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
“……실은 추위를 엄청 타는 편입 죠. 제가 그 비밀을 안다는 건 주군도 모를 테지만.”
“……네?”
“5년 전 오비투스에서 마력을 탕진하고 돌아왔을 때 눈치챈 겁니다. 마력 회복한다고 365일 24시간 돌리고 있는 발열의 이능을 해제해두셨거든요. 그때 감기 걸려서 코 훌쩍거리신 거 저만 압니다.”
“아니…….”
……이게 아닌데.
물론 저게 비밀이었다고 한들, ‘가 장 큰 비밀’일 리는 없을 테니 잘못 짚었다.
아자르는 모른다. 하데스는 아자르 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은 거다.
내가 당황해하는 동안, 세뇌에 걸려 줄줄 입을 열던 아자르가 흠칫 놀랐다.
“이게 뭔…….”
의지와 달리 움직인 입을 의아해하 던 아자르는, 이내 뭔가 눈치챈 듯 붉 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이거 뭡니까?!”
내 능력을 알고 있는 아자르라서인 지 추측은 빨랐다.
나는 곧바로 손바닥을 딱 붙이 며 진 심이 담긴 얼굴로 사과했다.
“미, 미안해요. 이 능력 정말 기분 나쁜 거 아는데, 방법이 없었어요. 정말 미안. 한 번만 봐줘요.”
“아니, 이게, 아니!”
“전하가 뭘 숨기고 있는데 아자르는 알고도 나한테 말 안 해줄 것 같 아서요. 정말 미안.”
더 화를 내려던 아자르는 내 말에 멈 칫하고는 물었다.
“숨기는, 거요?”
“네. 어디 가려는 것 같은데 도통 알려주질 않으려고 하네요.”
“주군이 가 봤자 어딜 갑니까? 성을 비우는 거면 마수들이나 잡으 러…….”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중얼거리 던 아자르의 눈이 일순 날카로워졌다.
“확실히…… 요즘 이상하긴 했습 죠.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던 검 잡고 애들 신나게 굴렸으니까…….”
공표식을 앞두고 하데스가 연무장에서 살다시피 한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이유야 뭐, 뻔했다.
하데스의 목표인 가이오니아는 죽 일 수 있는지 없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존재다. 동시에 하데스가 무적의 능력자라고 불리게 만든 그 대단 한 마력의 원천이기도 하고.
가이오니아로부터 비롯된 힘으로 가이오니아를 위협한다는 건 어불성 설이었다.
어렴풋이 하데스가 어떤 식으로 가이오니아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서, 나는 더 착잡했다.
“걱정되어서 그런데요. 혹시 아자르, 전하께서 뭔가 부탁한다거나 하 면 나한테 살짝 알려줄 수 있어요?”
“예.”
담백한 대답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요? 그렇게 쉽게?”
“어차피 저한테서 알아내고 싶은 게 있으시면 아까처럼 하실 거 아닙 니까? 숨겨봐야 어림도 없지. 걱정 마십쇼.”
아자르가 약간 퉁명스럽게 말했고, 나는 다시 한번 사과했다.
“미안해요, 진짜.”
“됐습니다. 아무튼…….”
계속 걸으며 말하던 아자르가 내 방에 도착했을 때쯤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내 방 앞에 서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미하일이었다.
“대신관님? 여기는 무슨 일로?”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듯, 미하일은 나를 보자마자 그 특유의 선한 웃음과 함께 다가왔다.
“이쯤 행사가 끝날 듯해 와보았는 데 시간을 잘 맞춘 모양이군요.”
“네. 기다리셨나 봐요.”
“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미하일은 빙긋 웃고 옆에 있는 아자르를 일별했다.
아무래도 나와 단둘이 할 얘기가 있는 모양인데…….
아자르를 돌아보니, 그는 잔뜩 경계하는 표정이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대신관께서 공작부인과 단둘이 하실 말이 대체 뭐가 있는지?”
“아…….”
바짝 날선 아자르의 목소리에 미하일이 당황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별건 아닙니다만 호위분께서 함께 듣기에는 조금 곤란한 터라……. 아, 물론 사적인 얘기는 아닙니다. 공작 전하께서 제게 전해 달라 당부하셨던말씀이거든요.”
왜인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계속 미하일을 바라보던 아자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우리 둘의 대화가 들 리지 않을 법한 거리까지 멀어져 자리를 지켰다.
그런 아자르를 지켜보던 미하일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 얼굴에도 안 넘어가는 사람이 있네.”
뭐야. 자의식 과잉이 하데스랑 똑 닮았네.
질색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미하일이 예의 그 성스러운 대신관의 얼굴로 빙긋 웃으며 말했다.
“부인, 공작 전하랑은 방금 헤어지 고 오시는 길인가요?”
“음, 아뇨. 피곤한지 한참 전에 먼 저 방으로 돌아가셨어요. 그거 물어보러 오셨나요?”
“아니, 그건 아니고…….”
잠시 멀리 선 아자르를 힐끔 쳐다본 미하일이 나에게로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
“공작, 무슨 생각이야? 아버지를 죽 일 생각을 하고 있던데.”
그는 일순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조 용히 물었다.
미하일은 많은 걸 알고 있는 듯했다. 하데스가 신을 믿지 않는 자라는 것도, 가이오니아를 죽일 생각을 하 고 있다는 것도.
물론 추측하기가 어렵지는 않았지 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맞아. 혹시 네게 뭔가 말해준 것 있어?”
“나는 몰라. 다만 곧 떠날 사람 같 기에.”
“……왜? 뭘, 보고?”
“아니, 진정해. 그냥 내가 그렇게 느꼈을 뿐이지, 공작이 어떻게 알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겠어.”
다급해진 내 표정이 신경 쓰였는지 미하일이 곧바로 나를 달랬다.
그렇지만 나는, 왜인지 불안해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갑자기 찾아온 미하일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까 홀연히 사라진 하데스의 뒷모습도 신경 쓰여서.
“이거.”
미하일은 내 앞에 불쑥 무언가를 들 이밀었다.
“네게 전해달라고 하던데.”
작은 반지 케이스였다. 문득, 한참 조각상을 만들고 있을 때 하데스와 지 나가는 말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결혼선물로 뭐 갖고 싶은 거 없 어?」
「결혼선물이요? 글쎄, 딱히 생각 해본 적 없는데.」
「지금부터 생각해 봐.」
「별로 갖고 싶은 거 없는데. 잘나 가는 남편이랑 귀여운 아들이 생긴것만큼 좋은 선물은 없죠. 더 바라는 거 없어요.」
「아, 틀린 말은 아니군. 최고의 결혼선물이긴 하지. 나 같은 남자를 어디 가서 만나겠어.」
「어휴…….」
「그래도 말이야. 나는 기본 선물이 라 치고 사은품으로 하나 골라 봐.」
「진짜 괜찮은데, 정 그렇게 챙겨주 고 싶으시면, 음……. 커플링?」
「커플, 뭐……?」
「헤헷. 연인끼리 나눠 끼는 반지 말이에요. 그나저나 연애라는 걸 제대로 해본 게 이번이 처음인가. 그 흔 한 반지 한 번 안 껴봤네.」
언젠가 직접 하데스에게 받을 거라 고 내심으로는 기대하고 있던, 반지.
나는 왜 그의 선물이 미하일의 손을 통해서 내게 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지.
너무 이해가 되어서, 불안하게 뛰는 심장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언제, 언제 이걸…….”
“얼마 안 지났어. 아까 황제와 나갔을 때…….”
나는 미하일의 손에 들린 그것을 빼 앗듯 쥐고 무작정 걸음을 틀었다.
뭔가 이상했다.
아직 나도 모르는 그곳으로 하데스 가 언제 어떻게 떠날지, 혹시나 벌써 떠나버린 것은 아닌지.
당장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마음 이 진정될 것 같지가 않았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란 미하일 과 아자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 시하고 달렸다.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 만큼 아팠던 발이 아픈지도 모른 채로.
***
“전……. 하. 아…….”
굳게 닫혀 있던 하데스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긴장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아, 정말……. 사람 놀라게…….”
혹시나.
감쪽같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건 기우였다.
피곤했는지 집무실 소파에 길게 드러누운 하데스는 오른팔로 눈을 가린 채 잠들어 있었다.
“부인.”
“갑자기 왜…….”
곧바로 뒤따라온 미하일과 아자르 가 주저앉은 나를 보고 놀란 목소리를 냈다.
나는 둘을 돌아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 미안해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붙잡아 일 어났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크게 한 번 휘청거렸다.
아자르가 급하게 내 팔을 낚아챘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아뇨, 아뇨.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냥 좀 놀라서.”
누워있는 하데스에게로 걸어가는 동안 아자르는 계속 나를 부축해줬고 미하일은 뒤를 따랐다.
눈치껏 하데스가 누운 소파 옆에의 자를 붙여주는 아자르에게 눈인사한 뒤, 나는 겨우 몸을 앉히고 한숨을 돌 렸다.
“피곤했나 봐.”
아자르는 도무지 내 행동이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멋쩍은 듯 웃으며 입술 위로 조용히 검지를 붙였다.
“전 여기 조금만 있다가 갈게요.”
그렇게 말했지만, 내가 걱정되는 모양인지 아자르도 미하일도 바로 하데스의 집무실을 떠나지 않았다.
소파 옆으로 왼팔을 길게 내린 채 죽은 듯 누운 하데스를 다시 바라보 다가, 나는 그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 워진 반지를 발견했다.
그제야 미하일에게서 받았던 반지 케이스가 떠올랐다.
열어보니 정중앙에 파란 보석이 박 힌 값비싸 보이는 반지가 들어있었다.
하데스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 워진 건, 내 것보다 작은 크기의 보석 이 여러 개 박힌 한 쌍짜리였다.
“아니, 이걸…… 직접 끼워줘야지. 전해주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입을 열자 긴장이 풀린 입술이 파르 르 떨 렸다.
숨을 쉴 때마다 천천히 오르내리는 하데스의 가슴팍을 가만히 응시하다 가, 나는 케이스 안에 든 반지를 빼직접 손가락에 끼웠다.
“홈, 어홈. 예쁘네.”
아직 나가지 않고 내 옆을 지키고 있는 아자르의 눈치가 보여 괜히 그를 돌아보며 나는 손을 뻗었다.
“음, 괜찮죠?”
웃으며 묻는데, 아자르의 시선은 왜 인지 하데스에게 가 있었다.
안 그래도 험악한 얼굴에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하데스를 응시하고 있 던 아자르가 돌연 그의 앞으로 불쑥 다가갔다.
“주군.”
“…….”
“주군, 일어나보십쇼.”
“아자르, 그러지 말아요. 오늘 피곤 했을 텐데…….”
소란에도 아랑곳 않고 겨우 숨소리 만 내면서 잠든 하데스가 안쓰러워 아자르를 말리려던 차였다.
짝!
얼굴을 가리고 있던 하데스의 오른 팔을 치운 아자르가, 갑자기 그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뭐, 뭐 하는 거예요!”
놀란 내가 아자르의 팔을 잡고 매달 렸다. 그는 보기 드물게 사색이 되어 있었다.
“대체 무슨…….”
“이거, 주무시는 게 아닌데.”
“……뭐라고요?”
아자르를 따라 일어난 나는 그제야 하데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공저에서 헤어지기 전의 그 모습 그 대로였다.
다만.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진 럼, 눈을 뜨지 못할 뿐이었다.
사람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