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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49화 (49/221)

49화.

착각이 아니다.

착각이 아니라 지금…….

‘우리 뽀뽀하고 있는 거야?’

아니, 뽀뽀도 아니다.

가만히 맞붙인 하데스의 입술이 슬 쩍 벌어지는 걸로 보아 다음 단계까 지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해 보였다.

이런 분위기가 아니 었다는 걸 알면 서도 당황한 나머지 나는 바짝 굳어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천천히 벌어진 하데스의 입술 사이에서 뭔가 뜨겁고 촉촉한 것이 슬쩍 고개를 내밀려는…….

그, 순간이었다.

‘아!’

돌연 머리가 찌릿했다.

「……당신을 기다릴게요. 」

동시에 누군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 이는 듯한 환청이 들렸다.

‘무슨…….’

아니, 정확히는 찌릿한 두통과 함께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둣 들려오고 있 었다.

「잊지 않을 거예요. 」

목소리는 단호했다.

내 생각인지, 다른 어떤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저리 가!”

내 손이 거의 반사적으로 움직여 하데스의 가슴팍을 밀쳐냈다. 놀란 하데스도 홈칫하며 떨어져나갔다.

“…….”

“아…….”

우리는 멍한 표정으로 한참 서로를 바라봤다.

“저, 전하. 그러니까 이게…….”

부끄러운 듯도, 의아한 듯도 한 하데스의 커진 눈. 그리고 붉어진 얼굴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그는 아무래도 ‘중요한 일을 할 것이다. ’라는 내 말을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었다.

“하, 하하, 하하하…….”

나는 나만큼 당황한 하데스를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죄, 죄송해요. 제가 뭔가 오해하게 행동…….”

그 순간, 또 찌릿하고 불쾌한 두통 이 엄습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

「배신하지 않을게요. 」

「내 영혼이 죽어 없어져도 기억만 은 남도록……. 」

다시 한번 들려온 목소리에 확실해졌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어떤 타인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하데스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지 만…….

“하윽!”

쪼개질 듯 아픈 머리를 붙잡고 몸을 움츠리자 하데스는 당황한 와중에도 놀라며 허둥거렸다.

“왜 이래?”

“아뇨. 갑자기 머리가…….”

두통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드문드 문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이제는 머 릿속에 낯선 광경까지 펼쳐 졌다.

‘신전?’

백색의 사제복을 차려입은 수많은 신관들과, 그 사이에 선 여자.

고귀하고 성스러워 보이는 모습은 찰나였다. 바로 다음 순간 머릿속에 서 바뀐 장면은 배덕함의 극치였다.

「사랑해요. 당신을…….」

격렬한 연인들의 정사 장면. 온갖 살색이 난무하는 19금 영화가 머릿 속에서 생생하게 펼쳐지자 나는 당황스러웠다.

“뭐, 뭐야, 이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갑자기 펼쳐지는 장면들은 내 기억이 아니다. 물론 방금 하데스를 밀쳐 낸 행동 또한 내 자의가 아니고.

갑작스러운 입맞춤이 당황스럽긴 했어도 오해할 만했고, 그를 민망하 게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내 몸이 갑자기 제멋대로 움직인 이유는 뭐며, 이 낯선 목소리는 뭐지?

설마 정말로 나도 세뇌당한 건가?

아니지, 미하일 라이가르트가 그 순 간에 뜬금없이 ‘하데스 루버몬트와 절대 키스하지마시오. ’라고 세뇌들 걸었을 리는 없잖은가.

‘대체 뭐냐고!’

고통과 당황에 어버버거리는 내 손 목을 하데스가 가볍게 붙잡았다.

“아이샤.”

“만지지 마!”

순간 내 입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튀 어나왔다.

분명 내 목소리가 맞긴 한데 내가 하고자 하던 말은 아니 었다.

놀란 하데스의 얼굴을 보며 나는 곧바로 정정했다.

“아니예요. 만져도 돼요.”

“……뭐?”

황당한 얼굴로 입을 떡 벌린 하데스를 보며 나는 답답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다중이도 아니고…….

“전하, 잠깐만요. 저도 제가 지금 왜 이러는지……. 하윽!”

다음 순간, 여태껏 느꼈던 두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렬한 고통이 머릿속에 엄습했다.

동시에 또 다른 장면들이 어렴풋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기다릴 수 있어요. 이번에는 당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게요. 」

「그래도 변하는 건 없어. 」

「맞아요. 변하는 건 없어요. 당신 은 나를 사랑할 테고, 나도 당신을 사랑하겠죠. 그리고 당신은, 또 나를…… 죽이게 될 거예요. 그렇죠? 」

「……. 」

「그래도 상관없어. 당신 손에라면, 나는 죽는 것도 행복할 거예요. 여태껏 그래왔을 거야」

기억 속에서 나는, 낯선 여자의 몸으로 낯선 남자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남자는 전혀 본 기억이 없는 얼굴이 었지만 푸르게 일렁이는 눈동자에서 나는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미하일 라이가르트…… 대신관?

아니, 그의 얼굴이 아닌데.

대체 왜 그가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 었다.

「나를 기억하지마. 그 편이 덜 고 통스러울 테니까……. 」

「싫어요. 이번에는 꼭, 기억할 거 예요. 내 부탁 들어줄 거죠? 」

「……. 」

「이제 준비됐어요. 기다릴게요. 」

남자는 슬픔에 무너지는 얼굴로 나를 끌어안았다.

기억뿐인데도 퍽 애달픈 온기가 느 껴져 당황스러웠다.

그는 천천히 두 손으로 내 목을 옭 아매며 속삭였다.

「에르고 테헤르 아모(Ergo teherr amo). 」

「아벨라. 」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절절한 남자의 목소리를 끝으로 기억은 끊겼다.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벨라, 라는 이름과.

주문처럼 귀에 휘감기는 남자의 고 백에.

‘에르고 테헤르 아모.’

어디선가 주워들어 본 적 있는 실존하는 외국어 같지만, 분명〈페르소나〉의 작가가 소설 속에서 만들어 낸 대사였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아벨과 데보라가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순간의 대화를 정확 히 기 억하고 있으니까.

「아벨, 에르고 테헤르 아모 (Ergo teherr amo)」

「……무슨 말이야? 」

「옛날 용신 가이오니아가 제국을 다스렸을 때에 쓰인 고대어래. 대신관님이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 면 쓰라고 하셨어. 」

「흄, 횸. 그러니까 무슨 뜻인데? 」

「왜 알면서 물어봐. 방금 네가 나한테 했던 말이랑, 똑같은 뜻이야. 」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데보라를 끌 어안은 아벨이 이전에 했던 말은.

‘너를 사랑해. ’였지.

“대체 이게…… 무슨…….”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확신에 가까운 추측은 해볼 수 있었다.

남자는 기억 속에서 분명 ‘아벨라. ’라고 말했다.

재림을 예고하고 죽었다는 500년 전의 성녀 아벨라 에스클리프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마력 수치가 미미한 에스클리프 가 문 줄신인 내게 아무런 이유 없이 막 대한 능력치가 있을 리 만무했고, 혹시나 그렇다면 정말로 이 몸이 아벨라 에스클리프의 환생이 아닌지 의심했었는데…….

‘정말 그런 거였다고?’

최종 흑막에게 대항할 생각만으로 도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이 무슨 뜬 금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갑자기 내게 흘러들어온 건 아벨라의 기억?

그렇다면 나는, 아니, 아이샤 에스클리프는, 확실히 성녀의 환생이 맞는 걸까?

‘정말 그렇다고 해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원래 아이샤의 영혼이 아벨라의 영 혼이었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안에 들어와 있는 나는 아벨라가 아니다.

대충 어렴풋이 흘러들어오는 기억 과, 하데스를 격렬하게 거부하는 모양새를 보니 감이 왔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등, ‘그’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둥…….

이 몸에 스며있는 아벨라의 기억은 아무래도 연인으로 추정되는 500년 전의 남자를 향한 지조를 지키고 싶 은 모양이었다.

‘대체 왜 이래. 이미 죽었을 전남친을 위해서 나더 러 독수공방이라도 하 라는 거야?’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으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한다고 밀려들어오는 기억이 떨쳐내질 것 같진 않지만…….

‘지금은 내 몸의 이상 상태를 신경쓸 때가 아니야. 이건 나중에 천천히…….’

그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내 표정 이 걱정스러웠는지 하데스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어왔다.

“어디가 안좋이나?”

아무래도 그는, 혹시 정신이 나갔 니? 하는 질문을 최대한 순화한 모양이었다.

당황스러울 하데스를 위해 나는 황 급히 변명했다.

“아니예요. 갑자기 머리가 좀 아팠 는데 이제 괜찮아요. 놀라셨죠? 미안.”

“아니, 나는 괜찮은데…….”

말끝을 얼버무리며 하데스는 얼굴을 붉혔다.

대단히 민망할 상황이긴 했다.

뭔가 오해하고 대뜸 입술부터 들이 밀었다가 대차게 까여버린 그림 아닌 가.

저 성격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 어가고 싶겠지.

“그, 그런데 내가, 내가 실수한 모양이야. 사과하지. 그…….”

“아뇨, 전하. 그러니까 이게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던 건 맞는데요.”

생각해보면 누가 봐도 그렇고 그런 타이밍이긴 했지.

아무래도 잘못이 있다면 내게 있을 터였다.

아무것도 모를 사람을 갑자기 벽으 로 밀어붙이고 뭔가 중요하게 할 일 이 있다며 목을 끌어안고 얼굴까지 붙였는데, 사실 달리 생각할 게 있 어?

너무나 부연설명이 부족했던 과실을 인정하며 나는 순순히 사과했다.

“제가 오해하게 만든 건 맞아요. 전하께서 사과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니, 그대는 당황했을 텐데, 내, 홈, 내가 사과하는 게 맞지. 내가 오해를, 오해를 했군.”

하데스는 달아오른 빰을 손등으로 훔치며 대단히 수치스러워했다.

이럴 수가. 안쓰러워.

만약 내가 아벨의 덕질을 위해 결혼을 결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때는 얼마나 더 수치스러워할까?

설마 진짜 말로만 들어왔던 수치사를 목격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안 될 말이다. 겨우 하데스를 죽음 앞에서 구해낼 방법을 찾았는데 그럴 순 없지.

안쓰럽게 귀여운 공작 전하를 위해 진실은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결심하 며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생 각보다 나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지금 이럴 분위기는 아니니까 나중에 다시 시도해보기로 해요.”

“뭐, 뭘 나중에 시도해?”

“아무튼 지금은 급해요. 잠시 이리 로.”

서로 민망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하데스보다 빨리 제정신을 차렸다.

그래, 그럼 그렇지.

아벨과 데보라야 로맨스 소설 찍는 주인공이었지만 나랑 하데스는 아직 그런 것도 아닌데, 서로 이마를 맞대 고 분위기 잡으며 능력 쓰려고 했던 내 불찰이 크다.

나는 그냥 하데스의 팔을 잡아 앉히 고는 그의 이마 위에 가만히 왼손을 얹었다.

하데스는 당황하고 부끄러운 감정 이 여전한 것 같았지만, 일단은 내가 하자는 대로 얌전히 따라주었다.

“가만히 계세요.”

정신을 집중하고 흡수의 이능을 사 용해보려는 때였다.

쾅쾅쾅!

“엄마야, 깜짝아!”

전쟁이라도 났는지 다급하게 주먹으로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화 들짝 놀라 푸드덕 거 렸다.

놀란 건 하데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흠칫 떨던 그가 불쾌한 표정으로 소리 쳤다.

“누가 이렇게 무례한 거지?”

내 방에서 뜬금없이 들려오는 하데스의 목소리에 문 앞의 누군가는 당 황했는지 잠시 침묵하다가, 곧 말했다.

“전하께 당분간 영애의 호위를 명 받은 제임스 발렛입니다. 대신관님께 서 파르넬리 공저에서 있었던 일로 영애에게 개인적으로 사과를 드리고 싶다 하시며 찾아오셨습니다. 문 열 겠습니다.”

들여보낼까요? 하며 허락을 구하는 말도 아니고 다짜고짜 문을 열 겠다니 호위의 패기가 놀라웠다.

하데스도 같은 생각인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예의가 없군. 지금 영애는 나와 얘 기 중이라 바쁘니 나중에 내가 찾아 가겠다고 전해라.”

불쾌한 듯 하데스의 미간이 찌푸려 져 있었다.

그러나 호위는 막무가내였다.

“안 됩니다. 대신관께서 지금 당장 영애를 보시기를 원합니다. 문 열겠 습니다.”

“아니, 뭐라고?”

하데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 미 친놈이 정신이 나갔나, 하는 표정이 었다.

하나 나는 제 모가지 아까운 줄도 모르고 하데스에게도 막 나가는 저 호위의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 었다.

‘그대도 세뇌를 당하셨군요. 무조건 내 방 문 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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