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미하일은 타오르는 손을 붙잡고 고통스러워했다.
“하윽…….”
고통스러워하는 미하일을 보는 내가 더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그가 안쓰러워서가 아니라, 그냥 눈 앞에 펼쳐진 그 광경이 너무나도 잔 인해서였다.
헛구역질이 나게 하는 살 타는 냄 새.
고통에 일그러진 인간의 표정.
“윽, 하…….”
금방이라도 한 줌 재가 되어 툭 떨어질 것 같은 오른손을 바라보며 미하일은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극한의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 운 죽음은 불에 타 죽는 거라는 말을, 나는 언젠가 들은 적 있었다.
“유언, 없소?”
이 끔찍한 광경에도 하데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미하일을 재촉했다.
그의 가차 없는 인간성이야 워낙 묘 사된 적 많아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 렇게 실제로 마주하기는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없나 보군. 그럼 잘 가시오.”
아니, 손이 그냥 생으로 활활 타오 르고 있는데 누가 1분 만에 유언을 남겨요……?
애초에 하데스는 미하일의 유언 따 윈 들을 생각도 없었던 게 분명했다.
나는 입술을 문 채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서 화형당하는 사람을 아무 렇지 않게 구경하고 있을 자신은 없 어서…….
그러나, 바로 그때.
“아!”
잔인한 광경에 일부러 돌려버렸던 고개가 다시 미하일 쪽으로 돌아갔다.
그건 맹세코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내 몸은 왜인지 본능적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미하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또야.’
무작정 타오르는 손을 붙잡으려는 내게서 미하일이 떨어져 나간 것고I, 놀란 하데스가 그 즉시 불을 꺼트린 건 동시였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아이샤!”
어느새 내 코앞에는 당황스러운 표 정의 미하일이 서 있었다.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왜 나는 수십 수만의 사람을 구할 수 있으면서, 당신만은 구원하지 못하는 걸까요. 」
그때, 머릿속에서 아벨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내 몸에서 어떤 거대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흡수의 이능을 사용했을 때. 그러니 까 마력을 썼을 때와 비슷한 느낌.
그러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방대한 양.
“허억!”
그것은 꼭 격한 운동 뒤에 체력이 방전된 것과 비슷했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지 못하고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영애!”
쓰러지는 나를 보며 미하일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표정을 마주하며 나는, 당황스러 운 와중에도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견딜 때보 다도, 더 고통스럽고 애절한 표정.
「사랑해요. 」
「……아벨라. 」
「영원히…….」
머릿속 기억도 기억이지만, 미하일라이가르트 대신관, 그 또한 정말이 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저 표정…….
그건, 걸대로 꾸며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대체 미하일 라이가르트는…… 누 굳이? 나를, 아니, 아벨라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미하일과 아벨라의 존재, 그리고 둘의 관계.
그것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이 실타래의 시작점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었다.
한참 나를 애절한 표정으로 응시하 던 미하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 한 표정으로 웃으며 몸을 물렸다.
그리고는 하데스를 보며 말했다.
“유언은 없으니 바라셨던 대로 저의 목숨을 거두어 가주시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
“1초가 아까울 정도로 마력을 퍼붓는 중이오.”
“아하.”
살벌한 하데스의 목소리에도 미하일은 태연하게 주먹을 말아 쥐고 입을 가린 채 쿡쿡 웃었다.
둘의 대화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 았다.
“직접 확인하는 중이셨군요.”
이어지는 미하일의 말 때문에.
“영애가 성녀로 각성하셨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이것 참 다 행입니다, 전하.”
“…….”
“백속성의 최대 개방 능력자는 용신 가이오니아가 내린 기적이라고 하지요. 저도 실제로 보게 되니 놀랍군요.”
다시 나를 돌아본 미하일은 살짝 고 개를 기울이며 상냥한 웃음을 지었다.
“그 무엇도 풇을 수 없는 방패라 니.”
“이봐요,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라고 변명하려던 내 입은 힘없이 다물렸다.
나는 방금 1차 개방 능력과는 차원 이 다른 양의 마력을 소모했다.
그 증거로 이렇게 다리에 힘도 주지 못한 채 쓰러져있지 않은가.
내 의지는 아니었으나 나는 분명히, 본능적으로 능력을 사용하고 만 거였다.
백속성의 최대 개방 능력.
무효화를.
……. 구에게?
날 죽이려는 흑막 대신관 미하일 라이가르트에게.
“얘기가 빨라지겠군요. 영애는 신 전에서…….”
나를 보며 말을 잇던 미하일은 문득 멈칫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는 다시금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신전에서…….”
어째서인지 할 말을 잃은 사람처럼 입술을 달싹이던 미하일은 곧 도망치 듯 내게서 시선을 비틀었다.
“후…….”
침묵 속에서, 그는 한참 만에 말했다.
“생각을…… 해보니, 제가 너무…… 무례하게 굴었던 것, 같기도 하군요.”
어느새 그는 나를 바라보던 눈을 돌 려 하데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성녀가 재림했다는 사실에 잠 시…… 눈이 멀었던 모양입니다. 영애의 결정을 존중해야 함이 마땅한데 도 불구하고…….”
“…….”
“소란을 일으켜 진심으로 죄송스러 운 마음입니다. 황실에 진정서를 넣 기로 한 것은 조금 미루도록 하지요. 영애가.”
미하일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신전으로 들어오실 생각이 든다 면, 자유롭게 결정하실 문제인 것 같 으니까요.”
미하일의 말에 나는 놀랐다.
당장이라도 나를 신전으로 데려가 서 어떻게든 죽일 생각이 아니었던 가?
왜, 갑자기?
의아해할 겨를도 없이 미하일은 다시 나를 돌아보며 상냥하게 웃었다.
“루버몬트 공작 전하는 대단히 강 하고 멋진 분이시지요. 부디 영애께서…….”
왜인지 먹먹한목소리.
“……진심으로 전하를 사랑하시며 행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군요.”
미하일은 뜬금없이 진심인지 조롱 인지 모를 말을 건네고는, 하데스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무례를 저지른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곧장 신전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려 합니다. 허해주실는지 요?”
여전히 불이 가라앉지 않은 눈으로미하일을 응시하던 하데스는, 곧 허 탈하게 웃으며 몸을 비스듬히 했다.
어차피 무효화의 이능 아래 보호받 고 있는 이상, 하데스는 그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었다.
미하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 며 유유히 내 방을 나섰다.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나와 하데스의 사이로는 무거운 정 적이 퍽 오랫동안 맴돌았다.
그렇게 한참.
생각을 정리하는 듯 침묵하던 하데스는, 벌받길 기다리는 학생처럼 벌벌 떨고 있는 나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데스는 그대로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걸어오는 그의 모습이 꼭 느릿한 슬 로모션처럼 시야에 잡혀들었다.
지금 하데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황당할 테지.
지금 내 심정도 꼭 똑같으니까.
무작정 미하일을 구하겠다고 달려 들었고, 그를 위해서 무효화의 이능까지 개방했다.
파르넬리 공저에서 세뇌를 피했을 때에는 본능이더라도 내 의지였겠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하나 확실한 건, 아벨라 에스클리프, 그녀의 의지인지 기억인 지 모를 것이 내 안에 분명히 공존하 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 상황이 설명될리가…….
“아이샤.”
“네, 네! 전하.”
하데스에게 꺼내놓을 변명을 준비해야 했지만, 당황한 머리는 마비된 것처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온 하데스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천천히 무릎을 굽혀 나와 눈을 맞춘 하데스가 말했다.
“그대가 나를 막은 것은.”
“…….”
“납득할수 있겠어.”
“죄, 죄송해요. 그게 사실, 제가 그 러려고 그런 게 아니고…….”
“눈앞에서 대신관씩이나 되는 자가 죽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고 한 다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
하데스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 며 말을 이 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말의 내용은 자비 로웠지만 표정은 점점 험악해졌다.
붉게 일렁이는 눈동자에 선연한 분 노.
순간, 그대로 직시해온 그 시선에 무의식적으로 숨이 삼켜졌다.
저 분노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정확 히 나를 향해 있다는 사실.
그것은 실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었다.
“무효화를.”
그는 짧게 내뱉으며 굽혔던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얼른 따라 일어나려고 했지만, 힘이 몽땅 빠진 다리는 좀처럼 내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나는 막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처럼 당황하며 퍼덕거렸다.
일으켜줄 법도 하건만, 하데스는 무 심한 분노 그득한 표정으로 내려다보 기만할 뿐이었다.
“개 방했다는 사실도, 그걸 내게 말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당황스럽지만 이해해주지.”
“아니예요, 전하. 오해세요. 숨긴 게 아니예요. 저도 몰랐고, 저 도…….”
“그래. 방금 그 순간 처음으로 그대의 능력이 개방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면, 그것도 믿어주지.”
까득, 중간에 이 갈리는 소리가 한번 났다.
화를 참고 있는 모양이 었다.
“한데 말이야.”
나를 직시하고 있던 그의 시선이 살 짝 비틀렸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날카로운 눈 빛으로 허공을 더듬던 하데스가 재미 있다는 둣이 웃었다.
“내게 거짓을 말했다는 건 조금 납 득하기가 힘이 드는군.”
“……무슨?”
“신전에 아는 자가 없다고 했지. 대신관과도 첫 만남이 었을 테고.”
“네, 맞아요. 거짓말 아니예요. 전 이번에 대신관을 처음 봤어요. 오해하지마세요. 전…….”
미하일 라이가르트 대신관이라는 자가 존재하는 거야 소설을 읽어 알 고 있었지만, 그를 만난 적 없다는 건 거짓이 아니다.
하데스의 능력에서 미하일을 구하 긴 했어도, 그게 원래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진 않는다.
하나 왜인지, 하데스는 내가 거짓을 말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내가 모를 줄 알고 기만하려는의 도였을까?”
하데스는 내 말을 자르고 피식 웃으 며 덧붙였다.
“감히 내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그 순간.
“……그대에게 사랑고백까지 하고 말이야.”
“……네?”
하마터면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