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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19화 (119/221)

119화.

“뭐, 뭐, 뭐라고요?”

“우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반색하는 아벨 과 달리 나는 절망했다.

정말로? 황실에서 시키는 대로 가이오니야 상을 만들겠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하데스가?

“전하 …….”

“아버지, 하기 싫으셨을 텐데, 우와 …….”

쿵 떨어진 가슴이 다시 올라온 모양 인지 아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데스의 목에 뺨을 비볐다.

아벨이야 다행스럽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결혼 문제가 다시 어렵게 된 것도 난 감하지만, 그보다는…….

‘신을 기리지 않는 건, 절대 꺾을 생 각 없는 자기 신념 같은 거 아니었어?’

황당했다. 그깟 결혼 좀 하겠다고 그렇게 싫다는 가이오니야 상을 세우 고, 그를 아버지라고 칭하는 기도문을 옲겠다니?

차라리 황실로 쳐들어가서 전부 불 태워버리겠다고 협박하면 협박했지, 내가 아는 하데스는 절대 자기 신념을 꺾을 사람이 아닌데…….

그리고 진심이 들어가지 않은 행위 라 하더라도, 하데스가 신을 기리기 로 결심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마 그가 가이오니아의 ‘법칙’에서벗어나 나를 죽일 수 있는 이유는, 신을 믿지 않기 때문일 테니까 말이다.

이거, 이거…… 결혼 한번 하려다가 일이 다 잘못되는 거 아닌가.

“뭐 잘못 드셨어요?”

“아니?”

하데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 로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자리로 돌 아가 아벨을 내려주었다.

터덜터덜 뒤를 따라 다시 앉은 나는, 여유롭게 턱을 괸 채 방긋 웃고 있는 하데스의 얼굴과 마주하며 황당 해했다.

이어서 나온 그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어때, 내 마음이 보여?”

“뭐가 보여요? 꼭 저녁에 안개 낀 뒷산 등산하는 기분인데요? 도대체 속을 모르겠네.”

“속을 모르겠긴. 어려울 거 있나? 내가 곧 죽어도 가이오니야 찬양은 못할 줄알았어?”

“네, 당연하죠. 지금도 못 믿겠어요. 아니, 안 믿겨.”

“글쎄, 난 그대랑 결혼할 수만 있다 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수 있어.”

어머.

나는 이런 분위기 아닌 걸 알면서도 직설적인 하데스의 고백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아벨은 놀란 눈으로 탄성을 터뜨렸다.

“와, 진짜 멋있다. 나중에 나도 써 먹어야지.”

“멋있지?”

“네!”

신이 난 하데스가 덧불였다.

“다 벗고 그대 발치에 누워서 배도 까뒤집을수 있어.”

“와!”

“고블린 발가락도 핥을 수 있지.”

“와아!”

“그만!”

졌다, 졌어.

혼이 다 빠진 내가 소리치자 하데스 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이제 내 마음을 좀 알겠지?”

“하아…….”

“우리는 가족이 될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갑자기 장난기 가득하던 하데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나는 힘이 쭉 빠 진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꼭 오래된 기억을 더듬은 사람처럼 우수에 찬 눈으로 중얼거렸다.

“약속했으니까. 아벨의, 그리고 그 대의 가족이 되어주기로.”

***

식사를 마친 부자는 본성의 앞뜰에 나와 있었다. 그곳에는 아이샤의 방에서 봤던 대로 상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황실에서 온 전서를 받자마자 하데스는 지체 없이 그들의 요구를 이행하기 위해 조각가들을 불렀다.

토속성의 조각가들은 일반 조각가 들과 달리 능력을 사용해 상을 만들 었으므로, 3m나 되는 거대 조각상을 3주 안에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운 일 이 아니었다.

공표식 날짜를 3주 이후로 잡은 것도 그 이유였다. 황실이 요구한 대로조각상이 만들어 져야 하니까.

그는 아이샤와의 ‘결혼’을, 아주 조금도 지체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하데스에게 안긴 채로 작업 중인 조 각가들을 구경하던 아벨이 배시시 옷으며 그의 목에 뺨을 비비적댔다.

“자, 아드님.”

“네, 아버지!”

신이 난 아벨이 웃으며 대답하자 하데스도 방긋 마주 웃었다.

“이제 변명을 좀 해보실까?”

“네? 아 …….”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던 아벨이 기 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 좀 됐어요. 화속성의 능력을 개방한 지는…….”

“언제?”

“어, 그……. 아자르가 돌아왔을 때요.”

“아자르에게는 어쩌다가 걸렸지?”

“걸렸다기보다는, 그냥 아자르 앞에서 저도 모르게 처음 개방한 거였 어요.”

“그렇게 연습해도 안 되던 게 어쩌 다가 됐을까?”

“음, 저도 모르겠어요.”

아벨은 바로 모른 척했다.

아자르가 가져온 의심스러운 쪽지를 없애려는 본능이 절로 능력을 개방시켰는데, 그걸 하데스에게 말할 순 없었다.

암속성 어쩌고 아이샤를 모함하는 말을 했던 아자르를 떠올리며 아벨이 약간 긴장했다.

혹시나 아자르가 허튼 소리를 안 했 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 하데스가 아무 말없는 걸 보면, 아자르가 약속했던 대로 입을 다물었던 모양이라고, 어린 아벨은 간단히 생각했다.

물론 아자르는 그날 그길로 하데스 에게 찾아가 의심스러운 쪽지를 발견 했음을 술술 불었다.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를 아벨을 바라보며, 하데스가 웃었다.

‘대충 알겠군.’

증거랍시고 제 앞에 에스클리프 남작의 쪽지를 내밀었어야 할 아자르 가, 왜인지 태워버렸다고 말하지 않 았던가.

생각해보면 그가 그렇게까지 할 리는 없었다. 아벨이 흥분한 아자르를 먼저 만났고, 아이샤를 보호하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그 증거를 없애기 위해 능력을 개방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하데스의 추측은 다 맞았다.

왜 제멋대로 행동했냐며 아벨을 탓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마 그 증거 랄 게 남아있었다면 자기도 똑같이 태워버렸을 테니까.

문득 피도 안 섞인 아들이 참 자길 닮았다고 생각하며 하데스는 만족스 럽게 아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축하한다, 아들.”

“헤헤…….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왜 네 어머니에게는 말을 안 하려는 거냐? 능력을 개방한 날, 가장 먼저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 었어?”

“아, 그건요 …….”

부끄러운지 잠시 뺨을 붉히며 말하 길 망설이던 아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연습하는 거 원래 가스펠 백작님이 가끔 봐주셨잖아요?”

“어, 그랬지.”

“그런데 어머니가 앞으로는 절대 가스펠 백작님이랑 연습하지 말라고, 제가 연습하는 거 어머니가 대신 봐 주겠다고 하셨거든요.”

“아하. 그래서 …….”

“네. 이미 능력을 개방했다고 하면, 따로 안 봐주실까 봐 숨기고 있었어요.”

“참 나 …….”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근 질근질한 입을 아직까지 다물고 있었 단 말인가?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하데스가 혀를 내둘렀다.

“어머니가 그렇게 좋으냐?”

“네! 아버지는 안좋으세요?”

“어, 나도 좋아.”

“헤헤……. 고블린 발가락도 핥으 실 수 있을 정도로요?”

“어, 맞아. 그거 엄청 힘들다. 웬만 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못 해. 얼마나 냄새 나고 더러운 녀석들인데.”

“헤헤 …….”

아벨이 하데스의 목을 바짝 안으며 행복한 듯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저도 좋아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물론 우리 아 드님도 그만큼 좋아해.”

“저도요.”

“그리고 네 어머니도.”

잠시 아이샤를 떠올리며 말을 멈췄 던 하데스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네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널 생각하고 좋아할걸.”

“정말요?”

“그럼, 당연하지. 굳이 억지로 함께있는 시간을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네가 원할 때면 곁에 있어줄 거야.”

영차, 아벨을 힘주어 다시 안으며 하데스가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능력을 쓸 줄 알게 됐다 고 내일 네 어머니에게 가서 자랑해 도 돼. 어차피 공표식도 한 달도 안 남았으니.”

“아아……. 네! 헤헤, 그렇게 할게요.”

고개를 끄덕인 아벨이 다시 작업에 열중인 조각가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능력자들이라 그런지 작업 속 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벌써부터 뭔 가 윤곽이 잡혀 가는 느낌이 었다.

좋다며 웃은 아벨이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얼마나 신을 안좋아하 시는지 저도 알아요. 그래서 아까 폐 하께서 보낸 편지를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아버지랑 어머니가 무사히 결혼하지 못하면 어쩌나 해 서…….”

“걱정했어?”

“네. 아버지는 절대로 뜻을 굽히실 분이 아니니까요.”

“맞게 봤군.”

“그런데도 이런 어려운 결정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로 어려운 결정 아니었는데?”

“와, 대단해요.”

아벨이 배시시 웃으며 하데스를 꽉 끌어안았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멋진 분이 제 아버지라니 정말 기뻐요. 저도 나중에 꼭 아버지처럼 될 거예요.”

“조각상 하나 만드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에이, 어렵죠. 신을 싫어하는 아버지가 신의 모습을 닮은 조각상을 만 드시는건데…….”

“응? 내가 언제?”

하데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네?”

“내가 언제 가이오니야 상을 만들 겠다고 했어? 조각상 만든다고 했 지.”

“……네?”

하데스의 말이 곧바로 이해되지 않 는지 아벨이 멍한 표정으로 눈만 깜 빽였다.

귀여운 아들의 표정이 볼만했다. 퍽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하데스가 소리 내어 웃었다.

“아들, 아버지는 신을 싫어하는 게 아냐? 그보다는 조금 더 크고 짙은 감 정이지.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 까 모르겠지만, 싫어한다기보다는 중오와 더 가깝다고 해야겠다.”

“아, 아버지…….”

“지금 내 눈앞에 있으면 당장 불태 워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말이지.”

분명 웃고 있는 하데스의 입꼬리가 무자비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표정만 보면 꼭…….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 어쩐다 하더 니 정말 악마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아벨은 헷갈렸다.

그 정도로 가히, 악마 같은 표정이 었다.

아벨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봐들. 작업은 잘되고 있나?”

금세 표정을 갈무리한 하데스가 정신없는 조각가들에게로 다가가 물었다.

그때에야 아벨은 그들의 발치에 놓 여있던 하데스의 초상화 한 점을 발견했다.

“예, 전하. 이 속도라면 3주 안에도 충분히 완성이 가능할 듯합니 다!”

“그래, 그래. 수고하라고. 여기 실 물도 있으니까 참고하면서.”

“예, 전하!”

당당히 턱을 치켜세운 하데스가 보 란 듯 가슴을 펼치고 그들의 앞에 섰다.

가이오니야 조각상이 아니라 자기 조각상이었어?!

아벨은 눈만 깜빡이며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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