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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18화 (118/221)

118화.

집사는 무거운 표정으로 한번 뜯은 흔적이 있는 황실의 전서를 건넸다.

황제의 직인이 찍혀있었다. 이번에 도 직접 쓴 친필 서신이었다.

하데스가 곧바로 그것을 펼쳐 열었다.

[친애하는 루버몬트 공작.

다름이 아니라 공이 요구했던 제국의 혼인법 개정과 관련한 진척 사항을 알리고자 친히 펜을 잡았소.

레지슬라스에서는 혼인법 개정이 통과되었고 법전도 이미 전부 개정해 둔 상태요.

우리 크레센타 제국의 방패요, 큰 밑거름인 공작의 요구가 과하지 않으 니 황제인 나로서는 응당 받아들이고 자 하였으나, 인사들과 논의한 결과, 특정 가문의 입김이 황실에까지 쉬이 뻗치는 그림이 우리 크레센타 황족과 황실의 위엄을 크게 훼손한다고 판단 하였소.

하여 부탁 하나를 할까 하오.

내년 초에 진행될 루버몬트의 후계 자 공표식을 근시일로 앞당겨 공식 행사를 열고, 그 자리에 찬신(讚神) 과정을 포함해주길 바라오. 찬신 과 정에 들어있었으면 하는 구체적인 내 용은 따로 적어 함께 보내오.

공이 기꺼이 이 요구를 들어준다면, 짐 또한 기쁜 마음으로 혼인법 개정을 만국에 공표하도록 하겠소.

부디 우리 크레센타 황실과 루버몬트의 화합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 라며, 공의 답신을 기다리겠소.

황제 발록 프랑세즈 크레센타.]

하데스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의 표정을 살피던 집사의 입에서는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황제의 친필 서신과 함께 들어있던 요구 사항이 적힌 전서까지 읽고 나 서, 하데스는 침묵했다.

얼마 전 가스펠 백작이 방문했을 때 요구했던 그대로였다.

‘그럼 그렇지.’

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신이라면 질색하는 하데스를 뻔히 아는 가스펠 백작이다. 뭐 좋은 소리 들으려고 뜬금없이 공표식 때 찬신 과정을 넣으 라 종용했겠는가?

아마 황실 쪽에서 미리 가스펠 백작을 찾아가 협박한 모양이 었다.

하데스가 양쪽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표정은 전혀 그 래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손에 쥔 전서가 화르륵 불타올라 사라졌다. 검게 바스러진 잿더 미가 후두둑 책상 위로 흘날렸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

빤히 그를 보고 있던 집사가 다시 한번 한숨 쉬었다.

“……결혼 한번 하기 더럽게 어렵네.”

***

하데스가 돌아가고 나서 나는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프로크레아토르의 얘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것이었다.

창조. 그 무서운 능력.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도 가능한 그 창조의 이능을 개방한 자가 제국 에는 지금 둘이나 있다.

물론 마력의 수치에 구애받기에 프로크레아토르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 르겠지만 …….

아무튼 꽤나 똑똑한 하데스의 측근 록사는, 창조 마법을 이용해 모든 속성의 이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지금 이제국에서는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하데스에게 무효화의 능력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둘이나 된다는 거다.

록사, 그리고 마탑주라는 위그노어 메이도우 대마법사.

“왜그 생각을 못했지…….”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입술을 물었다.

프로크레아토르가 내 형제였다는 사실을 하데스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끝끝내 듣지 못했지만, 미루어 짐작해볼 수는 있었다.

아마 프로크레아토르가, 자신의 후 손인 위그노어 메이도우 대마법사에게 어떤 전언이라도 남겨두었겠지.

하데스는 ‘방법’을 찾기 위해 대마법사를 찾아갔을 테고, 무언가를 알 아온 모양이었다.

‘뭘?’

내게도 철저히 말을 아끼는 하데스였다. 궁금하고 답답했지만 당장은 알아낼 겨를이 없었다.

확실한 건, 내 정신 지배를 피할 수 있는 무효화를 하데스에게 걸어줄 만한 이는, 토속성 최종 개방 능력자뿐이라는 거였다.

록사인지 그 대마법사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록사의 마력 수치를 가늠해보면, 무 효화나 되는 수준의 마법을 구상하고 만들어내기까지는 힘들 듯했다.

하지만.

‘내 성력을 가져갔었지. 설마, 설마, 설마 록사 씨가 나를 배신하고 하데스 편에 붙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 진 않지만!’

가져간 성력으로 ‘회복’의 이능 대신 ‘무효화’의 이능을 구상했다면, 록사의 마력으로도 무효화 물약을 만드는 게 힘든 일은 아닐 터.

‘와, 만약 그런 거면 하데스는 지인 짜…….’

당장 생각할 것도 많은 마당에 지능 적 인 아군까지 경 계해야 하다니.

‘그래도 언제고 하데스에게 걸린 무 효화는 풀릴 거야.’

그렇지만, 그 철두철미한 하데스가 그 이후의 일을 생각해놓지 않았을 리 없다.

대마법사를 만난 듯했으니 다음에는 그에게 부탁을 해볼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탑주씩이나 맡고 있는 그라면 마력 수치가 무시할 수준은 아닐 테고, 하데스야 황제든 마탑주든 손바닥 위에서 놀릴 수 있는 사람이니 위그노어 메이도우는 평생 무효화 물약 만드는 기계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악!”

도무지 답이 없다. 나는 복잡한 머리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하데스의 명령을 듣지 말라고 정신 지배라도 걸어두고 싶지만.

‘만나본 적 없어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어떻게 걸겠어.’

언제 어디에 있든 원하는 대상에게 걸 수 있는 정신 지배였지만, 딱 하나 전제 조건이 있었다.

대상이 누군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적어도 한 번 만나보기는 해야지, 이름만 아는 마탑주의 행동을 조종할 순 없다는 말이다.

“돌겠네, 진짜.”

이건…….

절대 날 죽일 생각 없는 하데스와 무조건 죽어야만 하는 나의 싸움인 가.

“진짜 자신 없네.”

이 세계에서 가장 대립하기 싫은 강 하고 지능적인 캐릭터를 꼽아보라면 단연 하데스인 것을.

“어째야 하나 …….”

저주받은 능력이긴 해도 대적할 방 법 없는 막강함은 있다고 생각했는 데, 아니?

아마도 이 지겨워질 줄다리기에서 밀리고 있는 쪽은 분명히 하데스가 아니라나였다.

역시 대단한 남자…….

***

아주 태연한 얼굴로, 하데스는 오늘 도 내 방에 식사를 차리라고 명했다.

예정대로라면 진작 죽었어야 할 나는 아직까지 살아있고, 심지어 옆에는 아벨과 하데스가 있었다.

완전 단란한 가족의 점심식사 시간이었다.

환장하겠네, 정말…….

나는 눈을 부릅뜨고 마주 앉은 하데스를 노려보았다. 틈만 나면 세뇌를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언제 무효화의 능력이 딱 끝날지 모르니까.

‘혼인 문서 내놔!’

눈에 잔뜩 힘준 내가 뭘 하고 있는 지 알아봤는지, 하데스가 특유의 그상대를 하찮아하는 표정과 함께 웃었다.

“우리 부인은 역시 포기를 모르는 여자야.”

“으으…….”

가운데 앉은 아벨이 우리의 기 싸움을 지켜보다가 갸웃했다.

“무슨 말이에요?”

“아냐, 넌 알 거 없다. 그것보다 아벨, 너 아빠한테 할 말없냐?”

갑자기 무서운 표정이 된 하데스가, 들고 있던 나이프를 눈앞에 있던 고 기 위에 푹 내리 찔렀다.

흠칫 놀란 아벨이 붉은 눈을 도로록 굴리며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 아뇨? 없는데?”

“진짜 없어?”

양손을 올려 턱을 괸 하데스가 무섭 게 웃으며 재차 물었다.

“어, 없는데……. 왜요? 저 뭐 잘못 했어요?”

“아니, 잘못한 건 아닌데, 혹시 우리 사랑하는 아들이 아버지한테 뭐 숨기는 거 있나 해서.”

“숨기는 ……. 아!”

아벨은 뭔가 눈치챈 모양이 었다.

바짝 긴장한 얼굴이 된 그가 마른 입술을 혀로 훑으며 하데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있지? 생각이 났지?”

“아, 아자르가 말한 거죠?”

“그래.”

“일부러 숨기려던 건 아니었어요. 대신 그…….”

아벨은 내 눈치를 한 번 보더니 말 했다.

“……이따가 따로 말씀드릴게요.”

“왜? 어차피 네 어머니도 알고 있는 거 아니냐? 나 말고 네 어머니에게 먼저 말하고 싶어서 몸이 달았으면 서?”

“아, 아니예요. 사정이 있어서 아직 말 안 했어요. 모르셔요.”

아벨이 곧바로 고개 저었다.

나는 대체 그게 뭔지 궁금했고 하데스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뭔데? 왜 나만 몰라?”

“그래, 그럼 식사 마치고 따로 얘기하자.”

“네, 네. 아버지…….”

“왜 저만 따돌려요!”

“따돌리긴. 아벨이 그대 말고 나에게만 말하고 싶다는데 어떡해?”

턱을 치켜든 하데스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괜히 서운해지는 마음에 나는 아벨을 돌아보며 물었다.

“뭔데, 아벨. 왜 나한테는 말 안 해 주는데?”

“그, 그런 게 있어요!”

정말 말해줄 생각이 없는지 아벨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빽 소리를 내질 렀다.

나는 충격으로 굳었다.

“죄, 죄송해요. 그렇지만 공표식까 지는 진짜 말 못 해요.”

“대체 뭔데…….”

“아, 그 공표식 말인데, 한 달 후가 될 거다. 말이 한 달 후지 정확히는 3 주 좀 넘어서가 되겠군.”

갑자기 끼어드는 하데스의 말에 나 와 아벨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네에?!”

“왜요?!”

하데스는 곧 옷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 앞으로 휙 던졌다.

얼핏 보니, 전에 본 적 있는 황제의 직인이 찍힌 편지봉투였다.

나는 황급히 그것을 펼쳐들었고 아벨도 궁금한지 의자에서 쑥 내려와 내 옆으로 와 고개를 기웃거 렸다.

이번에도 친필로 적힌 서신이었다. 나는 아벨이 볼 수 있도록 그것을 기 울인 뒤에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경악과 동시에.

“나이스!”

좋다고 외 쳤다.

같은 내용을 읽은 아벨은 울상이 되 어 나를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왜 좋아하세요?”

“아니, 이게, 음…….”

의아해하는 아벨을 두고, 나는 하데스에게 말했다.

“이를 어떡하면 좋아요, 전하. 전하만큼 신을 싫어하는 제국인도 없을 텐데. 가이오니야 상도 세우고 기도 문도 옮으라니, 황제 폐하도 참 너무 하신분이네!”

너무하신 분은 무슨. 이제국에 다시없을 은혜로운 성군이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딱히 혼인 문서 찾으려고 뻘뻘거릴 필요도 없겠 네요.

황실에서는 하데스에게 신을 기리 라고 강요했다. 내가 아는 하데스는 절대 시킨 대로 할 사람이 아니었다.

나 때문에 가이오니아를 더 싫어하 게 된 듯한 지금은 더더욱.

그러나 좋아 죽는 내 표정을, 하데스는 또 하찮다는 듯 웃으며 바라보 고 있었다.

“내가 신을 싫어하는 건 맞지. 사실존재도 안 믿었어.”

“어휴, 그럴 수 있죠. 이해해요. 그 런데 대놓고 귀족들 다 모이는 자리에서 신을 기리라니 전하는 때려 죽 여도 못 할 거예요. 어쩔 수 없으니 우리 결혼은 잠깐 보류해두고 …….”

“아벨, 이리와 봐라.”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하데스가 아벨을 번쩍 안아 들고 내 방 창가로 다가갔다.

왜인지 느낌이 싸해진 내가 그의 뒤를 냉큼 따랐다.

‘뭐야, 저건?’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가 늘게 뜨고 창밖을 살폈다.

3m 정도 되는 직육면체 모양의 거 대한 석고. 그 주위로는 열댓 명쯤 되는 사람들이 분주히 무언가를 작업하 고 있었다.

황당해진 내 표정을 바라보며 웃던 하데스가 말했다.

“조각상 만드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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