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67화 (67/221)

67화.

아벨의 말대로, 그는 이상하게 화속성의 능력만을 개방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저 몸에 열을 운용하는 단순한 1 차 개방 능력조차도.

하데스의 친자식이 아니지만 친자 식인 척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화속성의 능력을 사용하는 걸 외부에 보여줘야 했으므로, 아벨의 초조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벨은 아직 열 살짜리 어린아이일 뿐인걸.

부담감 가득해 보이는 아벨이 안쓰 러워 나는 가만히 그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천천히 해요. 조급해할 필요 없잖 아요? 언젠가는 분명히 쓸 수 있게 될 텐데…….”

이건 말뿐인 위로가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지.

쓸 수 있다 뿐이겠는가?

자연 발화의 능력으로 수백의 마물 군대를 눈 깜빡할 새에 쓸어버리는 능력자가 바로 아벨이었다.

무효화를 한 번 시전하고 헉헉댔던 나와 비교해보면, 전쟁터의 마물들을 형태라곤 없이 잿더미만 남도록 태워 놓고도 아벨은 숨 한 번 헐떡인 일 없었다.

괜히 뿌듯해진 나는 웃으면서 아벨의 뺨에 살짝 입 맞춰줬다.

“공자님은 나이를 좀 더 먹고 나면, 어차피 제국에서 제일 강해질 거예요. 그러니까 초조해하지마요. 알았죠?”

“안 돼요. 당장, 당장 불의 능력을 쓸수 있어야 해요.”

“응? 왜 이렇게 급해요? 설마 전하 께서 얼른 불 피우라고 닦달하시는 거예요? 우씨, 이 인간을 내가 …….”

오버하며 팔을 걷어붙이는 나를 아벨이 말렸다.

“아뇨, 아뇨. 당연히 아버지는 상관없다고 하시죠. 영애처럼, 초조해할 필요 없다고 그러셨어요. 그렇지 만…… 후계자 공표식이 일 년도 안 남았거든요.”

“아.”

나는 아벨의 말에 살짝 혼란스러웠다.

후계자 공표식이…… 소설 내용 중에 있었나? 생략된 부분이었던가?

“공표식이 왜요? 그게 별 거예요? 우리 가문은 그냥 소 한 마리 잡고 불 피운 뒤에 박수치고 끝내는 데…….”

“아.”

아벨은 내 말에 잠시 눈을 깜빡이더 니 푸스스 웃었다.

“저도 그렇게 행복한 자리였으면좋겠어요. 그런데 루버몬트에서는 굉 장히 성대하게 치른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정도로?”

“제국 각지 귀족들을 초대하는데, 아마 안 오는 분들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도 직접 오겠다고 하신 걸요.”

“아하……. 그렇겠네요. 루버몬트는, 아……. 그렇겠네.”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지.

어디 루버몬트랑 에스클리프가 같 나.

소 한 마리 어쩌고 종알거렸던 내 방정맞은 입을 툭툭 치며 나는 한숨 지었다.

“부담감이 크겠어요. 그런데 귀족 들 만나서 인사하는 건, 지금부터 저 랑 열심히 연습하면 되죠. 왜 능력 개방에 신경을 써요?”

“공표식 중에, 후계자의 능력이 필요한 관례가 있어요. 공저에 있는 봉 화대에, 발화의 능력을 사용해서 봉 화를 올려야 하거든요.”

“네?”

“파르넬리 공저에 가셨을 때 보지 않으셨어요? 금으로 되어있는, 그…… 루버몬트 인장이 박힌 봉화대 말이에요.”

아벨의 말에 나는 세례를 받으러 들 어갔던 파르넬리 공저의 내부를 떠올 렸다.

그래, 맞아. 결혼식장처럼 행진을 위해 마련된 붉은 융단 길을 따라 화 려한 금 봉화대가 한 수십 개는 있었 지.

아마도 그 봉화대에 하나하나 발화의 능력으로 봉화하면서, 제단에 서는 것이 공표식의 시작인 모양이었다.

“아니, 화속성인데 2차까지 개방 못 하는 사람은 어쩌라고 그런 관례를 만들었대요?”

“2차 개방이 불가한 수준의 마력이 라면.”

“와, 설마.”

“루버몬트의 후계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거겠죠.”

잔인한 거 봐.

“아마 제가 아버지의 친자식이었다 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거예요. 루버몬트의 피는 대단하잖아요. 가스펠백작부인도 발화 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루시는 걸요.”

“아니, 그래도 …….”

“역대 루버몬트 공작들은 전부 최 종 개방까지 성공했어요.”

너도야. 넌 그 이상의 이상의 이상이라고.

그렇지만 백날 입 아프게 말해줘 봤 자, 지금 시무룩해하고 있는 아벨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테다.

“역시 저는 루버몬트의 후계자가 될 자격이 없어요. 그래서, 영애가 와 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영애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는 동생은, 진짜로 아버지를 닮아있을 테니까요. 저 같은 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겠죠. 루버몬트의 이름을 가져야 하는 건 그 애예요.”

“저기요, 공자님.”

대체 혼자 얼마나 앞서나가는 거 야?

나와 하데스의 애라니,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아니, 그게 아니고.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전하가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거 다까먹었어요? 전하가 자식을 몇 명이 나 낳든, 루버몬트의 후계자는 공자 님뿐이에요.”

“지금은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나중 에는 아버지도 다시 생각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하지마세요.”

“뭔! 제가 무슨 걱정을 해요!”

“영애의 진짜 아드님이 루버몬트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그럼 공자님은, 제 진짜 아들이 아 닌 거예요?”

욱하는 마음에 내뱉은 목소리가 나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냉랭했다.

멈칫하는 아벨이 보였지만, 서운한 내 마음을 굳이 감출 생각은 없었다.

굳은 얼굴의 나를 보며 아벨이 허둥거렸다.

“아니, 그, 저…….”

“저는 공자님을 마음으로 낳은 자 식처럼 대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공자 님은 아닌가 봐요.”

“아니요, 영애! 그런 뜻이 아니에 요! 그런 뜻이 아니라 …….”

“아니면 제가 그 정도로밖에 안 보였나 봐요. 나중에 태어날 친자식이 후계자가 되지 못하면, 내가 공자님을 미워하기라도 할 것 같아요?”

“그건 …….”

아벨은 대답하지 못했지만, 걱정스럽기는 한 모양이었다.

동생이 생기면 미련 없이 자기 자리를 내놓겠다, 뭐 그 비슷한 말을 꺼낸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으니까 …….

“영애가 안, 그러실 걸 알아요. 그 런데 혹시나, 아주 혹시나요. 영애에게 그런 걸로 미움 받고 싶지 않아서요. 그래서, 그래서 이런 말을…… 했 어요.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해요.”

대체 이제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제 자식을 후계자로 세울 수 없는 양어머니의 분한 마음 따위를 어 찌 가늠하겠는가?

이건 필히 아벨이 혼자 생각한 것만 은 아닐 테다.

그를 구박해왔던 많은 이들이 입버룻처럼 속삭이는 말을 주워듣고 자라 온 결과물일 터.

“하아…….”

나는 가스펠 백작이나 가스펠 백작 부인, 이제는 없지만 백작부인의 수 족이었던 하녀장 따위의 얼굴을 떠올리며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공자님.”

나는 내 냉랭한 반응에 겁을 먹어 땡 얼어붙은 아벨을 마주 보곤, 달래 듯 빙긋 웃어주었다.

“잘 들어요. 나는요, 공자님을 이미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내 마음을 공자님이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 어요.”

“영애…….”

“그렇지만 불안한 공자님의 마음도 이해해요. 정 그러시다면, 제가 전하 와 말을 잘해서…….”

“…….”

“……동생이 안 생기도록 노력을 해볼게요.”

“네에?!”

아벨이 놀라 허둥거렸다.

뭐, 별 따위 안 따고 하늘만 구경해 도 되는 거잖아. 여긴 피임이 좀 어려 우려나.

당황하는 아벨을 향해 나는 자신만 만하게 웃어 보였다.

내 말에 아벨은 세상이 핑글핑글 도는 모양이었다. 허둥거리며 손을 내 젓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니요, 영애. 그게 무슨. 아니, 제 말은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결정을 해도 하나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저는 공자님을 생각하 고 있어요. 공자님이 이런 걱정도 안 했으면 좋겠고, 제가 공자님을 미워하게 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차근차근 설명하는 내 목소리에 아벨은 천천히 진정하다가 곧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능력 개방은 걱정하지마요. 정말 급한 거면 전하가 공자님을 얼마나 재촉하시겠어요? 그런데 아니잖아요?”

“네…….”

“제가 봐도 별로 심각한 상황이 아니예요. 까놓고 말해서.”

나는 음흉한 일을 모의하는 사람처럼 아벨의 귀에 손을 모으고 속삭였다.

“봉화대에 봉화하는 게 전하인지, 공자님인지 누가 알겠어요?”

내가 아는 하데스라면, 아벨을 재촉하기보다 모른 척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무난히 공표식을 마치게 할 남자였다.

내 말에, 아벨은 어색하게 웃다가 곧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노력해야죠. 곧 가스펠 백작님께서 오신다고 하셨어요. 백작님 은 아직, 제가 능력을 개방하지 못한 걸 알고 계시거든요. 이번에도 나아 진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하면 …….”

“가스펠 백작님이 오신다고요?”

“네. 뭐, 사실은 자주 오세요. 올 때 마다 제가 능력을 연습하는 걸 도와주시는 걸요.”

“개뿔이.”

“네?”

“아뇨, 아뇨. 말이 헛나왔어요.”

도와주긴 개뿔이.

보나마나 그 뱀 같은 늙은이는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아벨에게 악담이 나 퍼부어댔을 게 뻔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 이가 더 밉다고, 가스펠 백작 내외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이상하게, 대놓고 독설 펀치를 날리는 가스펠 백작부인보다 그 옆에서 쌤통이라는 듯 방관하던 가스펠 백작이 더 얄미웠거든.

나는 아벨이 이렇게 초조해하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이리 불 안해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곧 성으로 와 아직까지 불도 못 피 우냐며 구박을 퍼부을 가스펠 백작이 무서운 거겠지.

‘그지 같은 늙은이…….’

나는 속으로 한참 가스펠 백작을 욕 하다가, 문득 멈칫했다.

내가 읽었던 소설에서는 아벨의 후 계자 공표식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정확히 아벨의 ‘열한 살 생일’에, 그 가 가진 네 속성의 능력들이 충돌해 정신 붕괴를 일으켰다—는 설명뿐이 었지.

그리고 아벨이 말하는 일 년도 안 남았다는 공표식은, 왜인지 그날과 비슷한 것 같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

“공표식이 정확히 언제예요, 공자 님?”

“아. 제 생일이요. 역대 루버몬트의 후계자들 전부 생일에 공표식을 치렀 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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