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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66화 (66/221)

66화.

살벌한 하데스의 표정에 나는 흠칫 했다.

“왜, 왜요?”

“만나서 뭐 하게?”

“아니, 그걸 왜 저한테 물으세요? 제가 먼저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니고, 전하의 전쟁터 동지들이 먼저 제 얼굴을 보고 싶어 했다면서요?”

“그대가 지금 엄청 기대하고 있잖 아?!”

“네, 기대되죠. 앞으로 계속 만날 고마운 분들 아니예요? 예비 공작부인으로서 잘 보여야 하는 것도 있 고 …….”

“그럴 필요 없는데?”

“전하.”

콧김까지 뿜으며 씩씩대는 하데스 가 황당했다.

“대체 그럼 여기 왜 오셨어요?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온 거야?”

“…….”

“만나는 건 좀 부담스러운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서요. 뭐 이렇 게 말하길 바라신 거예요?”

하데스는 흠칫했다. 잘 때려 맞힌 모양이었다.

뭐 이런 과보호가 다 있나?

평생 전쟁터를 전전했던 남자들이 라 드셀 것도, 귀족 영애와 수준 높은 대화 나누기를 바라기는 힘든 것도 난 다 이해한단 말이다.

당연한 거 아냐? 내가 그 정도도 이 해 못할 사람으로 보였나?

“언젠가는 봐야 할 얼굴들인데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세요? 전 정말 괜찮아요. 오히려 엄청 기대된다고요. 백전백숭, 전쟁터를 휩쓰는 루버몬트 공작의 일당백 병사들……!”

꿈꾸듯 말하는 내 앞에서 하데스는 부들부들 떨더니 휙 고개를 틀었다.

“그으래. 그러시든가. 나중에 크고 거칠고 말 함부로 해서 무섭다고 나 한테 징징대면서 달려오기만 해 봐.”

“네, 그럴 일 없어요.”

“하!”

“아, 그것보다요.”

문득 하데스를 만나면 부탁하려고했던 게 떠올랐다.

미하일은 돌아갔으니 당장은 대비할 시간을 벌었고, 결혼 문제도 하데스가 해결해주었다.

하나 내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었다.

「영애에게는요, 숨기고 싶지 않아 서요. 」

나를 믿는 아벨이 그렇게 말했듯, 나 또한 하데스와 아벨에게 비밀을 가진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확실히 알아내야 하는 게 있었다.

정확히는, 내 존재에 대한 확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확신.

만약 내가 꾼 꿈이, 그저 꿈이 아니라 새로이 기억해 낸 전생이라고 한 다면…….

나는 신에게 저주받은 자식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진실을 털어놓을 필요도 없지. 그냥, 하데스랑 아벨의 옆에 있 어서도 안 돼.’

조금 씁쓸한 결론에 도달했지만, 내 욕심을 채우자고 모른 척 시간을 질질 끌 순 없었다.

정확히 내가 누군지 알아내야 했고, 기왕이면 혼인 문서에 도장 찍기 이 전이되면 좋겠지.

하데스를 이혼남 만들 수는 없으니 까 말이다.

“성분 알아본다고 저한테서 가져가 신 마력억제제 있잖아요.”

대뜸 본론을 꺼내자 하데스가 눈썹을 구기며 고개를 기울였다.

“갑자기 그건 왜?”

“어디 갖다 버리진 않으셨죠? 저 좀 주세요.”

“왜?”

하데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눈치 빠른 그에게 속을 내보이지 않 기 위해서는, 젖 먹던 힘을 다해 태연 하게 연기해야 했다.

나는 혼자 연습했던 대로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당분간만 다시 먹으면 어떨까 해 서요.”

“미쳤어?”

“사실 마력을 사용하고 싶지 않은 데……. 그, 뭐랄까, 저도 모르게 흘 러나오는 것 같아요.”

“뭐?”

예상대로 하데스는 놀란 얼굴을 했다.

“제 의지가 아니고요. 말씀드렸잖 아요. 이 몸이 성녀의 몸이 맞는 것 같다고.”

“그대도 모르게 힘을 쓰게 된다는 거야?”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데스는 암속성 능력자도, 백속성의 최대 개방 능력자도 만나본 적 없다.

그것은 다시 말해, 그가 갖고 있는 정보가 아주 협소하다는 얘기다.

그를 속이지 않기 위해 그를 속여야 하는 이 상황이 좀 아이러니했지만, 아무튼 나는 하데스가 무효화의 능력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이용해 배팅을 한참이었다.

“대신관에게 무효화의 능력을 사용했던 거, 기억하시죠? 정말 제 의지 가 아니었어요. 물론 개나 소나 아프 지 않았으면 좋겠는 성녀의 본능은 이해하지만, 저는 그게 불쾌하고 싫 어요.”

“좋은 자세야.”

넘어왔다.

하데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쓰 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필요할 정도로 희생적일 필요는 전혀 없지. 아니, 난 오히려 그대가 모든 상황에서 항상 이기적이기를 바 라. 무조건 그대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게 좋지.”

“네. 전하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제가 주변의 마력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좋은 방어가 되어줄 거 라고요.”

“확실히, 그렇지. 하지만 억제제를 복용하면 핵석이 노출돼. 그건 너무 위험하고…….”

“어제도 공자님을 만나는데, 갑자 기 손목이 꿀렁꿀렁하는 거예요?”

“……꿀렁, 뭐?”

“다친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막 기력을 회복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드는 거 있죠?”

내 말에 하데스는 심각성을 눈치챈 듯 작게 입을 벌리고 당황했다.

“사실 지금도 그래요. 우리 전하 결혼 준비하랴, 밤낮없이 서류 보랴, 곧 돌아오는 군대 정비하랴 힘든 게 다보이니까 가슴이 미어져요. 기력이라 도 회복시켜 드릴게요. 이리 와 보세요.”

“아니, 됐어!”

무작정 달려드는 나를 하데스가 질 겁하며 밀어냈다.

“무섭군. 성녀의 본능이란 거.”

“그러니까 말이에요. 억제제를 복 용하고 있을 땐 이런 일이 전혀 없었 는데…….”

하데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조금 더 고민했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이대로라면 저도 모르게 마력을 옴팡지게 쓰다가, 마력 쓰는 데 무뎌 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뿐인가? 쓰다 보면 엄청 피곤하고 몸에 힘도 없어 지던데요.”

“…….”

“일단 제가 갖고만 있다가, 정 견디 기 힘들면 먹으려고요. 성에 있을 때는 딱히 절 위협할 사람도 없고, 핵석 은 여태껏 잘 숨겨왔고…….”

“그래도…….”

“마력을 억제하는 성분 말고는, 딱 히 해로운 거 없었죠?”

“그건 그런데…….”

“그리고 제 능력도 최대한 숨겨야 하지 않을까요? 무슨 생각인지 대신관이 조용히 돌아가긴 했지만, 혹시 제가 성녀라는 게 외부에 알려지기라 도 하면 정말 강제로 신전행 …….”

“알겠어.”

고민하던 하데스는 결국 고개를 끄 덕였다.

“가져다주지. 바로 먹진 말고, 정말로 심각하게 느껴지면 그때.”

“네, 그렇게 할게요.”

하데스에게는 내 말이, 그럴싸한 이유로들렸겠지.

하지만 내가 마력억제제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눈을 뜨는 순간 천천히, 하나씩, 쉴 새 없이 죄를 저질렀던 너의 전생을 알아가게 될 것이고. 」

전생은 기억했다.

다만 그게 그저 꿈인지 아닌지는 확 신할 수 없었다.

단순히 자식을 죽인 죄를 저질렀다는 제누스의 인생을 엿본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벨라의 기억도 분명 보았으니까.

「그 생에서도 죄를 저질러야 하는 너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

내가 제누스 그 자체인지, 독자 1인 지 구분하려면 아마도 미래까지 보아 야 할 것이 었다.

하나 미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미래까지 보인다면, 아마 나는 순순 히 확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저주받은 자식임을.

그러나 미래가 보일 때까지 기다릴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자각하는 순간 너의 저주받은 능력이 드러날 것이다. 」

신이 말했던 그 ‘자각’의 기준은 알 수 없지만, 내가 내 존재를 의심하고 있는 그 자체가 충분히 자각이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 마력을 봉인함으로써 확 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마워요, 전하. 항상 …….”

내 몸에 나타날지도 모를 저주의 중 거.

검은색의 핵석을.

***

하데스는 그 길로 내게 마력억제제를 가져다줬다.

주면서도 그는 내게 신신당부했다.

「지금 먹지 마. 가지고 있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써. 도저히 본능에 못이길 것 같을 때. 」

본능을 이기지 못할 일은 없었다.

아벨라 에스클리프, 그녀의 기억이 튀어나온 이유는 아마 미하일 라이가르트 때문일 테니까.

이 세계에 셋밖에 없는 암속성 능력자 중 하나는〈페르소나〉작가고, 나 머지 두 명 중의 하나는 미하일 라이가르트 대신관이다.

그가 이그니스인지, 제누스인지는 헷갈려할 필요도 없었다.

아벨라 에스클리프의 기억 속에서 본 의문의 남자에게 느꼈던 기시감.

아벨라가 그 남자와 나눴던 절절한 사랑고백과, 진짜 몸 주인인 내 본능까지 무시하면서 움직였던 그 강한 의지를 보면 뻔하지 않은가.

미하일, 그는 이그니스고.

아벨라, 그녀는 이그니스의 연인이다.

반복되는 생에서 그에게 매번 죽임 당하고야 마는.

그럼에도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래선지 아벨라의 목소리는 미하일이 멀어지자 듣고 싶어도 들리지 않았다.

‘나랑 하데스 사이를 말렸던 건, 미하일 앞에서 입 맞추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나?’

그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미하일이 떠나고 아벨라의 기억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지 않게 된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하나 대충 내가 무슨 상황에 처해있는지 파악은 했지만, 그럼에도 도무 지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왜 하필 내가 이그니스의 연인이 환 생할 몸을 차지하고 있느냐?

‘작가님의 안배겠지?’

뭐든 뜻이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은 전혀 가늠할 수 없지만, 차 차 고민해야 하는 건 내 또 다른 숙제였고.

“……영애!”

“어머, 공자님. 미안해요. 잠깐 다 른 생각을 좀…….”

북부에서 유일하게 봄꽃 식물들이 만개한 곳, 루버몬트 성의 온실 정원.

오늘은 오랜만에 아벨과 함께 이곳에서 여유를 즐기는 중이었다.

“무슨 걱정 있으세요?”

“아뇨, 아뇨. 연습은 잘 돼요?”

“아니요…….”

아벨은 금세 시무룩해진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내게 제 비밀을 알린 후로 아벨은 능력을 사용하는 데 거 침없었다.

오늘은 정원의 땅을 움직여 귀여운 요정 인형들을 만들어 내게 보여줬다.

토속성의 2차 개방 능력.

옛날에 이름 날리던 토속성 마법사 가 병사 수천 명을 만들어 타국의 침 략을 막아냈다고 해서 ‘모래 병사’라 고 이름 붙여진 이 2차 개방 능력은, 흙만 있다면 그걸 이용해 뭐든 만들 어낼 수가 있었다.

토속성 능력뿐 아니라 아벨은 수속성과 풍속성의 2차 능력도 전부 개방한 상태였다.

한데.

“대체 왜……. 불의 힘은 쓸 수 없는 걸까요?”

아벨이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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