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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24화 (124/221)

124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진 않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생각 했다.

나는 전생에서 아벨을 죽이는 수많 은 미래를 봤고, 그를 막고자 여러 번 발버둥 쳤던 기억이 있다.

내다본 미래를 만나지 않으려면 전 제 조건이 필요했다.

아벨을 죽이는 그 미래에 내가 어떤 장소에 있었는지, 무슨 상황일지 대 충 가늠이 되어야 한다는 것.

물리적으로 절대 그 미래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곳에 숨어있다 보면, 다행히 비극은 피할 수 있었다.

물론 또 다른 비극의 미래가 금세 나를 찾아오곤 했지만.

‘그렇지만, 전혀 모르겠다.’

꿈에서 본 미래에는 가이오니아가 있었다. 그가 인간의 육체를 잃고 사 라진 지는 까마득했다.

지금 그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만약 가이오니아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더라면 내가 가장 먼저 그를 찾 아갔겠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도 보고 이마에서 피가 나도록 바닥에 머리를 붙여보면서 그만 용서해달라 고 빌었을 테다.

‘내가 그렇게 애를 써도 못 찾던 가이오니아를, 어떻게 찾은 걸까.’

분명 가이오니아를 찾아낸 건 하데스일 터였다. 대체 어떻게 그가 존재하는 곳을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 만…….

울다 지쳐 잠든 눈이 무겁고 쓰렸다. 머리도 지끈거리며 아팠다.

겨우 뜬 시야에 들어온 낯선 천장을 보니, 아무래도 하데스의 방에서 그 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누운 채 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하데스가 있었다.

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그 특유의 고고한 자세로 앉아서는, 지 그시 눈을 감고 옅은 잠에 든 채였다.

‘당신이…….’

나는 바랐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인간이면 정말 좋을 뻔했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우스웠다.

언제는 하데스가 생각했던 것과 달 리 다정한 사람이라서, 좋다고 생각 했으면서.

나는 천천히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 갔다. 생각보다 깊게 잠들어 있었는 지 작게 기척이 났는데도 하데스는 미동 없었다.

멀쩡한 하데스의 얼굴 위로, 꿈에서 봤던 그의 만신창이가 된 얼굴이 겹 쳐 보였다.

싫다. 진짜.

할 수만 있다면 다 되돌리고 싶었다.

대체 왜, 나는 멍청하게도 하데스를 찾아가 아벨을 부탁했을까?

무조건 아벨을 죽이게 될 운명이라는 걸 몰랐을 리 없다. 아마 바로 이 전 ‘제누스’의 생에서 나는 전지함으 로 내다봤을 것이다. 아이샤 에스클리프의 몸을 차지한 내 영혼이 아벨을 죽일 미래를.

프로크레아토르의 안배였는지, 아 직 아벨을 죽이지 못한 내 영혼은 다 행히 그가 만든 세계로 옮겨왔다. 그러나 끝끝내 운명의 굴레를 피할 수 없기에 결국, 이곳으로 돌아오고 말 았다.

육체의 죽음은 의미가 없는 거였다. 프로크레아토르의 능력으로는 나를 완벽하게 구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래서 하데스를 찾은 걸까?

내 저주받은 운명을 완벽하게 구원해줄 사람.

굳이 하데스에게 아벨을 소중한 존재로만들고, 그로 인해 나를 죽이게 끔 하려고…….

이기적이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이 기적이야.

이 사람의심정 같은 건, 한 톨도 이 해해보려고 하지도 않고…….

“아.”

무심코 하데스의 뺨을 어루만지던 손이 잡혀있었다. 어느새 잠에서 깬 그가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하데스는 나를 바라보면서도 계속 침묵했다. 또렷한 시선과 이따금씩 붙잡은 손바닥 안을 느릿하게 문지르는 손길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잠들 어있는 걸로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전하.”

“…….”

어차피 대답하지 않을 부탁을 하는 대신, 나는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저도, 저도 알 려주세요.”

“…….”

“제발요.”

“……뭘?”

“가이오니아가, 있는 곳. 알아내셨 잖아요.”

“글쎄…….”

“죽여 달라고 떼쓰지 않을게요. 더 이상 전하에게 세뇌 걸 생각도 안 할 게요. 어딘지만 알려주세요.”

사실 안다고 해도, 내가 미래를 바 꿀 확률은 희박하다.

아벨을 죽이는 미래에는 항상 내가 존재해야 했지만, 이번에 본 미래는 그런 미래가 아니니까.

내가 굳이 그곳에 있지 않더라도, 하데스는 어쩌면…….

“나도 몰라.”

“전하, 제발.”

……기어코 가이오니아를 찾아갈것이다. 어쩌면 결국 나를 죽이고야 말았다는 사실에 분노한 나머지 더욱 미쳐 날뛰게 될지도.

그가 찾아낸 ‘방법’은 뭐였을까?

만신창이가 되었던 가이오니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를 그렇게까지 만들 수 있는 이가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아무래도 하데스겠 지.

설마, 당신은 가이오니아를 죽이려 고 결심이라도 한 걸까?

어리석게도.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가지 마세요. 제발…….”

“그래.”

“죽어요. 죽는다고요. 굳이 결과들 알고 있는데 무모하게 굴 필요는 없 잖아요.”

“그래, 그대의 말대로 할게. 안 가. 걱정하지마.”

나는 순순히 대답하는 하데스를 보 며 허망하게 웃었다.

이토록 알아보기 쉬운 거짓말을 듣는 것이 괴로웠다.

***

항상 그랬듯 아벨은 점심때쯤 나를 찾아왔고 하데스는 없었다. 대신 오늘은 앤이 곁을 지켰다.

“아, 아가씨.”

“움……. 식사는, 컥…….”

“물, 물!”

앤이 질색하는 표정으로 물을 따라 건넸다. 양 뺨이 터질 정도로 음식을 밀어 넣던 내가 겨우 물과 함께 그것을삼켜냈다.

“어휴, 죽을 뻔했네. 식사는 혼자 해야 하는데 시중 부탁해서 미안해.”

“그런 건 상관없어요. 어차피 저 없 었으면 식당을 네댓 번도 더 왔다 갔 다 하셨을 것 같은데? 이럴 거면 차라리 식당 가서 드시지?”

“그럴 걸 그랬다. 내일부턴 식당에 가서 먹자, 아벨.”

“어, 어머니…….”

폭식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내 앞에 벌써 쌓인 접시만 다섯 개가 넘어갔다.

“고기 맛있다. 이거 한 그릇 더 먹어야겠어.”

“혹시 우리 아가씨 몸에 굶어 죽은 유령이라도 들어간 건 아니겠죠?”

“다행히도 아냐? 먹고 힘내려고 그 러는 거야.”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얼른 다녀올 테니까. 뭐 다른 건 필요 없으시고요? 공자님 은?”

“나, 난 됐어. 괜찮아.”

혀를 내두르며 앤이 방을 나서자, 여전히 우물거리는 데 열중인 나를 보며 아벨이 다급히 물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아, 미안. 너무 정 떨어지게 먹었 지.”

“그, 그런 게 아니라요…….”

아마 아벨은 어제와 사뭇 다른 내 모습을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반나절도 안 되는 시 간 만에 미쳐버린 건 아니었다. 그냥 열심히 먹고. 힘을 내고 기운을 차려 야 할 이유가 생겼을 뿐.

‘하데스를 죽게 둘 순 없지.’

혼자 열심히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 은 그것이었다.

내가 본 미래는 일어나고야 말 터였다. 하데스는 절대로 순순히 날 죽일 생각이 없고, 당신이 ‘실패’하는 미래를 봤다고 말을 해준들 포기할 성격 이 아니었다.

어차피 아벨을 죽이고야 말 운명을 알면서도 매 생에서 끝까지 발버둥 쳤던 나였기에, 하데스의 마음을 이 해 못할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냥 그가 죽게 둘 것이 냐?

아니, 안 될 말이지.

하데스가 내 손을 잡고 같이 가이오니아를 보러 가자고 할 일은 없다. 가이오니아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 려줄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본 미래에는, 분명 내가 있었다.

아마 그건 하데스가 나를 데리고 가 주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그를 구 하기 위해 악착같이 발버둥 친 결과 내 자의로 거기까지 따라가게 된 것 일 터.

그렇다면 굳이, 물어봐야 입을 열지 도 않을 하데스를 들들 볶을 필요 없 었다.

어차피 일어날 미래를 내다보는 건 이래서 좋았다. 나는 적어도, 손쓸 새 도 없이 이 성에 인형처럼 앉아서 하데스의 부고를 들을 일은 없었다.

내가 뭔가 해볼 수 있는 터닝 포인 트가 아직 남았다는 거다.

하데스가 가이오니아를 찾았을 때. 아직 그가 뭔가 하려고 하지 않았을 때.

‘질질 끌 생각 없겠지. 공표식이 끝 나자마자 하데스는 움직일 거야.’

그때까지는, 잘 먹고, 잘 자고, 열심 히 머리를 굴려보는 거다.

아무것도 안 하는 채로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아벨의 죽음만큼 보고 싶지 않은 게 바로 하데스의 죽음이 니까.

“어제, 어제 어머니가 하셨던 말, 있잖아요.”

한참 입을 열까 말까 머뭇거리고 있 던 아벨이 힘들게 물꼬를 텄다.

그렇지, 아벨.

이상한 점은, 미래에 그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말고도…….

‘미하일, 아자르, 그리고 데보라까 지. 대체 그건 무슨 조합이지?’

그 위험한 사지에 내가 아벨을 끌고 들어갔을 리는 없는데…….

마음에 걸려 고민을 좀 해보았지만 이내 속으로 고개 저었다. 어차피 일어나게 될 미래를 머리 싸매고 뜯어봐야 의미 없었다.

가이오니아를 만나면 된다. 나는 어 떻게든 하데스와 아벨의 목숨을 그에게 구걸해볼 것이었다.

이 끝나지 않는 형벌을 받은 이후 첫 만남.

‘할수있어.’

나는 가이오니아를 아주 잘 알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아주 다정한 존재였다. 내게 그 ‘형벌’이라는 것을 처음 내릴 때도 괴롭다며 눈물 흘리지 않 았던가.

형벌을 끝나게 해주는 것까지는 바 라지도 않지만, 아무 죄 없는 하데스의 목숨까지 거두지는 말아 달라 충 분히 부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아, 웅. 어제, 어제라……. 아, 맞 아. 어제 놀랐지? 사실 악몽을 꿨거 드”

“악몽……이요?”

“응. 전하가 죽는 꿈을 꿨어. 깨어 나고 보니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서 무작정 새벽에 거길 갔네. 많 이 놀랐지?”

내 말에 아벨은 그저 큰 눈을 깜빡이며 대답이 없었다.

역시나 눈치 빠른 아벨은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듯했다.

“정말이야. 이번만 그런 거 아니고 내가 악몽을 자주 꿨거든. 그때마다 전하를 찾아갔어. 전하는 익숙했을 거야.”

“네.”

“정말이라니까?”

“어머니.”

갑자기 진지해진 아벨의 부름에 나는 긴장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왜 부 르냐고 물으니 아벨이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저 강해요.”

“응?”

뜬금없이 무슨 말인가 고개를 갸웃 하는데, 들고 있던 포크가 갑자기 묵 직해진 게 느껴졌다.

의아해서 내려다보니, 세상에.

“아…….”

포크 끝부분이 얼어붙어 있었다. 아 름다운 장식품처럼 얼음으로 감싸인 포크를 내려다보며 나는 경악했다.

아벨의 능력일 터였다. 그러면 굳이 놀랄 필요가 뭐 있냐고?

빙결.

수속성의 ‘최종 개방’ 능력이기 때 문이었다.

“악! 이게 뭐야!”

놀라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돌연 우리 둘 위로 그늘이 드리웠다.

북부는 춥긴 했지만 사시사철 흐린 건 아니었다. 낮 시간이면 흔히 햇빛 이 들었고 방금까지만 해도 날씨는 제법 좋았다.

본능적으로 창밖을 향해 고개 돌린 나는 또 한 번 경악했다.

어느새 하늘에는 먹구름이 드리워 있었고 이따금씩 번개가 번쩍였다.

우르릉.

쾅!

하늘이 깜빡인 이후 무시무시한 천 둥소리 가 났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은 당연히아니었다.

날씨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것.

풍속성의 최종 개방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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