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미하일에게 가져다주고 싶다니.
그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것처럼 보 이는 건 둘째 치고, 마음씨가 천사 같 아서 나는 말문을 잃었다.
너무 예쁘고 귀여워 눈가가 시렸다. 나는 엄지와 검지로 지그시 눈가를 눌렀다가 말했다.
“여기 있는 건 다 사제님 거니까…….”
“…….”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돼요. 대신관님 몫은 이따가 따로 챙겨드릴 게요.”
“저, 정말요?”
“그럼요. 당연하죠.”
데보라는 신난 얼굴로 다시 포크를 들었다. 휘스트리너 공작을 만나고 나서 우울해졌을 기분이 다 풀린 것 같아 다행히 었다.
원래 이렇게 단 거 많이 먹이면 안 되지만, 오늘은 날이 날이니 봐줘야겠지.
정신없이 포크를 놀리는 아벨과 데보라의 접시에 디저트를 나눠주기를 한참.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나는 조심스 럽게 입을 열었다.
“저, 데보라 사제님.”
“네에!”
테이블 아래로 발을 크게 한 번 구 르며 데보라가 힘차게 대답했다.
귀여워…….
“홈홈, 대신관님 말인데, 사제님이랑 만난 지 얼마나 되었어요?”
“대신관님이요? 아…….”
포크를 살짝 문 데보라가 조금 생각 하다가 대답했다.
“1년쯤 전에…… 저를 살려주셨어요. 제 생명의 은인이세요.”
제도 뒷골목에서 꼭 5년 전의 아벨처럼 거지 생활을 하다가, 얼어 죽기 일보 직전에 미하일에게 발견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소설을 읽을 당시에는 참 눈물겨운 운명적 만남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은 의심부터 들었다.
데보라를 신전으로 데려온 것부터 가, 미하일에게 어떤 꿍꿍이가 있어 서가 아닌지.
“사제님은 대신관님을 정말 좋아하 나 봐요.”
“네……. 아버지 얼굴은 모르지만 아마 아버지가 있었으면 대신관님 같 은 분이었을 거예요.”
“으음, 그렇군요.”
미하일을 생각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데보라를 보니, 마냥 그를 욕할 수만도 없었다.
꿍꿍이가 있든 없든 죽을 뻔했던 데보라를 거두고 그녀에게 이 정도로 잘해준 건 미하일뿐이었으니까.
만약 미하일이 없었다면 데보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오히려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내야 했던 아벨보다 더 나을 터였다. 그녀는 다행히도 어른의 보호가 필요한 나이에 미하일에게 보살핌 받았으니까.
나는 담백하게 인정하고 말했다.
“다행이에요. 대신관님이 사제님 곁에 있어주셔서요. 그런 걸 보면, 신 도 그렇게 무정한 분은 아닌가 봐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끔찍한 기억이 어떤 식으로든 치유되 었음은 다행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내가 내뱉은 말에, 문득 데보라의 표정 이 굳었다.
“글쎄요.”
“응?”
“그건 잘 모르겠어요.”
“뭘요?”
“신이 무정한 분이 아니라는 거요.”
한순간에 달라진 데보라의 분위기에 나는 말을 잃었다. 아벨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한참 놀리던 포크를 놓았다.
데보라의 잿빛 눈이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여섯 살의 눈 빛 같지는 않았다.
여태껏 받아왔던 상처와 아픈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눈빛이었다. 디저 트에 행복해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여 섯 살 아이 였는데.
“저도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대신관님은 신이 제게 주신 선물이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요?”
“그런데 아닌 것 같아요. 신은 대신관님 같은 분을 제게 선물로 줄 만큼 다정하지 않거든요. 아마 신이 있다 면 그건 대신관님과 제일 가까울 거 예요.”
명백히 신을 모독하는 발언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전에서 일하는 사제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말이었다.
데보라가 어려서 잘 모르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신전에는 데보라 말고도 어린 사제들이 많다. 그들 은 보통 어릴 때부터 신의 종처럼 자 라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신을 숭배한다는 대신관의 눈에 들어, 그와 가장 친 한 어린 사제의 입에서 나올 말은, 정말로 아니라는 거였다.
나는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생각해보면 ‘제국의 성녀’로 추앙받 았던 데보라는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을 거야. 다치지도 않을 거야. 무사히 돌아올 수 있어, 아벨. 아버지께 기도할게.」
「우리 대신관님께 기도하자. 영원히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말이야…….」
신으로 일컬어지는, 용신 가이오니아에게 기도드린 적 없었다.
언제나 그녀의 기도에서 등장하는 ‘아버지’는 미하일 라이가르트 대신관이었다.
‘데보라도 세뇌한 걸까? 자길 신처럼 떠받들라고?’
그러나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페르소나 끝판왕인 미하일의 능력이라면 데보라에게 크나큰 존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뭐랄까.
‘일부러 신을 증오하게 만든 느 낌…….’
휘스트리너 공작이 데보라를 냉정 히 내칠 것을 내다보았으면서도 굳이 그녀를 헤어진 어머니 앞에 데려다놓 은 이유는 뭐였을까?
데보라는 어머니와 재회하기 전까 지만 해도, 어쩌면 신께 기도했을지 모른다.
다시 어머니의 품에 안길 수 있기를.
그러나 어땠지?
‘냉정하게 내쳐지고 나서, 신이 더 증오스러웠을지도.’
나는 알 듯 말 듯한 미하일의 의도를 가늠하려 애썼다. 그러나 곧 관두 었다. 미하일의 입으로 그의 꿍꿍이를 직접 듣기 전에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다만 혹시나, 정말로 세뇌 상태가 아닌지는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지금이야 내 능력으로 미하일의 능력을 막았다지만, 이미 그전에 걸어 둔 세뇌가 있다면 그것까지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행히도 나는 아벨라의 정화를 사 용할 수 있었으므로, 미하일에게 세뇌당했다고 의심되는 이들이 있다면 푸는 게 가능했다.
나는 태연한 척 데보라의 머리를 쓰 다듬어주며 이마를 붙였다.
갑자기 다가와 다정하게 닿아오는 내가 당황스러웠는지 데보라가 얼굴을 붉히고 허둥거렸다.
‘역시 세뇌 상태가 아니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왜인지 사제님이 많이 속상해하는 것 같아서, 달래주고 싶었어요. 불쾌 하지 않았죠?”
“아아, 네…….”
데보라는 붉어진 뺨으로 수줍게 고 개 숙였다.
그때, 문득 아벨이 테이블 아래로 내 손을 당겨왔다. 뭔가 싶어 돌아보 니 그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 채 프 레지에 위의 딸기를 쿡 찍은 포크를 들고 있었다.
“왜?”
아벨은 대답 않고 내 입 앞으로 포크를 불쑥 들이 밀었다.
살짝 서운한 듯한 표정과 갑작스러 운 행동에, 나는 지금 아벨이 질투하 고 있는 건가, 싶었다.
아마도 다정해 보인 데보라와 내 모습에?
‘귀엽기는.’
딱 그 나이 대의 모습이었다. 나는 한 번 웃어주고 입을 열어 아벨이 내 민 딸기를 받아먹었다.
물론 내 포크를 들어 똑같이 딸기 하나를 아벨의 입에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제야 뚱해 보이던 아벨의 표정이 스르르 풀렸다.
“맛있어?”
“헤헤, 네! 어머니가 먹여 줘서 더 요!”
한참 아벨과 마주 웃던 나는 또 반 대편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움찔했다.
아차, 생각 없긴.
몇 시간 전에 겨우 엄마를 만났다가 매정히 내침 당하고 우울해하던 데보라를 위로해주려던 자리가 아니었던 가.
여기서 팔자 좋게 아벨이랑 다정한 모자처럼 보이고 있다니.
“아, 사제님.”
역시나 데보라의 빤한 시선은 나와 아벨에게 닿아 있었다. 부러운 표정이었다.
안타까운 말이지만, 내가 본 휘스트리너 공작은 데보라에게 다시 어머니 가 되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원작 대로 데보라에게는 미하일과, 아벨뿐 이겠지.
휘스트리너 공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데보라는 조금 안 타까웠다.
미하일이 아버지가 되어주었다지만…… 어머니만이 줄 수 있는 그런 마음도 있는 법이니까.
나는 딸기 하나를 더 찍어 데보라에게 권했다.
“자, 사제님도요.”
데보라는 살짝 커진 눈으로 앞에 내 밀어진 딸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얼른요.”
빙긋 웃는 내게 잠시 시선을 주던 데보라는, 또 수줍게 뺨을 붉히며 작 은 입술을 열어 그것을 받아먹었다.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
데보라가 돌아온 건, 미하일이 혼란스러움에 빠져 좀처럼 제정신을 붙잡 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들려오는 작은 기척에, 대신관 미하일 라이가르트답지 않던 험악 한 표정이 한순간에 느슨하게 풀어졌다.
휘어진 눈꼬리와 상냥한 웃음을 걸친 채 미하일이 말했다.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얼굴을 보인 건, 그가 예상했듯 데보라였다.
미하일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걱정스러운 눈으로 한달음에 달려 갔다.
“데보라 사제!”
“대신관님.”
“대체 어디 갔었어요? 한참 찾았잖 아요.”
“……죄송해요.”
시무룩해져 사과하는 데보라를 보 던 미하일이 아, 탄성을 뱉더니 고개 저었다.
“아니예요. 내가 미안합니다. 데보라 사제가 죄송할 건 하나도 없어요. 많이 놀랐죠.”
안쓰러운 얼굴로 미하일은 데보라를 안아주었다. 그의 품에 뺨을 비비 며 데보라가 고개 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어머니를 만나는 걸 기 대했잖아요. 많이 실망했을 텐 데…….”
“네에…….”
품에 안은 작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 듬는 미하일의 입꼬리가 비죽 기울었다.
“신이 많이, 원망스러웠을 거예요…….”
“…….”
“괜찮아요. 저는 사제의 마음을 다 이해하니까요.”
아마 이 모습을 봤다면, 많은 이들 은 의아했을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신을 경배하고 사랑하라 가르치는 신전의 대신관이, 신을 미워하게 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다니.
“저, 대신관님.”
“네?”
미하일의 품에서 빠져나온 데보라 가 손에 들고 있던 묵직한 주머니를 건넸다.
제법 고급스러운 천 주머니였다. 미하일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뭔가요?”
“루버몬트 공작부인께서 저를 초대 해주셨어요. 저, 케이크도 먹어보고 마카롱도 먹어봤어요. 너무 맛있어서 대신관님도 드셔보시라고 가져왔어요.”
데보라가 내민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미하일이 곧 웃으며 물었다.
“공작부인을 만났나 보군요.”
“네. 부인은 정말 상냥하신분이었 어요. 아, 맞다! 고, 공자님도 뵈었는 데요, 두 분 모두…….”
데보라는 살짝 붉어진 뺨으로 몸을 배배 꼬더니 말했다.
“……정말 좋은 분들이었어요.”
“그렇죠. 공작부인은 아주 다정한 사람이에요. 루버몬트 공자님도요.”
“네, 맞아요. 헤헤…….”
기분 좋은 얼굴로 웃고 있는 데보라는, 휘스트리너 공작과의 만남 같은 건 전부 잊은 것처럼 보였다.
데보라의 밝은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미하일이 지그시 입술을 물었다.
「우리 데보라에게 왜 그랬는 지…….」
어쩐지 데보라를 걱정스러워하는 것 같더니, 기어코 아이샤가 그녀를 찾아 달랜 것이었다.
작은 아이를 안쓰러워하는 그녀의 숨길 수 없는 천성이야 이해하지만, 지금은 데보라를 계속해서…….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정신을 망가 뜨려야만 하는데.
‘곤란한데.’
다시금 아이샤를 떠올린 미하일이 초조함에 입술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