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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97화 (97/221)

97화.

“있어주실 거죠?”

아벨이 내 목을 꽉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대답을 재촉했다. 나는 그에게 안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꼭, 꼭이에요. 약속해주세요.”

“네, 약속…….”

말로만 하는 약속이 성에 차지 않는 지 내 품에서 빠져나온 아벨이 성급 히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한 손으 로는 연신 눈가를 훔치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빨리 약속하라며 새끼손가 락을 자꾸 내밀었다.

나는 아벨의 작은 손가락에 내 손가 락을 걸면서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진짜 왜 울지? 어디 가는 거 아닌 데…….”

“모, 모르겠어요. 그냥 마음이 이상해요. 영애가 어디로 멀리 떠나버릴 것 같아서 너무, 너무…….”

다친 것도 아닌데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아벨은 울던 얼굴을 잔뜩 일 그러뜨리며 제 가슴팍을 붙잡았다.

“……가슴이 아파요.”

그 말에, 나도 울컥하고 말았다.

아벨을 끌어안은 채 나는 한참 그의 울음이 멎을 때까지 등을 도닥이며 달랬다.

겨우 그가 진정되었을 때 내가 말했다.

“미안해요. 그냥 공자님이 걱정되어서 한 말이었는데, 오히려 더 걱정시킨 것 같아요.”

“아니예요. 영애가, 킁, 어디 안 가는 거면 됐어요.”

코를 훌쩍이며 겨우 말하는 아벨이 귀여웠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아이는 그제야 웃었다.

“이제 들어가요. 여기도 조금 추워졌어요.”

“네에. 오늘 같이 자기로 약속한 거 안 잊으셨죠?”

“그럼요. 식사하고 나서 …….”

아벨의 손을 잡고 성으로 돌아가려던 때였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기척을 맞닥뜨리고 나는 놀랐다.

“어머.”

“……아자르?”

나만큼이나 놀란 아벨이 우뚝 멈춰 섰다.

아자르는 왜인지 나를 뻔히 바라보 고 있었다. 이전처럼 적의 넘치는 시 선은 아니었지만, 뭔가 할 말이 있음 은 분명해 보였다.

내가 묻기 전에 아자르가 먼저 말했다.

“지금들어가십니까?”

“네. 저녁 먹으러 가야죠.”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시 시간 좀내주십쇼.”

의아해진 나는 아벨을 내려다보았다. 그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다시 아자르를 향해 고 개를 돌려 물었다.

“저요?”

“예.”

“네, 하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며 살짝 미 간을 좁히던 아자르가 아벨에게 말했다.

“잠시만 자리를 피해주십쇼, 공자 님.”

“어? 나 들으면 안 되는 거야?”

“예.”

단호하게 대답하는 아자르의 태도에 아벨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 지만, 확실히 아자르는 조금 심각해 보였다. 나는 눈치껏 아벨의 등을 떠 밀었다.

“금방 갈게요. 먼저 식사하고 있어요.”

망설이던 아벨이 잡고 있던 내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아니요. 안 먹고 기다리고 있을 테 니까 빨리 오세요.”

“안 그래도 되는데……. 옹, 알았어요. 금방 갈게요.”

내 대답에도 여전히 아벨은 걱정스 러운 얼굴로 아자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천천히 정원을 나섰다.

아벨은 걸음을 옮겨 나서다가 아자르의 다리를 꽉 붙들고 말했다.

“아자르도 식사 안 했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꼭 영애를 데리고 와야 해.”

“예, 뭐.”

대충 대답하는 아자르가 못마땅한 지, 잠시 망설이던 아벨은 곧 나를 힐 끔 한번 쳐다보곤 정원을 나섰다.

이윽고 둘만 남았을 때에야, 아자르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직시했다.

유난히 밝은 달빛이 그의 금색 눈동 자를 선명하게 빛나게 했다.

숨 막히는 고요함.

긴장한 내 이마에서 삐질 땀이 흐름 과 동시에 아자르의 입이 열렸다.

“당신…….”

“…….”

“대체 정체가 뭡니까?”

“……네?”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왜인지 불 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기어코 대답을 들으려는지 다 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침묵하는 아자르들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 저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갑 자기 뭐예요? 정체라니 …….”

“잡아뗄 생각 마십쇼. 이 눈에는…….”

아자르는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2m나 되는 거구가 바짝 거리를 붙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흠칫하며 몸을 움츠린 내 앞에 얼굴을 들이민 아자르는, 제 금색 눈동자를 검지로 콕 집어 가리키며 말했다.

“……다 보이니까.”

“천리안, 말하는 거예요?”

아자르가 갖고 있는 천리안은 원작 에도 설명돼 있었다.

비단 아자르뿐 아니라 그와 같은 사 막 국가 출신의 능력 있는 전사들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능력의 눈.

그런데 그게 뭐?

그냥 시야에 든 모든 것들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눈 아니었던가?

“카지트인들에 대해 좀 알고 계시 나 보군.”

아자르는 단숨에 말을 놨다. 동시에, 그의 눈에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보였던 적의가 차올랐다.

그에 내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갑 자기 아자르가 내게 이러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보이도록 노 력하면서 나는 대답했다.

“뭐……. 들리는 게 있으니까요.”

“그런데 내 눈은 좀 다르지. 알다시 피 내 아비는 크레센타인이요. 그래 서 난 정확히 크레센타와 카지트의 혼혈이지.”

“그게 왜요?”

“이 눈. 그저 먼 곳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전부가 아니란 말이 지.”

그의 말에 나는 놀랐다.

아자르의 천리안에 숨겨진 또 다른 능력이 있었다고?

이것 또한 원작에서는 읽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이 눈에는 다 보이니까. 」

대체 뭐가, 보인다는 걸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게 보였던, 그의 이유를 알 수 없었던 형형한 적의.

그저 갑자기 루버몬트 성의 안주인 자리를 꿰찬 외부인을 향한 경계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아자르의 천리안이 다른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가 저 특별한 눈으로, 내게서 뭔 가를 봤다는 것.

어쩌면 아자르의 입에서, 나도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내 ‘정체’에 대 한 증거가 나올지도 몰랐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

“그럼, 그럼 뭘 더 볼 수 있나요?”

내 말투가 뭔가를 들킨 사람 같았는 지, 아자르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곧 말했다.

“당신, 처음 성에 왔을 때 핵석을 내보이고 있었지?”

그의 말에 나는 놀랐다.

핵석을 숨기지 못한다는 사실은 크 나큰 약점이다. 하데스도 그래서 내게 그것을 철저히 숨기라 했고.

내가 핵석을 드러내고 다녔다는 사실을 아는 건 하데스와 아벨뿐인데, 그들이 아자르에게 그런 소릴 했을 린 없다.

그렇다면 아자르는 그 사실을 어떻 게 알고 있는 거지?

“어떻게…….”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해보시지. 핵석은 일부러 안 숨겼던 게 맞지?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척하고, 또, 백 속성이라는 걸 확신시키려고.”

그의 말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뭔가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듯한 질문.

내가 마력억제제 때문에 마력을 전 혀 사용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핵석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사실까지는 모 르는 듯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내가 핵석을 드러내고 다녔다는 사실을 경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 겠지만, 지금은 내재화에 성공했어요. 백속성의 능력을 쓰는 걸 봤으니 더 해명할 건 없겠죠?”

“…….”

“일부러 핵석을 드러내고 다닌 게 아니예요. 마력을 쓸 수 있다는 사실 도 숨기려고 한 적 없어요. 난 정말로 마력이 없는 인간인 줄 알고 21년을 살아왔죠.”

아자르는 내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 지 가늠하려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가만히 시선을 맞댔다.

나는 최대한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 며 말했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거니까 말을 아낄게요. 공작 전하는 이유를 알고 계시니, 그 부분에 대해선 의심할 필 요 없어요. 날 경계했던 이유는 단지 그것 때문이었어요? 내가 마력을 사 용하지 못하는 척, 하는 것 같아서?”

아자르는 곧바로 고개 저 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력을 개방한 제국인에 한해서, 나는 그들의 모든 속성을 다 꿰뚫어볼 수 있지. 그게 내 천리안의 특별한 능력이고.”

헛숨을 들이켠 채로 나는 잠시 침묵했다.

속성을 꿰뚫어볼 수 있다니.

그의 앞에서는, 미하일 라이가르트 대신관도 정체를 숨길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 왜 아자르는 원작에서 미하일을 알아보지 못했지? 그와 만난 적이 없었나?

‘그건 아닌데…….’

아벨의 최측근이었던 아자르와, 툭하면 등장했던 미하일이 서로를 모를 수가 없었다.

당장 단둘이 함께 있던 장면은 떠오 르지 않지만 분명 서로는 서로를 알 고 있을 터였다.

“그냥, 그냥 바로 보이는 거예요? 어떤 식으로?”

“그런 건 아니오. 천리안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대상 주변에 아주 신비 로운 빛이 생기거든. 고유의 속성에 따라 색이 다른.”

평소에는 그 천리안을 발동시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굳이 저 눈을 열어 속성을 파악할 필요가 없는 대상은, 엿보지 도 않았을 터.

원작에서는 아자르 역시, 미하일을 털끝 하나 의심하지 않았던 거다.

“하…….”

왠지 힘이 빠진 나는 한숨 쉬다가, 번쩍 정신이 들어 물었다.

그렇다면.

속성을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아자르가 나를 경계하고, 적의를 내 비치는 이유는…….

“전.”

“…….”

“전 무슨 색으로 보이나요?”

다소 간절해 보이는 내 표정에 당황했는지, 아자르가 멈 칫했다.

그는 잠시 나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백색”

“아…….”

꽉 조여들었던 심장 쪽의 무언가가 부드럽게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안도랄까.

‘설마 정말, 1%의 확률이?’

가스펠 백작과 가렌 백작은 내게 정신 지배를 당한 게 아니었던가?

아자르가 ‘확신’이라는 걸 시켜준 순간, 나는 풀어질 대로 풀어져 제멋 대로 합리화했다.

‘그래, 처음부터 말도 안 됐어. 성녀 아벨라가 환생해야 했을 몸이든 뭐 든, 일단은 내 몸이잖아. 백속성의 능력을 전부 사용할 수 있는 내가 암속성일 리 없지.’

게다가.

‘무속성 빼고는 두 개 이상의 속성을 가진 제국인이 있다는 설정 같은 건 없었어. 처음부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였다고. 괜한 걱정이었 어.’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나 다음 순간, 아자르가 냉정하게 덧붙이는 말에 나는 절망했다.

“가장자리가 아주 불쾌할 정도로 시커멓게 빛나는.”

“…….”

“여태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음흉한 백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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