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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17화 (117/221)

117화.

“아주 재미있게 읽었겠군. 책만 읽 었을 뿐인데 그대가 사랑에 빠질 만 도 해.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다 재 미있어.”

“저기 …….”

“어제도 한 권 읽었는데 꽤 재미있 었지.”

“네?”

“아니야. 계속하지. 나를 조금 더 이해시켜줬으면 좋겠어. 대충은 알겠 는데 복잡해서 말이야.”

“당연히 그럴 거예요. 창조의 이능 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말로 설명하기 도 어려워요. 인간의 머리로는. 그리고 저도 인간이기 때문에 아버지나 프로크레아토르가 해놓은 안배를 다 이해할 수는 없어요.”

“그렇군.”

“그래서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세 가지뿐이에요.”

나는 세워놓은 세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말했다.

“프로크레아토르가 자기가 만든 법 칙이 적용되는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 저를 그곳에 한 번 환생시켰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의 법칙에 의해 다시 이쪽 세계로 돌아올 저를 내다보고, 이그니스의 연인이 환생할 이 몸을 차지하게 했다는 것.”

“프로크레아토르는 더 이상 이쪽 세계의 법칙에는 관여할 수 없는 건 가?”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당장 저를 이 몸에 태어나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는 그가 이 세계의 법칙에 관여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가 건 들 수 있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고요.”

“어렵군.”

“적어도 프로크레아토르는 저주에 서 자유로울 거예요. 그쪽 세계는 프로크레아토르만의 것이고, 그가 원하는 대로 모든 그림을 그릴 수 있을 테니까요. 아버지가 만든 이 세계에 아버지가 만든 법칙이 적용되듯이, 아마 그가 만든 그 세계도 그럴 거예요.”

아니, 그래야만 해.

말을 하면서, 나는 정말로 꼭, 그러 기를 바랐다.

프로크레아토르만은 우리와 달리 아버지의 저주에서 자유롭기를.

우리를 위해 저주받은 암속성의 능력자가 된 그 또한 같은 벌을 받고 있다면, 아마 매 생에서 부모를 죽이 게 될 것이었다.

‘진짜 그러면 안 되는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밀리언셀러〈페르소나〉작가가 키워준 부모를 살해하고 감옥 갔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난 건 아닐지, 나는 잠시 걱정스 러웠다.

“그자가 만든 세계는 어땠지?”

“아…….”

나는 잠시 저쪽 세계를 떠올리다가 대답했다.

“나쁘지 않았어요. 일단 마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아서 인간들은 전 부 평등할 수 있죠. 전하 같은 분 앞에서 머리통이 태워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평등하다…….”

“말만 평등이지, 여러 종류의 인간들이 하도 많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불평등은 당연히 존재하지만요. 그건 사실 어떤 세계를 만들어도 그럴 거 예요.”

“그래, 대충은 알겠어.”

“아무튼 프로크레아토르를 마지막 으로만났을 때, 그는 제가 뭔가 하길 바랐어요. 저주를 풀 방법을 생각해 낸 것 같았고, 혹시나 아버지가 알게 될까 봐 많은 걸 알려주지는 못했지만 저쪽 세계에 환생시킴으로써 뭔가를 알리려고 했던 거예요. 어쩌면 지금도요.”

“그대는 그 방법이, 그대를 죽여야 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고?”

“네. 하필 이그니스의 연인의 몸에 저를 집어넣은 이유가 뭐겠어요? 확 실히 그럴 거예요. 아버지가 내린 저 주의 법칙을 딱 한 번, 거스르기만 하 면 되는 거예요.”

“글쎄, 형제들의 저주를 풀기 위해 서 아버지까지 죽인 자가 그대의 희 생을 제물 삼으려고 했을까?”

“그 희생이라는 게, 저한테는 그다 지…….”

“…….”

“무거운 의미가 아니거든요. 프로크레아토르도 그걸 알고요.”

수백 번 자살했던 난데 이번 생에서 한 번 빨리 죽고 마는 게 뭐가 어려 울까?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내 말에, 하데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빤히 나를 응시했다.

“그래, 그대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는 잘 알겠어. 그러면 이제 그 아버지라는 작자에 대해서 좀 말해 봐.”

퉁명스럽게 내뱉는 하데스에게 뭐라 말을 더 덧붙이 려다 그냥 말았다.

그리고는 그의 말대로, 나를 만든 아버지, 신이라고 불리는 가이오니야를 떠올렸다.

“아버지, 는…….”

사실 가이오니아를 마지막으로 본 건 정말 까마득한 과거라서, 나는 기 억을 더듬느라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는 프로크레아토르처럼 다정하면 서도 강단 있는 면이 있었고, 이그니스처럼 불같은 성미가 있었으며, 어 떨 때는 나처럼 유약하기도 했다.

인간을 닮아있었다. 아니, 우리 형제들을 포함한 이 세계의 수많은 인 간들이 그를 닮아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자식이라 고 부르는 우리 형제들을 매우 사랑했다. 끔찍한 벌을 받고도 내가 아주 오랫동안,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무조건적으로 그를 원망하지는 못하는 이유였다.

이그니스는 아주 오래전에 아버지의 발치에 침을 뱉었고, 프로크레아토르는 아버지를 죽이기까지 했지 만…….

“그냥, 아버지였어요. 여느 부모들 이랑 다를 거 없었어요. 우리를 만들 었고, 가르쳤고, 잘못하면 벌을 줬 고 …….”

“그래? 여전히 그대는 그대가 벌을 받고 있는 것에 불만 없다는 거지?”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세계를 만든 아버지의 기준에서 저는 죄인이니까 벌을 받는 거겠죠. 교수대에 목 매달 린 살인자들이 전부 마땅한 벌을 받 은 거라고 회개하며 죽지는 않잖아요.”

“그대는 그 기준을 의심해볼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그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데요?”

나는 조금, 피곤해졌다.

그는 아마도 내가 가이오니아를 중오하고 화내기를 바라는 모양이었지 만…….

그러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그럴 힘 도 남지 않았을 만큼 나는 지 쳤다.

“어느 나라의 법이 남의 물건을 홈 친 자는 사형이래요. 어떤 사연이 있 든 상관없이요. 난 그 나라의 사람이 고 배가 너무 고파서 빵을 홈쳤을 뿐이지만, 사형당해야 한다고 정해져있다면 그래야겠죠.”

“하…….”

“오히려 그만큼 간단한 상황이라면 좋겠어요. 나만 죽어서 되는 거라면요. 그런데 그게 아니거든요. 사형당 하기 싫어서 이리저리 도망치다 보면 내 주변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거예요. 그 법을 정한 사람은 신과 도 같아서,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요.”

하데스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게 공감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었다. 고통 속에 썩어갔던 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을,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무릎 꿇어본 적, 실패해본 적 없는 그가 이 해할 수는 없었다.

“내가 아버지를 욕하고 조롱하길 바라지 마세요. 그러기엔 너무 무서 워요. 지금은 이런 벌을 받고 있지만, 언제든 더 큰 벌을 내게 줄지도 몰라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 들을 단숨에 없애버릴 수도 있는, 그 런 존재예요. 아버지는.”

“…….”

“나는요, 전하까지 잃게 되는 비극 은 바라지 않아요. 겁쟁이처럼 보이 겠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이해해주세요.”

말을 마치고 나는 입 안에 맴도는 한숨을 억지로 삼켰다. 하데스는 그 런 내 곁에 앉은 채로 한참, 아무 말 도 않은 채 침묵했다.

***

집무실로 돌아온 하데스는 아주 오 랜 시간 생각에 잠겨있었다.

많은 것을 들었다. 가이오니아의 눈을 피하기 위함인지 프로크레아토르는 책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 고 있었다.

아이샤에게는 이 세계의 존재를, 그리고 어쩌면 형벌의 굴레를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을.

그리고 자신에게는…….

‘내가 뭘 하길 바라는 거지?’

프로크레아토르는 말했다.

신을 믿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신에게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 힘이란 건 곧 그 빌어먹을 신이 란 놈에게서 받은 것인데도?’

펼친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하데스는 생각했다.

‘프로크레아토르, 그자는 아이샤를 위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고 그녀를 자유롭게 할 방법을 찾았다. 그러 니까 확신할 수 있어. 적어도 그자가 바라는 건 아이샤의 죽음이 아니야. 죽여야 하는 것은…….’

신에게 대적할 힘.

하데스의 기준에서는 그 말이, 단 하나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가이오니아다.’

신을 어디 가서 만나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하데스는 책상 위에 놓인 프로크레아토르의 책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반쯤 펼쳐 진 책장이 보였다.

이 책을 끝까지 넘기는 순간 자신은 고민하고 있던 모든 것을 깨닫게 될 터였다.

이를테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를 가이오니아를 만날 수 있는 방법 같 은 것.

그리고 어렴풋이 하데스는 느낄 수 있었다.

이 책.

프로크레아토르가 이 세계에 남긴 마지막 흔적.

그 자체가, 가이오니아를 만나러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마지막 책장을 넘기기 전에 해결해두고 떠나야 할 일이 많았다. 하데스는 반쯤 펼쳐 두었던 책을 덮었다.

그때쯤, 집사가 집무실을 찾아왔다.

“전하, 황실에서 전서가 와서 찾아왔습니다.”

들어오라 명하고서, 하데스는 약간 굳은 듯한 노집사의 표정에 의아했다.

그는 집무실에 있을 때는 웬만한 일 이 아니고서야 하데스를 방해하는 법 없는 이였다.

그 또한 믿는이라 웬만한 서신은 먼저 읽어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전서를 갖고 직접 찾아올 필요까지는 없었다.

집무실까지 찾아와 직접 알려야 할 내용임이 분명했다. 하데스는 문득찝찝했다.

황실이 전서를 보낼 만한 일은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제국법이 잘 개정되었으니 곧 공표하겠다는 언질 정도 될까?

그러나 그것 또한 굳이 전서까지 보 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무슨 내용인데?”

“직접 읽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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