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전하는 왜 신을 믿지 않으세요?”
내가 묻자, 가만히 양손으로 이마를 짚고 고뇌하던 하데스의 시선이 옮겨왔다.
그는 말없이 나를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 나도 궁금하군.”
“네?”
애매모호한 대답이었다.
“제국인들이 신을 믿는 건 거의 본 능이지. 부모를 부모라고 인지하는 것처럼.”
“그렇죠.”
“그런데, 글쎄……. 역시, 나는 잘 모르겠어.”
그는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고뇌하는 표정을 했다.
하데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내 본능이 뼛속까지 제국인이 었다면 몰랐겠지만, 전생의 기억이 남아있기에 어설프게나마 하데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의 존재를 믿는 거랑, 신을 믿는 거랑은 다르달까.’
이 세계의 ‘신’에 대한 개념은 내 전 생의 세계와는 조금 달랐다.
내 전생에는 이 세계보다 훨씬 많은 나라가 있었고, 수많은 건국 설화들 이 존재했고, 양 손가락으로 꼽기도 힘들 만큼의 종교들이 있었다.
신들은 그 존재를 중명할 수 없는 허구에 가까웠으며, 그렇기에 나를 포함해 무신론자들이 많은 건 당연했다.
신을 믿는 종교인들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세계.
그 속에서 신은 그저 인간의 어떤 결핍을 충족시키고 약한 정신을 기댈 수 있는 초월적인 허상의 절대자로 존재할뿐이었다.
그러나 이 세계는 달랐다.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수많은 중거들이 있었다.
신의 권능이라는 마력을 인간이 사용할수 있는 것, 신이 내린 축복이라는 성력, 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암속성 능력자의 실존.
게다가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드래곤 가이오니아이외에는 어떤 허상의 신들도 존재하지 않는 유일신의 세계였다.
가이오니아의 후손인 크레센타 황실의 황족들은 여전히 막강한 마력을 보유한 채 제국에, 나아가 세계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오래전 가장 사랑하던 자식에게 배 신당해 인간의 껍데기를 잃고 신의 몸으로는 자취를 감추고야 만 가이오니아였지만, 여전히 모든 인간들이 그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이유였다.
신의 후손이 아닌 타국의 인간들마 저 제국인들을 경외하고 가이오니야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 세계에서, 가 장 축복받은 제국인이라고 해도 과 언이 아닐 하데스가 무신론자라는 사실은 퍽 놀라운 일이 맞았다.
‘그렇지만…….’
신의 존재는 믿지 못해도 신에게의 지하는 이들이 존재했던 전생의 세계처럼, 신의 존재는 믿더라도 신에게 의지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 겠지.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신이 존재한다는 건 부정하지 않 으시는 거죠?”
내 물음에 잠시 침묵하던 하데스는 돌연 손바닥 위에 작은 불씨를 피워 냈다.
가만히 일렁이는 불꽃을 응시하던 그가 말했다.
“존재는 하겠지.”
마력의 원천. 신의 힘.
아무리 하데스라도 신의 존재를 부 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나를 지배하는 절대자가 존재한다 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내 세계에 신이 굳이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나야.”
“전하다운 생각이시네요.”
자신감 넘치는 그의 발언에 나는 옷었다.
“그런데 확실히 백작의 말대로, 겉 으로라도 신을 믿는 척하지 않으면 황실과의 관계가 위태롭긴 하겠어요.”
“유약한 멍청이들이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을 하기 때문이야.”
쯧, 혀를 차는 하데스를 보며 나는 갸웃했다.
아무래도 황실을 유약한 멍청이들이라고 칭하는 것 같은데…….
“내가 황좌에 욕심 있다고 생각하 고 있거든.”
“아, 확실히.”
나는 동의했다.
“그럴 만도 하겠네요.”
아벨을 떠올려보면 쉬웠다.
그는 단신으로도 이제국 전체를 위 협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한 능력자였다.
마음만 먹으면 황제가 되는 것도 어 렵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알았으니, 원 작에서도 황실은 철저히 루버몬트를 경계했었지.
그리고 그 아벨만큼이나 강한 존재 가 바로 하데스, 그였다.
내가 황제라도 경계할 수밖에 없겠다.
“그런데 참 멍청한 걱정이 아닌가. 어쭙잖은 능력을 가진 녀석들이나 황좌에 관심 있겠지. 내가 뭐가 아쉬워서?”
느슨하게 몸을 당겨 앉은 하데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코웃음 쳤다.
“권력? 충분해. 재력? 넘치지.”
“이야…….”
틀린 말은 아니지.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그의 자의식 과잉에는 명백한 근거가 있었으니까.
“맞아요. 황족들은 바보네요. 황좌가 탐났으면 진작 쿠데타라도 일으켜서 그 자리에 앉았을 전하인데요.”
“맞아.”
“귀찮아서 안 하는 건데.”
“맞아.”
“음, 맞아.”
“가지고 싶어?”
“네?”
슬쩍 입꼬리를 기울인 하데스가 테이블 위로 쭉 얼굴을 들이밀었다.
“황좌 말이야. 그대가 원한다면 기 꺼이 노력해보지.”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도 전혀 탐 나지 않네요. 전 소소하게 전하랑, 공자님이랑 맛있는 거 먹고 산책하는 일상이 좋아요.”
“정말로 소소한 바람이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죠.”
내 말에 하데스가 웃었다.
“그나저나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신을 믿거나 믿지 않는 건 전하의 자 유지만, 황실이랑 굳이 충돌할 필요는 없으니 가스펠 백작의 말대로 하는 게 어떨까요?”
“뭐? 후계자 공표식에 가이오니야상을 세우고 기도문을 읊으라고?”
“그러면 적어도 머리 아프게 황실 이랑 눈치싸움 하는 분위기는 줄어들 지 않겠어요?”
“싫어.”
“싫어요?”
“어. 그냥 싫어. 그대의 말이 백번 맞지만, 왠지 싫어.”
“신을 …….”
“…….”
“……인정하기가 싫은 것처럼 들리네요.”
“비슷한 것 같아.”
나는 가만히 하데스를 바라보았다.
신의 거대한 축복을 받고 있는 강한 인간이, 본능적으로 신을 거부하는 모습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가스펠 백작이 두고 나간 책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요절한 불 세출의 천재들.
역시, 상당히 찜찜한 책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고민을 안 해볼 순 없겠군. 5년 전이었다면 이런 걱정 같은 거 필요 없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굴었을 텐데…….”
5년 전이라면…….
“공자님 때문에?”
“맞아.”
고개를 젖히고 눕둣이 앉은 하데스 가 큰 손으로 눈을 가린 채 한숨지었다.
“지켜야 할 게 생긴다는 건 곧 약점 이 생긴다는 뜻이지. 아벨을 데려오 고 나서야 깨달았어.”
혼자라면 성격대로 행동했을 테지만, 지켜야 하는 아벨의 존재가 있기에 경솔하게 굴 수는 없다는 거였다.
과연 1등 아버지 …….
나는 그다운 발언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대도.”
“……네?”
“내 약점이 됐지.”
아벨처럼 나도, 하데스의 ‘지켜야 할 것’의 범주에 들었다는 뜻일까?
그의 말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 지만 왜인지 부끄러워지는 바람에 나는 딴청 피웠다.
“전 신경 쓰지 마세요. 알아서 잘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대가?”
“네. 전하의 약점이 되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공자님도, 지켜주시면 감 사하겠지만…….”
아벨은 곧 그런 걱정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해질 테니까.
“왜인지 전하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강해지실 것 같지 않아요?”
장난스럽게 큭큭 읏는 나를 보며 하데스가 동의했다.
“맞아. 그렇겠지.”
“그러니까 전하 마음 가는 대로 행 동하세요.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글쎄, 그렇게 스트레스 받는 건 아니야. 아벨과 그대가 내 약점은 맞지만,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했으니까 말이야.”
“대가?”
“내가 원한 거였지. 아벨도, 그대도 내 곁에 있었으면 하니까. 그로 인해 내가 감당해야 할 게 있다면 기꺼 이.”
하데스는 피식 웃어 보이며 검지를 뻗어 내 턱 끝을 살짝 어루만졌다.
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괜히 발 끝만 바라보았다.
말뿐이라도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 가 되는 건 처음이었다. 왜인지 가슴 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
그날은 가스펠 백작이 가져다준 책을 읽으며 새벽을 보내다 하데스의 집무실 테이블 위에서 그대로 잠들었다.
일어나서는 약속했던 대로 아벨이 능력 개방 연습을 하는 걸 봐주고, 산 책을 마친 뒤에 다시 하데스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새벽 내내 잤는지 안 잤는지 모를 하데스는 여전히 서류 정리에 열중이 었다.
조금 쉬는 게 어떻겠냐는 내 말에도 하데스는 그저 괜찮다며 고개 저었다.
공작 일만으로도 이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당연히 황좌는 엄두도 안 나겠지.
나 같아도 사양이다, 사양.
퀭한 눈으로 서류를 뒤적이는 하데스를 잠깐 보다가, 나는 낑낑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퍽 힘들어 보였는지 하데스가 눈치 껏 책장 넘기는 걸 도와줬다.
“감사합니다.”
“그 재수 없는 책은 뭐 재미있다고 계속 읽고 있어?”
“생각보다 흥미 있어요.”
“참.”
쯧 혀를 차던 하데스는 다시 서류 작업에 열중했고, 나는 안타깝게 요 절하고야 만 천재들의 삶이 기록된그 ‘재수 없는’ 책을 계속 정독했다.
약간은 지루한 낮 시간이 그렇게 무 르익어갈 때쯤이었다.
[전하!!!]
갑자기 허공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 려왔다.
사각사각 바쁘게 펜 소리를 내던 하데스가 갑자기 전기 라도 통한 사람처럼 움찔했다.
덩달아 놀란 내가 소리 쳤다.
“뭐, 뭐지?!”
“너 이 새끼, 죽고 싶냐?”
[아직 안 드셨으면 좋겠지마는 아 무래도 지가 드린 기력보충제, 진작에 공작부인이 드셨겠지라?!]
“이 개새끼가 진짜……. 너 때문에…….”
[왠지 엄청 지 욕을 하고 계실 것 같은디 어차피 지는 안 들려예!]
“야, 이…….”
[죽고 싶지는 않아서 짐 열심히 약 빨면서 그쪽으로 가고 있응게 준비 좀 해놔주셔라! 10분! 마지막 순간이 동 장소는 전하 집무시……]
목소리는 거기서 끊겼다.
난데없이 허공에서 목소리가 토해진 상황은 놀라웠지만, 낯설지는 않 았다.
전음(傳音)이라고 불리는 풍속성의 능력.
1차 개방을 마친 능력자라면 바람의 흐름을 이용해 텔레파시처럼 먼 곳으로도 자신의 목소리를 보낼 수 있었다.
아벨이 애용했던 풍속성의 능력이 므로 못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양쪽 다 전음의 이능을 사용해 야 먼 곳에서도 '대화'가 가능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 전음을 사용한 능력자의 목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꼭 하데스와 대화가 되는 것 같았던 모습이 놀라웠다. 웬만큼 친근한 사이가 아닌 모양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