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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42화 (142/221)

142화.

“대신관님?”

평소와 달라 보이는 미하일의 표정에 데보라가 갸웃했다.

아차 싶었던 미하일이 금세 얼굴을 갈무리하곤 웃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모양이에요.”

“네! 헤헤…….”

“그래요. 피곤하진 않나요? 먼 길을 온 데다가 오늘 고생도 많이 해서, 저는 사제가 걱정이 되는군요.”

“으음, 쪼끔요.”

데보라가 살짝 풀어진 눈을 깜빡이 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일이 빙긋 웃곤 데보라를 번쩍 안아들었다.

“낮잠을 좀자는 게 좋겠어요.”

“네에…….”

금세 피곤한 눈가를 비비적거리는 데보라를 침대에 눕혀준 미하일이 다 정한 손길로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잘 자요.”

부드러운 손길에 배시시 웃던 데보라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 옆에 서 한참, 미하일은 천사 같은 얼굴로 곁을 지켰다.

이윽고…….

‘하데스 루버몬트.’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을 때에야, 미하일의 무해했던 표정이 뒤집어졌다.

「매번 다시 태어나 그대를 사랑해 주면 뭐 하나?」

미하일은 하데스와 마주했던 그때의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특유의 오만한 표정에 불쾌할 겨를도 없었다.

신에게서 받은 벌. 고통스러운 윤 회. 하데스 루버몬트는, 미하일의 비 밀을 알고 그런 얘기를 했음이 분명 했다.

‘아이샤가 공작에게 전부 털어놓은 건가? 아니, 그렇다기에는…….’

「정작 연인이라는 자는, 애먼 사람 붙잡고 절절하게 구는데 말이야.」

‘대체 무슨 뜻이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미하일이 미간을 쓸었다.

그때였다. 노크도 없이 벌컥 열린 문에 미하일의 고개가 날카롭게 돌아 갔다.

‘공작?’

그를 떠올리고 있었다는 걸 알기라 도 한 사람처럼, 하데스가 여유 만만 한 표정으로 문가에 서 있었다.

철컥, 문을 닫고 들어오는 그의 행 동에 미하일이 미간을 좁혔다.

“오, 그 사람 좋다는 대신관이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안다는 건 아무도 모를 거야. 그렇지?”

“글쎄요.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먼 길 온 손님의 방을 무례하게 열어젖 히는데 누가 좋은 표정을 지을 수 있 겠습니까. 루버몬트 공작 전하께서 이렇게 예의라곤 다 팔아먹은 분이라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을까요?”

한 마디도 안 지려는 미하일의 얼굴 에는 하데스를 향한 적개심이 가득했다.

항상 재수 없게 웃기만 하던 속 모를 놈에게 이 정도로 감정의 동요를 일으켰다는 것이 하데스는 만족스러 웠다.

하데스가 킬킬거리며 말했다.

“대신관은 나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는 모양이네. 나 원래 이런 놈인 거 꽤 많이들 알고 있어.”

“…….”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로 무작정 휘 적휘적 걸어가는 하데스를, 미하일이 물끄러미 응시했다.

하데스가 의자에 앉고서야 침대 위에 누운 어린 데보라를 발견했다.

그의 시선을 느낀 미하일이 웃으며 다가왔다.

“제게 할 말이 있으신가 본데, 지금귀여운 어린 사제님이 낮잠을 자는 중이라서요.”

“별로 문제될 건 없는데. 대신관이 화나서 소리 지르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야.”

기어코 찾아온 이유는 말하고 돌아 가겠다는 듯, 하데스는 막무가내로 어깨를 으쓱하곤 거만한 표정으로 다 리를 꼬아 앉았다.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린 미하일 이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그와 마주 앉았다.

“무슨 일이신지요?”

“어차피 대신관도 날 기다리지 않 았나? 그렇게 쌀쌀맞게 굴지 말라 고.”

능청스럽게 웃는 하데스를 빤히 바 라보던 미하일이 얼굴에서 웃음을 싹 지웠다.

“오,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된 모양이 군그래.”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얼른 하고 돌아가 주십시오. 저 어린 사제님에게는 오늘 하루가 굉장히 고단했을 거라, 낮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군요.”

“이렇게 착한 대신관이 왜 내 아내는 그렇게 못 죽여서 안달인지 말이야.”

순간 미하일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어렴풋이 짐작했지민, 분명 하데스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렇 다면 굳이 연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미하일이 웃으며 말했다.

“이런 변명으로 전하의 마음을 풀 어드릴 수는 없겠지만, 저는 최대한 영애가 고통스러워하지 않을 만한 방 법을 찾아 죽여 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표정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하데스의 인상이 대번에 찌푸려 졌다.

“겁이 없는 건 핏줄 특성인가, 이것 참.”

“예?”

“내 성에서 대놓고 아이샤를 죽이 겠다느니 뭐니 나불거리는 주둥아리 가 놀라워서 하는 말이야.”

“그러면 전하께서도 말만 하지마 시고 또 제 머리통을 불살라 보시든 지요.”

“어차피 안 죽잖아. 뭣 하러 아까운마력을 낭비해.”

미하일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다.

하데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글쎄요. 궁금한 게 있어서 저를 찾 아오신 건 전하가 아니신지?”

“원하면 날 세뇌해서 입을 열게 할 수도 있잖아? 왜 그렇게 안 하지?”

비죽 웃는 하데스를 미하일이 빤히 응시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도 영애께서 전하에게 뭔가 알려주신 모양이지요? 사실 저희 둘 만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인지라 전하 에게까지 알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 지 못해서, 당황스럽긴 하군요.”

둘의 은밀한 관계를 강조하며 말하는 미하일의 속이 다 보였다. 도발하 려는 의도가 보여 침착하고자 하는데 도 하데스는 화가 났다.

미하일이 말하고 있는 그녀는 제누스인 아이샤가 아니라, 그의 연인임을 분명히 아는데도.

“후…….”

“그리고 저 또한 마력을 괜히 낭비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이미 영애께서는 무효화를 개방하지 않으셨 던가요? 제게 제약을 걸어도 몇백 번 은 더 걸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 니…….”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미하일은 자신의 암속성 능력이 막힌 걸 그다지 걱정스러워하지 않는 듯 보였다.

아이샤가 손을 써둔 건 맞았다. 다 만 그것이 백속성의 무효화가 아니라 암속성의 정신 지배라는 데에 있었지 만…….

하데스는 아이샤의 말을 떠올렸다.

「제가 미하일 라이가르트 대신관 이 능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 둔 건 정신 지배예요. 무효화를 걸어 둘 수도 있지만 조금 걱정스러워 서…….」

「걱정스러워? 무효화는 모든 능력을 상쇄하는 무적과도 같은 능력 아니었나?」

「그렇긴 하지만, 대신관이 자기 능력을 사용하고 그걸 상쇄하는 만큼 제 마력도 닳게 되니까요. 아예 대신관이 능력을 사용할 생각도 못 하게만드는 게 효율적이죠. 제가 마력을 아껴야 할 일이 있어서……」

「마력을 아껴야 할 일? 그건 또 뭔 데?」

「저도 쉬운 여자 아니니까 말 안 할래요.」

하데스 자신도 숨기는 일이 많았던 지라 뾰로통하게 대꾸하는 아이샤에게 더 묻진 못했다.

다만 알고 있는 사실은, 아이샤가 미하일에게 ‘능력을 사용하지 말 라. ’라고 정신 지배를 걸었다는 건 데…….

‘이런 식이었나 보군. 본능적으로 무효화가 걸려있다고 착각해서 세뇌 능력을 쓸 생각조차 안 하는 건가. 확 실히 무서운 능력이야. 정신 지배.’

아이샤의 말대로 무효화보다 확실 한 능력 제약이었다.

그녀가 손을 써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미하일과 단둘이 마주하는 것이 꺼림칙했던 하데스는 그제야 안심했다.

그는 빙긋 웃고 말했다.

“아무튼 다행이야.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는 반편이여야 신앙심 하나로 대신관 자리에 오른 신실한 사람으로 남지.”

“제가 화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오신 건가요? 글쎄, 도발하시는 수준 이 어린아이들 같아 하도 유치해 서…… 화는 전혀 안 나네요.”

“아니, 대신관이 멍청해서 내가 복 도에서 한 말을 못 알아들었을까 봐 왔지. 아까처럼 무뢰한 같은 짓거리 도 당연히 하면 안 되지만, 혹시나 저 번에 세례를 핑계로 아이샤의 목숨을 위협했을 때처럼 정신 나간 행동도 자제해주길 바라.”

손가락을 든 하데스가 미하일의 얼굴선을 따라 천천히 원을 덧그리며 웃었다.

“뒤지진 않아도 그 잘생긴 껍데기를 불사를 수는 있거든. 못생긴 통구 이가 되어서 돌아다니고 싶진 않겠 지?”

“전하,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영애를 가장 고귀한 모습으로 이 생 과 작별시켜드리고자 항상 고민하고 있답니다.”

“그게…….”

“벌써 두 번이나 실패했지만……. 차라리 제가 실패하지 않는 게 영애 에게도, 전하에게도 나았을 겁니다. 영애가 더 아름다운 생의 결말을 맞 이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데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선천적으로 약한 육체를 타고났던 영애지요. 신관들의 회복 능력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진작 단명했을 운명입니다. 자체적으로 백속성의 능력을 개방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건 제 가 철저히 막아놓았기 때문에 가능하 지 않았고.”

“아하…….”

이제 알았다. 하데스의 입에서 탄성 이 터졌다.

18살의 나이에 요절해 관 속에 들 어갔다던 아이샤.

그녀를 죽이고자 하는 미하일이니 당연히 신관들의 세례로 도움을 주지는 않았을 테고, 아이샤가 직접 백속성의 능력을 개방해 자기 몸을 돌볼 수 없도록 마력억제제를 먹여왔던 거다.

놀랍다는 듯 피식 웃는 하데스를 보 며 미하일이 마주 웃었다.

그가 계속 말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셨을 때에는 좀 놀랐습니다. 가이오니아께서 더 끔찍하게 그녀를 죽이는 미래를 원하 시는 건가, 싶어 당황스러웠지요.”

“…….”

“그렇지만 진심으로, 저는 영애가 아름답게 죽기를 바랐습니다. 전하의 방해만 없었다면 저번에 방문했을 때 영애는 죽을 수도 있었겠지요. 제가 여태껏 힘들게 막아둔 마력을 개방시 키고 핵석까지 숨겨주시다니요. 정말 영애를 생각하신다면 전하는 그러면 안 됐답니다.”

“허, 죽게 두라고?”

“조금 더 아름답게 죽게 두라는 말이지요. 나중에 가서 영애가 전하를 원망할 게 제 눈에는 훤하군요. 아, 차라리 그때 핵석이 박살 나 죽어버 렸으면 더 행복했을 텐데, 하 고…….”

“개소리 좀 작작 하고…….”

“그러면 전하는 영애가 어떻게 죽 기를 바라시나요? 제가 왜 필사적으 로 영애를 죽이려고 하는지 알려드릴 까요?”

원래는 아이샤가 알리게 두려 했지만, 하데스는 화가 났다.

그녀는 네놈 연인이 아니라 다른 영 혼이니 다 의미 없는 짓이라고 말해 주려던 그 순간이었다.

“약한 몸을 돌보지 못하게 해서 상 처 하나 없이 요절하게 만들고, 핵석 이 부서 져 즉사하는 게 더 나은 죽음이었을 거란 말입니다.”

미친 사람처럼 눈을 번득이는 미하일에 하데스가 흠칫했다.

테이블 위로 손을 짚고 얼굴을 바짝 들이민 미하일이 핏발 선 눈으로 웃 으며 덧붙였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결코 좋아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미쳐 돌아버린 저에게 반항도 하 지 못한 채로 겁간당하고, 목 졸려 죽 게 되는 것보다는요.”

분노한 듯, 미하일의 푸른 눈이 번 득였다.

그의 말에 하데스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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