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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25화 (125/221)

125화.

“아벨!”

놀란 내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은 표정 변 화 하나 없었다.

“대, 대체 너 어떻게…….”

아벨이 최종 개방도 거뜬한 능력자 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놀 란 이유는, 그 시점이 너무나도 황당할 정도로 앞당겨졌기 때문이었다.

원작에서 아벨은 처음부터 최종 개방까지 가능한 상태가 아니 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벨의 첫 최종 개방 은 데보라와 만난 이후.

‘카타콤베의 분노’라고 불리며 제국에 길이길이 남게 될 사건이 하나 일 어나는데, 그래, 분명 그때가 내가 기 억하는 아벨의 첫 최종 개방이었다.

타국으로 출정한 아벨이 제국을 비 웠을 때의 일이다. 루비몬트 공작의 부재는 ‘성녀’라 불리던 데보라를 호 시탐탐 노리던 외국에게는 기회였다.

무효화까지는 개방하지 못했지만 그 능력이 줄중해 공공연히 성녀라고 불리던 데보라였고, 그저 성녀라면 전쟁의 승리를 상징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신전을 침범한 건 이전에도 몇 번 있던 일이었다.

신전이 침략당하던 그때 아벨은 안 타갑게도 막 전쟁을 끝마치고 제국에 겨우 발을 들였을 때였다. 나는 그때 꼼짝없이 데보라가 납치당하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졸여가며 책장을 넘기던 그때, 신전을 구한 건 다름 아닌 대신관 미하일의 ‘기도’였다.

그는 눈물 흘리며 가이오니아를 찾 았고 놀랍게도 루버몬트 공작의 부재 로 방어력이라곤 0에 수렴하던 신전을 사수했다.

신관과 사제들이 죽고 나면 묻히는 제국의 성스러운 묘소, ‘카타콤베’.

그곳에 오랫동안 묻혀있던 시체들 이 일어나 필사적으로 신전을 지켜냈 던 것이다.

그 일로 미하일은 능력이라곤 쥐뿔 도 없지만 과연 가이오니아가 인정한 신전의 주인이라며 더 맹목적으로 제 국인들에게 추앙받게 되었다.

물론 나도 책을 읽을 때야 역시 우리 대신관님이야, 하며 눈물 줄줄 홀렸지만 아니?

내가 미하일을 혹시나 하고 의심하 기 시작했을 때 떠올렸던 에피소드도 이것이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암속성의 2차 개방 능력 네크로맨서는 지배할 정신 같은 것도 남아있지 않은 시체마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그 이능은 분명 기도 따위가 아니라 미하일의 암속성 능력이었을 터.

아무튼 미하일 덕에 그럭저럭 신전은 지켜졌고 데보라도 무사했으나, 막 제국에 돌아온 아벨은 그 사실을 몰랐다.

미하일이 조종하는 신관들의 시체에 쫓겨 하릴없이 후퇴하는 적군들의 손에 들린, 데보라의 피 묻은 사제복 한 벌.

물론 피는 데보라 것도 아니었고 납 치 위기가 있긴 했어도 미하일이 그녀를 무사히 지켜냈기에 독자인 나는 안심이었으나 아벨은 그걸 알았겠는 가.

‘짜릿했지.’

데보라의 안위에 이상이 생겼다고 오해한 아벨은 말 그대로 미쳐버렸다.

난 미쳐버린 남자가 그렇게 섹시한 줄 그때 처음 알았지 뭐야.

아무튼, 아벨은 데보라가 죽어버렸 다고 오해했고 당연히 적군들은 후퇴하다가 아벨을 만난 그 자리가 무덤 이 되었다.

꽤 수가 많았던 그들은, 전부 눈도 감지 못한 채로 꽁꽁 얼어붙어 한 걸 음도 나아가질 못했다.

불태워 즉사시키는 자연 발화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수속성의 최종 개방 이능.

빙결.

아직 숨이 붙어있는데도 심장이며 내장들이 천천히 얼어붙어가는 고통까지 오랫동안 감내해야 했기에, 어 쩌면 타 죽는 것만큼이나 잔인한 최 후였다.

‘그때 아벨이 몇 살이었는데!’

이미 다 자라서 위험한 남성의 향기 가 풀풀 풍기는 나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 지금 아벨은 고작 열 살이었다. 열한 살 생일에 치러질 공표식도 치르지 않은.

“말도 안 돼.”

이러면 열심히 책을 읽은 보람이 없 지 않은가. 어디서부터 내용이 딴판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건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어, 언제…….”

놀라는 나를 보며 아벨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둣 손을 한 번 까닥였다. 손 가락 끝에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다.

그때 내 표정은 아마, 더 놀랄 수 없을 정도로 놀란 상태였을 것이다.

“화속성의 능력은 위험해서 끝까지보여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아벨은 여전히 천둥번개 치는 창밖을 힐끔거리는 것으로 뒤에 삼킨 말을 대신했다.

화속성의 능력도 개방했으며, 최종 개방 이능인 자연 발화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었다.

어버버거리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 며 아벨이 덧붙였다.

“다 어머니 때문이에요.”

“웬 내 탓? 아니, 이게 아니고, 난 뭐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제가 아직 어리고 힘도 없어서 아무 도움도 안 되니까, 아무 말씀도 해 주지 않으시는 거 알아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다 말해주기 힘들다면 말해주지 않으셔도 돼요. 대신 제가 쓸모없는 어린애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넌 한 번도 쓸모없는 어린애인 적 없었어!”

“어머니 때문이에요. 공표식 때문에 초조하긴 했어도, 능력 개방이 그 렇게 간절하진 않았어요. 전요.”

“…….”

“어머니랑, 아버지랑, 아주아주 오 랫동안 행복하고 싶어요. 아주 간절 하게요.”

“아벨…….”

“제가 지켜드릴 수 있어요. 저도, 저도 할 수 있어요. 어머니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데보라를 향한 절절한 애정의 감정 때문에 비로소 개방했던 그의 능력.

아벨은 지금, 나를 위해 기꺼이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 하고 있었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똑바로바라보는 아벨을 향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놀란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빤히 아벨을 응시하고 있던 그때.

앤이 호들갑 떨며 접시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머, 어머. 갑자기 날씨가 왜 이런대? 방금까지도 해가 반짝였는 데?”

내 앞에 접시를 놓아주는 앤을 물끄 러미 올려다보다가, 나는 새삼 아벨의 능력에 몸을 떨었다.

여전히 들고 있던 얼어붙은 포크는 어느새 녹아, 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

‘아테우스’.

프로크레아토르가 남긴 비본에는, 아이샤가 그렇게도 알고 싶어 하던 것이 담겨있었다.

가이오니아가 존재하고 있는 곳.

정확히는…….

「오르쿠스.」

「이 비본의 마지막 책장은 곧, 내가 가이오니아를 봉인한 세계 오르쿠스의 입구이다.」

「성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 야, 네가 죽음도 불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펼쳐라.」

그곳으로 향하는 통로, 그 자체였다.

하데스는 반쯤 읽어 전생의 기억을 돌려받은 비본을 꾸준히 한 장씩 넘 기고 있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기 전까지, 프로크레아토르는 아주 착실히 아이샤의 저주를 풀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가이오니아의 눈을 피해 만들어놓 은 비본 속에서 그가 못 할 말은 없 었다.

들으면서 드는 의문은 다음 책장을 넘기면 놀랍게도 금세 풀리고는 하였다.

「그 세계는 가이오니아가 만든 세계다. 가이오니아를 살해하는 순간 세계는 소멸한다. 하여 나는 가이오니아의 본체를 살해하는 대신, 그가 만든 죄인들의 무덤 속에 그를 봉인하였다.」

‘가이오니아를 죽이면 파괴되는 세계? 그렇다면 가이오니아를 죽여선 안 되잖은가?’

「가이오니아를 살해하고도 그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 세계를 전부 기억하고 재창조할 시간이 필요하다.」

‘당신이 이 세계를 재창조할 준비를 마쳤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지?’

「준비가 되면 비로소 나는 가이오니아가 만든 영혼들을 나의 뜻대로환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

하데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당신은 모든 준비가 되었군.’

그래, 이미 준비는 끝나 있었다. 아마 아이샤가 프로크레아토르가 만든 새로운 세계에서 환생하고, 다시 이 곳에 돌아온 이 시점에는 분명.

5년 전에 만난 제누스는 아직 아벨을 죽이는 데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영혼은 이 세계에서 떠나 프로크레아토르의 세계에 환생했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것만으로는 저주의 굴레를 풀 수 없었기에, 끝내 돌 아오고야 말았다.

아벨을 죽일 형벌을 마치기 위해, 아이샤 에스클리프의 몸으로.

“지긋지긋하군. 빌어먹을 자식.”

하데스는 얼굴도 모르는 가이오니아를 떠올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실로 지겨우리만치 끔찍한 형벌이 라.

「가이오니아를 살해할 수 있는 것 은두 부류이다.」

「내 권능을 심은 아이 아테우스와, 가이오니아를 믿지 않는 인간뿐.」

「이 ‘믿는다’는 개념은 보통의 것과 다르다. 그 세계의 영혼들은 나면 서부터 가이오니아를 믿도록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하여 그 누구도 쉬이 ‘신을 믿지 않는 자’가 될 수 없다.」

「신을 믿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신 가이오니아의 마력을 공유하는, 그의 축복을 받은 능력자일 것.」

「신 가이오니아를 증오하는 마음 은 하나의 날붙이이다. 그것으로 정신에 균열을 내고, 균열이 아물기 전 다시 균열을 내며 쉴 새 없이 담금질할 것.」

「비로소 신을 향한 믿음이 완벽히 마모된 순간 ‘신을 믿지 않는 자’로 거듭날 것이다.」

「신을 믿지 않는 자의 무기로 가이오니아의심장을 파괴하라.」

거기까지 들었을 때 하데스는 생각 했다.

분명 이 비본은 아테우스—하데스 자신을 위해 만들어둔 것이었으나 프로크레아토르는 하데스가 가이오니야 살해에 성공할 거라고 확신하지는 않았다.

만약 실패한다면, 이 비본은 계속 돌고 돌게 되겠지.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언젠가 또 다른, 가이오니아를 증오하는 존재가 나타나게 된다면 그는 ‘실패한’ 하데스 대신 새로운 시도를 할 터였다.

그가 실패한다면 또 다른 존재가, 그도 실패한다면 또 다른 존재 가…….

그 지난한 시간 속에서 아이샤는 계 속해서 형벌을 감내해야겠지.

“젠장.”

하데스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쥐 었다.

아이샤는 미래를 봤다고 했다. 자신 이 죽고야 마는. 가이오니아를 죽이는 데 ‘실패’하고야 마는.

“대체…….”

실패하고 싶지 않다.

죽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다만 실 패한 이후 다시 기약 없이 괴로워야 할 아이샤와 아벨이 안타까울 뿐이다.

고뇌하는 하데스를 지켜보고 있기 라도 한 건지, 다음 장에서 프로크레아토르는 퍽 단호하게 못 박았다.

「전지함으로 내다본 미래는 거스를 수 없다. 그 끝이 죽음이라면 너의 목숨을 소중히 하라.」

「그리고.」

「가이오니아를 살해하지 못함이 괴롭다면…….」

「나의 형제, 제누스의 목숨을 거두 어 부디 불쌍한 세 명의 영혼을 구원하라.」

멈칫한 하데스가 잠시 침묵하다가 책을 덮었다.

세 명의…… 영혼?

피식 웃은 하데스가 몸을 당겨 앉으 며 책 표지를 한 번 훑고 말했다.

“내가 떠나고 나면, 믿을 만한 놈에게 이건 태워 없애라고 말해놔야겠 어.”

일순 그가 맹수처럼 눈을 빛내며 이를 갈았다.

“개소리를 해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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