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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83화 (83/221)

83화.

“이제 필요 없으니 꺼져라. 꼴도 보 기 싫네, 진짜.”

험악하게 중얼거리는 하데스는 록사를 정말 죽일 생각까지는 없어도 적잖이 화가 나기는 한 모양이었다.

약 한 번 잘못 준 걸로 잔뜩 구박받는 록사가 왠지 안쓰러웠다.

내가 그를 옹호하고 나섰다.

“전하, 이제 그만하세요. 록사 씨가 알고 그런 것도 아니고, 해결해주신 다고 왕복 한 달 반 거리를 이렇게 빨리 와주기도 하셨잖아요. 사람 민 망하게 왜 그래요?”

“하모, 그라지라! 개당 백만 노르트짜리 풍속성 물약을 몇 개나 까믄서 맨몸으로 북부까지 온 지 한테 너무한 거 아니셔라?!”

록사는 냉큼 내 뒤로 돌아와 숨으며 하데스를 향해 소리쳤다.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터뜨린 하데스가 실로 대악마처럼 험 악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당장 안 왔으면 나한테 불살라질 까 봐 무서워서 그랬겠지. 그대가 고 생할 게 걱정돼서 여기까지 달려왔을 놈 같아?”

“아인디예! 햇살 같고 설산 같은 공작부인께서 지의 실수에 곤욕을 겪고 계실 거를 떠올리니 눈물이 앞을 가 리는 거 아니겠어라?”

“네, 네.”

“그래서 한달음에 북부까지 달려온 지의 진심이 안 느껴지셔예? 부인은 이해하시 지라?”

“그럼요, 네.”

순순히 인정하자 록사는 기세등등 한 표정으로 웃으며 하데스를 바라봤다.

빠직, 하데스의 이마에 핏줄 솟는 게 보였다.

그는 당장 록사의 멱살을 잡아 탈탈 털고 싶은 듯했지만, 사이에 앉은 내 눈치를 보다가 한숨 쉬고 관두었다.

록사가 놀라운 탄성을 내질렀다.

“히야……. 대체 몇 년 만에 이 루버몬트의 실세가 바뀐 것이지라? 이 록사는 비로소 대악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북부에 평화의 그림자가 드리웠 음에 감격, 또 감격할 수밖에 없겄어 라……!”

와, 정말 말 많고 정신 사나운 사람이다.

그래도 유쾌한 모습이 거슬리지는 않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록사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아직 마력 이 회복되지 않으셨을 텐데 편히 쉬 다 가세요.”

“흡……. 부인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이 록사는 압도적으로 감사드리지 라! 사실 중간중간 물약 능력치를 증 대시킨다고 얼마 회복되지도 않은 마력을 섞어 쓰며 오느라 …….”

흑흑 우는 시늉을 하며 말하던 록사 가 돌연 내 앞에 손을 뒤집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놀랐다.

“어머!”

마술사가 손 안에서 번쩍 장미를 피 워내듯이, 록사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이름 모를 푸른색 꽃 한 송이가 끼워져 있었다.

그는 빙긋 웃는 얼굴로 그것을 내게건네며 덧붙였다.

“따악, 요래 꽃 한 송이 선물할 마력밖에 남지 않아서라.”

“고마워요. 너무 예뻐요.”

제법 센스도 좋지 않은가. 나는 감 동한 표정을 그대로 보이며 감사인사 했다.

또 존재감이 사라져가는 하데스를 슬쩍 바라보니, 역시나 그는 못마땅 한 표정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창조 마법은 정말 대단하네요. 너무 멋있어요.”

“하핫! 별 거 아니지라. 마력량이 눈물겨운 수준이라 잡기밖에 못 부리 는데예…….”

“잡기라뇨. 이렇게 로맨틱한 마법 이 어디 있어요? 제 또래의 귀족 영애들이라면 백이면 백 록사 씨의 마법에 마음을 빼앗길걸요.”

“헉! 진심이시지라? 어째, 저 좀 괜 찮았어예?”

“그럼요. 왜 노총각이지? 이해가 안 되네?”

“크헉 ……. 글긴 하지라? 지가 도망 자신세만 아니라도 참한 마누라 만나서 토끼 같은 자식들 순풍순풍 낳 고 자알 살 텐디 …….”

“그럼요, 그럼요.”

“아주…… 죽이 잘 맞네.”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데스가 험악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나와 록사는 잠시 그런 하데스에게 시선을 줬다가,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정말 놀랐어요. 자기 속성이 아닌 마법도 복용만 하면 사용 가 능한 약이라니. 원리가 뭐예요?”

“궁금하심까? 하몬 알려드려야지라! 직접 보여드릴게예!”

“뭐야? 언제는 사업 기밀이라며?”

하데스가 발끈해 외쳤지만 록사는 간단히 무시하고는 부탁했다.

“간단한 능력 한번 써보시지예, 전하.”

“마력은 남았고? 빌어먹을 꽃 한 송 이 만들 힘밖에 안 남았다며?”

“에이, 말은 그렇게 센스 있게 하는 거죠.”

내가 손을 휘휘 저으며 끼어들자 록사가 히죽 웃으며 그렇지라, 하고 맞 장구 쳤다.

못마땅한 둣 입가를 씰룩이면서도 하데스는 순순히 마력을 발동시켰다. 주변의 흐름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하데스의 주변에 붉은 오 오라 같은 것이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마력임을 깨달았다.

“우와 …….”

“기본 원리는 이렇게, 마력을 눈에 보이는 상태로 재창조하는 것이지라. 이제 이거를…….”

록사가 가볍게 손짓하자 붉은 오오라가 작은 구 모양으로 재배치되어 그에게 모여들었다.

딱!

그가 손가락을 한 번 퉁김과 동시에, 붉은색의 마력구는 하나의 약병 이 됐다. 검지만 한 약병 안에 붉은색 액체가 찰랑거렸다.

“요렇게 하믄, 복용 시 발열의 이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물약이 완성되는 원리지라. 북부는 날이 드릅게 추운 께는 체온 떨어졌을 때 쭈욱 들이켜 셔라. 선물.”

록사가 빙긋 웃으며 내게 방금 만든따끈따끈한 발열 물약을 건넸다.

“감사해요! 저, 록사 씨. 부탁이 있 어요.”

“예?”

그의 대단한 능력을 들었을 때부터 별러오고 있었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는 록사를 향해 부탁했다.

“백속성의 마력, 그러니까 성력도 이렇게 약으로만들 수 있는 거 맞 죠?”

“그라지라.”

“그럼 제가 성력을 드릴게요. 혹시 회복의 물약을 조금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

내 부탁에 록사의 고개가 더 갸웃하 며 기울었다.

“회복 물약, 말이어예……?”

“이봐, 아이샤.”

하데스가 곧바로 끼어들었다.

“왜 그런 귀찮은 짓을 해? 쓸 데가 어디 있다고. 매번 말하지만 그대가 그렇게 노력할 필요, 없다고 했어. 난 그대의 도움 없어도 충분히 강해.”

그의 말에 록사가 알겠다는 듯 탄성을 터뜨렸다.

“전하가 걱정되어서 그러시는 거지 라? 그런데 정말로, 굳이 왜? 이제 국에서 대악마, 아니, 공작 전하 일신을 걱정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이 없을 텐데예…….”

그건 요절할 운명인 하데스를 몰라 서 하는 소리였다.

나는 아벨과 하데스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놓고 싶었다.

우선 아벨이 폭주하지 않으면 가장 좋겠기에 그의 멘탈을 관리해주고 있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소설대로 아벨에게 문제가 생길 확률도 충분히 있었다.

그렇다면 하데스가 아닌 내 능력을 이용해 아벨의 폭주를 막아야 했다. 화속성의 하데스는 아벨의 정신 붕괴를 상쇄할 능력도, 정화할 능력도 없 으니까.

한데 만약. 내가.

‘아벨이 폭주하게 되는 그날, 아벨의 곁에 있어줄 수 없다면…….’

문득 불길함이 치고 올라오는 것이다.

백작이 어제 가져다준 재수 없는 책의 내용 때문인지 뭔지…….

신을 믿지 않는 불세출의 천재들이 하나같이 요절하고야 말았다는 그 내용이 그저 우연히 벌어진 삶의 기록 이 었는지, 아니면.

‘운명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전지전능한 용신 가이오니아의 뜻대로 굴러가는 이 세계.

그곳에서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하데스의 요절하는 미래가, 신의 뜻일 지 아닐지…….

‘만약 운명이라면 어떻게든 일어나 고야 말 일이니까. 노력하더라도 아벨은 폭주하고, 내가 곁에 있어주려 고 해도 어떻게든 그러지 못하는 상 황이 올지도 모르지.’

나는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 해두고 싶었다.

하데스가 죽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처음 북부에 왔을 때 그가 죽고 난 이후 아벨과 평화로운 북부 라이프를 즐기려고 기대했던 내가 맞는지 의아했다.

나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인 하데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난 괜찮다니까?”

“제가 안 괜찮아요. 전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전 견딜 수 없을 거예요. 만약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나, 따라 죽을 건데. 제가 죽길 바라진 않으시 죠?”

“아니…….”

당황하던 하데스가 헛웃음을 터뜨 리며 이마를 불잡았다.

“진짜 못 말리겠군.”

“록사 씨, 부탁할게요. 당장 쓸모가 없을지는 몰라도 만들어두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테니까.”

“그거야 당연하지라. 성력은 구하 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힘인데예. 한 데…….”

록사가 히죽 웃으며 양 손바닥을 잡 아 비볐다.

“……몇 개나 생각하고 계시는지?”

왜인지 그의 표정이 음흉한 수전노처럼 보였다.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최대한 많이요. 록사 씨의 마력이 회복되는 대로만들어주세요. 가능하신 만큼.”

“호오…….”

눈을 빛내며 록사가 낡은 로브 안으 로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그가 가슴 팍에서 꺼낸 것은…….

‘주판?’

주판 비슷하게 생긴 도구였는데 셈하는 데 쓰인다는 원리는 똑같아 보였다.

그는 주판 위의 작은 돌들을 재빠른 속도로 휙휙 튕기며 말했다.

“제 마력량으로 부인께서 주문하신 회복의 물약을 최대로만들려면 약일흔아홉 개, 개당 기본 백만 노르트에 만들어본 경험 없는 종류인지라 창조 계산 수당 두 배로 쳐서 이백 만…….”

얼마나 빠르게 손을 놀리는지 주판 위에서 춤추는 손가락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나는 눈을 비비며 록사의 속도를 따라가려 애썼다.

“일억 오천팔백에서 첫 주문 혜택으로 1할 할인율 적용해드리면 일억 사천이백이십록사는 마지막으로 주판을 탁! 튕 기며 계산을 끝마치고는, 나를 바라보며 해사하게 웃었다.

“그런데 우리 아름다운 공작부인의 첫 주문이신데 정 없이 굴 수는 없겠 지라? 깔끔쌈빡허니 뒷자리 깎아가, 총 일억 사천만 노르트 되겠습니다, 고객님.”

“일억, 뭐? 저 정신 나간 사기꾼 놈 이 진짜 …….”

듣고 있던 하데스가 발끈했지만, 나는 록사의 칼 같음에 잠시 멍해졌을 뿐 곧 만족스럽게 웃었다.

남의 노동력을 대가 없이 요구하는 마음이 어찌 불편하지 않을 수 있을 텐가.

인재들의 능력을 사는 데에는 그만 한 대가를 충분히 지불해줘야 하는 법이었다.

나는 몸을 당겨 앉고는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인은 필요 없어요. 북부까지 와 주신 록사 씨의 고생 값까지 제대로 쳐서 앞자리 올리죠.”

“예?”

“2억 노르트.”

“예에에에?!”

내가 고민 한 번 없이 고개를 끄덕 인 것도 모자라 팁까지 올린 데에 놀 랐는지, 록사의 실눈이 번쩍 뜨였다.

“지불 방식은…….”

그렇지만 내가 누군가. 돈이라면 썩 어난다 이거야.

“현금 박치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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