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성난 아자르의 발걸음 소리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문을 열기도 전에, 토벌에서 돌아온 수십의 부하들이 시끄럽게 떠 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기애애한 문 너머의 분위기에 아자르가 이를 갈았다.
「내가 바본 줄 아나? 항상 너보다몇 수는 앞서 생각하고 있으니까 괜 히 걱정할 필요 없다. 」
「아무튼 넌 입 무겁게 해라. 그리고 아이샤에게 무례하게 굴면 용서 못 해. 」
하데스는 곧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는 아자르를 달래며 그렇 게 말했다.
그의 반응으로 미루어봤을 때, 아무 래도 미리 의심스러움을 눈치채고 있 었던 듯했다.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 마녀 같은 수상한 여자를 싸고도는 건 확실했다.
뭔가 꿍꿍이를 캐내려 곁에 둔다기 보다는, 진짜로 잘해보려고 하는 미 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주군을 꾀어낸 거야? 정말 마녀 아냐?’
어머니의 모국인 카지트를 넘어 대 륙의 끝 어딘가에는, 묘한 주술을 이 용해 사람을 홀린다는 마녀들이 모여 산다고 들었다.
남부 깡촌의 귀족이 마녀라고 하기 엔 조금 지나친 의심이었지만, 아무래도 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데스가? 그 하데스가?
자신은 절대 그 천사 같은 얼굴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리라.
아자르는 굳게 다짐하며 식당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겠다고 들었던 대로, 상석에 나란히 앉은 하데스와 아이샤가 보였다.
‘어쭈구리.’
아벨도 있었다.
그것도 아이샤의 무릎 위에 앉은, 아주 다정한 포즈로.
결혼은 진작 했고 아들도 있는 십 년은 된 부부처럼 보였다.
아자르를 위해 비워둔 자리는, 상석 인 하데스의 바로 대각선이었다.
불쾌한 티를 그대로 내며 아자르가 쿵쾅거 리는 걸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의 등장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 던 식당에는 다시 훈훈한 조잘거림이 시작되었다.
“제가 그래서 고놈 고블린의 뒷다 리를 이렇게 확!”
“어머!”
“잡아서 쭉!”
“어머나!”
“찢어버렸다는 거 아닙니까? 쪽도 못 쓰고 뒤졌죠. 아무리 대장 놈이더 라도 생각이랄 게 없는 멍청한 것들이라…….”
맞은편에 앉아있는 부(副) 군단장 잭스 바리알은 테그롯 산맥에서의 영 웅담을 늘어놓느라 여념 없었다.
마물들을 잡아 찢어 죽인 재미없는 얘기를 들어주면서도 퍽 반웅 좋은 아이샤 때문인지, 잭스는 신이 나 조잘거렸다.
‘멍청한 새끼.’
아자르는 이미 아이샤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린 듯한 제 부하를 못마땅 한 듯 노려보며 혀를 찼다.
“대단해요, 바리알 경. 전 그런 과물 만나면 꼼짝없이 먹혀야겠죠? 저 도 확! 쭉!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그대가 그런 걸 왜 해?”
“영애가 그런 걸 왜 해요?”
하데스와 아벨이 동시에 인상을 찌 푸리며 아이샤를 쳐다봤다.
‘어쭈구리?’
“말이 북부지, 루버몬트 성은 그 어 느 곳보다 안전해. 내 정예군대가 24시간 버티고 서 있지. 마물들은 무 서워서 여기 발도 못 들여놔. 그대가 고블린 같은 거 만날 일은 없어.”
“저도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맞아요, 영애. 저 한 번도 괴물 본 적 없어요. 걱정하지마세요. 그리고 혹시 괴물 만나도 제가 꼭 지켜드릴 게요.”
아벨이 덧붙이며 아이샤의 목을 끌 어안고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허 …….
아자르는 그 다정한 가족의 모습을 황당한 듯 바라보다가, 곧 앞에 놓인 큼직한 고깃덩이를 집었다.
아자르가 가장 좋아하는 새끼 돼지의 허벅지를 통째로 구워낸 것이었다.
불만 가득한 눈으로 고기를 험악하 게 뜯어먹는 아자르에게, 하데스와 아벨의 시선이 쓱 모여들었다.
‘뭐, 왜, 뭐.’
둘의 무심한 표정은 분명 말하고 있 었다.
괜히 분위기 망칠 생각 마라, 뭐 그 렇게.
‘진짜 쌍으로 미쳤군!’
아자르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연신 분노로 고기를 뜯었다.
“헤헤……. 영애, 있잖아요. 저 영애에게 드릴 말이 있어요.”
“응? 뭔데요?”
아벨이 아이샤에게 안긴 채로 신난 듯 발을 구르며 말했다.
“지금은 안 되고요. 식사하고 나서 저랑 저녁 산책 해주시면 알려드릴게 요!”
“뭐예요, 궁금하게.”
“엄청 좋은 소식이에요!”
“뭔데?”
궁금한 듯 하데스가 끼어들었지만 아벨은 고개 저으며 배시시 옷을 뿐이었다.
“영애한테 먼저 말씀드릴 거예요. 아버지는 나중에!”
“이 녀석이 …….”
“아니, 아드님 키워봐야 다 소용없 지 않습니 까, 주군?”
아자르와 달리 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던 잭스가 킬킬거리 며 끼어들었다.
아자르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아벨을 노려보았다.
뻔하지. 저렇게 싱글벙글 기쁜 얼굴 로 하고 싶은 말이라면, 능력을 개방했다는 사실일 거였다.
공표식이 일 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서 여전히 능력을 개방하지 못해 골 머리를 앓던 아벨이었으니…….
만약 능력 사용에 성공한다면, 당연 히 그가 가장 따르는 아버지인 하데스에게로 쪼르르 달려가 자랑할 줄알았는데.
‘대체 저 여자가 뭐라고?’
아자르는 점점 더 어이없었다.
겉으로만 보면 그녀는 아주 천사 같 았다.
별 볼 일 없는 가문이지만 그래도 귀족 출신인데, 딱히 콧대 높아 보이 지도 않았고.
저런 얼굴로 외로움 잘 타는 아벨에게 다정한 척 접근했다면, 그를 꾀어 내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심지어 하데스까지…….
아니, 하데스가 뒤가 구린 사람 하나 못 알아볼 머저리였던가?
저 해맑은 표정 뒤에는 하데스까지 속여 넘길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이 있을이지도 모른다.
역시 마녀 라든가, 또는 마녀들의 먼 후손이라든가…….
계속 아이샤를 경계하던 아자르는 문득 눈을 빛냈다.
‘맞아. 왜 만나자마자 눈을 떠볼 생 각을 못 했지?’
카지트인의 ‘천리안’.
기본적으로 천리안은 그저 먼 곳도 무리 없이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었 지만, 아자르의 것은 조금 달랐다.
마력을 집중하고 천리안을 발동시 켰을 때, 아자르에게는 남다른 것들 이 보였다.
제국인들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속성들의 색을 닮은 오오라가 그것이었다.
또한 제국인이 아닌 이들에게서도 그들만의 색이 보였다.
음흉한 속내를 가진 자는 퍽 불쾌하 고 어두운 색들이 뒤섞인 오오라가 일렁이곤 했으므로, 아자르는 여태껏제 옆에 둘 사람과 거를 사람을 고르는 데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었다.
모든 카지트인들의 천리안이 이렇 지는 않다.
아자르의 천리안만이 특별한 이유는, 아마 그가 몇 안 되는 크레센타와 카지트의 혼혈이기 때문일 터였다.
‘진실을 보는’ 일족이라는 카지트인 과, 방대한 마력이라는 ‘신의 축복을 받은’ 크레센타인의 혼혈.
그, 조금은 ‘특별한’ 천리안.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알려져 봐야 하등 좋을 게 없음은 이미 수많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하여주군인 하데스에게도 알린 적 없는 능력이었다.
‘핵석도 못 숨길 정도로 마력이 없는 여자라고 했지. 다행히 무슨 꿍꿍 이인지 그대로 보이겠군.’
아자르는 속으로 웃었다.
‘유일한 단점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도움을 줄 줄은…….”
그의 천리안은 퍽 대단한 능력이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
능력을 개방한 제국인들은 각 속성의 오오라가 큰지라 그 색에 가려져감정의 오오라를 엿보는 일은 불가했다.
하나 아직 능력을 개방하지 못했거 나, 마력 수치가 없는 제국인들은 속성의 오오라에 감정의 오오라가 가려 지는 일이 없어 속내를 들여다보기 쉬웠다.
아자르가 아벨을 좋아하는 이유도, 아직 능력을 개방하지 못해 속성의 오오라가 없는 상태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벨에게서는 항상 기분 좋은 오오 라가 느껴졌다.
아자르가 만나본 인간들 중 가장 맑 고 순수한 느낌의 색이랄까.
아무튼, 지금 천리안을 뜬다면 아자르는 아이샤의 속내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샤는 마력 따위 없는 수준의 제 국인이라고 했으니, 음흉한 꿍꿍이를 가진 감정의 오오라가 고스란히 드러 날 터였다.
‘어디 보자.’
아자르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다.
태양을 닮은 황금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아이씨 …….”
아자르의 입에서 곧바로 짜증스러 운 탄성이 터졌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거대한 적색 오오라에 눈이 멀 뻔했다.
“뭐야?”
하데스의 불만스러운 시선이 따라붙었다.
‘저 괴물 주군, 진짜…….’
마력 수치에 따라 오오라의 크기는 방대하게 보인다.
그들의 옆에 앉은 하데스의 오오라가 방해가 될 거야 예상했지만, 시야를 괴롭힐 정도로 강한 빛에 절로 욕 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아자르는 하데스를 간단히 무시하 곤 일렁이는 적색의 오오라를 피해 실눈을 힘껏 떴다.
‘어?’
……뭐지?
그 순간, 아자르 로만은 놀라고 말 았다.
하데스의 적색 오오라가 너무 강해 바로 눈에 들지는 않았지만, 잠깐 정신을 집중하니 분명히 보였던 것이다.
아이샤의 주변을 둘러싼, 백색으로 일렁이는 오오라.
몇 번 만나본 적 있는 신전의 신관 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백색의 오오라는, 분명 백속성 제국인의 것이었다.
‘핵석도 못 숨기는 여자라고 하지 않았어?’
대체 핵석을 숨기지 못할 정도면 마력이 얼마나 없는 건지, 듣고도 믿기 지 않았었다.
핵석 못 숨기는 제국인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으니…….
그래서 당연히 속성의 오오라는 보이지 않을 줄 알았다.
한데 왜?
아자르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계속 아이샤를 응시했다.
오오라의 크기도 대단했다.
하데스의 것만큼 크진 않았지만, 저 정도라면 최종 개방이 거뜬할 정도의 마력 수치일 것이다.
의아했다.
하지만, 그래도 백속성 가문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치자.
오오라가 안 보여야 정상이지만 보 인다면 백속성인 그녀의 오오라는 백 색을 내뿜을 테니까.
한데.
한데…….
‘저게 대체…… 뭐지?’
제국인들은, 단 한 가지의 속성만을 갖는다.
아이샤 에스클리프.
그녀 또한 백속성을 지녔기에 백색의 속성 오오라가 보이는 게 당연했다.
한데 여태껏 아자르가 만나왔던 백 속성 제국인들의 백색 오오라와는 조금 달랐다.
오오라의 가장자리, 백색의 빛이 끝 나는 부분에서 물결치듯 일렁이는 낯 선 색의 오오라.
제국에 와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
그러나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기는 할…….
흑색의 오오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