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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73화 (73/221)

73화.

“으잉? 엄청 별 거였던 거 같은 데?”

“아니예요, 아니예요.”

“에이, 뭐가 아니예요. 말해줘요. 응?”

“정말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럼 내 일부터 제가 연습하는 거 봐주시는 거죠?”

“그럼요.”

“점심 먹고 매일 산책하는 시간이랑은 따로예요. 산책 끝나고 계속 같이 있어주시는 거예요.”

아벨은 함께하는 시간을 아주 철저 히 계산하며 말했다.

나와 조금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둣했는데, 그 모습이 참 웃겼다.

굳이 이유를 만들어 나를 보려 하지 않으려고 해도 괜찮은데.

나는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너랑 같이 있고 싶단 말이야!

“그래요, 그래요.”

“헤헷…….”

방긋 웃는 아벨의 손을 잡고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백작님은 내일 도착하시겠죠?”

“네, 아마도……?”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군요.”

나는 끓어오르는 전투력을 느끼며 음흉하게 웃었다.

가스펠 백작.

사랑스러운 아벨의 유년시절에 사 사건건 훼방을 놓았던 그 뱀 같은 늙은이를 제대로 응징해줄 시간이었다.

***

정예군이 돌아온 이후 식당은 그들 로 붐볐기 때문에, 하데스는 당분간 조용히 따로 식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상관없었지만 아무래도 아자르를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각자 식사해도 괜찮았는데 그는 굳 이 내 방으로 와 호화롭게 테이블을 차려놓고 마주앉았다.

좋은 점은 우리 귀여운 아벨도 함께라는 것이었다.

왠지 가족끼리만 함께하는 단란한 식사 자리처럼 느껴져서 나는 내심 행복했다.

“송아지 간은 오랜만에 올라오는 것 같군. 가신들이 방문한다고 해서 일부러 준비한 모양이야.”

하데스는 왜인지 시큰둥한 표정으 로 오늘의 메인요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항상 복스럽게 잘 먹었던 그가 맞는 지, 포크로 고기를 뒤적거리는 모양 새가 영 안 어울렸다.

잘은 모르지만 대한민국에 있을 때는, 내장 요리가 퍽 호화 음식으로 취 급받지 않았었나?

이를테면 푸아그라 같은 거.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었지만 비싼 거니 맛은 있겠지, 생각했었는 데…….

이곳에서 눈뜨고 나서는 에스클리프에서 몇 번 맛본 적 있었다.

딱히 내 입맛까지는 아니었어도 그 럭저럭 즐길 만한 정도이기는 했는 데.

제국에서 손에 꼽는 부자가 내장 요리를 어색해하는 모습이 의아했다. 내가 물었다.

“원래 잘 안 나오는 음식이에요? 생 각해보니 북부에 와서 한 번도 못 본 것 같긴 하네요.”

내가 묻자 하데스가 어깨를 으쓱하 며 말했다.

“아니, 북부인들이 좋아하는 음식 이긴 하지. 심지어 이건 루버몬트에 서 처음으로 조리법을 개발한 거야. 먹어 봐. 그대가 여태껏 먹어봤던 내 장 요리랑은 사뭇 다를걸.”

왜인지 하데스가 킬킬거렸다.

“어머, 정말요?”

우리 둘 사이에서 물끄러미 나를 바 라보는 아벨의 시선.

그 이유를 미처 눈치채지 못한 채, 나는 얼른 칼질을 해 고기를 한 점 입에 밀어 넣었다.

‘응……?’

이전에 살던 아이샤 에스클리프는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결코 입이 짧 은 사람이 아니었다.

가리는 음식도 없었고, 딱히 맛이 있지 않더라도 접시를 깔끔히 비우는 게 음식 만들어준 사람에 대한 예의 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건…….

‘이건 진짜 아니다.’

도대체 이걸 음식이라고 만든 걸까?

분명 송아지 간 자체에는 문제가 없을 테다. 퍽 비싸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귀한 재료다.

한데 그 좋은 재료로 이런 음식을 만든다고?

일부러 그랬는지 간을 거의 하지 않 아 입에 넣자마자 비린 내장 향이 강 렬하게 솟구쳤다.

내가 무슨 좀비도 아니고, 제대로 조리도 안 된 내장 요리를 어떻게 먹 으란 말인가?

곧바로 표정이 굳는 나를 보며 하데스가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옆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아벨도 이 맛을 아는 듯, 안타까운 눈으로 어색 하게 웃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다 뱉어내고 싶었지만 하데스와 아벨을 앞에 두고 그런 추 태를 보일 순 없었다.

그냥 맛없다고 미리 말해줄 것이지, 굳이 먹어보라고 해?

하데스가 괘씸했다. 그를 노려보며 나는 손가락 두 개로 코를 막고 최대 한 맛을 느끼지 않도록 조심하며 고 기를 씹었다.

“하! 하! 하하 …….”

꿀꺽. 삼키고 손가락을 뗐지만 입 안에 번진 비린 향은 여전했다.

헛구역질이 나을 듯한 걸 겨우 참으 며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이게 뭐예요?”

“하하, 왜? 맛없어?”

“와, 맛없는 거 알면서 먹어보라고 하고 진짜…….”

“하하하…….”

“제가 웬만해서는 음식에 대한 예 의라 별말 안 하는데, 이건 좀 해야겠 네요.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음식이라 고 내놓는 거래요? 루버몬트에서 만 든 전통 음식이에요?”

“어, 맞아. 하하…….”

“웃겨요? 와, 루버몬트 대단하다. 사람들 혀에 다 무슨 문제 있나 봐. 이런 구린 전통음식은 당장 폐기시켜 야지. 뭘 여태껏 전통이라고 내고 있는 거래요? 안 되겠어. 공자님, 먹지 말아요. 당장 내가 식당에 말해서…….”

“이거 …….”

아벨이 어색하게 웃으며 내 말을 자르고 중얼거렸다.

“……전대 루버몬트 공작부인께서 아버지를 위해서 만드신 거래요.”

……옹?

갑작스럽게 알게 된 사실에 나는 멍해졌다.

아벨은 민망한 듯 웃으며 덧붙였다.

“저도 너무 맛이 없어서 남기려고 했는데 요리사에게 들었어요. 아버지가 어려서 몸이 약하셨을 때 간이 센 음식을 드시면 안 됐대요. 그래서 전 대공작부인께서 직접 식당에 찾아가 요리사들이랑 준비하셨다는데 …….”

“아.”

아니, 그런 건 좀 빨리 말해주지.

민망해진 나를 보며 하데스는 여전 히 킬킬거렸다.

나는 조심스레 다시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

말했던가? 나는 태세전환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건강식치고는 정말 맛있네요? 보통 몸에 좋은 음식들은 넘기기도 싫은 게 태반인데 이건 아주 맛있는 편이에요. 고기도 부드럽고요.”

“푸하하하……!”

하데스는 아주 웃겨 죽으려 했다.

나는 썬 고기를 입 안으로 욱여넣으 며 빙긋 웃었다.

“맞아, 맞아요. 맵고 짜고 달고 자 극적인 음식은 전혀 건강에……. 욱, 아니, 어우, 맛있어. 이건 정말 몸에 좋은 맛이야.”

목으로 넘기지도 않고 연거푸 고기를 썰어 넣는 나를 향해 하데스가 손을 내저었다.

“아, 젠장. 웃겨 돌아가시겠군. 억지로 먹지 마.”

“음? 억지로라뇨? 전 지금 엄청 맛 있게 먹고 있는데?”

맛있다. 맛있다. 이건 내가 제일 좋 아하는 양고기 스테이크다.

그렇게 세뇌하면서 나는 억지로 고 기를 씹고 옆에 놓인 물을 한 바가지 들이켰다.

어우…….

다시 또 칼질을 시작하는 나를, 하데스가 뺀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자기 접시에는 손도 안 대고 턱을 괸 채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고 통스러 워하는 나를 감상 중이 었다.

잔인한 사람.

한 입 더 넘기려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전혀 몰랐네요. 어렸을 때 몸이 약하셨다니. 지금은 아주 소도 때려잡게 생기셨는데.”

“뭐, 어렸을 땐 그랬지. 어머니가 몸이 약하셨는데 그대로 닮아 태어났 다고 들었어.”

“그랬구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 어요?”

“기억 안 나. 내가 다섯 살 때 돌아 가셨던가? 굳이 어머니가 누구냐고 따져야 한다면 애거사가 더 가깝지. 전혀 친하진 않았지만.”

시큰둥한 표정으로 하데스가 말했다.

그는 어머니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전대 루버몬트 공작부인이 퍽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데 이 송아지 간도 걸 수 있었다.

평생 주방이라곤 들어갈 일 없을 귀족 부인이, 몸 약한 아들을 위해 직접 요리사들과 건강식까지 개발할 정도 면 말 다 했지, 뭐.

“다정하신분이었네요.”

“뭐, 나중에 듣기로는 그러셨다고 하더군.”

“공작부인께서 오래오래 살아계셨 으면 좋았을 텐데.”

아벨은 아쉬운 둣 테이블 아래로 발을 동동거리며 중얼거렸다.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귀여웠는 지, 하데스가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 다듬었다.

“그러게. 아마 너도 예뻐해 주셨을 텐데 말이다.”

“그것보다는 …….”

“…….”

“다정한 어머니가 있던 기억이, 아버지에게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 서요.”

아벨의 말에 나와 하데스는 멈칫했다.

와, 어떻게 저런 천사 같은 생각을 하지?

이건 아벨이 천사 같기 때문일까, 어린아이들이 순수하고 착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인가?

하데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잠시 아벨을 빤히 바라보다가, 곧 피식 옷었다.

“그러게. 그런 의미에서는 네가 부 럽군. 넌 다정한 어머니가 생겼잖 아?”

“아! 네! 맞아요. 사실 아버지만 있 어도 행복했는데, 영애가 오고 나서 는 백 배, 아니, 천 배로 행복해요. 그 래서 아버지도…….”

“난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 거든. 너도 있고 …….”

“…….”

아벨을 바라보던 하데스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추더니, 다시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맛없는 건강식도 꾸역꾸역 먹어주는 다정한 아내도 생겼잖아.”

“맛있다니까요?!”

나는 버럭 소리 질러 대꾸하며 몰래 놓아두었던 나이프와 포크를 다시 들 었다.

또 빵 터진 하데스와 어색하게 웃는 아벨을 앞에 두고, 나는 미처 얼굴을 뵙지 못한 시어머니(?)의 사랑이 가 득 담긴 루버몬트의 전통 음식을 싹 싹 비웠다.

괘씸한 하데스는 어린 아벨도 억지로 몇 입 넘긴 송아지 간 요리에 손 도 대지 않았지만…….

아무튼, 왁자지껄한 아침 식사가 끝 나고 달달한 디저트 타임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퍽 평화롭고 단란한 가족 같 았다.

하데스는 나처럼 단 걸 별로 안좋 아하는 듯했지만, 아벨이 먹여주는 케이크를 마다하지는 않는 멋진 아빠였다.

한참 수다를 떨던 와중, 하데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탄성을 터뜨린 건 그쯤이었다.

“아, 맞아.”

그는 왜인지 웃는 얼굴로 옷 안쪽에 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나와 아벨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이게 뭐예요?”

푸른색 액체가 찰랑이는 작은 약병.

하데스는 뿌듯한 표정으로 몸을 젖 혀 앉더니 말했다.

“그거 얼마짜린 줄 알아?”

“비싼 거예요? 뭔데 그래요?”

“천만 노르트짜리야.”

“네?”

“헉?!”

나와 아벨은 놀라 동시에 숨을 삼켰다.

“이, 이 쥐똥만 한 약이요? 약병을 다이아몬드로만이든 건가요?”

“만드는 데 엄청 공을 들인 거지. 내가 그대를 위해서 준비했어.”

콧대가 쭉 올라간 하데스가 말을 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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