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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07화 (107/221)

107화.

하데스가 푹 한숨지으며 록사에게 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록사가 먼저 약을 마셨고, 곧 하데스의 앞에는 그가 입고 있던 옷가지 만이 훌렁 남았다.

익숙한 듯 꿈틀대는 옷가지 안에서 시원하게 벌거벗은 나신이 된 록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망설이고 있는 하데스를 올려다보 며 록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하시지라? 빨리 안 들이켜시고.”

손바닥만 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 리 사이에 덜렁거리는 것이 잘도 보였다. 하데스가 입술을 물며 고개를 틀고 한숨지었다.

“후 …….”

포털 한번 이용하려면 정말로 이런 경박한 과정이 필요한 건지…….

“옷 안 입냐.”

“아, 되도록 마력을 아껴야지라. 어차피 건너가면 찢어질 텐데 머더러 마력 낭비한답니까? 잔말 말고 얼른 들이켜셔예. 쭈—욱!”

쯧, 한 번 혀를 찬 하데스가 하는 수 없다는 듯 물약을 들이켰다.

약간의 어지러움과 함께 금세 시야 가 덮였다.

민망한 꼴로 입고 있던 옷을 헤치고 나온 하데스가 록사와 마주했다.

본능적으로 아래를 향해 쭉 떨어지는 록사의 시선에 하데스가 헛기침하 며 손을 들어 다리 사이를 가렸다.

“호오…….”

“야. 뭘 봐? 빨리 포털 안 열어?”

“손 두 개로도 안 가려지시겠지 라……. 과연 공작부인이 전하의 건강을 염려하셔서 제게 약까지 만들어 두라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 던…….”

“아, 시끄럽고!”

“홈홈, 부끄러워하시기는.”

음흉한 표정으로 하데스의 옆구리를 쿡 찌른 록사가 이어 말했다.

“포털은예, 스승님의 서재에 있는 30년 된 편백나무 테이블 아래에 열 것이어예. 아직도 그 낡아빠진 테이블 쓰고 계시겠지라?”

이동 장소를 퍽 구체적으로 설명하 며 록사가 손가락을 한 번 퉁겼다.

둘의 앞에 손바닥보다 살짝 큰 크기의 공간 균열이 생겨났다.

“가기 전에, 전하.”

“뭐.”

“정말로 지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 도록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어예.”

“걱정하지 말라니까.”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을 따기 위해 혈안이 된 황실의 소굴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록사는 적잖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몇 번 더 하데스에게 물어 확답을 받은 록사가 긴장한 표정으로 먼저 포털을 넘어갔다.

록사를 앞세우고 잠시 멈춰있던 하데스가, 굳게 닫힌 서재의 문을 한번 일별하곤 그의 뒤를 따랐다.

포털에서 포털로 이동하는 데는 따 로 시간이 들지 않았다.

그저 문을 열고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듯이, 하데스는 순식간에 낯선 풍 경과 마주하게 되었다.

하데스의 서재에서 그들을 삼켜 순 식간에 마탑으로 보낸 포털이 스러지 듯 사라졌다.

마탑 내부에 있는, 토속성의 대마법사 위그노어 메이도우의 서재.

그곳에는 하데스의 서재만큼이나 책으로 그득했다. 낡은 서책들에서 익숙한 군내가 풍겨왔다.

도착하자마자 주인을 만나지 않을 까 생각했는데, 높은 책장들이 빼곡 히 들어차 있는 서재에는 별다른 인 간의 기척이 없었다.

하데스는 민망한 모습을 곧바로 보여주지는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 했다.

먼저 넘어간 록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시원한 나신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사방팔방 기웃거리는 록사의 모습에 하데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승님은 나가 계신 모양이지라.”

“약이나 줘. 미리 둘러보고 있게.”

벗은 몸이 정말이지 부끄럽다. 최대 한 마력을 아끼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곤 하지만 적응하기 힘들었다.

슬그머니 내민 록사의 손에서 약을 낚아채듯 가져간 하데스가 곧바로 그 것을 마셨다.

처음 몸이 줄어들던 때처럼 약간 어 기럽더니, 곧 훌쩍 커진 하데스가 본 능적으로 아랫도리를 가렸다.

“악!”

동시에 고통에 찬 록사의 비명이 들 렸다. 하데스가 놀라 돌아보았다.

“너 뭐 하냐?”

생각 없이 테이블 아래에서 약을 마신 록사가 머리를 찧고 지른 비명이 었다.

하데스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차며 록사를 바라봤다.

그 표정에 입을 삐죽거리던 록사가, 테이블 아래에서 천천히 기어 나오다 말고 민망한 듯 가린 하데스의 아랫 도리를 힐끔 일별했다.

그가 음흉한 표정으로 웃었다.

“징그럽지라.”

“야, 이…….”

딱!

록사가 손가락을 한 번 퉁기자 민망 했던 둘의 알몸 위로 옷이 입혀졌다.

케케묵어 보이는 감색 옷. 평민들이 나 입는 싸구려 천으로 지어진 듯했다.

대번에 인상을 찌푸린 하데스가 말 했다.

“구려.”

“이해 좀 해주시지라. 지금 천 쪼가리 하나 제대로 머릿속에서 구상할 마력도 안 남았어라.”

마찬가지로 상당히 후져 보이는 옷을 입은 록사였다.

그를 못마땅한 듯 쳐다보던 하데스 가 걸음을 틀었다.

대마법사, 마탑주 위그노어 메이도우의 서재는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넓 었다.

책들이 가지런히 꽂힌 책장이 겨우 한 사람 지나다닐 간격을 내어두고 다닥다닥 붙어 일렬로 서 있었다. 전 부 다 세어보면 수천, 아니 수만 권은 될 듯했다.

록사가 하데스의 옆에 와 서며 말했다.

“24시간 창조 마법이 가동되고 있는 곳이지라. 밖에서 보는 크기와는 달러예. 스승님은 책이 많아가 ……. 아마 한 달 꼬박 걸어도 이 서재 끝을 보실 수 없을 거지라.”

“신기하군.”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하데스가 책장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책장에는 만들어진 지 오래된 듯한 고서부터 빳빳한 표지의 새 책까지 뒤죽박죽 섞여 꽂혀 있었지만, 대충 몇 권 뽑아 내용을 훑어보니 철저히 비슷한 내용들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것만 봐도 이 서재의 주인인 대마법사 위그노어 메이도우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한참 책장 사이를 거닐던 하데스가 다시 입구로 돌아 나왔다.

혼자서는 쓸 만한 정보를 찾기 힘들 어 보였기에, 아무래도 서재의 주인을 기다려야 할 듯싶었다.

위그노어의 책상 가까이로 다가온 하데스가 그 위를 홀어보았다.

반쯤 남은 잉크병과 손때가 묻은 깃 펜, 보다가급히 나간 듯 정리되지 않 은 양피지 두어 장. 그 위로 위그노어의 것인 듯 반듯한 글씨체가 빽빽이 쓰여 있었다.

천천히 테이블을 돌아 걷던 하데스의 걸음이 멈췄다.

높은 서재의 벽 위로 초상화 한 점 이 걸려있었다.

작은 미소를 걸친 채 웃고 있는 젊 은 사내의 얼굴.

하데스의 시선이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이분이 바로 그분이시지라.”

어느새 하데스의 뒤로 다가와 선 록사가, 벽에 걸린 초상화를 함께 올려 다보며 말했다.

“그분?”

“신이라고도 불리셨던 스승님의 조상님 말이어라. 이 세계에 첫 번째로 있었던 토속성의 최종 개방 능력자시 지예.”

“아, 이자가 암속성 능력자와 관련된 비본을 남겼다는 그?”

“예.”

돌아보는 하데스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준 록사가 다시 초상화를 올려 다보았다.

“프로크레아토르 메이도우……. 스 숭님 말로는,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할 수도 있는 수준이 었다고 하셨지라.”

새삼스레 대단한 표정을 짓는 록사 와 달리 하데스는 픽 코웃음 쳤다.

“그 정도로 대단하면 그냥 빌어먹을 용신 가이오니아를 죽여 버리고 새로운 신이 되어보지 그랬을까.”

“허익!”

빠득 이를 갈며 중얼거리는 하데스의 말에 록사가 놀랐다.

“미치셨어라?! 딴 데도 아니고 황 궁까지 와서 신성모독을 하셔버리시 지라? 전하 목숨은 아홉 개는 되는 모양이어라 …….”

“내 앞에서 신앙심 운운하는 소리안 나게 해라. 입을 다 꿰매줄 테니 까.”

“아니, 좀 조용히…….”

당황한 록사가 하데스를 말리며 허둥거 렸다. 그럼에도 하데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프로크레아토르 메이도우의 초상화를 직시하는 눈에 전의가 형형했다.

그는 정말로, 신을 죽여 없앨 만한 능력이 있는 자가 왜 그렇게 하지 않 았는지 의문이라고 생각했다.

프로크레아토르 메이도우.

그 또한 제국인이기에 알량한 신앙심에 집착하는 멍청이였을까?

약하고 여린 자식들에게 영원의 고 통을 선사하고, 끝나지 않는 형벌의 굴레를 씌운 용신 가이오니아가 정말로 선한 아버지라고 여겼던 걸까?

문득 하데스는, 자신의 손을 들어 내려다보았다.

무작정 대마법사를 찾아왔지만, 이 곳에서 과연, 그 지독한 신의 형벌을 풀 방법을 찾아갈 수 있을까?

한낱 인간이 신이 내린 저주를 어떻 게 풀 수 있단 말인가?

그게 가능한 자가 아마도 자신은 아닐 테다. 하데스는 제 힘의 한계를 아 주 잘 알고 있었다. 신에 대적할 수준 은아니었다.

‘신과 가장 닮은 자…….’

날카로운 그의 시선이 다시 프로크레아토르 메이도우의 초상화로 향했다.

토속성의 능력자.

‘창조’의 이능은 실로 신의 능력과 가깝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을 정도로 넘쳐나는 마력을 가진 자 라면, 어쩌면 그 힘으로 신에 대적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하데스는 한 번도 아쉬워해본 적 없는 자신의 능력에 처음으로 무력함을 느꼈다.

자신이 저 신과 닮았다는 위그노어 메이도우 대마법사의 조상이었다 면 …….

‘왜 자기가 신이 될 생각은 하지 못했나? 멍청하게.’

나약한 자식들의 운명을 손바닥 위에서 굴리는 악취미 가진 신 따위, 죽 여 없앨 생각부터 했을 텐데.

“그 좋은 능력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못 이루고 허망하게 뒤졌나 보군.”

프로크레아토르의 초상화를 향해 이를 갈며 말하는 하데스에, 록사가 혀를 내둘렀다.

“와……. 누가 대악마 아니랄까 봐말 진짜 나쁘게 하시지라 …….”

어떤 의미로는 대단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록사가 덧붙였다.

“아마 저게 마지막 모습이었을 것 이어라. 어찌 돌아가셨는지는 기록이 안 남아있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셨 다 하데예?”

“그래?”

“예. 뭐, 메이도우가문에서는 신처럼 추앙받는 분이셨으니까예……. 인간처럼 돌아가신 최후를 알리고 싶지 않아서 후손들이 꾸민 말일지도 모르 지라.”

“글쎄, 그렇게 대단한 자였다면 혹시 모르지.”

다시 프로크레아토르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하데스가 피식 웃었다.

“어딘가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서 신처럼 살아가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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