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15화 (115/221)

115화.

대체 왜, 그 착한 아이는 기구한 운 명을 타고난 걸까? 제누스는 왜, 그 토록사랑해 마지않는 그 아이를 죽 일 수밖에 없었을까?

왜?

“죽었구나.”

긴 울음이 멎을 때까지 탈리오의 무 덤 앞을 지키던 아테우스가 낯선 기척을 느낀 것은, 제누스가 떠나고 난 후 다음 날의 해가 떠오를 때쯤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이 었다. 밝은 낮의 하늘을 닮은 남자.

그는 자신을 제누스의 형제라고 소 개 했다.

“죽었어.”

무덤 앞에 놓인 세 개의 목각인형을 내려다보며 남자는 말했다.

“알아요. 죽은 거. 왜 자꾸 …….”

“제누스가.”

이어지는 남자의 말에 아테우스는 숨을 참고 놀랐다.

“뭐라고요?”

“이번에도, 또…….”

“누가, 누가…… 죽었다고요? 알아듣게 말 좀 해봐요. 누가, 누가 죽었 다는 말이에요?”

놀라 멱살을 잡으며 묻는 아테우스 에게 남자는 그저 슬프게 웃었다.

“매번 이래왔단다. 아이를 죽이고 나면 제누스는 무너지고 말아. 견디 지 못하고 항상…….”

“왜!”

아테우스는 익숙한 듯 그저 안타까 워하고 말뿐인 남자를 이해할 수 없 었다.

“왜 말리지 않았어? 당신은 그 여자 가 죽으러 떠나는 걸 알고 있었던 거 야? 그런데도 왜? 왜 안 말렸지? 형제라며? 당신 형제라며……!”

“그것 또한 제누스의 선택이란다. 혼자 남아 견디는 괴로움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고통이 제누스에게는 덜 아플 테니까.”

“그게, 대체……. 그, 여자는 대체 왜…….”

“아이야, 제누스를 사랑했었니?”

남자는 물었고 아테우스는 대답하 지 못했다. 그는 아테우스의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안타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렴. 제누스는 잊는 게 좋 겠다. 영혼에 감정을 너무 짙게 새기 면, 다음 생에서도 그 자취를 쫓아 만 남을 반복하게 되는 법이거든.”

“…….”

“제누스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란다. 다음 생에서도 제누스를 사랑하게 된다면 너는 분명 고통스러울 거야. 제누스는 또 자식을 죽이고,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스 스로 죽고야 말 테니까…….”

“그 여자는 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 게 살아야 하는 건데요?”

힘이 빠진 아테우스의 손이 붙잡고 있던 남자의 멱살을 놓았다. 포기한 듯 묻는 아테우스의 질문에 남자는 한참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내린 벌을 받는 중이란다.”

“아버지? 대체 어떤 부모가 그딴 벌을 준단 말입니까?”

“아이야, 후회할 말을 하지 말렴. 내가 말하는 아버지는 너의 아버지이 기도 하단다. 이 세계를 만들고 너를 창조한 신이야.”

“하하…….”

단호하게 제 언사를 바로잡는 남자의 경고에도 아테우스는 비웃듯 킬킬거릴 뿐이었다.

신?

인간의 재주로는 도저히 줄 수 없는 기구한 벌을 받고 있기에, 그런 존재 가 있다고는 어렴풋이 예상했었다. 다만 그 끔찍한 벌이 당연하다는 듯말하는 남자가 아테우스는 이해되지 않았다.

제누스가 과거에 무슨 잘못을 저질 렀든, ‘아버지’라고 불리는 부모 된 자가, 어째서? 무슨 이유로?

“당신은, 당신 형제가 그토록 괴로 워하는 모습을 지켜봤으면서도 신을 아버지라 말합니까? 그것이 아버지 가 맞습니까?”

“아이야, 제발 입으로 죄를 저지르 지 말려무나.”

“닥쳐요. 이깟 게 죄라면 나도 벌을 받게 되는 건가? 나는 제누스를 잘모르지민, 그 여자는 이런 벌을 받을 만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거야.”

남자는 한참 침묵하다가, 슬프게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리고 설사 그럴 만한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너무 가혹 하시지. 아버지는 냉엄한 분이시니 까.”

“더럽게도 포장하는군. 냉엄해? 마치 그 신이라는 작자의 명이라면 어 떤 벌도 달게 받아야 하는 것처럼 말 하는 게 역겨워.”

“아이야.”

“그 빌어먹을 신만큼 더러운 죄를 짓고 있는 인간이 이 세상에 있을까? 제 자식이 스스로 목숨 끊을 만큼 괴 로워하게 만드는 게 벌이라고? 그건 또 다른 의미의 죄야.”

남자는 놀라 아테우스를 다그쳤다.

“그만해! 그만! 너는 아버지가 무섭 지도 않은 게냐……!”

“아버지? 하하……. 벌준다는 고상 한 핑계로 약해빠진 인간 하나를 고 통스럽게 만들고, 그걸 낄낄대며 관 음하고 있을 정신 나간 악마 새끼가 누구 아버지라는 거지? 그런 아버지라면 당장 내 손으로 찢어 죽이고 말 겠어.”

“너는, 너는 대체…….”

“그런 악질적인 존재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입조심 하라는 머저리를 형제 로 두고 있다니 제누스, 그 여자 삶도 더럽게 기구하군. 부모나 형제나 정신 나간 것들이라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아테우스의 폭 언에 남자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이야, 더 이상 신을 모독하지마 라. 네가 걱정되어 그런다. 전지전능 하신 아버지는 지금 너의 죄를 전부지켜보고 듣고 계신다. 너를 벌하려 하실지도 몰라.”

죽고 병들고 괴로운 순간에도 이토록 신을, 아버지를 원망하는 인간을 남자는 만나본 적 없었다. 그래서 혼 란스러웠다.

“악? 아버지가 악이라니……. 아니, 아버지는 절대적인 선이시다. 아버지 가 이 세계를 만들었고, 아버지의 결 정이 곧 선한 것이며…….”

퉤, 하고 아테우스는 남자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 고상한 주둥아리 좀 다물어. 그여자를 죽게 만든 아버지라는 작자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면, 나는 당장 모가지를 비틀어버릴 거야.”

“…….”

“당신의 아버지는 선한 존재가 아니야. 전지전능하다면 애초에 제누스, 그 여자가 죄를 저지르게 두지도 않았겠지.”

“……뭐라고?”

“처음부터 그녀가 죄를 저지를 걸 알고도 가만 둔 것 아닌가? 기다렸다 가 벌을 내리고, 벌이랍시고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서?”

“…….”

“그게 선한 존재고 아버지니까 모 독하지 말라니. 대가리를 떼어놓고 다니는 멍청이가 아닌 이상 그런 악마를 신이라고 믿고 따르기도 힘들 텐데, 놀라워.”

남자는 머리를 한 대 맞은 사람처럼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아테우스를 옹 시했다.

모든 인간들은 아버지, 용신 가이오니아의 자식이었다. 아무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고 아버지를 욕되게만들지 않았다. 적어도 남자가 지금 껏 만나온 인간들은 다 그랬다.

절대선이었던, 자신의 모든 기준이 었던 신이 한낱 인간에게 ‘악’으로 치 부당한 순간.

남자, 프로크레아토르는 놀라고 말 았다.

왜?

자신이 그 순간 느낀 것은, 약해빠 진 인간이 신을 모독한 데에서 오는 분노가 아니 었기에.

“그래……. 아버지는, 아버지는 제누스가 그런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충분히, 막으실 힘이 있었다.”

왜 자신은 아버지를 한 번도 의심하 지 않았나?

형제에게 내린 벌이 너무나도 가혹 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한 번을, 그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울부짖지 않았나?

아버지는.

정말로 선한 존재가 맞는가?

어린 소년이 입으로 저지른 신을 향 한 모독은, 프로크레아토르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네…… 말이 맞다.”

“…….”

“제누스는 정말로, 바보 같은 형제를 형제랍시고 두고 있었구나.”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했다. 자신의 힘으로 불쌍한 형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지그시 눈을 감은 프로크레아토르 가 오랜 고민을 끝마쳤을 때에도 아테우스는 곁에 있었다. 그는 어린 소 년의 손을 잡고 말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아테우스.

소년의 이름에 프로크레아토르는 뜻을 붙였다.

“내가 후에도 너를 알아볼 수 있도 록 새겨두마. 너는 ‘신을 믿지 않는 자’다. 아버지의 존재와 선함에 의문을 품은 이 세계의 첫 번째 인간이다. 신을 믿지 않는 인간인 너는…….”

프로크레아토르는 아테우스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며, 자신의 권능을 이용해 힘을 나누어주었다.

“인간으로서 신의 힘에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가늠할 수도 없이 아주 오랜, 전생의 일이었다.

***

아…….

활자가 적히지 않은 책의 내용은, 하데스의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오듯 스며들었다.

그가 밀려오는 기억의 파도에 약간의 두통을 느끼며 마력을 끊어냈을 때, 책장은 절반가량이 넘어가 있었다.

프로크레아토르가 남겼다는 비본이 처음으로 보여준 것은, 아마도 자신의 전생일 터였다.

암속성 능력자들과 달리 기억할 수 없는 전생을, 하데스는 그의 권능으 로 한 조각 되돌려 받았다.

아테우스.

그것은 그의 이름이었다.

먼 옛날, 제누스를, 그리고 그녀의 자식을 만나 가족을 이루고야 말 것이라고 약속했던.

“하하…….”

지끈거리는 이마를 문지르며 하데스가 작게 웃었다.

우리의 만남은 처음이 아니었구나. 나는, 너를…….

“재밌군.”

기억하지도 못하는 전생이 본능적으로 영혼에 새겨지기라도 했던 걸 까.

아이샤, 그리고 아벨이 제 가족이 되어 행복할 미래를 본능적으로 갈구하는 것을 보면.

문득 대답하지 못했던 프로크레아토르의 질문이 떠올랐다.

「아이야, 제누스를 사랑했었니? 」

그래, 사랑.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질긴 인연으로 다시 만날 이유도 없고, 그녀를 위해 뭐든 하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 았겠지.

셀 수도 없는 시간을 돌아온 뒤에, 하데스는 겨우 그 질문에 대답했다.

“……맞아.”

잊고 있던 감정은 한 줌도 퇴색하지 않았다. 다시금 타오르는 불씨처럼 하데스의 몸을 덥혔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