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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12화 (112/221)

112화.

지옥 같은 세 번의 밤 동안 마을 어린아이들의 절반이 괴물들에게 잡아 먹혔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그저 다 른 아이들이 제물로 바쳐지는 동안 지옥 같은 밤을 버텨냈기에 살아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당장 내일, 또 해 가 늦게 떠오른다면 다음 순서는 그 들이 될 것이었다.

그 와중에 탈리오는, 기적같이 살아 남았다. 그것이 기적인지 우연인지 아니면…… 탈리오의 운명인 건지. 아테우스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의심은 배부른 고민이 었다. 당장은 살아남아야 했다.

‘어떻게 살아남지?’

괴물들은, 해가 뜨는 동안은 마을 바깥의 산속 그늘에 숨어 숨을 죽였다. 달아날 방법이라곤 없었다. 시간 이 지나면 이마을에 어린아이들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될 터였다.

“아들, 내 아가…….”

어머니는 아테우스와 어린 여동생 시냐, 탈리오를 끌어안고 눈물 흘렸다.

이미 죽어버린 자식들을 찾으며 우는 부모들과, 곧 죽을지도 모를 자식 들을 끌어안고 우는 부모들의 통곡이 마을을 가득 메웠다. 이제 ‘해가 가장 늦게 뜨는 마을’이 되어버린 그곳은, 더 이상 평화롭고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네 번째로 늦은 해가 떠올랐을 때.

아테우스는 그녀를 만났다.

탈리오처럼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인지도 모를 작고 마른 여인은 자신을 그저 ‘제누스’라고 짧게 소개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을 도 와주겠다고 했다.

“이리 오렴. 아무도 죽게 두지 않을 게. 내 곁으로 와.”

제누스는 네 번째 밤이 찾아왔을 때 마을의 남은 아이들을 전부 모아놓고 그 곁을 지켰다.

흉포한 괴물들은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마을을 찾아왔고, 어린아이들의 냄새를 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눈깔을 굴리고 침을 흘리는 괴물들 앞에서 아테우스는 꼼짝없이 죽을지 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보다도 작 은 체구를 가진 여자가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테우스는 그날 밤 세 번째 기적을 보았다. 이번에는 탈리오 가 아닌, 의문의 여인 제누스가 가져온 기적이었다.

“돌아가거라. 저주받은 것들아. 다시는 이곳에 나타나지 마라.”

제누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저 벌벌 떠는 어린아이들을 하나씩 끌어안고, 명령하듯 괴물들에게 말했을 뿐이었다.

달빛 아래에서 난폭하게 날뛰던 괴 물들은 제누스의 앞에서 꼭 길들여진 가축들처럼 얌전했다.

그녀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았는데도 괴물 들은 마을을 떠 나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제누스는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말했지만, 자식을 잃을지도 모를 두려움에 휩싸인 부모들은 그녀를 붙잡았다.

제누스는 기꺼이 다섯 번째 밤도, 여섯 번째 밤도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을 지켜주었다.

“갈 곳이 없다면 여기에서 지내는 게 어떤가요? 제누스 님 …….”

마을 사람들은 제누스를 거의 신처럼 대했다. 아테우스의 어머니는 떠 날지도 모를 제누스를 붙잡았고 다행 히도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를 피하고 몸을 누일 수 있는 작 은 방 한 칸만 내어주실 수 있나요?”

아이들을 살려준 신과도 같은 제누스에게 마을 사람들이 해주지 못할일은 없었다. 곧 해가 가장 늦게 뜨는 마을에는 제누스가 머무르는 작고 아 담한 집 한 채가 생겼다.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다시 행복 했다. 해는 이전처럼 가장 먼저 떠오 르지 않았지만, 괴물들은 다시 나타 나지 않았고 쓰러지고 뭉개진 집들은 다시 올랐으며 부모와 자식들은 웃음을 찾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행복해졌을지 도 몰랐다. 낮이면 마을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요정과 거인, 먼 나라 왕의 얘기를 들려주곤 하는 상냥한 여인 제누스 덕이었다.

“엄마, 오늘도 요정 이야기 들려주세요!”

“헤헤……. 사랑해요, 어머니.”

“어머니!”

마을 아이들은 각자의 부모가 있는 데도 제누스를 그렇게 부르곤 했다. 그녀도 아이들을 제 딸과 아들처럼 대해주었다.

마을 아이들 중 제누스를 가장 잘 따르는 건 탈리오였다. 어머니라고 부를 이가 없던 그에게 제누스가 어 떤 의미일지, 아테우스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동시에 제누스 또한 탈리오를 아끼 고 사랑했다. 그녀는 마을 아이들이 모두 사랑스럽고 예쁘다고 말했지만 아테우스는 알아볼 수 있었다.

탈리오를 향할 때마다 유독 애틋해지는 그녀의 시선을.

“모든 아이들이 너를 잘 따르는구 나. 착하고 강한 아이라서 그런 모양 이야. 탈리오도 네가 가장 좋다고 그 러던걸.”

“그래요?”

“그럼. 예부터 불의 힘을 다루던 인 간들은 강하고 올곧은 자가 많았지.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제누스가 하는 말에 아테우스는 부끄러우면서도 기분 좋았다.

아테우스 또한 마을 아이들처럼 매 일 제누스의 곁에서 그녀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들려주는 먼 세계의 이야기 들을 들었다.

제누스의 존재는 아테우스에게도, 탈리오에게도 점차로 커져갔다. 이따 금씩 부모와 여동생이 있는 아테우스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탈리오는 더 이상 침울한 표정을 짓는 일 없었다.

“형, 나도 나무 인형 만드는 법 알 려줘.”

“뭐 하게? 다쳐. 갖고 싶은 게 있으 면 말해. 내가 만들어줄 테니까.”

“헤헤……. 안 돼. 내가 직접 해야 해. 어머니 얼굴을 조각해서 선물할 거야.”

“바보. 제누스 님이 그렇게 좋냐.”

“응! 형만큼 좋아. 너무 좋아. 평생 여기에서 어머니랑 형아랑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형은 왜 어머니를 이름으 로 불러?”

“……어?”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아테우스는 당황하며 얼버무렸다. 정말 탈리오의 말대로 마을 아이들 중 아테우스만은 제누스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았다.

그건, 그가 제누스를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춘기 소년에게 그녀의 의미는, 마을 아이들이 그녀를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아마도 성애적인 종류였을 것이다.

아테우스가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마음을 키워오고 있던 어느 날, 제누스는 그를 불러 넌지시 부탁했다.

“혹시, 아테우스.”

“예.”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더라 도 말이야. 탈리오를 지켜줄 수 있을 까?”

“어디 갈 거예요?”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렇지만 혹시 모르잖아. 그 아이가 외롭거나힘들거나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곁에 있어준다면 내 마음이 편 할 거야.”

“약속할게요. 대신.”

“웅.”

“어디 가지 마세요. 탈리오도 당신 이 곁에 있어주는 게 가장 행복할 테 니까.”

사실 탈리오를 위한 말이라기보다 는 어디론가 사라질 것처럼 구는 그 녀를 붙잡고 싶어 한 말이었다.

제누스는 그런 아테우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꼭 곁에 있어주겠노라고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을 표현하진 못했지만 아테우스는 그것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해가 가장 늦게 뜨는 인간들의 마을 은 그렇게 또 얼마간은 평화로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평화는 영원 히 약속된 것이 아니었다. 불행의 그 늘은 다시금 해가 가장 늦게 뜨는 마을에 드리웠다.

“왜, 왜 그러니, 내 아가? 시냐, 제 발 …….”

마을 아이들이 이유 없이 아프고 말 라가기 시작했다. 뼈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깡마르게 된 아이들 몇몇은 피를 토하고 밤낮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마을 사람들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지 못했다. 괴물들을 돌려보냈던 제누스가 이번에도 무언가 해결책을 내 어주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에게는 이유 없이 말라가는 아이들을 살릴 재간은 없었다.

더 이상 마를 구석도 없이 연신 피 만 토하던 아이 한명이 죽었다.

그 아이를 시작으로 두 명, 세 명, 다섯 명……. 결국 마을에는 미처 자라지 못한 불쌍한 어린아이들이 열 명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말도 하지 못하던 아테우스의 어린 여동생 시냐도 죽었다.

오열하는 어머니 곁에서 아테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알았 기에.

“왜일까? 이 어린아이들이 무슨 죄 가 있다고? 대체 왜?”

“이유를 알수가 없어.”

“아니, 알 것 같지 않나?”

슬퍼하던 부모들은 이미 죽은, 그리고 죽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깨 달았다.

해가 가장 먼저 뜨던, 누구보다 평 화롭던 이마을에 찾아온 불행.

그것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왜 저 아이는 마르지 않지?”

“마르지 않기만 하는 게 아니예요. 얼굴을 보세요. 갈수록 살도 오르고 뺨도 언제나처럼 생기 넘치는 분흥빛 이 라고요.”

“평범한아이가…… 아니예요.”

부모들이 전부 흰 눈을 뜨고 몰래 노려보는 것은 탈리오였다.

과연 그들의 의심대로 탈리오는 다 른 아이들과 달리 마르지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살이 붙고 생기가 넘쳤 으며 덩치가 커졌다.

“그러고 보면 해가 늦게 뜨기 시작한 것도…….”

“괴물들이 마을에 들어온 것도 저 아이가 오고부터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이 상한 소리 하지마세요. 탈리오는 아 직 작고 어리고 힘없는 아이예요. 괴물들을 불러올 재주도, 아이들을 말 라 죽게 할 힘도 없단 말입니다.”

탈리오를 의심하는 어른들 사이에 서 아테우스는 필사적으로 그를 변호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테우스는 탈리오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괴물들이 날뛰던 밤, 탈리오에게만 찾아왔던 그 기적들을 결코 우연이라 고 치부할 수만은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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