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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98화 (98/221)

98화.

꼭, 천국과 지옥에 매초마다 번갈 아 발을 담그는 기분이 었다.

나는 혼란스러워 핑글핑글 도는 시야를 다잡으며 겨우 입을 열어 물었다.

“뭐라, 구요?”

“검은색의 오오라는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그게 뭘 가리키는지는 알지.”

확인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아자르는 굳이 입을 열어 확인시켜주었다.

“당신, 암속성 능력자야. 맞지?”

“뭐—”

그 순간, 현기중이 일었다.

휘청 기우는 내 몸을 아자르가 반사 적으로 받쳐 들었다.

“뭐요? 괜히 몸에 생채기 낼 일 없 게 조심하쇼. 일부러 주군에게 나 때 문에 쓰러졌다 거짓말하려는 게 아니라면.”

“난…….”

힘이 쭉 빠진 다리를 억지로 세우 고, 내가 말했다.

“……아니예요. 그런 거.”

“그렇게 말하고 싶겠지. 당신, 타인을 세뇌할 수 있지? 주군과 공자님도 세뇌의 능력을 이용해 당신 편으로만들었을 테고.”

“아니예요. 난 그런 거 못 해요.”

“웃기지 마.”

“정말아니야!”

빽 소리를 내지르자 아지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그럼 어제 새벽의 일은 어떻 게 설명할 거지?”

“…….”

“그 철두철미한 가렌 백작이, 다른 곳도 아니고 주군의 성에서, 제국 지 명수배자인 록사 트리볼트를 마주치 고도 왜 아직까지 아무 말이 없을 까?”

아자르의 말에 나는 놀라 숨을 삼켰다.

어제 새벽의 일.

그걸 아자르가 어떻게 아는 거지?

‘근처에 있었던 건가…….’

록사와 가렌 백작뿐일 줄 알았는데,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 아자르도 있었던 거다.

그는 쉬지 않고 나를 몰아붙였다.

“둘이 맞닥뜨리는 걸 보고 있었잖 소? 당신 방에서.”

“아…….”

“당장 록사 놈 목을 날릴 거라고 생 각했는데, 가렌 백작이 이상하게 굴 었지. 꼭 뭔가에 조종당하는 사람처럼 돌아가더니 여태껏 아무 말도 없 어. 주군에게도.”

“…….”

“당신도 가렌 백작이 어떤 사람인 지 알고 있겠지? 그가 어디 곱게 록사를 못 본 척해줄 사람인가?”

“나는…….”

“그렇다면 답은 하나지. 가렌 백작 은 어제 새벽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거야. 누군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일 테고, 그건 바로 당신이겠 지.”

말을 마친 아자르는 나를 바로 세우 고, 어디 변명해보라는 듯 턱을 치켜 들고 차갑게 눈짓했다.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짐 작이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래요.”

“인정하는 건가?”

“네. 록사 씨가, 난처한 상황인 것 같아서요.”

“그게 암속성의 능력인가? 그러면 대체 지금까지 몇 명을 …….”

“아뇨! 처음이었어요. 능력을 사용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사용한 건…….”

“무슨 말이지?”

“나도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정말이에요. 능력을 이용해서 누군가를 세뇌한 적도 없어요. 지금까지 그래왔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경부터 세뇌했겠죠.”

“…….”

“믿어주세요. 난 정말…… 내가, 아…….”

손이 덜덜 떨렸다. 양손을 맞잡고 힘을 줬지만 떨림은 잦아들지 않았다.

아자르는 가늘어진 눈으로 빤히 나를 응시했다. 내 속내를 파악하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그는 한참 눈을맞췄다.

“물어볼, 게 있어요.”

“…….”

“두 가지 속성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나요? 난 분명히 백속성 제 국인이에요. 마력을 쓸 수 있게 된 뒤로는 백속성의 이능들도 개방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동시에 암속성 능력자일 수도 있다고요? 정말, 그런 게가능해요?”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내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당신에게서 본 오오라의 끝자락은 분명 검은색이었 지. 마치…….”

아자르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덧붙였다.

“마력이 자라 그 오오라가 더 커지 게 된다면, 충분히 하얀빛을 다 집어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달까.”

“그렇, 군요…….”

“사람을 잘 보는 편이지만 당신은 잘 모르겠군. 지금 얼굴로 봐선 비밀을 들켜 당황했다기보다는, 당신도 당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 맞는 말이다. 의심은 갔으나 확신은 못했지.

물증이 필요했기에 하데스에게 마력억제제를 돌려받았다. 억제제를 먹 고 핵석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 했다.

확인하면 되돌릴 수 없기에, 받고 나서 애물단지처럼 방 안 깊숙이 모 셔두긴 했지만…….

두려워서 망설이던 그 의지를, 아자르의 확신이 부추겨주었다.

내 정체를 확인하는 걸 차일피 일 미루고 한가하게 아벨과 하데스의 곁에 머무를 생각은 말았어야 했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고마워요.”

“……뭐?”

“경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믿기진 않겠지만, 전 누구보다 전하 와 공자님의 안전과 행복을 바라요.”

“지금 그걸 …….”

“확신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계속 이곳에 머무를 생각도 없어요. 경이 걱정하는 모든 일은 일어나 지 않을 거예요. 고마워요.”

“이봐!”

당황한 아자르를 지나쳐 나는 무작 정 정원을 나서 내달렸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지만 나는 달 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성으로 들어와 마주친 고용인들 몇 명이 나를 의아한 듯 바라보며 다가왔지만, 전부 내치고 계속 달렸다.

“아이샤!”

이윽고 내 방에 도착했을 때에야 나는 놀라 멈췄다.

방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던 건 하데스였다.

그는 놀란 눈을 했다가, 곧 내 물기 어린 눈을 알아봤는지 다급한 걸음으 로 다가왔다.

지금 제일, 마주치기 힘든 두 얼굴 중 하나가 하필.

입버릇처럼 다 괜찮다고, 자기가 다 해결해주겠다고 말하는 저 사람이 하 필.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마음 약 해져선 안 됐다.

모른 척, 좀 도와달라고 얘기해 볼 까. 그는 대단한 사람이잖아. 어쩌면 뭐든 할수 있는.

내 안에서 꼭 악마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하나 다행히도 그 순간.

그 파렴치한 생각을 접게 만드는, 수많은 전생 중의 하나가 떠올랐다.

「내 이름은 제누스란다. 」

「저는, 아벨이라고 해요. 」

아직 내가 아이를 죽이는 데 성공하 지 못한 전생의 기억이.

그리고, 내가 죽이고야 말 자식의 영혼이 누구인지 확신하게끔 만드는, 잔인한 기억이.

「저 아이를 데려가주세요. 」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나는, 조금 앳된 얼굴의 하데스와 마주하고 있었다.

“아, 아, 아아 …….”

싫어. 싫어. 싫어.

고개를 아무리 흔들어도 빌어먹을 전생의 기억은 거머리처럼 머릿속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전생을 기억한다고 말하는 자가 나타난다면, 그 자리에서 죽여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그 자리에서 제발, 제발 죽여주세요. 전하와 아벨의 목숨을 위협할……. 」

「아주, 위험한 존재이니까요. 」

아마 나는 매번의 생에서 그렇게 몸부림쳤겠지.

내 아이를, 죽이고 싶지 않아서.

그래놓고, 왜…….

대체 왜.

“아아아아!”

죽고 싶지 않은 거야? 죽지 않고 살 아있다 보면 결국 아이를 죽이고야 말 거면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끔찍했다.

“아이샤!”

하데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족쇄와도 같은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아, 아…….”

어느새 오열하는 내 앞에 하데스가 와 있었다.

무너져 앉은 채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는 나를 보며 하데스는 가만히 입술을 떨었다.

“왜…….”

그의 떨리는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왜 우는 거지?”

“…….”

“누가, 누가 그대를, 이렇게 만들었 어?”

누가…….

누구지?

‘나야.’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이 빌어먹을 운명의 굴레를 만든 것 은, 전부 내 죄과였다.

“혹, 흐으…….”

“아이샤, 제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하데스가 곧 내 몸을 거칠게 끌어안 았다.

그는 나를 달래듯, 입술에 스친 귓 가에 연신 입 맞추며 속삭였다.

“울지 마. 제발…….”

“어, 흐윽……. 아아…….”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하데스에게 죽여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때의 약속을 지켜 달라 부탁할 수 없었다.

이 이기적인 마음 또한 거스를 수 없는 감정일 테지.

운명은 아마도 내 아이를, 이번 생 에서의 아벨을 죽이기 전까지는 결 코…….

나를 쉽게 죽게 하지 않을 테니까.

“왜 그러는 거야, 대체. 웅?”

품에서 나를 떼어낸 하데스가 다정 히 이마를 맞대왔다.

그는 왜인지 나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것처럼 무너진 얼굴로 연신 속삭였다.

“울지 마. 제발.”

“저, 전하……. 저, 어떻. 어떻 게…….”

“괜찮아. 다 괜찮으니까 제발 울지 마. 걱정하지마. 내가 어떻게든, 해 줄 테니까.”

그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나를 기 대하게 만들었다.

아직은 다 기억나지 않는 그 전생의 조각에서, 나는 왜 당신을 찾았을까?

당신이 정말 어떻게든 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걸까?

이 운명이 뒤집으려 한다고 뒤집히는 그런 가느다란 족쇄일까?

정말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 이 세계에 다시 올 일 없었겠지.

어떻게든 내 아이를 죽이지 않기 위 해 몸부림쳤지만, 결국 다시 원점으 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애의, 아벨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자리로…….

“이제 그만, 그만하고 싶어요.”

“…….”

“죄송, 죄송해요. 아버지……. 잘못 했어요. 제발, 제발 용, 용서해주세 요 …….”

“아이샤…….”

“자, 잘못했어요. 그만하고 싶어요. 용서, 용서해…….”

“아이샤!”

하데스는 정신없이 중얼거리는 내 몸을 다시 한번 거칠게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대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든 게 누구지? 아니, 말할 필요 없어.”

“…….”

“그대는 용서받으려고 울 필요 없 어. 용서받지 않아도 돼.”

나를 끌어안은 하데스의 팔에 바짝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는 퍽 매서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할 수 있어. 그대를 울게 만 드는 모든 것들, 그대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것들…….”

“…….”

“내가 전부, 없애버릴 테니까…….”

그의 목소리가 꿈처럼 흩어졌다. 정신이 아득했다.

“그대는 제발, 울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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