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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59화 (59/221)

59화.

하데스가 가고 난 이후, 나는 태평 하게도 잠에 빠져들었다.

마력이 고갈된 몸 상태는 역시 체력 이 방전된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가하게 잠이나 잘 때가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꼭 마취라도 당한 것처럼 스르륵 눈이 감긴 걸 보 면…….

그리고 지금 이게 꿈이라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제누스.”

이런 게 자각몽인가? 싶을 정도로 또렷한 정신.

그 꿈속에서 나는 놀랍게도 내가 전 혀 모르던 사실들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내 앞에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제누스’가 어떤 여자인지.

‘이게 무슨 꿈이람.’

다만, 확실하지 않은 것 한 가지.

꿈속에서 나는 제누스라는 여자의 눈으로 남자를 마주하고 있었으나, 내가 제누스 그 자체인지, 그저 관조 자로서 그들의 모습을 엿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울고 있구나.”

남자는 아주 다정한 표정으로 위로 하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맑은 하늘을 그대로 그린 둣한 부드 러운 그의 머리칼이, 옅은 바람에 가 볍게 나부꼈다.

남자의 이름은 프로크레아토르.

용신 가이오니아가 만든 첫 번째 자식이자, 가장 사랑했던 세 명의 자식 들 중 하나.

그는 가이오니아를 닮아 전능했으 며, 유일하게 저주받지 않았기에 여 전히 자신의 축복받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프로크레아토르는 나를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 위에 눕혔다.

뺨을 스치는 그의 손길에 눈물이 묻 어났다.

그의 말대로, 나는 울고 있었다.

왜냐하면…….

백아흔 번째로, 사랑하는 나의 자식을 죽이고 돌아온 길이었기 때문에.

“슬프니?”

“……응.”

이미 타들어 갈 대로 타들어 가고 형체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 져 폐허가 된 가슴속과는 달리, 내가 보는 세상은 지극히도 평화로웠다.

프로크레아토르의 다정하고 상냥한 얼굴, 그의 위로 우리에게 그늘을 만 드는 플라타너스 한그루…….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 평화로운 녹빛 대지, 고요하고 맑은 하늘까 지…….

“그만 울어.”

“이번에도 실패하고 말았어. 만나 지도 않으려고 했는데…….”

“그 아이는 너를 원망하지 않았을 거야.”

“알아.”

나는 눈물 흐르는 얼굴을 손으로 감 추며 말했다.

“그래서 더 슬퍼. 차라리 나를 원망 하고 저주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그 이후로 꼭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울지 말라 말하던 프로크레아토르는, 더는 나를 말리지 않고 그저 가만 히 곁을 지켜주었다.

더 이상 울 힘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었을 때쯤.

색색거리며 겨우 숨만 몰아쉬는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프로크레아토르는 언제나 그랬듯 다정하 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를 전에는 이그니스를 만났지.”

“아.”

이그니스 또한, 연인을 죽인 죄로 나처럼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자식이 었다.

그 또한 나처럼 수많은 생을 반복하 며 괴로워하고 있겠지.

언젠가 아주 평화로운 과거가 있었 던 것도 같은데…….

나와 프로크레아토르, 그리고 이그니스는 그 기억 속에서 퍽 행복했었다.

우리는 인간이었으나 사랑받는 자 식이었기에, 조금은 신과 더 닮아있 었다.

늙거나 죽지 않았고, 곁에는 각자의 연인이 있었으며, 자식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를 낳아준 신을 사랑했 고, 항상 감사해했다.

그러나 나는, 그리고 이그니스는, 신께서 자비롭게 안배한 그 행복을…….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의 손으 로 망가뜨린 죄인이었다.

“이그니스는 연인을 처음 죽인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더라. 하 긴, 당연하겠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 났으니까.”

“…….”

“그렇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지.”

프로크레아토르는 먹먹한 시선으로 허공을 더듬으며 말했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 아니야. 그걸 인정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관대 할수 없지.”

“왜 죽였헜더라.”

“더 이상 자길 사랑하지 않는 연인의 변한 마음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 이야.”

죄.

그것은 명백한 죄다.

이그니스가 안타까웠지만, 그가 죄를 지은 것은 명백했다.

하여 나는 신의 벌이 마땅하다고 여 겼다.

“너무 오랜 벌을 받고 있지만, 죄를 지은 것이 맞지.”

“그래.”

“아버지가 그를 용서할 때까지는, 이그니스가 안타까워도 그저 참아야 겠다고 생각했어.”

“…….”

“제누스.”

“응?”

“너는…… 처음으로 네 자식을 죽였던 날을 기억해?”

이그니스와 달리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 입을 열어 대답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괴롭게 하는 기억이었기에.

“알 수 없는 열병을 앓고 있었지. 아마 그대로 두었더라면 고통에 몸부 림치며 죽어야만 했을 거야. 아버지 께서 말씀해주셨거든. 네 자식은, 그 때 그렇게 죽을 운명이었다고.”

“…….”

“그런데 너는 그 아이를 사랑했어. 단 한 순간도, 그 아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만.”

“하여 네 손으로 아이의 목숨을 거 뒀고, 그 다음에는 그 죄책감 때문에…… 아버지께 받은 너의 목숨을 스스로 거두었지.”

“제발, 프로크레아토르……. 그만. 너무, 너무 괴로워…….”

“그리고 다음 생부터 너는 형벌의 굴레에 갇혔어.”

“기억, 하고 있어. 이그니스와는 달 리……. 그러니까 제발.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돼.”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몸이 라 아버지와 가장 닮아있지만, 정신 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이지. 해서 네가 벌을 받게 되었을 때, 도무지 아버지 가 이해되지 않았어.”

내 부탁에도 아랑곳 않고, 프로크레아토르는 차분히 말을 이 었다.

“너희 둘 모두,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저질렀지. 이그니스는 이해할수 없었지만, 너는, 너는 아니었어. 내가 너였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

“…….”

“내가 이 세계에서 가장 사랑하는 너와, 그리고 이그니스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 면 말이야. 차라리…….”

그는 아주 고통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물며 말했다.

“너희들이 영영 다시 이 세계에 태 어나지 않길 바라. 할 수만 있다면 내 손으로, 너희에게 죽음이라는 안식을 주고 싶을 정도로.”

“…….”

“너도 그런 마음이었겠지, 제누스.”

그는 눈물 고인 눈으로 웃으며, 살 짝 허리를 숙여 내 이마에 입 맞췄다.

“너는 아버지가 ‘선’이라고 생각하 니?”

“……무슨 말이야?”

“이를 전에 만난 이그니스는 말했 어.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했지.”

그의 말에, 나는 다급히 몸을 일으 켰다.

놀란 눈으로 나는 그의 어깨를 붙들 고 소리쳤다.

“나는! 나는 그런 생각 하지 않아! 아버지는 이 세계의 절대자야! 아버지가 선이고, 아버지가 곧 이 세계의 법칙이고, 아버지가……!”

프로크레아토르는 빙긋 웃으며 홍분한 나를 달랬다.

당시의 나는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 었다.

더 이상의 죄를 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받고 있는 벌만으로도 나는 너무나도 괴로웠고, 혹시나 아버지에게 불순한 생각을 갖는 것만으로도 그 벌이 가중될까 두려웠다.

“제누스.”

그러나 프로크레아토르는, 아버지 가 두렵지 않은 듯했다.

그는 한없이 다정한 그 얼굴로 아주 무서운 말을 했다.

“나는 깨달았어.”

“…….”

“아버지는 선이 아니야.”

“프로크…….”

“아버지는 전지하시지. 모든 것을 내다보셔. 이그니스가 연인을 죽일 것도, 네가 자식을 죽일 것도 이미 알 고 계셨다.”

그래, 아버지는 이 세계 그 자체였 기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 전지한 능력을 그 자식들에게 주기도 했다.

정확히는, 형벌의 굴레에 들어선 나 와 이그니스에게.

나와 이그니스는 벌을 받은 이후로, 매 생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전지함.

그것은 실로 저주받은 능력이 었다.

어찌 바꿀 수 없는, 연인을 죽이고 자식을 죽이는 운명을 전부 내다보면 서도 순응할 수밖에 없었기에…….

“또한 아버지는 전능하시다. 이그니스가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만들 수 있었고, 네 자식을 아프지 않게 하 여 너를 고통에 빠뜨리지 않게 할 수도 있었다.”

“…….”

“한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지?”

프로크레아토르의 의문은, 아버지를 향한 내 믿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 가이오니아는 절대선이었다. 또한 전지전능했다.

그는 전지했기에 우리가 저지를 ‘죄 악’을 전부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전능했기에 우리가 저지를 ‘죄악’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 었다.

하나, 정말로 왜.

그렇게 하지 않았지?

“제누스. 만약 아버지가 선하신분이었다면 전지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아버지도 너희들이 저지를 죄악을 내 다보지 못하셨을 테니까.”

“그렇지만 전부…… 알고 계셨지.”

“그래. 하나 전지하신 대신 전능하 지 못하셨다면, 아버지는 여전히 선이었을 것이다. 이그니스의 연인이 계속 그를 사랑하게끔 만들 재주도, 너의 자식이 고통스럽게 죽지 않도록 도와줄 힘도 없었겠지.”

그러나 아버지는 이그니스의 연인 이 그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게 만들 수도, 내 자식이 아파 죽지 않게 만들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이 세계 그 자체였고, 누구보다 전능했으니까.

모든 피조물들을, 그리고 그들의 운 명까지 만들어내는 존재였으니까.

혼란스러움에 말을 잃은 내게, 프로크레아토르는 입술을 질끈 물며 덧불였다.

“전지전능하며 동시에 선할 수는 없다. 전지하고 선하다면 전능하지 않을 것이고, 전능하고 선하다면 전 지하지 못하겠지. 아버지는.”

그때 나는, 그런 프로크레아토르의 표정을 처음 보았다.

가장 신과 닮아있던 그의 얼굴에는, 항상 보여줬던 자애로운 웃음이 하나 도 남아있질 않았다.

타오르는 분노.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가.

“전지하고 전능하시다. 그렇기 때 문에…….”

“…….”

“절대로, 선한 존재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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