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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34화 (134/221)

134화.

“세상에나.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 면 진짜 그것만큼 소름 돋는 일이 없 겠네요. 발 내리고 바로 좀 앉아요. 턱 좀 그만 괴고. 뭐 한가롭게 원숭이 들이 조잘거리는 거 구경하러 왔어 요?”

“아니, 내 말 귓등으로 들었나? 황제가 다 뭐라고 왜 이렇게 쫄아 있어? 그대도 거만하게 다리 좀 꼬고 턱 좀 세우고 앉아. 마냥 상냥하게 굴 지 좀 말고.”

“아니…….”

“오히려 얼어붙어 있는 게 더 안좋아. 이런 자리일수록 누가 위고 누가 아랜지 확실히 알게 해줘야지.”

하데스는 오만함이 가득 넘치는 표 정으로 말했다.

과연 태어나서 남의 위에 군림해본 적밖에 없는 선천적인 폭군 권력자 타입…….

내 안에 숨어있던 동방예의지국인의 영혼이 발끈했다.

“전하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건지는 알아요. 제가 바본가요? 그렇지만 이건 그런 권력 관계 속에서의 눈치 싸움이랑은 조금 다른 문제라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 몰라요? 가신들을 볼 때도 이런 자세로 맞진 않 잖아요?”

허벅지를 툭툭 치며 못마땅한 듯 쏘 아붙이는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하데스가 입을 쭉 내밀고는 결국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네, 네.”

“그대가 하는 말이라서 들어주는 거야. 알지?”

“아이고. 알죠, 알죠. 생각해주심에 가암사합니다, 저은하.”

비꼬듯 하는 말에 계속 뚱한 표정을 짓던 하데스가 말했다.

“나는 그쪽 말고 다른 쪽이 더 걱정인데 말이야.”

“다른 쪽? 아아…….”

나는 하데스가 누굴 말하는지 곧바 로 눈치챘다.

미하일 라이가르트 대신관.

아니, 나는 오히려 그쪽이 더 걱정 안 되는데…….

“괜찮아요, 괜찮아.”

정말로 걱정 안 됐다.

일단 나는 수많은 기억을 돌려받았 기 때문에, 그의 정체가 아주 먼 옛날 에는 가족이나 다름없이 지내왔던 이그니스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죄와 여태껏 보였던 행보, 또 아벨을 쉴 새 없이 굴릴 미래와는 별 개로, 서로 믿고 의지하는 형제였다는 사실 때문에 내적 친밀감이 들기도 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만남을 고대하기도 했다. 그와 만나 서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까.

하데스가 걱정하는 건 미하일의 능력, 세뇌 때문이겠지만…….

“이제 아무한테도 세뇌를 걸 수 없 다니까요? 대신관을 걱정하는 거야말로 전하답지 못한 걸요.”

미하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는 앞으로 세뇌의 능력을 절대 사용할수 없을 것이다.

왜냐고?

“정신 지배라는 거 참 대단해.”

하데스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래, 그의 걱정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던 건 내 저주받은 능력 덕이었다.

이번 생에서의 몸으로는 아직 마력 이 불지 않아 최종 개방이 불가한 미하일이었지만, 나는 달랐다.

암속성 능력자임을 인지함과 동시에 정신 지배를 사용할 수 있는 마력 이 충분했으므로, 주변을 정리해야겠 다는 판단이 선 순간 가장 먼저 미하일을 떠올리며 정신 지배를 발동시켰다.

바로 ‘암속성의 능력을 사용하지 말 라. ’는 명령.

그로 인해 최종 혹막이었던 미하일 라이가르트가 하데스와 아벨을 위협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차단되었다 고 봐도 좋았다.

나는 공표식이 시작되기 전, 그 사실을 하데스에게 미리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하일에게 세뇌당한 기억이 남아있는 하데스는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정말로 그답지 않았다. 정신계 능력 이 이렇게 사람을 겁줄 수 있다니…….

“그래도 그 재수 없는 얼굴은 여전 할 텐데 말이야.”

여전히 분한 마음이 남아있는지 하데스가 입술을 물며 중얼거 렸다.

“나한테는 능력 사용하지마.”

미하일을 떠올리고 있는데 문득 하데스가 말했다.

“네?”

“전에 그대 자신에게 걸었던 정신 지배, 확실히 무를 수 없는 거 맞 지?”

나는 놀랐다가 곧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어깨를 한 번 툭 건드렸다.

“못 물러요. 그리고 무를 수 있다 해도 약속했잖아요. 전하께 능력 안 쓰기로. 이제 뭐 바라는 것도 없어요, 바보야.”

이전에는 하데스가 나를 죽여줬으 면 했지만 다 부질없는 바람이 되었다.

나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고 한들 내가 본 미래는 바뀌지 않을 확률이 컸 으니까.

그저 그 미래에 내 존재만 없을 뿐, 가이오니야 때문에 나를 죽이고야 만 하데스는 분노한 나머지 끝끝내 그를 찾아갈 터였다.

내가 죽는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하데스를 확실히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아무튼 나는 생각도 없는데 지레 겁먹은 하데스가 황당해 바라보고 있자 니, 한참 고민하고 있던 그가 말했다.

“쓸 수도 있지. 그대가 바라는 거.”

“바라는 거 뭐 없다니까?”

“이를테면…… 전하가 저를 좋아하게 해주세요, 이런 거 있잖아. 안달 난 그대가 뭐, 그런 명령을 내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와, 세상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발언에 나는 입 이 떡 벌어졌다. 약도 없는 하데스의 자의식 과잉이 실로 하늘을 뚫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세요? 와, 진짜 어떤 의미로는 본받고 싶은…….”

“그런 명령을 걸면, 그대가 내 진심을 확인할 수가 없잖아.”

“……네?”

이어지는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없어서 나는 잠시 멍한 채로 생각에 잠겼다.

가만 있자. 나 언어영역 1등급이었 는데 왜 이렇게 바로 해석이 안 될 까…….

그러니까 저 말뜻은, 정신 지배를 걸어 나를 좋아하게 만들면, 정신 지 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진심으로’ 좋 아하는 마음이더라도 왜곡당할 수 있 다는…… 뭐 그런 뜻인가?

그럼 이건 완전 로판 남주 멘트 아니냐?

하데스 당신은 로판 남주가 아니라로판 남주 아버지 아니었어?

차가운 북부의 공작 전하가 내게 왜?!

머릿속으로 잔뜩 주접부리던 내 얼굴이 당황으로 달아올랐다. 분명 누 가 봐도 티 날 정도로 붉어졌을 게 틀림없었다.

얼빠진 표정이 옷겼던 모양인지, 하데스는 몸을 기울인 채 내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킬킬거렸다.

그가 뭔가 말을 더 덧붙이려 할 때였다.

“황제 폐하의 방문입니다.”

응접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문이 열리고 가벼운 차림으로 환복한 황제 발록 프랑세즈 크레센타가 웃는 얼굴로 둥장했다.

그는 예상외로 혼자가 아니었다. 뒤를 따르는 다른 얼굴이 하나 있었는 데, 분명 첫 만남 때 황실 행렬에서 본 적 있었다.

‘아! 저 사람이…….’

나는 곧바로 황제의 뒤를 따른 그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머리 좋은 책사라는, 파멜라 휘스트리너 공작.

제국의 남자 귀족들이 입을 만한 복 장과 짧은 머리, 큰 키와 관리 잘한 건강한 몸이 여자라고는 상상도 못하 게 만들었다. 알아보지 못할 만도 할 거라는 하데스의 말이 이제야 이해되 었다.

“역시 꼬랑지 붙이고 왔군. 하긴, 혼자 오면 머리가 없는 건데 뇌를 빼 고 오진 않았겠지. 쯧.”

일어서는 나를 따라 일어서며 조용 히 속삭이는 하데스의 말이 전부 들 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허둥거 렸다.

와, 겁 없는 거야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황제에게는 당연히도 들리지 않을 거리였지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등을 타고 식은땀이 삐질삐질 흐 르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반 갑소! 아이샤 에스클리프 영애!”

한달음에 다가온 황제는 아주 친근 하게 나를 대했다.

격식을 차려 대우해주는 말투까지는 그렇다 쳐도, 내 이름까지 알 거라 고는 상상도 못 했던지라 나는 그의 환대에 잠시 멍해졌다.

“용신 가이오니아의 축복 아래 영애의 일신이 무한히 평화롭기를 바라 오.”

우리 아버지인 에스클리프 남작만 큼이나 푸근해 보이는 인상으로 황제는 웃으며 내게 다시 인사했다.

그러나 본성 앞 첫 만남 때의 가벼 운 인사와 달리, 이번의 인사는 명백 히 마음 쓰이는 부분이 있었기에 나는 곧바로 화답할 수 없었다.

뭐냐고?

바로 ‘용신 가이오니아의 축복 아래—’로 시작하는 제국식 인사말 때문이었다.

보통의 제국인이라면 저 인사말에 ‘용신 가이오니아의 종, 누구누 구—’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일반 적.

그러나 무신론자인 하데스가 수장 인 루버몬트에 적을 두고 있는 이들 은, 제국에서 통용되는 저런 기본적 인 인사말과 소개말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하데스 루버몬트가 무신론자라는 의혹이 황실 사람들의심이기를 거스르고 있었다.

하여 일부러 공표식에 신을 기리는 과정을 집어넣어달라고 요구해올 정 도였으니…….

이번 공표식에서 하데스가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모두가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 민감한 이 시국에 곧 루버몬트의 안주인 배지를 달 내게 이런 인사 말을 종용한다?

‘황제 정말 머리 없는 멍청이 맞 아?’

나는 하데스의 의심을 의심했다가, 곧 황제의 옆에서 가만히 고개 숙이 고 있는 파멜라 휘스트리너 공작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나를 떠보라는 그녀의 조언 이 아니었을지 예상되어서였다.

하지만…….

‘난 아직 루버몬트 사람은 아니라 서.’

아직은 아이샤 루버몬트가 아니라 아이샤 에스클리프니까, 뭐.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맘으로 합리화하며 나는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용신 가이오니아의 종, 아이샤 에스클리프가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높으신 분의 존안을 처음으로 상알하 게 되어 마음이 떨리고 무겁습니다. 부디 예법에 무지하여 실수가 있더라 도 너그러이 용서해주셔요.”

내 대답에, 황제의 표정이 눈에 띄 게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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