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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27화 (127/221)

127화.

“아벨!”

“아악!”

아벨의 오른손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하데스가 기억하기로, 아벨의 오른손은 그의 마력의 원천인 핵석이 존재하던 곳이었다.

어렴풋이 힘을 조절하기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력을 체계적으로 운용할 만큼 익 숙해지지는 않았으나, 지닌 힘이 과 해 하데스 또한 자주 상처를 입곤 했다.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지 못해 결국 제 피부를 살라먹는 고통은 다시 기 억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다.

쨍!

거대한 창이 깨졌다. 미처 녹지 못한 얼음과 유리조각이 날카롭게 그들의 위로 쏟아졌다.

하데스가 재빨리 아벨을 감싸 안고 소리쳤다.

“그만, 그만해!”

“아, 아! 아버, 아, 흑! 아버지, 저…….”

핏발 선 눈으로 아벨이 괴로워했다.

그는 단순히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타오르는 손의 고 통은 느껴지지도 않는 듯, 아벨은 인 상을 찌푸리며 자꾸 제 머리를 쥐어 뜯었다.

“아, 흑!”

“왜……!”

“아, 아파요! 아……. 머, 혹! 머리 가, 머, 머리가…….”

아벨의 타는 손을 꽉 붙잡은 하데스의 눈이 당황으로 흔들렸다.

제 힘이 아니었기에 화마에 피부가 녹아 스러지는 고통은 고스란히 하데스의 손으로 옮겨왔다.

그런데도 하데스 또한, 고통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벨의 모습이 걱정스러웠기에.

“왜, 대체…….”

“아버, 헉!”

힘을 감당할 만큼 자라지 않은 아이의 작은 몸이 발작했다. 붉은 눈동자 가 뒤집히고 고통에 벌어진 입에서침이 흘렀다.

무엇이 이 아이를 삼켜가고 있는지, 하데스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내부에서 싹튼 고통이 마력을 폭주하게끔, 정신을 흐트러지게 끔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아, 아파……. 아파요.”

“아벨.”

당장이라도 죽을 듯 고통에 헐떡거 리던 아이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하데스는 도무지, 고통스러워하는 그 얼굴을 두고 볼 자신이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아벨, 가만히.”

“아혹!”

작은 몸을 끌어안은 하데스가 아이 와 이마를 맞댔다.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흡수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흡수한 것은, 뒤죽박죽으로 엉켜있 던 마력의 결정체였다. 어느 한 가지 힘으로 결정지어지지 않는 방대한 마력은 어지럽게 뒤엉켜 서로 싸우듯 충돌했다.

그것은 꼭 자아를 가지고 있는 듯강하게 폭주하며 뇌를 진득하게 옭아 매었다. 흡수한 결정체는 순식간에 하데스의 머 릿속을 조여 왔다.

“헉!”

“아…….”

한순간 몸을 잠식했던 고통에서 자 유로워진 아벨이 주춤거렸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하데스 가 쓰라린 발바닥의 상처를 지워줬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가,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한다는 건.

“아버…….”

“하윽!”

무릎 꿇은 하데스의 몸이 기울었다. 바닥에 이마를 붙인 채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아벨이 벌벌 떨었다.

“아버, 지…….”

“아베, 커혹! 나, 나가라. 가서, 컥……!”

풀린 눈으로 아벨을 돌아보며 하데스가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화상을 입은 아벨의 손에 닿아있었다.

아벨이 두통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에 놀라서 알 수 없는 머릿속 내상을 먼저 흡수했다. 그 바람에 미처 외상까지 가져가주지 못한 게 걱정되었다.

“아이, 아이샤에게 가, 서…….”

“…….”

“아프지 않, 게 해, 달라고…… 해…….”

지금 그녀가 필요한 건 아벨이 아니라 하데스 자신일 터였다. 그런데도 그의 시선은 오롯이 아벨의 손에 꽂 혀있었다.

아벨은 우는 눈으로 뒷걸음질 쳤다.

타버린 손의 고통은 느껴지지도 않 았지만 아이샤는 필요했다. 자신이 아닌 하데스에게.

아벨이 울컥 터지려는 눈물을 삼키 고 재빨리 방을 나섰다.

***

「아버지, 아버지가……!」

상황을 설명할 겨를도 없었다. 흥분 한 입으로는 말을 만들어낼 수가 없었지만, 아이샤는 더 묻지도 않고 급 히 방을 나섰다.

눈물을 훔치며 아이샤를 뒤따라 하데스의 집무실로 돌아왔을 때 본 광 경은, 실로 끔찍했다.

온통 화염으로 뒤덮인 그곳은 형체 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미 문짝은 불에 삭아 없어져있었고 좀처럼 사그 라지지 않는 불들은 용암처럼 눅진하 게 몸집을 넓혀가며 외벽까지 녹여갔다.

성 안에 있던 기사들이 주변을 정리하고 남아있던 고용인들을 대피시켰다. 와중에도 정신머리 없는 이들은 구경이라도 난 듯 침의 차림으로 그 곳을 기웃거렸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입구에 서 사람들을 막아서는 아자르.

아벨이 멍하니 그 광경을 보는 사이 아이샤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성큼성 큼 방 앞으로 다가갔다. 주저 없이 화 마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아이샤에 아벨이 놀라 소리쳤다.

“어머니!”

아벨의 고함에 아자르가 고개를 휙돌렸다.

그가 휘둥그레진 눈을 하고 아이샤의 팔을 휘어잡았다.

“뭐 하십니까?!”

“안에, 안에 있어요?”

“뭐가 말입니까?”

“전하요.”

“몰라요! 위험하니까 물러나십쇼!”

“비켜요.”

“이런 미친……!”

말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 속으로 뛰어들려는 아이샤에 아자르가 황당한 눈을 했다.

아무리 생각 없는 사람이라도 저 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사실은 알 터였다. 아자르는 도무지 아이샤의 행 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벨은 벌벌 떨며 휘몰아치는 불지 옥을 바라보았다.

저 안에, 하데스가 있다.

아이샤를 부르러 간 사이 그의 집무실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유는 알 것도 같았다.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팠을 때 아벨 은 도무지 자신의 힘을 제어할 수 없었다. 말리는 하데스의 손을 태우고 제 손까지 삼켜 버렸던 불을 기억하고 있다.

왜 갑자기 자신이 그렇게 되어 버렸 는지 알 수 없었지만, 힘을 제어하지 못하게 하는 그 고통을 하데스가 고 스란히 가져갔음은 확실했다.

그 고통을 삼킨 하데스도, 만약 조금 전의 자신과 똑같은 상태라 면…….

아니 분명, 그럴 터였다.

미처 그가 제어하지 못한 힘이 당장 이 성 전체를 삼킬 것처럼 일렁이고 있지 않은가.

“정신 차리라고요! 당신이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이럽니까? 저기 들어가 면 죽어요!”

몸부림치는 아이샤를 힘으로 잡아 놓으며 아자르가 핏발 선 눈으로 소리 질렀다.

“이거 놓으라고!”

아이샤도 지지 않고 소리 질렀다.

“나는 상관없어요.”

“……뭐라고? 당신 미쳤어?”

상관이 없다니. 함께 타 죽기라도 하겠다는 소리인가?

미친 것 같았다. 아자르는 황당해하 면서도 아이샤의 팔을 잡은 손에 힘주었다.

아이샤가 떨고 있는 아벨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저 안에 있는 거 맞지.”

맞다. 그렇지만 아벨은 순간,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힘이라곤 고작 하데스를 낫게 해줄 능력이 전부일 아이샤다. 하데스가 제 발로 저곳에서 걸어 나온 직후가 아니라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터다.

한데도 아이샤는 당장 저 불지옥 속으로 들어갈 사람처럼 행동했다.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모른다는 게 다 뭔가. 죽을 것이다.

살아 움직이듯 일렁이는 불은 쉴 새 없이 형체를 키워 타오르고 있었다.

자연적으로 발화하고 있는 하데스의 불은, 심지어 그가 직접 제어하지 도 못하고 있는 힘은, 작고 약한 아이샤의 몸을 남김없이 태워버릴 테다.

회복도 살아있는 상태라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들어가자마자 형체도 없이 녹아 사 라져버릴 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어 째서…….

“네. 으……. 그치, 그치만…….”

겨우 정신을 끌어 모아 대답한 순간, 아이샤는 두말 않고 몸을 움직였다.

막아설 줄 알았던 아자르는 왜인지 아이샤의 팔을 놓았다. 흠칫 놀라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무언가에 정신이 뺏긴 듯 멍해 보였다.

“어, 어머니…….”

놀란 아벨이 아이샤를 붙잡으려고했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녹아내리 고 있는 불덩이 사이로 그녀가 고민 도 없이 발을 들여놓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숨을 삼키고 멈추었다.

아가리를 벌리고 혀를 날름거리며 살아 움직이듯 휘몰아치던 불길은, 놀랍게도 아이샤의 작은 몸에 한 끗 도 닿지 않았다.

***

마력은 본래 그것을 지닌 인간과 완전히 융화된 힘이 아니다.

내재된 것이 아닌, 용신 가이오니야의 권능에 의해 나눠 받는 힘이기에 그러했다.

해서 처음 마력을 발현하고 다스릴 때에는 시행착오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하데스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그건 생각나지도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일이었으므 로, 하데스는 가지런하게 굴지 못하 고 미쳐 날뛰는 제 힘이 퍽 오랜만이 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마력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뇌를 좀먹는 고통 때문이 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금방이 라도 놓칠 듯한 정신 한 줄을 가까스 로 붙잡으며 이 불이 제 몸까지 태우 지 않게끔 버티는 것뿐이었다.

나가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었다. 가는 곳마다 모든 것을 불살라버릴, 한계 없는 제 힘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마력이 고갈될 때까지, 삼켜지지 않 고 버틴다면…….

“큭…….”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터무 니없는 생각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계 없이 솟구치는 마력이 야속했 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점점 심해지는 머릿속의 고통은 그의 정신을 죽여 갔고, 날뛰는 힘이 고 갈되기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듯했다.

주변은 전부 불바다였고, 자신의 몸 도 불에 휩싸여 타오른 지 오래였다.

겨우 붙잡고 있던 한 줄기의 정신이 가느다랗게 늘어 지며 끊기 던 순간.

평생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끔찍한 고 통이 온몸에 엄습했다.

몸이, 타오르는, 고통.

“아아아악!”

그 순간이 었다.

가장 먼저 녹아버릴 거라고 생각했 던 시야에 익숙한 인영이 잡혀 들어왔다.

그것을 무사히 확인하기 위해 오히려 눈을 감아야 했다. 뜨는 순간 눈알 이 형체도 없이 녹아버린다면 곤란했 기에.

“전하.”

작은 목소리가 귓가에 조용히 감겨 든 순간, 누군가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하데스의 몸을 주저 없이 끌어안 았다.

날뛰던 마력이 한순간,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았다.

그의 몸을 태우기 일보 직전이었던 불이 온데간데없이 사그라졌고 주변의 열기도 곱아들어 잠잠해졌다.

여전히 머릿속은 벌레가 뇌를 갉아먹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으나, 아주 잠시였다.

자신을 안은 누군가를 확인하기 위 해 힘겹게 뜬 눈이, 물기 어린 푸른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불쾌하게 날뛰던 고통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

“전하.”

“아이, 샤…….”

온통 붉음이 만개했던 시야에는 이제 그녀뿐이었다.

푸른 눈이 부드럽게 기울었다.

“……이제, 아프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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