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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23화 (123/221)

123화.

그리 깊지 않은 새벽이었다.

이른 저녁부터 아벨을 데려다놓고 공표식 준비에 열중하던 하데스는 놀 란 눈을 했다.

화속성의 능력을 개방한 지 얼마 되 지 않은 아벨이었다. 불을 자유자재 로 다루는 것은 미숙하지 않을까 했 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이렇게 하면 돼요?”

테이블 위로 늘어놓은 촛대 열 개에 불이 한 번에 올라붙었다. 일렁이던 그것들은 일순 꺼졌고 주변이 암전되 었다.

“아니면 이렇게?”

첫 번째 촛대 위에 다시 불이 붙었다. 그 뒤로 열 개의 촛대에 하나씩 차례대로 불이 올랐다.

“음…….”

“아니예요? 이거 아닌가?”

“아니, 너…….”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요.”

얼른 칭찬해주지 않는 하데스의 모습에 초조해졌는지, 다시 불을 꺼뜨 린 아벨이 첫 번째 촛대에 불을 붙였다.

곧 사위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탄 첫 번째 촛대의 불이 순식간에 열 개의 촛대 위를 타고 옮겨붙었다.

“아, 아니면…….”

“아니, 아벨. 그만.”

울상 지은 아벨을 빤히 응시하던 하데스가 하, 하,하고 끊어 지듯 웃음을 터뜨렸다.

“다, 다시 한번 알려주시면…….”

“하산해라.”

“……네?”

“굳이 나랑 따로 연습할 필요는 없 겠군. 아주 잘했어. 더 가르칠 게 없 어.”

“정말요?!”

“어. 처음에 했던 것처럼 한 번에 붙이지 말고, 두 번째로 했던 것처럼 해라. 단상까지 행진하면서 봉화대에 하나씩 봉화하는 거야.”

“네!”

“그리고 풍속성 능력은 섞어 쓰지 마. 내가 말 안 했나? 아직은 그 능력을 꼭꼭 숨겨야 한다고 했잖아.”

“헤헤……. 네! 그렇게 할게요!”

“녀석, 잘난 게 아주 날 꼭 닮았는 데.”

흐뭇한 표정으로 하데스가 아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분 좋다는 둣 아벨이 하데스의 손에 머리를 비비적 대며 웃었다.

“아, 그리고 아벨.”

“네!”

“공표식이 끝나고 나면 아빠가 좀 바빠질 것 같다.”

“네? 어디 가세요?”

“어어, 웅.”

“어디요?”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아벨의 눈을 잠시 들여다보던 하데스가 말했다.

“뭐,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마수 잡으 러 가는 거지.”

“아하, 그러면 아자르도 같이 가겠 네요?”

“아니, 이번에는 나 혼자만.”

“네?”

“한 마리뿐이라 토벌대까지 움직일 필요는 없어서.”

하데스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눈치 빠른 아벨은 왜인지 마수 잡으 러 간다는 그의 말이 조금 신경 쓰였다.

굳이 혼자 나가겠다는 것도 그렇고, 고작 한 마리뿐인데 직접 간다는 것도 이상했다.

“강한 마수예요?”

“안 만나봐서 모르겠는데 조금?”

“그냥 토벌대를 보내면 안 되는 거예요? 아버지가 꼭 직접 가셔야 해 요?”

“아마도. 내가 아니면 잡기 힘든 놈 일 듯해.”

“위험하신 거 아니예요?”

“너 언제 내가 얻어터지고 들어오는 거 봤냐.”

“그건 그렇지만…….”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아벨.”

“……네.”

“공표식을 마치고 나면 넌 정식으 로 내 후계자가 되는 거야. 내가 없을 때에 이 루버몬트의 주인은 너다.”

“네에.”

“루버몬트의 주인은 뭘 해야 하 지?”

“성이랑 영지를 지켜야죠.”

“그렇지, 그리고 지켜야 할 게 하나 더 있어.”

“어머니요.”

일 초도 고민 없이 나온 대답에 멍 해졌던 하데스가 씩 웃었다.

“맞아. 똑똑한데?”

“헤헤…….”

“내가 없는 동안 잘 부탁한다. 엄마 옆에 꼭 붙어있어야 해. 어디 빨빨거 리면서 싸돌아다니지 말고.”

“걱정하지마세요.”

“그래, 엄마 말 잘 듣고…….”

그때 문 너머에서 작고 다급한 발걸 음소리가 번져왔다. 고요한 새벽에 어울리지 않는 소란이었다.

하데스와 아벨의 고개가 나란히 문으로 향했다.

예고도 없이 벌컥 열어젖혀진 문, 그곳에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의 아이샤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이샤?”

“어머니?”

놀랄 새도 없이 한달음에 하데스에게로 달려온 아이샤가 그의 품으로 안기듯 쓰러졌다. 뭐에 놀란 건지 작 은 몸이 병적으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왜이래? 무슨 일이야?”

“저, 전, 전하, 가, 가지 마세요.”

“왜 이러느냐고!”

놀란 하데스가 덜덜 떨리는 작은 몸을 꽉 끌어안고 소리쳤다.

“어, 어떻게, 어떻게 아, 알아냈어 요? 네? 마, 말해주세요.”

“뭘! 뭘 말인데!”

“가이, 가이오니아를, 어, 어떻게 찾아냈는지 마, 말해주세요.”

“……뭐?”

“빠, 빨리요. 빨리……. 내, 내 저주를 풀 방법을 찾은 거, 것처럼 말했잖 아요. 내, 내 말이 맞죠. 가이오니아를, 만나러 가, 갈 생각인 거죠…….”

“이봐.”

아이샤를 끌어안은 채 하데스가 옆에 서 있던 아벨의 눈치를 봤다.

이유 모를 아이샤의 반응에 당황하 던 아벨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샤의 말들이 일견 두렵게 들렸던 모양이었다.

“그만, 일단 진정하고…….”

“빨리! 말해! 아니, 됐어요. 말할, 말할 필요 없이, 저, 전하가 찾은 게 무슨 방법이든 가지 말아요. 가면 안 돼요.”

하데스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눈 맞 춘 아이샤가 악을 내질렀다.

고요한 성 안에 울려 퍼지는 비명이 신경 쓰였지만 다행히도 어느새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아벨이 손을 쓴 듯했다.

“어, 어머니. 진정하세요.”

“죽어! 죽는다고!”

하데스의 멱살을 불잡은 아이샤가 붉어진 눈으로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그녀를 진정시키려던 아벨이 놀 란 눈을 했다.

“내가 봤어요. 봤다고. 당신 죽어 요! 나랑 한 약속, 못 지킨다고! 그러 니까 어디, 어디 갈 생각 마요! 아무데도 가지 말고 그냥 여기 있어! 그리고 제발, 제발……. 흐으…….”

작은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대로 무너진 아이샤가 무릎 꿇은 채 중얼거렸다.

“제발…… 날, 죽여줘요, 좀…….”

흐느끼며 중얼거리는 소리에 놀란 아벨이 바짝 굳어 몸을 떨 었다.

아이샤를 따라 무릎 꿇은 하데스는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 정 없는 얼굴로 그저 작은 몸을 안아 도닥거릴 뿐이었다.

“제발요, 제발……. 내 이 빌어먹을 운명이 당신까지 죽이기 전에요, 제 발…….”

***

아이샤는 그 뒤로도 계속 울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하데스는 그녀가 제 풀에 지쳐 잠든 건지, 기절한 건지 모 르게 눈을 감을 때까지 조용히 곁을 지켰다.

죽은 듯 잠든 아이샤를 제 침대에 눕혀놓고 나서야 하데스는 옆에 있던 아벨을 돌아보았다.

“가서 자라.”

“아버지.”

“아무것도 묻지 말고.”

“…….”

“오늘은 일단 돌아가서 자.”

“안 물을게요.”

아벨은 억지로 웃으며 고개 저었다.

저나 아이샤가 왜 이러는지 전부 이 해할 수 없을 테지만 어른스러운 아 들은 묻지 않겠노라 말했다.

하데스가 피식 웃으며 아벨의 머리 위에 푹 손을 얹었다.

“그런데요, 아버지.”

“응.”

“어머니의 말씀대로 하시면 안 될까요?”

“뭐?”

“가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문득 하데스는 아주 미세하게 떨고 있는 아벨을 발견했다. 아닌 척하고 있었지만, 작은 아이는 두려움을 다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어딜, 가시려는지는 모르겠는데, 가지 마세요. 어머니 말씀대로 그냥, 여기 있어주세요. 네?”

“아벨.”

가만히 이름을 부르자, 아벨이 푹 숙였던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춰왔다. 눈에는 금방이라도 흐를 것처럼 처연 하게 물이 고여 있었다.

마음이 약해지는 것도 같았다. 사실, 아이샤가 방으로 와 오열했을 때 부터, 더 약해질 구석도 없이 졸아붙 은 마음이었다.

「내가 봤어요. 봤다고. 당신 죽어 요! 나랑 한 약속, 못 지킨다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암속성 능력자들의 미래를 보는 전지함이다. 그녀는 예고도 없이 찾아 든 미래를 보고 와선 이토록이나 무 너진 거였다.

한낱 인간인 자신이 과연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에게 대적할 수 있을지 의심하면서도, 얼마나 낙관적이었던 가.

프로크레아토르, 그는 뭔가 해결되 는‘미래’를 보았겠거니.

그래서 자신의 손에 칼을 쥐여주었 겠거니.

그리 생각했었는데.

‘내가 정말, 실패한다고?’

가이오니아를 살해하고 저주를 푸는 데에 성공하는 미래를 보았다면 아이샤가 이 새벽에 정신이 반쯤 나 가 오열할 이유도 없었을 테다.

아이샤는 똑똑히 본 것이다. 결국 실패하고 죽음을 맞는 제 모습을.

그렇다면 정말로 방법은 하나뿐인 가?

이번 생에서 아이샤를 죽여 그 빌어먹을 저주의 법칙을, 한 번 끊어내는 것?

“하하…….”

힘없이 웃던 하데스가 잠든 아이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내가 어떻게.

“아버지…….”

“아벨.”

“……네.”

“미안하지만 그게, 선택권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네?”

아이샤를 죽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벨이 죽고 만다.

아벨이 죽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아이샤를 죽여야 한다. 하나 그럴 수는 없다.

정말로, 하데스에게는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샤가 본 미래에서 자신 이 죽었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

프로크레아토르가 찾아낸 ‘방법’은 아마도 가이오니아를 살해하는 것.

사실 처음부터, 그 ‘방법’에 하데스 자신의 무사함은 보장된 적 없었다.

‘죽을 수도 있겠다고는 생각했잖 아.’

그렇지만.

동시에, 가이오니아를 살해하는 데 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하데스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언제가 됐든 아이샤의 지독한 운명의 굴레를 풀기 위해서, 자신은 무언 가를 해야만 했으므로.

약속, 했으니까.

“엄마랑 행복하게 지내고 싶잖아.”

웃으며 제 뺨을 어루만지는 하데스 와 가만히 눈 맞추고 있던 아벨이, 우는 것처럼 허무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아버지 없이, 행복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 었는데요.”

“이 녀석아, 내가 언제 죽으러 간다 고 했냐? 네 엄마가 잘 모르고 한 소리야. 아까 아이샤가 했던 말은 신경 쓰지 마.”

“아버지.”

“아벨.”

“…….”

하데스는 피곤한 표정이었다. 아벨 은 더 그를 괴롭힐 수 없어서,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억지로 삼켰다.

입술을 삐죽이는 아벨을 번쩍 안아든 하데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방을 나섰다.

“오늘은 이만 자자. 아무 생각도 하 지 말고. 네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 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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