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69화 (69/221)

69화.

아자르의 말에 아벨은 충격 받은 듯놀란 표정이 되었다.

“공자님도 이제국의 능력자들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셨으니까, 아시겠 죠?”

“…….”

“암속성 능력자들이 어떤 놈들인지 말입니다.”

“그런…….”

하릴없이 흔들리는 아벨의 눈동자를 보며 아자르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벨의 여린 심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자르였다.

하데스도, 아자르도 아벨의 그런 점을 사랑했지만 분명 걱정스러운 부분 이 있었다.

그는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이었고, 자신에게 잘해주는 이들에게 쉬이 마음을 열었다.

아버지 하데스를 닮아 냉정할 때는 냉정한 성격이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게 아자르는 내심 걱정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의심스러운 에스클리프 남작가의 딸은 그런 아벨을 어찌 알아봤는지, 금세 그의 틈을 파고든 게 틀림없었다.

“암속성 능력자들은 무시무시한 괴 물들은 물론이고 사람들까지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는 그런 악랄한 놈들입 죠.”

“응, 알아.”

“알면 지금부터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도 아시 겠죠?”

“응, 알겠어.”

아자르는 아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웃었다.

“아까 공자님 말 안 듣고 막무가내 로 데려와서 미안합니다. 되도록 그 여자랑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마십쇼. 무슨 달콤한 말로 공자님을 꼬드길지 모르니까…….”

“그런데 아자르, 전령새가 무슨 쪽 지를 달고 날았어?”

“아, 이거. 어차피 지금부터 전하께 보고 드리러 갈 거였는데.”

아자르가 품 안에서 손바닥만 한 양 피지 한 장을 꺼내 보였다.

그것을 펼쳐 아벨에게 보여주려던 순간이었다.

이상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손에 쥔 종이가 갑자기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하더니, 화르륵 불에 타기 시작했다.

“아니!”

말릴 겨를도 없이 그 ‘증거’는 한순 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아자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어버 버거렸다.

“이게, 이게, 이게 지금 무슨, 뭔 …….”

발화다.

이 방 안에는 둘뿐이고, 아자르 자신은 풍속성 능력자이니 종이를 태운 건 아벨이 틀림없었다.

하나 아자르가 알고 있기로, 아벨은 아직 능력 개방 전이었다.

갑자기 이걸 태웠다는 것도 황당했 지만 그새 능력을 다룰 줄 아는 것도 놀라웠다.

그건 아벨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자르의 손에 남은 잿더미를 응시하던 아벨이 휴, 한숨 쉬며 가슴을 쓸어 내 렸다.

“공자님! 대체 언제 능력을, 그것도 2차까지 ……. 아니, 이게 아니지. 이 게 지금 무슨 짓입니까?”

“아자르! 나 방금 능력을 사용하는 데 성공했어. 축하해줘.”

“추, 축하드릴 일이긴 한데 이게 뭔 지 아시고 태운……!”

“아자르.”

좌절한 듯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앉 아 바닥에 떨어진 잿더미를 뒤적거리는 아자르에게, 아벨이 성큼 다가왔다.

아벨은 가만히 아자르에게 바짝 얼굴을 붙이더니 말했다.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마.”

“뭐라고요?”

아자르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아벨은 다시 한번 말했다.

“확실하지도 않은 일이잖아. 아버지가 괜히 걱정하는 것도 싫고, 별 거 아닌 일로 영애를 의심해서 서로 사 이가 나빠지는 것도 싫어.”

“저기요, 공자님?”

암속성 능력자가 어떤 놈들인지 공 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 중차대한 사안에 입 닫고 있으라는 이유가 뭐지?

아니, 아자르는 아벨의 표정을 보고 깨달았다.

아벨은 암속성 능력자가 어떤 놈들이고, 그들과 내통하는 게 얼마나 의심스러운 짓인지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 홀려버렸잖아?!’

……그냥, 상관없는 거였다.

착한 척 뒤가 구린 그 여자의 정체 가 무엇이든 간에!

“알았지, 아자르? 영애는 전혀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니…….”

“절대, 아버지에게 허튼소리 하지마. 알았지?”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리며 재차 눈을 빛내는 아벨의 표정에, 아자르는 생각했다.

‘확실히 주군의 아들이긴 하구나.’

마냥 어리고 귀여운 줄로만 알았던 아벨의 눈빛이 제법 매서웠다.

참으로 놀랄 일이었다.

만족스러운 변화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렇게 아무나 믿고 보다 니…….

심지어 하데스에게 전할 유일한 중 거를 없애기 위해 이 자리에서 처음 능력까지 개방해버릴 정도로.

아자르는 방금 처음 만나고 왔던 아이샤의 천사 같은 얼굴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 었다.

단시간에 이렇게나 아벨을 바꿔놓다니.

마녀가 틀림없었다.

아자르는 허망하게 중얼거 렸다.

“진짜, 미치셨군요. 공자님.”

***

당연한 말이지만, 아자르는 아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입을 다물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정신 차리라는 조언을 마치고 아자르는 곧바로 하데스에게 향했다.

‘미쳤군, 미쳤어.’

에스클리프 남작이 신원이 불분명 한 암속성 능력자에게 전령새를 통해 전달했던 ‘증거’는 없어졌지만, 하데스에게 그것을 경계하라고 말할 수는 있었다.

아벨이야 무르지만, 자신의 주군인 하데스는 아니다.

아무렴, 만난 지 겨우 한 달 된 여자의 말을 믿겠는가?

서신의 내용을 보여주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마물을 잡은 걸 부하들이 전부 봤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자르는 이를 바득 갈면서, 마물 까마귀를 잡았던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

험난한 설산이 가득한 북부의 정경 위로, 마수 다크로우가 창공을 가르 며 날고 있었다.

그때쯤 테그롯 산맥 쪽에서는, 마물 토벌을 마친 루버몬트군이 공작성과 산맥 사이의 샬무트 숲을 지나는 중이었다.

북부의 만년설을 뒤집어쓴 앙상한 수목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으므로, 귀성(歸城)하는 루버몬트군의 모습 은 쉬이 드러나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던 군대의 재잘거리는 잡담 소리도 묵직한 눈 무덤과 빽빽 한 수목에 싸여 고요하게 흩어지는 샬무트 숲.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는 거친 북부의 사내들은, 하나같이 바지춤을 내린 똑같은 모양새로 볼일을 보느라 여념 없었다.

솨아아아 —

눈밭 위로 거센 물줄기 퍼붓는 소리 가 선명했다.

“어으!”

사내들의 중심에 서있던 짙은 적발의 사내, 아자르가 몸을 부르르 떨며 내렸던 바지춤을 주섬주섬 추슬렀다.

2미터는 되어 보일 법한 위협적인 신장과 독보적인 덩치.

이곳저곳 생채기가 심한 얼굴이었 으나 말끔하게 씻겨 놓으면 제법 준 수할 인상이다.

루버몬트 최정예 마물 토벌군의 단 장이자 풍속성의 최대 개방 능력자아자르는, 하데스가 가장 측근에 두 고 믿는 수족이었다.

선명한 금안과 짙은 피부색을 보면, 그가 사막국가 카지트의 혼혈인임을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사막과 태양의 수호를 받는다는 카 지트인과 방대한 마력을 보유한 크레센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자르는, 혼혈을 배척하는 제국 풍토 덕에 퍽 오랜 시간을 방황했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방황은 퍽 괄괄한 그의 성격 탓도 있었지 만…….

인재를 모으는 데 고려해야 할 것은 오로지 능력뿐이라는 하데스의 신념에 따라, 아자르는 다행히도 북부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것이 벌써 10년 째였다.

퍽!

아직까지 거센 물줄기를 뿜어대고 있는 부하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한 대 갈긴 아자르가 말했다.

“빨리빨리 싸, 짜샤.”

“아, 단장! 오줌 눌 땐 고블린도 안 건드리는데!”

인상을 찡그린 부하가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투덜거렸다.

“피곤해 뒤지겠다. 얼른 가서 사슴 뒷다리나 거하게 뜯은 다음에 한 이 틀 잠만 자야겠어.”

테그롯 산맥에 출몰하는 각종 마물 들을 토벌하고 돌아오는 길.

토벌대의 출정에 항상 함께하던 하데스가 없었던지라, 원래였으면 일주 일 만에 해치우고 왔을 일이 한 달 꼬박 걸렸다.

괜히 고생을 세 배는 더 했다는 생 각에 아자르가 하데스를 떠올리며 구 시렁거렸다.

“주군만 있었어도 진작 끝날 토벌을 도대체 며칠이나 질질 끈 거야?”

“에이, 이해하십쇼. 주군도 장가는 가야지 않겠습니까?”

뒤통수 맞은 부하 녀석이 음흉한 표 정으로 아자르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얼씨구, 잘도 가겠다.”

아자르가 끌끌 혀를 차며 빈정거렸다.

남부에서 온 손님맞이를 해야 한다 면서,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토벌 계획도 내팽개친 하데스였다.

설사 부하의 의심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아자르는 영 가망 없다고 생각 했다.

“에스클리프? 엑스칼리버? 뭐랬더 라? 야, 이름도 없는 깡촌 영지 귀족이라며. 주군 곁에 그런 여자가 붙어 있는 꼴을, 깐깐한 노인네들이 잘도 두고 보겠어.”

아자르는 만날 때마다 고고한 척하 며 혼혈인인 자신을 무시하는 루버몬트의 몇몇 가신들 얼굴을 떠올리며 질색했다.

“재수 없는 노친네들.”

중얼거리며 피로한 목을 당겨 쓱쓱 풀던 아자르가 멈칫했다.

무심코 올라간 고개가, 창공을 가로 지르며 가까이 날아오는 검은 깃털의 마수 한 마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뭐야, 저건.’

눈부신 태양도 마주볼 수 있다는 카 지트인들은 ‘천리안’이라는 축복을 타고났다.

보통의 날개 달린 짐승들과 달리 놀 랍도록 높이 날고 있는 마수는, 오직 아자르의 눈에만 보일 터였다.

평소였으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테지만, 아자르는 왜인지 새벽부 터 바쁘게 날갯짓하는 마수가 신경 쓰였다.

‘다크로우 같은데.’

마물들의 서식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조류형 마수다. 특별할 건 없었다.

하나 왜 이 시간에, 있는 거라곤 루버몬트 공작성일 뿐인 방향에서 다크로우가 날아오고 있는지는 의심해볼 만했다.

“야, 내활 좀 줘 봐.”

멀리서 날아오는 다크로우에게서눈을 떼지 않은 채로, 아자르가 옆에 서 있던 부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의 주무기인 활을 대신 메고 있던 부하는 곧바로 그것을 건네며 물었다.

“뭐, 새라도 있어요? 배고파도 좀 참으시죠? 가서 맛있는 거 먹게.”

구시렁대는 부하의 말을 무시한 아자르가 등에 메고 있던 화살통에서 화살 한 대를 꺼내 시위에 걸었다.

창공을 겨냥하며 쭉 시위를 당기자 그 주변에 묘한 바람이 일었다.

공기의 흐름을 지배해 자유자재로 바람을 일으키는 작풍(作風).

풍속성의 1차 개방 능력이었다.

아자르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 지도 않는 무언가를 겨냥하고 있었지만, 부하들은 뭐가 됐든 명중할 것이 라는 데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풍속성의 이능을 개방한 사수(射手)란 그런 것이었다.

백발백중의 명중률을 자랑하는.

쉬이이익—

일순, 아자르의 화살이 허공 위를 일직선으로 가르며 쏘아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