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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50화 (150/221)

150화.

그 순간, 옆에서 큰 기척이 났다.

“폐, 폐하! 괜찮으십니까!”

미하일이 재빨리 일어나 나를 스쳐 지나갔다.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니 황제가 충격 받은 표정으로 몸을 가 누지 못한 채 테이블 위로 팔을 짚고 있었다.

미하일은 촉촉이 젖은 눈동자를 하고서 황제를 부축했다.

물론 황후와 황태자 또한 적잖이 충 격 받은 모양이었다. 내게로 그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나는 해명을 바라는 그들의 눈빛을 피하며, 쓰고 있던 금관을 조심스레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양심상 이걸 계속 쓰고 있을 수가 없다.

장내는 더욱 시끄럽게 웅성거렸다. 모두 얼이 쏙 빠진 표정으로 단상 위에 있는 하데스와, 안색이 파리해진 황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조각상이 공개되었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하데스는 고개를 갸웃하 며 목소리 높여 말했다.

“박수?”

와우.

귀족들은 모두 입을 벌린 채, 이러 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박수 치며 같이 좋아하면 황실에 반기를 드는 행위요, 가만히 앉 아 있으면 위대하신 루버몬트 공작 7 세의 기분을 거스르는 것이다.

과연 이제국에서 누구의 입지가 더 큰지, 비로소 확연히 판명 나는 순간.

짝, 짝, 짝…….

한쪽 구석에서 시작된 박수 소리를 따라 몇 명의 귀족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동참했고, 이내 공저 안은 귀가 아플 만큼 찬양으로 가득 찼다.

하데스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누구보다 이 사람의 자리에 어울리는 후계자 아벨 루버몬트가 정식으로 가문의 이름을 이 어받는 날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공저 입구에 서 있던 기사들이 절도 있는 자세로 마주 보았다.

“루버몬트에 영광을!”

기사들 대사에도 제국 찬양이라든 가신에 대한 찬미는 한 줄도 없었다.

그들이 세운 번쩍이는 검의 아치 아 래로, 공표식의 주인공인 아벨이 등 장했다.

화려한 흑색 제복 위에 붉은 망토를 두른 아벨을 향해 모두의 시선이 모 여들었다.

‘아벨……?’

시선을 둘 곳이 없어 아벨이 등장하 자마자 그를 바라본 나는, 잠깐 눈을 의심했다.

아벨의 모습을 보고 모두가 놀랐다. 물론 나도 놀랐다.

사실 어린 나이부터 완성된 얼굴이 잘생긴 건 두말할 것도 없었으니 그 때문에 놀란 건 아니었다. 다른 귀족 들은 아벨의 잘생긴 얼굴에 정신을 홀라당 뺏겨버린 거겠지만…….

‘턱은 왜 저렇게……?’

잔뜩 긴장하며 등장할 줄 알았던 아벨은, 15도 정도 비스듬히 고개를 기 울이고 턱을 치켜든 채로 붉은 융단 길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세워진 봉화대 위로, 아벨의 걸음마다 날카로운 불길이 치솟 았다.

“오오…….”

“역시…….”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남들은 이제 겨우 핵석을 숨기는 데성공한다는 나이, 열 살.

화속성의 2차 개방 이능인 발화를 무리 없이 선보이는 아벨의 위용에, 귀족들은 저마다 놀란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는 생각들이라곤 뻔했다.

‘저런 괴물들이랑 척을 져서 뭐 하 겠어? 박수 치길 잘했다.’

봉화대의 절반 이상 불이 올랐고, 이윽고 나는 표정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진 아벨에 또 한 번 놀랐다.

‘우리 순진하고 얌전한 아들 표정이 왜 저렇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뒷목 잡고 휘청거리는 황제의 상태는 신경도 못 쓸 지경이 되었다.

바로 이해할 수 없는 아벨의 표정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하데스가 마법이라도 써서 아벨 행세를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 올 수 없는 표정이었으니까.

거만한 눈빛, 살짝 들어 올린 턱, 누군가를 비웃듯 비스듬히 기울어진 입 꼬리.

저것은…….

하늘 아래 내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고 말하는 듯한 하데스의 표정 그 자체.

수줍게 웃는 얼굴이었던 아벨과 만 나고 난 이후로 처음 보는 표정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완전 제 아빠잖아.’

전에 연습하는 걸 봐달라고 할 때만 해도 저런 표정 연기를 하진 않았는 데…….

아벨이 갑자기 저런 표정으로 등장할 리는 없고, 누구의 뒷공작이 있었 는지 뻔했다. 나는 휙 하데스를 돌아보았다.

아벨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던 그가, 나와 눈 맞추며 거만하게 웃고 있었다.

“아니…….”

왜 애한테 저런 걸 가르친 거야? 아벨은 왜 시킨다고 그대로 하고?

황당한 내가 속으로 던지는 물음에 대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벨이 단상 위,비어있는 제 자리까지 도착하자 하데스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데스를 향해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한 아벨은, 뒤돌아 귀족들에게 까딱, 고개를 한 번 기울였다.

끝까지 정말…… 완벽하게 거만했다.

‘이쯤 되면 친자 확인해봐야 한다. 진짜 친아들일 확률이 다분해.’

충격 받은 내가 속으로 아무 말을 하고 있는 사이, 아벨이 화려한 공좌에 앉았다.

물론 그냥 앉지 않았다.

털썩, 원래부터 자기 자리였던 곳에 앉는 사람처럼 익숙하게 엉덩이를 붙 인 아벨은 공좌의 팔걸이를 만족스러 운듯 쓰다듬더니.

척, 하고 한쪽 발을 올려 무릎 위에 얹었다.

‘오, 저게 뭐야.’

현기증이 났다.

황제를 부축하고 있던 미하일이 다시금 급하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게 보였다.

너는 이게 웃기겠지. 얼굴을 가리지 않고서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용신 가이오니아를 믿는 크레센타 제 국에서 신상 대신 자기 조각상을 세워놓고 부자가 똑같이 저런 거만한 태도를 선보이는 건, 명백히 신을 향 한 반기였고…….

‘황실에 대한 선전포고지.’

지금 황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지는 뻔했다.

이건 역성혁명의 전조가 아닌가? 어떻게 루버몬트와 대적해야 하지? 단숨에 제국인들 전부의 머리통을 불 태워버릴 수 있는 저 괴물과 맞붙어 서 이길 확률이 있나?

나는 부디 황제에게 고혈압이 없길 바랐다. 그런 지병이 있으면 지금 단 숨에 훅 가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상황이니까.

아벨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그를 칭찬하며, 하데스는 목소리 높여 또 덧붙이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루버몬트의 후계자가 된 내 아들에게 많은 존중과 찬사를 부탁합니다.”

말이 부탁이지, 이제 나뿐만 아니라 내 아들에게도 머리를 조아리라는 협 박에 더 가까웠다.

“내 아들이니 당연한 말이지만, 아벨 루버몬트는 이제국에서 둘 이상 나오기 힘든 능력자입니다. 기왕 축 하 받는 자리이니 제대로 받았으면 해서 하나 더 알립니다.”

피식 웃은 하데스가 멍한 표정으로 시선을 모은 귀족들을 향해 말했다.

“내 아들은, 가문의 상징인 화속성의 최대 개방도 마친 상태입니다.”

폭탄 발언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곳곳에서 삼킨 숨을 터뜨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대단하다는 하데스 루버몬트도 열 살에 능력을 끝까지 개방하지는 못했다. 다시 말해 아벨 루버몬트는 벌써 아버지를 뛰어넘은 어마어마한 능력자였다. 귀족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 나이 대에 온갖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순식간에 불태워 죽여 버리는 자연 발화 능력을 개방하는 건 어불성설이고 밸런스 붕괴였다.

빈틈이라곤 없는 강하고 완벽한 남주였지만, 원래도 열 살에 최종 개방을 마치진 않았지.

그러나 아벨은 해냈다. 원작과는 다 르게.

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 물을 때마다 그 이유가 ‘나’라고 대답하는 것엔, 도무지 동의 못 하겠지만…….

아무튼 지금의 아벨은 이 자리에서하데스 그 이상으로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귀족들의 눈빛이 경외감에 차올랐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충분히 가문을 이끌 만한 능력을 깨우쳤음을 확 인했으니…… 이 시간부로 나는…….”

모두 숨 죽인 채 하데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가문 수장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후계자인 아벨 루버몬트와 공유할 것임을 선포합니다. 만에 하나 나의 일신에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수장의 권한은 전부 후계자에게 일임하며, 아이가 성년식을 치르기 전까지는 내 부인이 영지의 통치권을 가질 겁니다. 물론.”

잠시 말을 멈춘 하데스가 눈을 빛내 며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보 인 건, 황제의 책사인 파멜라였다.

하데스는 꼭 그녀에게 경고하듯 덧붙였다.

“내 일신에 문제가 생길 일 따위는 없겠지만, 워낙 내 아들의 능력이 출 중하니…… 사자 없는 산에 토끼가 왕 노릇 하려 기어들어올 걱정은 하 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합니다. 현명 한 자들이라면 목숨이 중한 줄 알 테 니…….”

말을 마치고 웃는 하데스의 얼굴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전부 침묵하며 서로의 눈치만 볼 뿐. 이거야말로 무시무시한 독재의 현장이 아닌가.

“루, 루버몬트 공…….”

그때 가녀린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흘러나왔다.

충격 받아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황제 대신, 용감하게 입을 연 건 황후였다.

안 그래도 마른 몸에 파리한 안색까 지 더해진 황후는 누가 봐도 안쓰러 운 모습이었다.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 할 것 같소. 황실은, 황실은 루버몬트에서 이 중대한 자리에 신을, 신을…….”

심장이 뛰는 모양이었다. 황후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가슴팍을 붙 잡으며 천천히 심호흡했다.

황태자가 두려운 눈으로 무너지는 황후를 부축하며 입술을 떨었다.

마치 나라 뺏긴 망국의 황족들 같았다. 아니, 그게 머지않은 일이라고 생 각할지도 모르겠다.

불쌍한 모자의 모습에 동정심도 안 드는지 하데스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하곤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알리지 않은 내 용이 있군요. 나와 루버몬트를 둘러 싼 근거 있는 소문들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하데스는 다시 귀족들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미 짐작들 하고 있겠지만……. 나는 제국 황족들의 시조인 용신 가이오니아를 숭배하지 않습니다.”

충격의 연속이었다. 의심이야 많이 했지만 이걸 당사자가 제 입으로 실 토할 거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더 놀랄 일이 남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몇몇 귀족들은 눈이 빠질 듯한 표정이 되었다.

황후는 기어이 눈을 감고 무너졌고, 황제는 분노로 벌벌 떨었으며…….

“세상에, 이런…….”

미하일은 입을 가리기 바빴다.

“다만 가이오니아를 숭배하지 않는 다 하여 지금의 제국 위에 군림해 온 크레센타 황실의 정통성을 무시할 생 각은 없습니다. 황제 폐하와 황후 폐 하께서 걱정하는 사실이 무엇인지 잘 인지하고 있기에, 이 자리를 빌려 말 합니다.”

그래, 나는 이제야 겨우 가슴을 쓸 어내릴 수 있었다.

이 공표식은 처음부터, 황제와 황후를 혈압 올려 쓰러지게 만들 생각으 로만이든 자리는 아니 었다.

‘신을 숭배하지 않는다’는 폭탄 발언에 모두가 한 가지 가정을 떠올리 고 있을 테다.

‘아, 드디어 하데스 루버몬트가 황실을 집어삼키고 황제가 될 마음을 먹었구나.’

하지만.

“나는 크레센타 가문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제국의 유지를 잘 이 어가주기를 바랍니다. 내 여력이 허 락하는 한, 평화로운 제국을 위한 방 패의 역할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이 다짐을 맹세함과 함께, 황실과의 신 뢰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모두가 숨죽이고 귀를 기울인 가운 데, 하데스는 선심 쓰듯 못 박았다.

“……황태자 줄리앙 프랑세즈 크레센타가 다음 대 황위에 무사히 즉위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게 본론이었다. 황위에 관심 없으 니 괜히 벌벌 떨 필요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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