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꿀꺽.
하데스의 등짝을 내려다보고 있으 려니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조각이야, 뭐야…….’
평생을 단련해온 하데스의 육체는 실로 완벽했다.
촘촘하게 짜인 근육은 하데스가 호흡할 때마다 꼭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꿈틀거 렸다.
벌어진 어깨선을 따라 단단히 부푼 이두근하며, 등 위로는 탄탄해 보이는 숭모근까지…….
“커헉.”
불순한 시선을 애써 거두며 나는 또 세뇌했다.
‘이건 의료행위다.’
“전하, 깊이 잠들었어요? 으음, 기 운만 좀 회복시켜드리고 갈게요.”
사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으나 다시 쭈뻇쭈뻇 돌린시야로는 나도 모르게 하데스의 근사 한 알몸을 담고 있었다.
20대 초 유럽 여행 갔을 때 피렌체 박물관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봤을 때도 이 정도의 감동은 아니 었는데…….
“홈, 잠이 정말 곤하시네.”
괜히 민망한 느낌에 하데스가 좀 깼 으면 하는 마음 반, 그대로 잠들어있 어 줬으면 하는 마음 반.
나는 조심스레 하데스의 목에서 어 깨로 이어지는 곳에 손을 올렸다.
조심스레 힘을 실어 안마하듯 그의 기력을 회복시켜주려던 나는 멈칫했다.
손이 닿자마자 슬쩍 열린 하데스의 눈과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파르르 떨리며 열린 눈꺼풀. 어두운 방 안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
약 3초간 우리는 가만히 눈을 맞춘 채 침묵했다.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나였다.
민망함에 얼른 손을 떼어내고 웃었다.
“허허……. 일어나셨어요? 진짜 피곤했나 봐. 옷도 안 갈아입고 자고…….”
“…….”
뺀히 나를 바라보던 하데스는, 말없 이 몸을 일으켜 돌아앉았다.
‘헉.’
예고 없이 하데스의 넓은 가슴팍을 마주하고야 만 나는 괜히 눈을 돌리 며 딴청 피웠다.
등짝도 민망했는데 가슴은 너무하 잖아.
“눈알이 어디까지 돌아가는 거야? 빠지겠네.”
“제, 제가 뭐요.”
“애쓸 필요 없어. 구경해도 돼.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라고.”
“허, 참. 누굴 변태로 보시나!”
빽 소리 지르며 당당히 눈을 돌렸으 나 이내 민망함에 절로 고개가 비를 렸다.
하데스가 작게 웃는 게 느껴졌다.
“에이, 장난치지 마시라고요!”
나는 후다닥 침대 위로 올라가 앉아 있던 하데스의 등 뒤로 자리 잡았다. 가슴보단 등판이 덜 민망하지.
“안마해 드릴게요. 저 잘해요.”
“뭐?”
당황한 하데스가 몸을 돌리기 전에 나는 얼른 그의 양쪽 어깨를 붙잡았다.
목 가까이를 꽉 주무르자 돌처럼 단 단한 근육이 손바닥에 착 감겨왔다.
“어휴. 돌이야, 뭐야.”
“이렇게까지 해야 해?”
긴장으로 몸이 딱딱하게 굳은 하데스가 나를 살짝 돌아보며 물었다.
그가 혹독한 훈련에 몰입한 이후 매일 저녁마다 바닥난 체력바를 채워줬 던 나다. 물론 백속성 회복의 이능으 로 말이다.
다시 말해 이렇게 조물딱거릴 필요 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손맛은 또 능력이랑은 다 르다고요.”
힘주어 하데스의 어깨를 조물거리 며 나는 천천히 마력을 운용했다.
조금씩 흘러들어가는 회복의 이능 은 최상급 자양강장제보다 더 효력이 좋았다.
나를 말리려던 하데스가 흐물흐물늘어지는 모습이 만족스러 웠다.
“어때요? 시원하죠?”
“아니, 하…….”
거짓말은 못 하겠지. 피로를 쫙 풀 어주는 마사지에 회복의 이능까지!
신이 난 나는 열과 성을 다해 안마를 계속했다.
잠자코 봉사 받고 있던 하데스의 손 이 어깨를 주무르는 내 손을 갑자기 잡아오기 전까지.
“음?”
부드럽게 내 손을 쥔 하데스의 손가 락이 손바닥 안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가끔 손을 잡을 일이 생길 때면 으 레 나오곤 하는 그의 버릇 같은 거였 는데, 사실 좀 야릇한 느낌이라, 나는 매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묘한 접촉도 접촉이지만 침대 위, 어두운 방, 늦은 시간까지 왠지 흘러 갈 전개가 뻔해 보이는 느낌에 입이 바싹 말랐다.
“그대는 정말이지…….”
바짝 굳은 내 손을 가만히 만지작거 리던 하데스가 뒤돌았다.
눈만 껌뻑이고 있는 나를 보곤 의미 심장하게 웃던 그가 불쑥 상체를 들 이밀었다.
흠칫 놀라 몸을 당겼지만 후퇴할 자리는 없었다. 침대 헤드까지 밀린 내 위로 하데스가 더 깊게 몸을 숙여왔다.
“음, 어…….”
멍청하게 입만 벙굿거리는 나를 빤 히 바라보던 하데스가 꼭 키스라도 할 것처럼 가까이 얼굴을 붙였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하나 금방 입 맞출 줄 알았던 하데스는 아무런반응이 없었다.
한쪽 눈을 살짝 뜨자 코앞에서 재미 있다는 듯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아, 뭐야. 키스 타이밍 아니었어?
“뭐예요. 사람 놀리…….”
말은 끝까지 잇지 못했다. 목덜미 위로 깊숙이 파고든 하데스의 뜨거운 입술 때문이었다.
살짝 젖은 입술이 목 언저리에 입 맞췄다. 생경한 감각이었다.
이내 얼음처럼 굳은 내 귓가로 입술을 옮겨온 하데스가 귓불께를 스치며 속삭였다.
“……겁이 없어. 응?”
겁이…… 없다고?
무슨 애 취급이람.
나는 바짝 붙은 하데스의 맨 어깨 위로 과감히 손을 올리고 말했다.
“겁이 없다는 건, 이런 분위기로 흘 러갈 걸 전혀 예상 못 하고 행동했을 때 들을 소리 아니예요?”
“……뭐?”
긴장은 좀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수준의 순진함은 이미 졸업했는데…….
사뭇 단호하게 뜬 내 눈을 멍하니 응시하던 하데스의 입술이 설핏 기울 었다.
“내가…… 이해한 게 맞아?”
“……아마도요?”
우리의 시선은 잠시 허공에서 맞물 린 채로 머물렀다. 지독할 정도로 끈 적끈적한 눈빛이었다.
숨 막히는 침묵을 그대로 머금은 채 하데스의 얼굴이 다시 한번 가까워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야릇한 불시착 없이 입술과 입술이 맞물렸다.
처음 입 맞추는 게 아닌데도 긴장은 처음과 다름없었다.
아니, 처음과 달리 두 번째 키스는 아무래도 키스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모양이라 더…….
“음…….”
목에서 난 작은 신음에 입술을 붙인 하데스가 멈 칫했다.
그러나 잠시였다. 아주 천천히 내입술을 가르고 들어온 하데스의 혀가 부드럽게 내 혀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깨지기 쉬운 유리를 다루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신중하게 움직이던 그는 금세 저돌적인 짐승같이 돌변했다.
몸이 달았는지 바짝 거리를 붙인 하데스는 내가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갈급하게 움직였다.
젖은 입술이 서로를 삼키며 야릇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질척거리는 소리 가 귀에 감겨오자 몸이 절로 달아올 랐다.
숨이 차고 호흡이 가빠질 때면 잠시 떨어졌다가, 감았던 눈이 마주치기무섭게 우리는 다시 서로에게 달려들 었다.
이상하고, 야릇한. 조금은 황홀한 감각은 온몸에 힘이 빠지게 만들었다.
나는 꼭 젖 찾는 아이처럼 하데스의 입술을 문 채로 그의 목에 매달렸다.
조금의 틈도 허용할 수 없다는 듯서로의 가슴과 가슴이 바짝 맞닿았다.
“하아…….”
잠시 입술을 떼고 숨을 고른 하데스 가 다시 입 맞췄다. 헤드를 짚고 있던큰 손이 동시에 불쑥 내가슴팍 위를 덮었다.
“흡.”
과감한 접촉에 더 긴장할 데 없을 것 같았던 몸이 바짝 얼어붙었다.
쉴 새 없이 입 맞추며 내 혼을 쏙 뼈 놓던 하데스의 입술이 천천히 턱을 타고 내려가 목덜미 위에 닿았다.
“아…….”
허리와 침대 헤드 사이로 팔을 넣어 내 몸을 단단히 받친 하데스는 계속 해서 움직였다.
목덜미의 여린 살이 깨물리는 생경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허리가 비를 렸다. 야릇한 느낌에 익숙해질 새도 없이 젖은 혀가 깨물었던 목 위를 느 릿하게 핥았다.
“아, 전하. 옹…….”
가볍게 가슴을 덮고 있던 하데스의 오른손에 일순 힘이 들어갔다. 옷 위를 문지르는 달뜬 손길에 애가 탔다.
목덜미를 유영하던 입술이 다시금 올라와 턱 끝에 입 맞췄다. 찰나에 마 주친 가까운 눈빛에서 우리는 서로를 갈구하는 원초적인 본능을 느꼈다.
“……아이샤.”
“으응, 네.”
욕망에 절어 탁해진 목소리로 하데스가 나를 불렀다.
대답할 정신도 없어 겨우 대꾸하는 나를 더 바짝 끌어안으며 그가 귓가에 속삭였다.
“듣고 싶은, 말이 있어.”
다시 귓불이 살짝 깨물렸다. 은밀한 감각에 파르르 몸이 떨렸다.
“뭔, 데요?”
“내가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 도 해.”
“…….”
내 몸을 받치고 있던 하데스의 왼팔 이 허리를 단단히 감아 당겼다. 헤드에 기댔던 둥이 끌려 내려왔다.
완전히 누운 내 위로 팔을 짚고 엎 드린 하데스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여 이마 위로 입을 맞췄다.
“뭔데요? 먼저, 말해 주세요.”
“아니, 마음은 그러고 싶은데 머리는 안된다고 해.”
“…….”
“그럼, 나는 약해질 거야. 그대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설핏 웃은 하데스의 얼굴 위로 씁쓸 함이 비쳤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태평 하게 그대와 행복하고 싶을 테니까.”
“…….”
“그러니까, 아이샤.”
하데스의 붉은 눈이 일순 진지하게 반짝였다.
“기다려줄 수 있나? 내가, 비로소 그대를 위해 무언가를 해냈을 때…….”
“…….”
“그때, 말할게. 아주 오랫동안, 못 했던 말이야.”
초조함, 걱정. 하데스, 그와는 어울 리지 않는 많은 감정들이 녹은 얼굴 위로 나는 손을 뻗었다.
뺨 위를 어루만지는 내 손을 하데스 가 겹쳐 잡았다.
눈물이 날 만큼, 다정한 손길이었다.
“얼마든지요. 그리고 저도 그때 용 기 내서 말할게요. 아마도 우리가 하 려는 말은 똑같을 거예요.”
그가 작게 웃고 다시 내게 입 맞췄다. 미처 사그라지지 않은 열기가 다시 몸을 달뜨게 했다.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또 버거울 만 큼 난폭한 손길이 마냥 그다웠다.
우리는 그날 밤, 우리를 슬프고 힘 들게 하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