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신전이 루버몬트 영지에 방문하기 로 한 날이 었다.
「Q. 작가님! 작가님의 소설 속 최애 캐는 누구인가요? 역시 아벨이겠죠?
A. 하하하! 당연히 최애캐는 주인 공이죠! 그렇지만 특별히 애정 가는 캐릭터는 따로 있습니다! 」
새벽부터 신전 사제들을 맞을 준비로 온 성이 분주했으나, 그들이 도착할 오전에야 감금령이 풀릴 나는 한 가로웠다.
‘생각해보자.’
널널한 시간에 나는 어김없이 이 수 상한 세계를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알던 모든 등장인물들의 정체 가 다를지도 모를 흑막 소설〈페르소나〉.
그리고 그중 가장 의심스러운 냄새를 폴폴 풍기는 집단인 ‘신전’.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이후, 그 신전의 인물들을 처음 만나게 될 자리에 서 나는 SNS에 풀어놓았던 작가님의 사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Q. 앗! 그렇다면 작가님이 따로 애 정하시는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A. 미하일 대신관이요. 그는 제가 설정한 캐릭터 중 가장 ‘선한’ 캐릭터 라고 할 수 있거든요.
백속성인데도 능력을 개방하지 못했으니 신전에 있기에는 한없이 무능 하면서도, 그 선함 하나로 대신관 자리를 줄곧 역임했죠.
모든 신전 사제들과 많은 제국인들 이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면, 미하일은 대신관의 자리에서 아벨과 데보라를 도울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게 생 각하면 정말 대단한 캐릭터죠. 」
음,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미하일 라이가르트 대신관.
그는 이름에서부터 착한 냄새가 폴 폴 풍기게끔 설정된 캐릭터였으니까.
그러나 작가님, 제가 뒤통수를 하도 맞아서 이제는 얼얼할 정도라서요.
‘안 믿어.’
혼란에 빠르게 적옹하는 방법은, 하데스의 말마따나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것이었다.
가장 믿기 힘든 작가님이 애정하는 존재라면 더더욱.
이쯤에서〈페르소나〉의 주요 등장 인물들이 대거 포진한 신전의 이야기 또한 짚고 넘어가야겠다.
크레센타 제국인들의 선조였다는 드래곤 가이오니아를 모시며, 성스러 운 세례를 통해 제국인들을 축복하고 그들의 고통을 낫게 하는 ‘선’의 상징 인 신전.
당연한 말이지만 신전에서 일하는 사제들은 전부 백속성의 제국인들로, 편의상 통칭은 사제이지만 능력의 개방 단계에 따라 신관의 직위를 얻을 수도 있었다.
아직 능력을 개방하지 못하고 신전에서 훈련 중인 백속성 제국인들은 수습 사제.
그리고 1차 개방을 마친 사제들은 정식 사제로 승격.
2차 개방 후 ‘회복’의 이능을 사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능력자들은 신관이라고 불린다.
그럼 여기서 신전을 통솔하는 ‘대신관’의 능력치가 궁금해지지 않는가?
당연히 독보적인 능력을 자랑할 거라 생각되지만, 의외로 아니었다.
그는…….
똑똑.
하필이면 그때, 한참 진지해지던 생각을 방해하는 기척이 났다.
“아이샤.”
이제는 퍽 익숙해진 하데스의 목소리였다.
들어오라는 말에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섰다.
그런데…….
“뭐, 뭐예요, 전하?”
“……뭐가?”
아마도 신전을 맞을 채비를 한 모양이었다.
평소 성에 있을 때의 편한 차림과 달리 하데스는 루버몬트의 인장이 새 겨진 견장들로 빼곡한 제복 풀코스 차림이었다.
항상 착용하던 셔츠와 베스트, 크라바트 대신에 고급스러운 골드 체인이 달린 블랙 계열의 제복 재킷.
왜 있잖은가.
그것은 꼭…… 여심을 저격하는 남자의…….
수트간지!
그래, 그것과 닮아있었다.
한 마리의 고혹적인 혹표범 같은 하데스의 자태를 멍하니 응시하며 나는 순순히 물었다.
“오늘 왜 이렇게 멋있으시죠?”
예상치도 못했던 물음이었는지 내 앞에 와 선 하데스가 놀란 눈으로 삐 끗했다.
“갑자기 뭔…….”
중얼거리던 하데스가 곧 피식 옷으 며 예의 그 거만한 표정으로 나를 내 려다봤다.
슬쩍 머리를 쓸어 넘기는 자기애 넘 치는 손짓도 잊지 않으면서.
“오늘만 멋있나?”
“아뇨. 전하야 매일 멋있으시죠. 그 런데 오늘은 독보적이라서. 당장 제도에 연락해서 잘나가는 화가 한명 초대하는 게 어떨까요? 오늘 전하의 자태는 초상화로 남겨서 대대손손 길 이길이 보존해야 할 것 같아요.”
“크홈.”
이런 외모 찬양이 익숙할 법도 한 데, 하데스는 당황하며 헛기 침했다.
말끔하게 넘긴 머리하며 매끈하게잘 뻗은 몸매가 돋보이는 각 잡힌 제 복 차림의 그는, 오늘 정말, 정말, 정말로 최고였다.
격식을 위해 차려입었다기보다는 뭐랄까, 신전 사제들을 전부 홀려서 그들의 계획을 실토하게 하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정신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하데스의 모습을 스캔하고 있는 사이, 그가 말했다.
“방금 신전에서 사람들이 도착했 어. 제법 수가 많더군. 전부 고위급신관들만 데려온 듯한데…….”
“그렇군요.”
사실 하데스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집중해야 하는 건 아는 데…….
“아이샤.”
“…….”
“아이샤?”
북부에 와선 하루가 멀다 하고 봐서 그의 잘생김에는 면역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멋있게 꾸며놓으면 반칙 아닌가.
지금은 그의 미모에 집중할 겨를이 없는데 말이다.
“이봐.”
딱!
“어머.”
이윽고 눈앞에서 하데스가 손가락을 딱 퉁기는 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 릴 수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멍한 거야?”
“미안해요. 이제 집중할게요. 신전 사람들이 왔으면…… 이제 저도 나가 봐야겠네요.”
하데스는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내 앞에 자리하고 앉았다.
“그래. 음……. 신전이 어떤 의도인 지 아직 모르는 상황에서, 그대를 그 들과 만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하는데…….”
“당연히 만나봐야죠. 지금까지 저 한테 수작을 부려오고 있었으니까요.”
별거 아닌데도 하데스는 꽤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역시나 나는 그에게 아벨만큼 챙김받는 위치로 등극한 것 같은데……. 뿌듯하구나.
이것이 바로 성덕의 삶.
괜히 찡해지는 마음에 코끝을 쓱 홈친 내가 말했다.
“전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여긴 전하의 성이잖아요. 대놓고 신전 사람 들이 저를 위협할 수 있겠어요? 걸리 면 죽음인데.”
“맞아. 혹여나 허튼짓이라도 한다 면 그 자리에서 아주 그냥…….”
하데스는 말을 잇다가, 턱을 괴고 싱글벙글한 옷는 나를 보며 머쓱해했다.
“아무튼.”
“제가 할 일은 뭐, 적당히 신전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그 꿍꿍이를 파헤 치는 데 도움을 드리는 거겠죠?”
“맞아. 직접 부딪쳐보는 것만큼 좋 은 방법은 없으니까.”
“네, 전하. 걱정 마세요. 아, 그런 데…….”
문득 생각나는 점이 있어 나는 하데스에게 물었다.
“……혹시 대신관님도 오셨나요? 워낙 바쁜 분이라 그분은 직접 안 오셨겠죠?”
내 물음에 하데스는 고개를 가로저 었다.
“아니? 미하일 라이가르트 대신관, 그도 왔어. 그래서 나도 좀 놀랐지. 대신관까지 직접 행차했다는 건 확실 히, 그대의 존재가 신전에서 꽤나 중 요하다는 뜻이거든.”
“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그도 왔다.
대신관, 미하일 라이가르트.
나는 다시금 그를 떠올렸다.
아벨, 데보라 다음으로 소설 속에서 많이 등장하는 인물.
그는 독자들 가슴 찡하게 만드는 다 정한 명언들로 원작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어렸을 때 하데스의 죽음을 경험했 던 아벨에게 미하일은 제2의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물론 그건 데보라에게도 마찬가지.
제도 출신의 고아였던 여주 데보라를 눈여겨보고 어렸을 때에 신전으로 데려온 것이 바로 그였으니까.
작가님이 애정하는 캐릭터여서가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미하일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힐링이었다.
상처투성이인 두 주인공들의 눈에 서 절로 눈물이 줄줄 흐르게 만드는 다정한 위로. 주옥같은 대사.
갈림길의 팻말처럼, 어둠 속의 등불처럼, 막막할 때면 꼭 등장해 주인공 들에게 도움을 주는 조언을 남겼 던…….
미하일 라이가르트 대신관.
“대신관과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왔는데, 역시…… 모르겠더군. 사람 은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지만, 그자는 도저히 수상한 짓을 저지를 이유가 없어 보여.”
하데스가 쯧쭛 혀를 차며 피곤한 듯미간을 문질렀다.
동의한다. 당연한 말 아니겠는가? 작가님이 애초에 ‘선한 캐릭터’라고 설정을 딱딱 박아두었는데 말이다.
오죽했으면 아벨과 데보라를 가슴으로 낳은 거 아니냐며 독자들로부터 ‘아버님’ 칭호를 획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페르소나〉에서 명백히 ‘선’을 가리키는 인물이었고, 동시에 지금 내게는.
〈페르소나〉이기에 가장 뒤가 구릴 지도 모를 인물이다.
아까 생각하다 만 게 있는데, 그놈의 ‘선인’ 설정을 위해서였는지 작가 님은 미하일에게 대신관과는 퍽 어울 리지 않는 능력치를 선물했다.
그는 백속성의 1차 이능도 개방하 지 못한, 능력이 전혀 없는 신관이었다.
백속성 제국인이지만 능력 따윈 쓰 지 못하는 우리 에스클리프 사람들이랑 똑같다는 말이다.
하나 그는 오로지 신앙심과 그 선함으로 신전의 지도자로서 적합함을 인 정받았다.
백속성 제국인들의 마력은 따로 ‘성 력’이라 일컫고, 보통 더 월등한 성력을 지닌 신관에게 다음 대신관의 자리를 위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미하일은 애초에 높은 성력으로 대신관이 된 인물이 아니었으므 로, 작중 내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내가 읽은 소설의 내용대로만 따지 자면 뼛속까지 선한 캐릭터로 설정된 미하일을 의심할 여지는 조금도 없지 만…….
얼굴에서부터 대천사의 이미지가 강하게 풍긴다는 그를 만나고 온 하데스가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아까도 말했듯 작가님, 제가 뒤통수를 너무 많이 맞아서 말입니다.
‘페르소나라는 제목이 등장인물들의 거짓 인격을 알리려는 안배였다면.’
최고로 착한 미하일 라이가르트 대신관은.
‘제일 구린 놈일 확률이 200%다.’
나는 일단 의심하고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