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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06화 (106/221)

106화.

이러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조금이라도 정을 덜 붙이게 하려고, 천천히 불러 달라 부탁할 생각이었는 데…….

차마 아벨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서 결국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 어…….”

“고, 공자님.”

“어머, 어머니이!!!”

귀청이 떨어져라 소리 지르는 아벨에 나와 하데스는 화들짝 놀랐다.

“헤헤…….”

부끄러운 듯 코끝을 훔치며 눈치를 보던 아벨이 천천히 다가와 앉아있던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정말 행복해요.”

그 진심 어린 고백을 듣는 순간, 바 보같이 굴지 않으려고 했던 다짐은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이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어머니—라 고 불려본 게 언제였더라.

아직 모든 기억을 돌려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까마 득한 수백 번의 전생 속에서, 그런 기억이 단 하나도 없었다.

아이의 생물학적 어머니가 되었던 적은 첫 번째 삶 빼고는 없었으니 까 …….

그래서인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 음에도 나는 먹먹해져오는 감정에 얼 어붙고 말았다.

“아! 어, 어머니……. 왜, 왜 우세요?”

“네? 제가 울어요?”

이런. 이놈의 눈물샘은 언제부터인 지 자꾸만 내 통제를 벗어난다.

흐르는지도 몰랐던 눈물로 젖어든 뺨을, 아벨의 작은 손이 훔치고 지나 갔다.

“울지 마세요.”

“이건 좋아서…….”

“네! 좋아서 우는 거! 알아요!”

“하하…….”

안겨드는 아벨을 마주 안으며 나는 웃었다.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웃는 얼굴이 이상해 보일 게 뻔한데도, 하데스는 나와 아벨을 퍽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 네 어머니는 요즘 피곤하니까 괴롭히지 말고 얼른 눕자.”

한참 끌어안고 비비적거리느라 바 쁜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하데스 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아벨을 번쩍 안아든 하데스가 그를 침대에 눕혔고, 이전처럼 우리는 아벨을 사이에 둔 채 나란히 머리를 붙이고 누웠다.

“헤헷 …….”

입이 귀까지 찢어진 아벨이 누운 채로 나를 빤히 올려보다가, 이내 와락 안겨들었다.

“어머, 공자님.”

“이름…….”

“옹?”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말도 편하 게 해주세요.”

“아 …….”

새삼 부끄러운걸.

“그래. 아벨 …….”

“헤헤…….”

파고들듯 안기는 아벨의 온기가 못견디게 사랑스러웠다.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쭉, 행복했 으면 좋겠다고 또 욕심이 들 정도로.

이게 정말 마지막 밤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 착잡한 마음을 아벨의 앞에서 드러낼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로 그를 마주 안았다.

복숭아처럼 발갛게 부푼 함에 쪽 입을 맞추자 아벨이 또 배시시 웃음 지 었다.

“좋아 보이네 …….”

문득 존재감 없이 사라지고 있던 하데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나와 아벨은 그제야 화들짝 놀라 그를 돌아봤다.

“남편은 뭐 없나?”

“……네?”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침대 헤드에 기대앉은 하데스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그리고는 한쪽 손을 들어 뺨을 톡 톡, 치는 게 아닌가.

나는 당황했다.

그래, 물론…… 몇 분 전 혼인 문서에 지장을 찍었으니 서류상으로는 하데스가 내 남편이 맞고, 부부는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다는 건 알지 만…….

아마 지금 내 뺨은 잘 익은 사과처럼 달아올랐을 게 틀림없었다.

어색하잖아. 뽀뽀 비슷한, 아니, 그 보다 더 진한 걸 이미 해본 사이긴 하지만.

“저, 전하.”

모른 척 그 자세 그대로 앉은 하데스를 보며 당황하고 있으려니, 아벨 이 웃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포르르 내 옆으로 돌아와 누웠다.

“오늘은 어……머니가 가운데에서 주무세요.”

“응? 가, 갑자기?”

“빨리요.”

아벨은 당장 하데스에게 입이라도 맞추라는 듯 내 몸을 밀었다.

얼떨결에 샌드위치 속 베이컨처럼 부자 사이에 끼어버리고 말았다.

머뭇머뭇 움직이며 나는 하데스의 눈치들 보기 시작했다.

이쯤 하데스가 장난이야, 해주길 바 랐지만…….

‘진심이야?’

아무래도 내 굿나잇 키스를 받기 전 까지는 눕지 않을 모양이 었다.

팔짱 낀 채 정면만 응시하고 있는 그의 얼굴이 퍽 진지해 보였다.

“아, 정말 ……. 애도 있는데.”

부끄러움에 괜히 구시렁대보았으나 하데스의 표정은 단호했다.

도대체 뭘 기대하고 있는 건지, 입을 귀까지 찢은 채 아벨은 우리를 빤 히 바라보고 있고.

이거 참 민망하구나.

“흐흠.”

헛기침과 함께 천천히 얼굴을 붙이 려던 때였다.

하데스의 뺨에 내 입술이 닿기 1초 전.

쪽.

‘헉.’

기다렸다는 듯 타이밍 맞춰 돌아간 하데스의 고개에, 내 입술은 예상했 던 목적지를 잃고 불시착하고 말았다.

그의 뺨이 아닌 입술에.

“악!”

놀란 내가 푸드덕거리며 몸을 물렸다.

바짝 열이 오른 입술을 두 손으로 붙잡은 채 있으려니,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하데스의 얼굴이 보였다.

“이, 이게 뭐예요!”

“이제 자자.”

능청스럽게 이불을 펄럭여 덮으며 하데스가 냉큼 드러누웠다.

이 남자는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 었다. 오른팔을 뻗어 팔베개를 하더 니 나를 당겨 그 위에 눕히는 것까지 아주 태연했다.

“이이…….”

미성년자 앞에서 이게 무슨 수위 높 은 그림이란 말인가!

하데스에게 한마디 하려던 내면 깊 숙한 곳의 선비님은, 안타깝게도 반 대편에서 허리를 끌어안는 아벨 덕에 깨어 나자마자 잠들고 말았다.

“앞으로도 자주 이렇게 자요. 헤 헤 …….”

“그래. 매일매일 이렇게 자자.”

부자가 나를 사이에 두고 주거 니 받 거니 했다.

아벨은 하데스의 흔쾌한 허락에 약 간 고민하는 얼굴을 하더니, 곧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매일매일은 좀. 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괜찮아요. 두 분이서 주무세요.”

“녀석. 다 컸군.”

“뭔 말을 하는 거예요, 진짜!”

“헤헤…….”

둘 다 진짜…….

능청스레 웃는 얼굴이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어서, 둘을 번갈아 바라보 다 결국 나도 웃고 말았다.

약속된 시간은 하루도 채 남지 않았 건만, 어찌 이리 나를 태평하게 만들 수 있는지…….

하데스도, 아벨도 내게는 퍽 대단하 게 느껴졌다.

익숙해지면 안 되는 걸 아는데 도…….

그저 생각 없이 이들 곁에서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바라게 만들고야 마니까.

***

깊은 새벽.

잠들지 않았던 하데스는 조심스럽 게 몸을 일으켰다.

협탁 위의 촛불마저 꺼둔 방 안은 칠혹 같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방 안에 색색거리는 아이샤와 아벨의 숨소리만 맴돌았다.

어둠에 익숙한 눈으로 테이블을 향 해 다가간 하데스는, 잊지 않고 혼인 문서를 챙겼다.

침의 소매 안쪽에 그것을 고이 넣은 그가 다시 침 대가로 돌아왔다.

작게 마력을 운용하자 그의 손끝에 주변을 밝히는 불꽃이 피어났다.

감은 눈이 부시지 않을 만큼 적당히 일렁이는 불빛이 어둠을 한 뻄 정도 밀어내자, 꼭 끌어안고 잠든 아이샤 와 아벨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하데스의 입꼬리가 살짝 기울었다.

절대로.

한낮의 꿈처럼 스러지게 만들고 싶 지는 않은 모습들이 었다.

마냥 사랑스러운 아들과, 처음으로 곁에 두고 싶어진 여자.

하데스 자신 또한 꼭 아벨만큼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있던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가져본 적 있 었다.

그렇지만 그게…… 이런 느낌이었 던가.

사실 지금에 와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행복했던 것도 같다.

‘행복…….’

그때 이후로는 한 번도 느껴본 적없었던.

아벨을 양자 삼았던 것도, 아이샤에게 청혼한 것도 전부 의도한 게 아니 었는데도, 하데스는 어떤 강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들을 내 사람으로만들고, 지키 고, 함께 늙어가고 싶다는 강한 의지 랄까.

정확히 이게 무슨 감정인지는 말로설명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결코 이 평화를 깨뜨리 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는 제 마음이었다.

하데스 루버몬트, 그라는 남자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를 굽혀본 적 없었다. 정확히는 굽히는 방법을 알 지 못했다.

원하는 게 있다면, 이루고 가지는 것밖에 해본 적 없으니까.

천천히 고개를 기울인 하데스가 아이샤와 아벨의 이마에 차례로 입 맞 췄다.

조금 이른 굿모닝 키스.

한시가 급했기에, 그는 이제부터 바 빠질 예정이었다.

***

아이샤의 방에서 나와 하데스는 집무실로 향했다. 그는 며칠 새 얼굴이 반쪽이 된 록사를 만날 수 있었다.

퀭한 눈으로 터벅터벅 걸어온 록사 가 무색투명한 물약이 찰랑이는 작은 약병을 건넸다.

“얼굴이 아주 안좋은데?”

“공작부인께 받아놨던 마력에 제 것까지 더해서 정확히 일주일.”

“뭐? 정말?”

하데스가 반색하며 물었다.

록사가 힘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이걸 마시면, 말 그대로 무적이 되 시지라.”

“무리할 필요는 없었는데, 수고했다.”

“왠지 나흘은 너무 촉박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예.”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른 록사였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하데스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쳐 격려했다.

“정말수고했다.”

“저 이제 딱 …….”

“…….”

“마탑으로 갔다가, 여기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포털, 두 번 열 마력밖에 안 남았지라.”

“좋아. 시간 없으니까 곧바로 출발하지.”

몸을 푸는 하데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록사가 입고 있던 로브 안에서 다른 약병을 하나 꺼냈다.

“뭐 ……. 아.”

“드셔야 열지라.”

그게 무엇인지 알아본 하데스가 경 악하며 질색했다.

쥐구멍만 한 크기의 포털밖에 열 수 없는 록사가. 포털로 이동할 때를 대 비해 항상 지니고 다니는 그것.

포털 이동용 육체축소형 물약.

아이샤가 잘못 먹고 꽤나 고생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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