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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84화 (84/221)

84화.

옷을 갈아입고 가신들을 보러 갈 준 비를 하기 위해 아이샤가 돌아가고, 하데스와 록사는 그의 서재에 와 있 었다.

아이샤의 주문을 받기 위해 록사는 마력이 회복될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 야 했다.

그의 임시 거처로 낙점된 하데스의 서재에서 록사는 아이샤를 찬양하느 라 정신없었다.

“아아 …….”

그는 꿈꾸는 표정으로 두 손을 맞잡 은 채 중얼거렸다.

“지는 사랑에 빠져버린 것 같지 라…….”

“뭐? 죽고 싶어?”

곧바로 하데스가 인상을 구기며 대 꾸했다.

흉흉한 기세에도 록사는 패기 있었다. 못마땅한 듯 입술을 삐죽거리며 그가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하께는 과분하 고 과분하고 또 과분하신분이지라.”

“하…….”

어이없다는 듯 한숨 쉬면서도 하데스는 내심 기분 좋은 눈치였다.

「전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전 견 딜 수 없을 거예요. 」

「만약 돌아가시기 라도 하면 나, 따라 죽을 건데. 제가 죽길 바라진 않으 시죠? 」

부끄러운 것도 모르는지 록사의 앞에서 당당히 말하던 아이샤의 목소리 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당연히 아이샤가 걱정하는 일 따위 야 일어날 일 없겠지만, 그녀의 귀엽 고 쓸데없는 걱정은 하데스를 퍽 기 쁘게 했다.

“백전백승인 전하의 위명을 모르는 것도 아니실 텐디, 부인께서 징허니 전하를 애끼시는 모양이어 라…….”

부럽다는 눈으로 록사가 말하자 하데스가 헛기침하며 거만하게 몸을 당 겨 앉았다.

“뭐, 그런 편이야.”

“나도 나름 착하게 살았는디 왜 저 런 능력 있는 미인을 코빼기도 만나보지 못하는 거지라……. 신은 불공 평해…….”

2억짜리 현금 박치기를 대신하겠다는 하데스의 말에 아이샤는 버럭 성을 내며 말렸다.

「전하와 공자님을 위한 제 선물인 건데, 그걸 전하 돈으로 계산하게 하 다니요? 저 돈 있어요. 걱정 마세요. 록사 씨와 저의 거래니 전하는 끼어 들지 말아요. 」

아무래도 지참금으로 융통해 온 돈 이 조금 남아있는 모양이었는데, 그 냥 가지고 있으라고 설득하려다가 하데스는 관두었다. 한다면 하는 아이샤가 쉬이 물러서지 않을 걸 알기에.

뭐, 어차피 이 공작가의 재산이 전 부 그녀의 것이다. 내 돈이 네 돈이고 네 돈이 내 돈이니 크게 상관없겠지.

돈 문제보다는 아이샤의 마음이 퍽 감동적으로 느껴져서 하데스의 입꼬 리는 연신 내려갈 줄을 몰랐다.

“그르케 좋으셔라?”

답지 않게 아이샤를 떠올리며 히죽 거리는 하데스의 모습에, 록사가 약 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흠흠.”

민망했다. 금세 표정을 갈무리하며 하데스가 헛기침했다.

“누구는 조—오—으시겠네. 아내가 아프지 말라고 성력 털어서 물약 주문까지 해줘, 돈도 많아, 착해, 예 뻐…….”

“불만이면 너도 결혼하든가.”

“있어야 하지라!”

불퉁하게 소리 지르는 록사를 보며 하데스가 킬킬거렸다.

한참 구시렁거리던 록사가 문득 뭔 가 생각났다는 듯, 찝찝한 표정으로물었다.

“한디 대신관 일은 어떻게 되셨슴 까?”

잠시 잊고 있던 미하일 얘기가 나오 자 하데스의 표정도 굳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당장 아이샤를 신전으로 데려가려 하다가, 갑자기 한 발 물러섰었지.

말은 아이샤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했어도, 황실에 진정서를 넣어 일을 키우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낌새는 없었다.

아이샤는 분명 무효화를 개방했고성녀로 각성했지만, 그 사실을 아는 건 지금 아이샤 그녀와 하데스 자신, 그리고 미하일 라이가르트 대신관뿐 인 듯했다.

“걱정되는디…….”

아, 록사도 추가.

아무튼 미하일이 일을 키우기 전에 제국법을 개정하고 되돌리지 못하도 록 도장만 땅땅 찍으면 된다.

이후로는 황실과 신전이 뭐라고 하 든 아이샤를 내놓지 않겠다고 배짱부 릴 생각이었다. 이미 공작부인이 되 었는데 성녀라고 신전에 들일 것을 강요하겠는가, 어쩌겠는가?

물론 그전에 황실이 아이샤가 각성 한 사실을 알고 신전의 편을 든다 하더라도 그녀를 내어줄 생각은 눈곱만 큼도 없지만.

하데스는 필요하다면 황실과의 전 쟁도 불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신관이 부인을 어떻게 해보려 하면 어쩌실 거지라? 암속성 능력자 라는 증거도 없고, 안 그래도 전하를 견제하는 황실에서 대신관 손을 안 들어줄 리가 없어 뵈는데예.”

한껏 걱정을 담아 중얼거리는 록사를 바라보면서, 하데스가 활짝 웃었다.

“내가 다치거나 죽는 걱정을 하는 것만큼이나 쓸데없는 걱정이군.”

“예?”

“내가 두 눈 뜨고 아내를 빼앗길 멍 청한 놈으로 보이나?”

하데스의 붉은 눈이 번쩍 빛났다. 형형한 살기에 록사가 흠칫 몸을 떨 었다.

비죽 올라가는 입꼬리가 그렇게도 무서워 보였다.

역시 대악마…….

“허튼 짓거리 하는 놈들은 다 죽인다.”

“예, 예. 그러셔야지라.”

“그게 대신관이든, 황제든.”

눈을 빛내는 하데스의 무시무시한 의지에 록사가 긴장으로 꿀꺽 침을 삼켰다. 그가 허허, 어색하게 웃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 아이샤보다는 대신관이나 황제 목숨을 걱정해야 할 터였다.

***

몸을 되찾고(?) 난 이후의 나는 날 아갈 듯 가벼웠다. 앤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당장 내게 새 옷을 입히고 꾸며주었다.

아벨을 보러 갈까 했는데 앤에게 들 어보니 산책을 마치고 낮잠 자는 중이라고 해서, 나는 본격적으로 별러 왔던 일을 하러 가기로 했다.

뭐냐고?

“가스펠 백작이랑 라즐리 백작은 어디서 뭐 하는지 모르겠고, 가렌 백작은 지금 연무장에 있다는 외성 하녀 언니의 따끈따끈한 보고가 있었습 니다, 아가씨.”

앤은 첩보 영화의 주인공처럼 주변을 경계하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에 나 또한 스펙터클한 첩보물 찍 듯이 앤에게 장단 맞춰주었다.

“그런가, 앤. 대상이 연무장에 나간 이유는 뭐지?”

“로만 경을 필두로 한 루버몬트 정예군이 현재 연무장에서 훈련 중이라는 보고입니다. 아무래도 군벌 출신 가렌 백작이 훈련 참관을 하러 나간 모양입니다.”

“흠……. 왠지 듣기만 해도 뭔가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인걸.”

“저도 동의합니다, 아가씨. 가신들 이 하나같이 간섭 못 해 안달이던데, 대상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케이. 대상의 위치와 현 상황 파 악 완료. 지금부터 연무장으로 간다.”

“옙. 얼굴한번 살피셔요.”

없어 보이지 않도록 화려하게 차려 입은 드레스와 단정하게 꾸민 머리, 그야말로 기품 있는 귀부인처럼 꾸며진 모습을 거울로 한번 확인하고 나는 방을 나섰다.

가신들을 바로 맞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마 나를 향한 그들의 불만 은 하늘을 찌르고 있을 것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지만 어디 그런 걸 이해해줄 그들인가?

루버몬트의 예비 안주인으로서 나는, 괜히 책잡힐 짓을 하거나 하데스 에게 싫은 소리를 듣게 할 생각은 추 호도 없었다.

“십 미터 전방에 대상 확보했습니 다, 아가씨.”

연무장으로 향하는 내 등 뒤를 쪼르 르 따르던 앤이 급히 속삭여 말했다.

과연, 내로라하는 군사력을 자랑한 다는 군벌 귀족 로마르디오 가렌 백작과의 첫 만남이었다.

루버몬트 정예군들과,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적발과 거대한 덩치의 아자르, 그 사이의 풍채 좋은 금발 중년 이 아마 가렌 백작일 터.

나는 머릿속으로 기품 있는 인사말을 준비하며 그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러나 연무장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펼쳐져 있는 광경에 준비했 던 말들을 전부 잃고 말았다.

‘대체 뭐 하는 거야?’

군대 문화가 대충 이렇다는 걸 모르 진 않았다. 나는 전생에서 병역의무 가 필수인 분단국 사람이 었으므로.

대학 시절 나라의 부름을 받아 성실 히 국방의 의무에 임하던 대한 건아 들을 수 명 동기로 두기도 했었다. 그 들은 가끔씩 내게 전화하며 죽겠다는 소리를 해댔더랬지.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냐며 폭력 은 없을 거라더니 다 거짓말이더라.

죽겠다. 김 병장 개새끼 진짜 X나 패고 싶다……. 」

「잘 사냐? 난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데……. 오늘 어떤 미친놈이 취침시간에 여친이랑 전화하다 걸렸다. 연대책임이라고 아냐? 오늘 그놈 때문에 우리 내무반 전체 처맞느라 먼지 풀풀 날렸잖아. 나 쪼인트 잘못 까여서 뼈 부러지는 줄 알았다. 」

당시에는 이해 못 할 군대 용어를 써가며 폭력을 하소연하는 동기들의 전화가 그렇게도 귀찮았는데…….

‘그건 너희들이 내게 친 S. O. S. 였을 까……?’

폭력이 있어봐야 얼마나 심하겠어,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들의 현실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대열을 맞춰 정렬한 루버몬트의 정예군들은 전부 연무장의 돌바닥에 머리를 박고 뒤로 손, 허리를 직각 가까 이 세운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인간이 어떻게 저런 포즈로 버틸 수 있지……?

무심한 표정으로 선 가렌 백작을 보 아하니, 군 기강을 잡겠답시고 그가 내린 명령인 모양.

군단장인지라 체벌은 면한 듯한 아자르는, 가렌 백작의 옆에 서서 이를 악문 채 부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얼마 없을 인내심을 그러모아 겨우 하극상은 참고 있는 듯했다.

내 기척이 가까워지자 가렌 백작이 돌아보았다. 그는 조금 놀란 표정을 하더니, 먼저 살짝 고개 숙여 인사했다.

“에스클리프 영애이시군요. 전하께는 이번에 뵙지 못할 거라 전해 들었는데…….”

그의 옆에 서 있던 아자르도 나를 봤다. 역시나, 갑자기 제 크기로 돌아온 내 모습에 놀란 눈치였다.

나는 백작에게 웃으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가렌 백작님. 몸 이 좋지 않아 요양하던 중이었습니다. 한데 오늘은 움직일 여력이 되어 인사드리러 왔답니다. 예비 공작부인 으로서, 가신들이 방문했는데 칩거하 고 있으면 예의가 아니지요.”

“아, 그러시군요. 하마터면 영애를 오해할 뻔했습니다. 여기까지 와 인 사 주셔서 감사드립 니다.”

가렌 백작은 정중히 다시 한번 고개 숙였다.

알고 있는 그의 성격대로, 마냥 무 례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직 공작부인도 아닌 일개 귀족 영애에게 이렇 게 깍듯이 굴어주는 걸 보면.

그러나 백날 북부의 마수들 잡으러 다니느라 고생하는 우리 성의 군인들 에게 다정한 타입은 확실히 아니었다.

나는 추위 속에서 돌바닥에 머리 박고 오들오들 떠는 그들의 모습을 차 마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최대한 백작의심이기를 거스르지 않 도록, 해사한 웃음과 함께 나는 부탁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백작님, 첫 인사를 나눌 분위기가 아닌 듯하니 병사 들을 좀 풀어주시겠어요?”

내 말에 가렌 백작의 표정이 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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