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도 하데스는 마지막 남은 힘을 그러모아 눈앞에 보이는 아이샤의 작은 몸을 꽉 끌어안았다.
「이제 아프지 않지.」
언젠가 꼭, 들은 적 있던 목소리였다.
수많은 전생 속에서 또, 아들인 아벨의 영혼이 환생한 육체를 살해했던 그녀가…….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으로도, 다행이라는 듯 제 뺨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던, 그 목소리였다.
“아이, 샤…….”
이제 아프지 않으냐, 그렇게 물으며 웃는 그녀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사라 질 듯해 하데스는 애가 탔다.
다행스럽 게도, 꽉 안은 온기는 사라 지지 않고 계속 품 안에 머물러 있었다.
힘겹게 늘어진 하데스의 얼굴이 아이샤의 어깨에 닿았다.
뭐라 말을 할 여력도 남지 않았기에, 하데스는 그저 가만히 아이샤를 끌어안은 채로 점차 잦아드는 숨을 골랐다.
고통은 씻은 듯 나았으나 텅 비어버 린 것처럼 공허한 머릿속은 좀처럼 하데스를 눈 뜨고 버틸 수 없게 했다.
“다행이에요.”
물기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감겨왔다.
“정말, 다행이에요. 내가 당신을, 구할수 있어서…….”
꿈처럼 흩어지는 목소리에 간신히 귀를 기울이면서, 하데스는 눈이 감 기기 전 필사적으로 입을 열어 부탁했다.
“가지, 마…….”
이번에는.
“사라지지, 마…….”
***
정신을 잃은 하데스는 하루 꼬박,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방에서 뜬눈으로 곁을 지 켰다.
식사를 챙겨주러 왔던 앤이 걱정스 러운 얼굴로 투정했다.
“아가씨.”
“…….”
“이러다 아가씨도 쓰러져요. 전하는 아무 문제없다면서요. 가서 눈이 라도 좀 불이세요. 정 걱정되시면 여 긴 제가 지킬게요. 네?”
“아니야. 너야말로 잠도 못 자고 계 속 고생하잖아. 가서 눈 좀 붙여.”
“아가씨…….”
죽은 듯 잠든 하데스 곁을 떠나지 못하는 내 옆에서, 앤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하데스는 괜찮았다. 그건 ‘폭주’하고 난 이후 아벨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나라 확신할 수 있었다.
데보라가 폭주한 상태를 낫게 하더라도 아벨은 항상 하루 내 꼬박 정신을 잃곤 했다.
폭주한 순간에는 한 번에 엄청난 마력이 방출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단지, 육체의 피로가 한계치에 다다 라 기절한 듯 잠들어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하데스가 걱정스러 워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생각도 못했는데…….’
적어도 어린 시절 아벨이 폭주할 일 따위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를 놀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원작대로 아벨이 폭주하고 말았다.
그 뒤로는 알고 있던 대로, 아니…….
‘더 끔찍했다.’
온몸이 불타오르는 채로 고통에 몸 부림치던 하데스를 떠올린 순간 가슴 이 찌릿하고 아팠다.
폭주하는 아벨의 머릿속에 심어졌 던 정신 붕괴. 흡수한 그 고통에 그저 괴로워하며 죽어갔던 원작과는 달리, 하데스는 꼭 아벨처럼 제 마력을 제 어하지 못하고 날뛰기까지 했다.
왜?
이유는 너무나도, 확실했다.
‘처음부터 나는 당신을 무사히 구할 수 없었나 봐.’
아벨의 폭주를 막는다면 하데스가 죽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나 아니었다.
아마 아벨이 폭주하는 일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하데스의 죽음은 막을 수 없을 테다.
원작에서, 아니, 프로크레아토르가 보았던 이 세계의 ‘미래’에서 하데스 가 죽었던 건, 그 또한, 죽을 운명이 기 때문이니까.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요절했다는 수많은 제국인들의 이야기는 그저 우연이 아니다.
아마도 가이오니아는 처음 이 세계를 창조했을 때부터, 아니, 적어도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이 생겨났을 때 부터, 그들의 운명을 재단해놓은 것이 분명했다.
‘정말.’
창조신인 자신을 믿지 않는, 자식들의 최후를.
‘절망적이다.’
나는 거의 처음으로 가이오니아를 향한 증오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이그니스가 그의 발치에 침을 뱉었을 때에도, 프로크레아토르가 그를 죽였을 때에도, 그에게 더 미움 받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의식적으로 그를 원망하지 않으려 했던 나였다.
우리는 그로부터 만들어졌고, 그의 권능에 대적할 수 없는 한낱 피조물임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 수많은 불쌍한 영혼들이, 결국 그의 장난감처럼 재단된 운명 위에서 괴로워하는 걸 지켜보며 나는 비로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선이 아니야.」
증오에 휩싸인 눈으로 내게 말했던 프로크레아토르, 그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전하.”
죽은 듯 숨만 쉬는 하데스의 얼굴을 보고 있기 괴로웠다.
당신의 잘못은 무엇이 었을까?
신을 믿지 않은 것?
신에게 대적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나로 인해 가이오니아를 죽이겠다 고까지 마음먹은 하데스를 위해, 정 작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나?
‘살아야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데스가 내게 가장 바라는 것.
그가 그토록 염원하는 것.
「가지, 마…….」
살아야겠다.
나는.
「사라지지, 마…….」
나를 위해서도, 당신을 위해서도 어떻게든.
더 이상 무기력하게 도망치지 않고, 살아야겠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줘요.”
차디찬 그의 손을 붙들고 나는 애원했다.
제발.
내 간절한 소원이 하데스의 꿈에까 지 닿기를 바라면서.
***
깊은 밤,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하데스가 뒤척이기 시작했다.
“전하?”
정신을 차린 건 아니었다. 고통스러 운 듯 잔뜩 미간을 찌푸린 하데스의 몸이 뒤틀렸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이따금씩 바싹 마른 입술 사이로 신음과 알 아듣지 못할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는 악몽을 꾸고 있는 듯했다.
“전하…….”
아무것도 해줄 게 없었다. 나는 그 저 땀으로 젖은 하데스의 손을 꽉 붙 잡고 기도했다.
“가지, 가지 마, 마요…….”
꿈결에 하데스는 누군가에게 간절 히 애원했다. 그 애절함에 나까지 가 슴이 미어질 정도로.
“전하…….”
“가지, 가지 마. 제발……. 내가, 내가 어떻게든…….”
전에 없이 작고 어린, 그와는 어울 리지 않는 말투와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문득 고통스러웠다.
뇌리에 전기가 통하는 듯 찌릿하는 감각.
전생의 기억들을 되돌려 받을 때마 다 겪곤 하는 두통이었다.
「혹시, 아테우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더라 도 말이야. 탈리오를 지켜줄 수 있을 까?」
“아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불잡고, 나는 밀려들어오는 기억들을 천천히 곱씹었다.
「약속할게요 대신.」
「어디 가지 마세요.」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던 마을.
그곳에 살던, 조금은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다정했던 소년과.
그 소년을 형이라 부르며 따랐던 나의 불쌍한 아들.
「어머니, 저는 행복했어요「마지막까지 외롭지는 않았으니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형이 있고 어머니가 있어서 제 삶은 외롭지 않았어요.」
그 삶에서의 죽음을 앞둔 순간.
뿌옇게 밝아오던 새벽빛 아래, 희멀건 얼굴로 내 아들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제가 죽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 것 맞죠?」
「죽고 싶지 않잖아. 떠나렴. 이곳에서 멀리멀리…….」
「아뇨.」
자식을 죽여야 함이 가슴 아파 또 비겁하게 수많은 희생을 외면하려던 내게, 그 아이는 단호히 말했다.
「알 것 같아요. 제가 떠난다고 해 서 마을에 내린 저주가 풀리는 건 아니잖아요.」
「…….」
「결국 형도 죽고 말겠죠? 시냐처럼…….」
죽음이라는 개념도 익숙지 않을 그아이는 덤덤하게 웃으며 자신의 죽음을 말했다.
아이가 눈물을 보일 때라곤, 억울하게 죽어버린, 그리고 죽게 될 이들을 떠올릴 때뿐이었다.
「시냐가 예, 혹……. 예쁘게, 자, 자라는, 거, 거를, 형이랑 같이, 보, 보고 싶었는데…….」
「미안, 미안해……. 미안.」
모든 것은 나의 죄였는데도,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건 내 아이였다.
그 사실이 더 괴로웠다. 해줄 수 있는 말이 ‘미안해’가 전부라는 것도.
「형이랑, 어머니랑, 오래오래 가족처럼, 행복하고 싶었는데……」
「…….」
「다음에 태어나면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어머니, 저는 이제…….」
「…….」
「……준비가 됐어요.」
“하, 흐아…….”
봇물 터지듯 나는 오열했다.
모든 전생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괴로웠지만, 그 삶은 유독 더 내가슴을 찢듯이 파고들어 새겨졌다.
「그 아이에게는 죄가 없단다. 너는, 믿어줄 거지?」
「……네.」
「다…… 나 때문이야.」
「당신 때문도 아니예요.」
「아니, 나 때문이야.」
그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가?
끝까지 나 같은 살인자를 위로하려 던 소년을, 나는 내심 원망했는지도 모른다.
또 죽어버린 내 아이와는 달리 생기 넘치는 뺨이, 내 아이의 죽음으로 이제 무사히 자랄 수 있는 미래가.
그게, 소년을 원망할 이유가 되지 못함을 알면서도.
「이제 아프지 않지.」
소년이 아프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 여겼던 이유는, 그저 그것이 내 아이의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아, 나라는 인간은 끝까지 그토록, 이기적이고 옹졸했건만.
「가지 마요.」
마지막까지 간절히 애원하며 오열하던 어린 소년에게, 나는 얼마나 매몰차게 굴었던가.
떠나지 말아달라는 부탁에도 어김없이 뒤돌아 끝내는 먼지 같은 내 목 숨을 스스로 끊어내면서.
나는, 그 소년이.
나를 아주 오랫동안 영혼에 새길 거 라고는.
“가지 마, 제발. 죽지, 마…….”
나를 위해 기꺼이 신을 믿지 않는 자가 되기로 결심할 거라고는.
“전하.”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아이샤.”
어느새 깨어난 하데스의 붉은 눈이 나를 향해 있었다.
식은땀이 흥건한 창백한 얼굴 위로 언뜻 안도가 어 렸다.
허겁지겁 일어난 그가 내 몸을 와락 끌어안고,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행, 이야…….”
“…….”
“그대가 또, 사라져버리는 줄 알았 어.”
“…….”
“내가 또, 그대를 구하지 못한 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