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그의 손에서 쏘아진 화살은 과녁을 명중할 때까지 결코 힘을 잃는 법 없 었다.
의도적인 공기의 흐름을 입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30초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곧.
툭.
아자르의 화살에 목이 꿰뚫린 검은 깃털의 마수가 루버몬트군 앞에 보란 듯 추락했다.
서너 살배기 어린아이의 몸집만 한 조류형 마수, 다크로우.
평범한 새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부 하들이 놀란 눈을 했다.
아자르에게 활을 건네주었던 부하 가 급히 다가가 마수의 시체를 확인했다.
“어! 단장, 이거 …….”
다크로우의 발목에는 돌돌 말린 작 은 양피지가 매여 있었다.
전령새로 부려진 마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흉포한 마수를 이렇게 길들일 수 있는 이는, 제국에서 ‘암속성’ 능력자뿐임을.
부하를 제친 아자르가 그것을 펼쳐 확인했다.
정갈하고 깔끔한 필체는 조금 배웠 다 싶은 귀족의 것이었다.
찬찬히 그 내용을 읽던 아자르의 눈 이 묘하게 번뜩였다.
“야.”
“예, 단장.”
다소 심각해 보이는 아자르의 표정에 그를 둘러싸고 있던 부하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궁금해했다.
아자르는 부하들을 휘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춰 읊조렸다.
“내가 여기서 이거 발견했다는 거, 영지에 돌아가서 떠벌리는 놈이 있으 면.”
아자르가 조용히 오른손을 들어 제 목 긋는 시늉을 했다.
“범인 찾아낼 필요도 없이 너네 목 은 내가 몽땅 다 따줄 줄 알아라. 알아들었냐.”
꿀꺽, 누군가가 침 삼키는 소리가 고요한 사위에 울렸다.
주군인 루버몬트 공작 하데스와 군 단장 아자르 모두 부하들에게는 무시 무시한 상관이었지만, 이미지는 다소 달랐다.
칼 같은 성격의 하데스가 그래도 부 하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이 있다면, 아자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상관이었다.
친근한 평소 행동과는 달리 결정적 일 때 냉정한 그는, 부하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토벌 중에 겁에 질려 도망치려던 부 하의 팔을 뎅강 잘라낸 일화는 아직까지 루버몬트군 내에서 전설로 회자되었다.
그런고로 부하들은, 아자르의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잘 알았다.
전부 목이 떨어져라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들에 아자르가 만족해하며 명 령했다.
“그럼 다시 움직이자고! 쉴 새 없이 가도 사흘 꼬박 걸린다!”
일사불란하게 제 뒤를 따르는 군대를 이끌며 아자르는 상념에 잠겼다.
한 달 내내 테그롯 산맥에 갇히다시 피 토벌에만 매달렸던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편지였다.
[공작과 딸이 밤을 보냈으니 그가 딸애의 핵석을 보았을 확률이 큽니다. 시급히 오셔서 상황을 보셔야 합 니다.]
마수 다크로우는 루버몬트 영지 쪽 에서부터 날아왔다.
고로 편지 내용에 있는 ‘공작’은 하데스를 가리키는 것일 테다.
그리고 공작과 밤을 보낸 여자라면…….
‘남부에서 왔다는 그 귀족 영애겠 군.’
편지의 발신인이 ‘딸’이라는 호칭을 쓴 거로 봐선 그 귀족 영애의 부친일 테고…….
‘같이 온다고 했었나?’
아자르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크게 가로저었다.
편지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의심스러운 상황이 었다.
편지의 발신인이 ‘암속성 능력자’와 내통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마수 다크로우를 전령새로 부릴 수 있는 건 암속성 능력자뿐이었고, 그 들은 제국에서 철저히 배척받는 이들이다.
단순히 혼혈이라는 이유로 배척받는 아자르와는 그 궤를 달리했다.
그들은 경계할 만하기에 경계당하는 것일 뿐.
‘얼마나 꺼림칙한 놈들인데.’
암속성의 이능은, 확실히 평범한 인 간들 틈에 섞여 살아가기엔 큰 문제 가 있으니까.
아자르의 입매가 한껏 비틀렸다.
한달.
영지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급히 알아봐야 할 것이었다.
그는 성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3일 전의 일이었다.
***
벌컥, 하데스의 집무실 문이 노크도 없이 활짝 열렸다.
무례한 방문이었지만 그 대상이 누군이지 알기에 익숙한 일이었다.
한참 집무실 책상 위에 뭔가를 휘갈 기고 있던 하데스가 눈만 들어 힐끔 아자르를 확인하곤 대수롭지 않은 듯다시 손을 놀렸다.
“그 여자, 당장 내쫓으십쇼.”
“뭐?”
앞뒤 없이 내지르는 아자르의 말에 하데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 들었다.
아자르가 말하는 그 여자가 누군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하데스가 불쾌한 듯 말했다.
“말조심해라. 소식이 느린 모양인 데, 에스클리프 영애는 …….”
“뭘 느려요? 오자마자 하녀 애들이 난리더만. 결혼하신다면서요? 늙은 이들이 뭐라 안 합디까?”
“뭐라 하면 어쩔 건데? 내가 하겠다 는데. 한데 다른 놈도 아니고 왜 네놈 이 난리냐?”
“대체 그 보잘것없는 가문이랑 연을 맺으려는 이유가 뭡니까? 설마 공자님에게 어머니라도 만들어줘야겠 다는 생각이신 건 아니겠죠?”
하데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보잘것없다니? 너랑 영 어울리지 않는 발언인데?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지? 영애와 만나보기라도 했나?”
“핵석도 못 숨기는 머저리잖아요, 그 여자?”
비아냥거리는 아자르의 말에 하데스의 눈이 커졌다.
그가 그 사실을 안다는 데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너 …….”
“그 여자와 그 가문, 아주 수상합니다. 암속성 능력자와 내통하고 있거든요.”
“뭐?”
하데스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아자르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시 아벨과 달리 하데스와는 말이 잘 통 할 테다.
다크로우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 무것도 모르고 뒤통수 맞을 뻔했지.
콧대가 쭉 올라간 아자르가 피식 웃 으며 말했다.
“오면서 다크로우 한 마리를 잡았 습니다. 꽤 난폭한 놈인데 전령새로 부리고 있더군요.”
아자르의 말에 하데스의 표정이 굳 었다.
그 말만으로도 하데스는 알아들었을 것이다.
마물을 부릴 수 있는 건 오직 암속성 능력자들뿐이 니?
“어떤 놈에게 말을 전하러 가는 길이었는지는 모릅니다만, 누가 말을 전하려고 했는지는 확인했습니다. 발 목에 쪽지가 달려있었거든요.”
“그래?”
“예. 누가 보냈는지 아십니까?”
“글쎄.”
어째선지 하데스는 별 대수롭지 않 은 표정으로 다시 놓아두었던 펜을 들었다.
아자르는 좀 의아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여기 그 여자의 아비도 함께 와 있는 것 맞죠?”
“에스클리프 남작이 보낸 서신이던 가? 내용은?”
“주군, 그 여자랑 잤죠?”
“뭐?”
펜을 끼적이던 하데스의 손이 삐끗 했다.
아자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여자 좀 많이 만나보 라고 한 거 아닙니까? 지금은 아주 눈 앞에 신세계가 펼쳐진 것 같죠? 몇 명 더 만나보시 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아실 겁니다.”
“등신 같은 녀석. 왜 얘기가 딴 데 로 새?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전하께서 그 여자랑 밤을 보내면 서 핵석을 못 숨기는 걸 확인했을 테 니, 빨리 와 달라는 서신이더군요. 도 통 앞뒤 없는 말이라 이해는 안 가지만, 내용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묘한 표정의 하데스를 직시하며 아자르가 덧붙였다.
“얼굴은 천사처럼 생긴 그 여자의 가문이, 암속성 능력자와 내통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분명 뜬금없이 북부에 오겠다고 한 것도 뭔가 꿍꿍 이가 있어서일 겁니다.”
아자르의 말에 하데스가 천천히 고 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그 쪽지는 어디 있는데?”
“아, 그건 …….”
아자르가 난처한 듯 뺨을 긁적이며눈을 굴렸다.
아벨의 바람을 무시하고 곧바로 하데스에게 보고하러 온 길이지만, 아벨이 아이샤를 감싸주기 위해 증거를 불태워버렸다는 사실까지 말할 순 없 었다.
아직 어리고 냉정하지 못한 아벨이 생각 없이 행동할 수 있다는 걸, 아자르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아자르는 어깨를 으쓱했다.
“혹시나 잃어버려서 다른 놈들 눈에 들면 문제가 될 것 같아서 보자마 자 태워버렸습니다.”
“아, 그래?”
다행히도 하데스는 증거가 없다는 사실에 불쾌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뭐지? 저 안심하는 눈빛은?’
저벅저벅 아자르의 앞으로 다가온 하데스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잘했어.”
“믿으시죠? 어차피 부하 놈들이 제 가 다크로우 잡는 것 다 봤고, 쪽지 내용은 저밖에 확인 못 했지만 제가 없는 소리 할 놈도 아니고…….”
“어어, 당연히 믿지. 그런 내용이 아니었으면 네가 에스클리프 남작이 온 것까지는 몰랐을 테니 말이다.”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는 하데스의 말을 들으며 아자르는 뭔가 이상 한 걸 느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태평…….”
“아자르 로만.”
하데스는 아자르의 앞에 얼굴을 쑥 들이밀며 눈을 빛냈다.
방금 아벨을 만나고 왔을 때와 꼭 같은 느낌이었다.
아자르가 흠칫 떨며 예? 하고 대답했다.
“어디 가서 입 함부로 놀리지 말아 라. 암속성이니, 영애가 의심스럽니, 그런 말.”
“뭐라고요?”
“쥐 죽은 듯이 닥치고 있으라는 말이다. 너 때문에 결혼에 차질이 생기 면, 그날로.”
바짝 얼굴을 들이민 채 하데스가 피 식 웃었다.
“모가지야.”
“아니 …….”
아자르는 황당했다.
주군은 아벨과 다르지 않았던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산전수전 다 겪었고, 아자르가 아는 그 누구보 다 냉철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입을 다물라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이지?
딱 하나로밖에 해석이 안 됐다.
뒤가 구린 가문의 딸이든 어쩌든 상 관없다는 뜻.
그러니까 곧 죽어도 이 결혼을 진행 시 키겠다는 뜻이다.
“미, 미치셨습니까?”
“지극히 정상.”
하데스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멍하니 선 아자르가 황당한 눈으로 입술만 달싹였다.
도대체, 도대체…….
자신이 자리를 비운 한 달 새에, 그 마녀 같은 여자는 어떻게 하데스와 아벨을 꾀어낸 거지?
“저기요, 주군.”
“할 말 끝났으면 나가봐.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두말하지 말라는 듯, 단호한 하데스의 태도에 아자르의 몸에서는 힘이 쭉 빠졌다.
그는 허망하게 생각했다.
‘부자가 아주, 쌍으로…… 미쳐버렸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