영원을 살아가는 사후의 세계.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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