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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51화 (151/221)

151화.

하데스의 폭탄 발언에 장내가 웅성 거 렸다.

놀랄 만도 할 것이었다. 아무도 예 상 못 했을 발언이니까.

그는 제국의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다 모인 이 자리에서, 황실 인사들을 앞에 두고 무신론자임을 밝혔다.

그뿐인가?

누가 봐도 가이오니야 상인 것처럼 떡하니 세워둔 조각상은, 사실 거만 한 그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된 루버몬트 공작 7세 상이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신을 향한 모 독이요, 곧 황실에 대한 반기였다.

당연히 귀족들의 한 가지 생각밖에는 할 수 없었을 터.

드디어 아슬아슬했던 황실과 루버몬트의 줄다리기가 끝나고, 하데스가 황실을 집어삼킬 마음을 먹었을 거라 고 말이다.

하지만…….

“제가 굳이, 황태자의 즉위를 돕겠 다고 선언한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관심 있는 건, 애초부터 알량 한 황좌가 아니 었으니까.

이렇게 대놓고 제국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황태자의 즉위를 돕겠 다’고 발언했으니, 하데스는 이 말을 뒤집을 수 없었다.

번복하고 황좌에 눈독 들인다고 치 더라도 후에 잡음이 얼마나 많을 텐 가.

정말 황실을 집어삼킬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판을 키울 필요도 없이 조 용히 처리했을 것이다.

하데스의 확고한 생각을 알아들은 몇몇 귀족들은 의외라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 루버몬트 공……. 그렇다 면…….”

황후는 충격 받은 황제를 대신해 파 리해진 안색으로 말을 더듬었다.

대놓고 신을 믿지 않겠다, 황실을 섬기지 않는다고 발언한 무시무시한 능력자 앞에서는 아마 누구라도 제정 신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이제야 황제 내외를 배려해줄 생각 이 들었는지, 하데스가 조용히 단상에서 몇 걸음 내려와 말했다.

“폐하께서 몸이 불편하신 듯하니 따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시죠. 일 단은…….”

하데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제 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한 얼굴이었지만, 그저 주먹을 꽉 쥔 채 화를 참으 며 하데스를 응시하다가 뒤도 돌아보 지 않고 측문으로 빠져나갔다.

당황스러운 척하던 미하일이 급히황제의 뒤를 따랐고, 곧 공저에는 싸 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

황제 발록 프랑세즈 크레센타는, 이제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눈앞에 앉은 이 사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이지.

황제인 자신의 앞에서도 고수하고 있는 시건방진 표정하며, 거만하게 다리를 꼬아 앉은 자세까지.

원래는 신경도 안 썼던 것들이 하나하나 불쾌하고 무례하게 느껴졌다.

사달을 일으킨 장본인인 하데스 루버몬트와 대신관을 앞에 두고 앉은 자리.

황제는 침통한 표정으로 겨우 떨어 지지 않는 입술을 열었다.

“공작의 생각은 대체…….”

“공저에서 말씀드렸던 대로입니다.”

“뭐라고?”

“저는 제국인이지만 가이오니아를 숭배하지 않습니다. 그냥 믿지 않는 다고 말씀드리기에도 어폐가 있겠군요. 증오하고 혐오하는 수준이니.”

“그게 무슨…….”

“전하, 뜻은 알겠지만 황제 폐하의 앞이니 언사를 가려주십시오.”

충격 받은 듯 앉은 자리에서 황제가 휘청거리자, 미하일이 끼어들었다.

힐끔 그를 쳐다본 하데스가 덧붙였다.

“그러나 말했던 대로 제국의 유지를 지켜온 크레센타 황실에는 별다른 유감이 없습니다. 제게 신을 숭배하 라 강요하지 않는 이상 황실과 루버몬트의 관계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원만할 수 있습니다.”

“황태자의 즉위를, 돕는다 했던 말은…….”

“진심입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뱉은 말은 또 끝맺지 못하고 하데스가 잘랐다.

“폐하께서 걱정하는 부분은 잘 알 고 있습니다. 제국의 황위에는 관심 도 없고 준다고 해도 받을 생각 없습 니다. 웬만한 인사들은 다 모아두고 제 입으로 못 박았으니 번복할 여지 도 없겠지요. 이제 답이 좀 되었습니 까?”

“…….”

“이 분위기에서 루버몬트에 더 머 무시기는 힘들 듯하니 환궁 채비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실 겁 니까?”

실로 건방진 축객령이었으나, 과연 하데스의 말대로 이곳에 좋다고 남아 있을 상황은 아니 었다.

충격의 연속이었지만, 황위에 관심 없다는 하데스의 단호한 태도는 일견 다행스럽다.

황제는 천천히 생각했다.

하데스 루버몬트, 그가 무신론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전부터 하고 있지 않았는가?

다만 신을 숭배하지 않는 것이 곧 황실을 배척하고 황위를 찬탈하려는 계획의 일부가 아닐까, 해서 걱정했 지만…….

“하나 물어도 되겠는가.”

“예.”

“공에게 다른 의도가 없다면, 모두 가 가이오니아를 모시는 이곳 제국에 서 어찌, 어찌 대놓고 신을 모독하는 가? 그 누구도 공을 좋게 보지 않을 텐데…….”

“누구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상관없 습니다. 그저, 거짓으로도 가이오니아를 찬양하기 싫어 그럽니다. 이렇 게 공표해놓으면 앞으로 귀찮은 일 따위 생기지 않을 거 아닙니까? 이번 공표식처럼폐하께서 친히 제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실 일도 없을 테 고.”

뼈가 있는 말에 황제는 침묵했다.

다른 의도가 없는데도 굳이 무신론 자임을 만천하에 밝힌 하데스의 속내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황제는 우선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어차피 하데스가 마음만 먹는다면 황실이 삼켜지는 것도 먼 일이 아니 었기에.

“일단은 알겠네. 황실의 일도 바쁘고 하니 나는 먼저 환궁해 보지. 배웅 은 필요 없소.”

냉정한 목소리는 마지막 자존심이 었다.

하데스는 홀로 일어나 귀빈실을 나 서는 황제를 붙잡지 않았다.

둘만 남게 되었을 때, 미하일은 무 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가 만히 침묵하고 있는 하데스를 힐끔쳐다보며 웃었다.

“설마 황제 폐하가 언짢아하니 걱 정되시는 겁니까?”

미하일의 질문에, 침묵하던 하데스 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가 미하일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왜?”

“아하.”

“안중에도 없구만.”

“그럼 왜 그리 상념 가득한 표정이 신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묻는 미하일을 빤히 바라보던 하데스가, 뭔가 할 말 있는 사람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대신관.”

“예, 전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무슨?”

먼저 말을 꺼내놓고서도 하데스는 한참 망설였다.

몇 분간 더 정적이 흐르고, 하데스 가 제복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불쑥 미하일에게 건넸다.

“……뭡니까?”

“보면 몰라?”

“저도 눈이 있으니 이게 뭔지는 알 지요.”

고급스러워 보이는 붉은 벨벳의 반 지 케이스.

연인들이나 나누는 사랑의 증표를 지금 이 타이밍에 자신에게 건네는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질겁하듯 인상을 찌푸리는 미하일의 표정에 하데스도 덩달아 미간을 구겼다.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대신관에게 주는 거 아냐.”

“아, 그렇군요. 놀랐잖습니까.”

정말로 오해라도 했는지 가슴을 쓸 어 내 리는 모습이 황당했다. 하데스가 허, 웃었다.

“그나저나 이걸 왜요?”

하데스의 손에서 케이스를 받아든 미하일이 그것을 열어보았다.

파란색 보석이 박힌 여성용 반지는 퍽 값비싸 보였다. 누구를 위한 것인 지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피식 웃는 미하일과 달리, 하데스의 표정은 무거웠다.

“영애, 아니, 공작부인께 드릴 선물아닌가요? 설마 제게 이걸 대신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하시 려는 건가요?”

“음, 맞아.”

“…….”

하데스를 바라보는 미하일의 눈빛 이 묘해졌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한 세 월을 살아온 연륜으로는 읽어내지 못할 수가 없었다.

이상한 부탁과 망설이는 표정.

누가 봐도 홀연히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 같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하데스 루버몬트. 그가 데보라와 같 은 ‘신을 믿지 않는 자’라는 건 알고 있었다.

거짓으로라도 가이오니아를 찬양하 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신을 죽일 계 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하지만 그가 당장 가이오니아를 만 나러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의 빌어먹을 아버지가 어디 계 신지는 대충 짐작 가지만…… 살아있는 인간이 어떻게?’

의아한 마음에 미하일은 계속 하데스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는 더 말하 지 않았다.

“어디 떠날 생각을 하고 계신가 본 데, 가이오니아는 그리 쉽게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실패하실 거예요.”

미하일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냉정 하게 말하며 덧붙였다.

“괜한 짓 하지 말고 제누스의 곁에 머물러주세요. 그 아이가 걱정할 게 눈에 선하군요.”

말하면서도, 미하일은 왜 자신이 필사적으로 하데스를 말리려 하는지 이 해할 수 없었다.

본능적인 불안함 때문이었을까?

“제가 본 미래가 걱정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끔찍한 미래가 일어나기 전에 저를 말려주셔야지요.”

“그대를 죽일 수 있는 존재는 나 말 고도 있잖아.”

“아하, 생존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모르십니까? 저를 믿으시나요? 제 마음이 어찌 달라질지 알고요?”

“그대를 믿지는 않지만…….”

죽은 눈빛으로 가만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하데스의 고개가 돌아왔다.

그는 미하일과 똑바로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런 눈을 한 이들의 눈빛은 믿어.”

“무슨 뜻이죠?”

“삶보다 죽음이 더 마음 편하다고 여기는 그 눈빛 말이야. 죽음보다 더 괴로운 삶을 수백 번 겪은 자들만이 지을 수 있는 그 눈빛.”

“……제누스 얘기를 하시는 모양이 군요.”

“그래. 대신관도 똑같지. 제 삶에 미련은 없으면서, 사랑하는 이들의 비극에는 대단히 예민한.”

“…….”

“난 대신관의 그 눈빛을 믿어. 내가 대신관까지 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혹시 실패한다면 지체 없이 죽어 줘. 어차피 그대도 아이샤가 고통스 러워하는 모습을 두고 볼 생각 없잖 아.”

역시, 서운하리만치 냉정한 발언이 었지만 미하일은 그의 단호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제누스가 걱정할 텐데.

조금 더 말리려던 미하일은 관두었다.

무턱대고 신을 찾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하데스가 사라질 것도 아니니, 지금 이곳을 나서면 아이샤 에게 살짝 귀띔해주고 말면 되겠지.

‘아버지의 죗값은 내가 치르게 할 테니, 부디 내 형제나 행복하게 해주 시기를.’

패기 넘치는 하데스의 모습을 보며 미하일은 속으로 웃었다.

끝으로 아이샤를 부탁한다며 먼저귀빈실을 나서는 하데스의 뒷모습을 볼 때까지도 미하일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때 더 하데스를 붙잡지 않았음을 후회하게 될 거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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