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공자님?”
아벨이 벌써부터 이렇게 능력을 사 용할 수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리 놀 랄 일은 아니 었다.
언젠가는 네 가지 속성을 최종 개방까지 하는 세계 최고의 능력자가 될 몸이시니까…….
다만 능력을 사용함으로써 아벨은 내게 해명해야 하는 게 많았다.
하데스의 친자라면 당연히 화속성 능력자여야 할 텐데도 지금 그는, 풍 속성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차라리 뜨겁게 말려주지…….
‘아니, 아니? 이게 아니고. 어떻게 반응하지?’
내가 모든 사실을 안다는 걸 전혀 모를 아벨이었기에, 나는 일단 놀란 척을 해야 했다.
연기에는 사실 자신 없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놀란 척했다.
“이, 이게 뭐예요?!”
“어, 음…….”
역시 아벨은 아직 너무 어렸다.
무속성 능력자라는 사실에 하데스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까지 다 까발려지고 말 행동을 조심성 없게 하고 말다니!
변명도 준비 안 해놓고서!
미하일이 알아채면 눈 깜짝할 새에 보쌈해서 신전으로 데리고 갈지도 모 르는데!
“부, 북부는 바람이 정말 강한 모양 이죠? 창도 닫아놨는데 여기까지바람이 불고…….”
나는 그냥 모른 척하며 자리에서 일 어났다.
이미 닫혀있는 창문을 단단히 닫는 척할 생각이었다.
하나 내 팔을 붙잡는 아벨 덕에 더 움직이지는 못했다.
아벨은 충동적이었던 자신의 행동에 별로 후회 없는 듯,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아니라 영애, 제가 한 거예요.”
“……뭘요?”
제발,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해도 믿어주는 척할 테니까!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아벨은 결연한 눈으로 말했다.
“아버지가 그러셨는데요, 사실 전 평범한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하 셨어요.”
“어, 어떻게?”
“제 핵석은 아무것도 안 비치는 투 명한 유리구슬 같은 색이었어요. 아버지는 그게 무속성이라고 알려주셨 어요. 마력을 잘 다루지 못할 때는 몰 랐는데…….”
아벨은 손을 펼쳐 보였다.
그의 손바닥에서는 즉시 일렁이는 물줄기가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물줄기가 꽃모양을 만들 며 손바닥 위에서 일렁거렸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고 나니 까, 깨달았어요. 무속성이라는 게 뭔 지요.”
“아…….”
“전 모든 능력을 다 사용할 수가 있 대요. 영애처럼, 영애가 아플 때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건 좀 아쉽 지만…….”
금세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리던 아벨이 다시 웃었다.
“영애가 걱정하지 않았으면 해서 말하는 거예요. 저도, 저도 아버지만 큼 강해질 수 있어요.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영애를 지켜드릴게요.”
“우으…….”
엄청난 비밀을 까발리고도 이렇게 해맑은 아벨의 앞에서, 나는 또 울컥 해버렸다.
“울지 마세요.”
“이거, 이거는 슬퍼서 우는 게 아니 고 좋아서 우는 거니까 봐주세 요…….”
“헤헤.”
“저는, 저는 공자님한테 이렇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데…….”
내 말에 아벨이 곧바로 인상을 찌푸 리며 소리 쳤다.
“아니요!”
아벨이 이렇게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남자인 줄은 또 처음 알았다.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아벨이 미안 한 웃음을 지으며 덧불였다.
“제 어머니가 되어주기로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
“저는 영애를 위해서 뭐든할수 있 어요.”
“공자님…….”
“그리고 영애는, 저한테는 제가 사랑받을 만한 아이라고 말해주셨으면 서…… 왜 영애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아벨은 작은 두 손으로 내 오른손을 꽉 붙잡았다.
“영애만큼 다정하고 아름다운 사람 은 없어요. 앞으로도 제 삶에 없을 거라고 확신해요. 그래서 조금 걱정스 러워요.”
“……뭐가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 테 니까요. 모두가 영애의 곁에 있고 싶 어 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대신관님 얘기를 들으니까 너무, 너무 화가 나 고 걱정이, 됐어요.”
“…….”
“정말로 영애를…… 데려가 버리면 어쩌나하고 …….”
“……공자님.”
“이기적인 아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영애가 아무 데도 가 지 않고…… 계속 제 옆에만 있어주 셨으면 좋겠어요. 영애가 안심하고 이곳에 계실 수 있도록 제가 더, 강해 질게요.”
내가 말문을 잃은 건 순전히 그의 솔직한 고백에 감동 받아서였지만, 아벨은 대답이 없는 게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겁먹은 눈동 자로 말했다.
“죄송해요. 저도 제가 이렇게, 이렇 게 욕심이 많은 나쁜 아이인 줄은 몰랐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 고 있자, 아벨이 덜덜 떨며 덧붙였다.
“아, 안아주세요.”
아마도 내가, 자길 욕심 많은 아이 라고 생각하면서 싫어할까 봐 걱정되 는듯했다.
아벨이 더 걱정하는 일 없게 나는 부탁대로 그의 작은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공자님, 전 전혀 공자님을 욕심 많 은 아이라고 생각 안 해요. 오히려 절 그렇게 신경 써줘서 기뻐요. 더 집착해주세요.”
“……네?”
아, 또 입방정.
“아니, 아니지. 이게 아니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저만큼 욕심 많 은 사람도 없어요. 나중에 다른 엄마 찾으면 안 돼요. 저만 공자님의 엄마 할 거예요.”
아벨이 내 품 안에서 펄쩍 뛰었다.
“절대 그럴 일 없어요!”
“하하 …….”
“아, 그리고 영애.”
“네.”
“제가…… 아버지의 아들인데도 아버지랑 다른 이유는요…….”
아니, 그것까지 말하려고?
나는 다급히 아벨의 말을 막고 말했다.
“여윽시 전하는 대단하신분이에요. 이렇게 대단하신 공자님을 낳으 시다니요.”
“아니예요, 영애.”
“아니, 공자님. 잠깐만…….”
“사실 저, 아버지의 친자식이 아니예요.”
와, 이런 직진남 같으니.
일단 마음먹었으면 뒷걸음질이란 없구나.
대체 누가 아벨 널 하데스의 아들이 아니라고 했니?
후진이라곤 없는 성격마저 판박이 처럼 똑 닮아있는데!
“어, 음…….”
나는 또 당황한 것처럼 어색한 연기를 시작했다.
내 품에서 빠져나온 아벨이 우물쭈물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제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오비투스라는 곳에 마물을 토벌하러 오셨다 가 저를, 저를 루버몬트 성에 데려오 셨어요.”
“그, 그래요? 그런데 전하가 아무 이유 없이 공자님을 데려왔을까요? 공자님은 모르는 출생의 비밀이 있었 던 건 아닐까? 공자님은 전하의 친아 들이 맞는데, 모종의 이유로 헤어져 있었다거나…….”
“아뇨. 아니예요.”
필사적인 내 마음을 읽지 못했는지아벨은 단호히 진실을 알려왔다.
“저는 고귀한 피를 가졌다는 루버몬트의 사람이 아니예요.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부모님도 없고 성도 없는 아이였어요.”
차분히 중얼거리면서도 아벨은 이 따금씩 힐끔거리며 내 표정을 살폈다.
그는 한껏 우울해진 얼굴로 말했다.
“이런 제가 영애를 어머니라고 불 러도…… 되는 걸까요?”
그게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이름뿐인 가문이긴 했어도 나는 귀족이었다.
아벨이 아는 귀족들은 하나같이 혈 통을 중시하는 귀족주의에 물들어있 었을 테니, 모른 척 하데스의 친아들 로 남아 나를 속이는 게 마음에 걸리 기도했겠지.
속으로 아벨이 얼마나 고민을 했을 지, 나는 상상도 못 하겠다.
또 울컥하는 마음올 겨우 다잡으면 서 나는 고개 저었다.
“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지금까지 공자님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공자님, 저는요.”
최애를 향한 내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모든 게 거짓이고 누가 흑막인지 모르는 페르소나 속에서, 나는 아벨이 최종보스라고 하더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을 텐데.
“공자님이 대단한 가문을 물려받을 분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예요. 그 냥, 공자님이라서 좋은 거예요. 공자 님이 어떤 사람이든 저는 하나도 상 관없어요.”
내 말에 아벨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놀란 듯, 동그랗게 뜬 눈 속에 붉은 동공이 작게 일렁였다.
“영애 …….”
“제가 좋아하는 거 알죠?”
눈을 찡긋해 보이자 아벨의 입이 삐 죽거렸다.
곧 그가 와앙 울음을 터뜨리며 내 품으로 안겨들었다.
그새 더 자란 몸집이 달려들자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침대 위로 넘어간 채 나는 품에 안 긴 아벨의 등을 도닥거 렸다.
“흐으 ……. 제가, 제가 많이 좋아해요. 아시죠?”
“알죠, 알죠. 그런데 공자님, 이런 얘기, 다른 사람한테는…….”
“안 해요. 저도 알아요. 그런데 영애에게는요, 숨기고 싶지 않아서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아벨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멈칫했다.
숨기고 싶지 않아서…….
그래, 나 또한 그렇다.
숨기는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게 싫기도 하고…….
해서 다시 하데스를 보게 되면, 그가 듣지 않겠다고 뿌리쳤던 내 전생을 전부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사이 꾼 꿈은…….
‘내가 그걸,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엿본 것은, 〈페르소나〉에 등 장하지는 않지만 분명 누구보다 중요한 인물들의 이야기였다.
그것이 그저 독자 1로서의 관조였 다면 나는 아마도, 바라는 대로 아벨과 쭉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벨의 안위를 위해서라 도 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수 없다.
만약, 내가 엿본 것이 내 전생이라 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아무래 도, 나와 지독한 운명으로 얽힌 희생 양은 아벨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언제고 ‘미래’가 내 눈앞에 펼쳐져 봐야 알겠지만, 지금 내가 이토록 아벨에게 이끌리는 것만으로 도 증거는 충분했다.
나는 차마 내가 너를 위험하게 만들 지도 모를 사람이라고 고백할 수 없 었다.
아벨의 등을 쓰다듬는 손이, 꼭 족 쇄라도 달린 듯 무거웠다.
쾅!
“엄마야!”
“아!”
그때 가만히 서로를 안고 침묵하던 우리는 화들짝 놀랐다.
문짝이 떨어져나갈 듯 난폭하게 둥장한 건, 당연히도 하데스였다.
그는 여태 본 것 중 가장 평정심을 잃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 맞다. 아벨이 하데스 모르게 내 방으로 왔다고 했었지.’
아벨은 제 잘못을 아는지 어깨를 잔 뜩 움츠러뜨리며 벌벌 떨었다.
화내면 무서운 하데스를 잘 알기에, 나도 아벨의 어깨를 안고 그처럼 몸을 움츠린 채 떨었다.
나와 나란히 침대 위에 앉은 아벨을 가만히 응시하던 하데스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주저 없는 걸음마다 피어오른화, 당황스러움, 안도 같은 것들을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어, 저기…… 전하.”
우리 앞에 와 선 하데스는 입술을 떨며 한참 서 있다가, 곧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무너지듯 무릎 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