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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41화 (41/221)

41화.

나는 머쓱해져서 말을 잃고 말았다.

하데스는 여전히 상처가 남은 손을 한참 내려보다가, 테이블 위에 있는 서류들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저, 전하?”

“……잘됐네. 금세 능력도 쓸 수 있 게 되었으니.”

삐졌다!

이건 삐진 거야!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밀려와 나는 한달음에 하데스에게로 달려갔다.

“손 이리 줘보세요, 전하.”

하데스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 니 가만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아벨의 상처를 가져갔던 순간. 나는 어떻게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지 본능 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상처를 흡수하던 그 순간의 느낌은 꽤나 강렬해서 잊기 힘들었다.

빨아들인 듯한 통증은, 그것을 내가 대신해 느낄 겨를 없이 곧바로 사그 라졌다.

아마 흡수한 아벨의 통증을 상쇄했을 터.

“자……. 나아라, 얍!”

하데스의 손목을 잡고 상처에 잠깐 정신을 집중하자 과연 아벨 때와 꼭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굳이 그 느낌을 표현하자면, 뭐랄 까,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일 때와 비숫한?

아무튼 그렇게 흡수한 하데스의 통 중은 이번에도 손목 쪽에 모이더니 한순간에 사라졌다.

‘대단해, 정말로.’

새삼 놀라웠다.

이곳에서도 추앙받는 능력이지만, 내 전생의 세계였다면 더더욱 이 백 속성의 이능이 주목받았을 테다.

의사나 간호사도 따로 필요 없을 테 니까, 이 능력으로 돈 꽤나 벌 수 있을이지도…….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중에 문득, 하데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의 얼굴에는 분명 표정이 없었지만 나는 언뜻 느껴지는 서운함을 귀 신같이 눈치챌 수 있었다.

내가 곧바로 변명했다.

“엄……. 그러니까…… 이게 아까는 왜 안 됐을까요?”

“간절함이…….”

“그래요! 그래요! 간절함이…… 간 절함이 분명히 있었는데요…….”

있었는데요, 진짜…….

“…….”

“……없었나 봅니다.”

머쓱하게 웃으며 인정하자 하데스 가 음, 그래, 중얼거리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뻬졌다. 아마 나라도 분명 서운할 것이었다.

“아버지도 어디 다치셨어요?”

뒤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아벨이 걱 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제가 더 아픈 둣 시무룩해진 얼굴이 사랑스러운 나머지, 하데스를 달래줘 야 한다는 것도 잊고 나는 몸을 부르 르 떨었다.

천사야, 천사.

천사 같은 아벨과 겉모습은 악마 같 지만 지나치게 다정한 아버님 하데스의 완벽한 부자 조합이라니.

이건…… 덕질을 안 할 수가 없다, 정말.

“네. 종이에 살짝 손이 베이셨는데 이제 괜찮아요. 제가 방금 낫게 해드 렸거든요.”

아벨의 뺨을 살짝 쓰다듬으며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줬다.

작은 아기 천사는 다행히 라는 듯 활 짝 웃었다.

“다행이에요. 그거 굉장히 시리고아픈데. 아버지를 낫게 해주셔서 감 사합니다, 영애.”

아벨은 내 허리께를 꽉 끌어안고 뺨을 비비며 말했다.

하아…….

우리 아벨은 킬링 포인트가 대체 몇갠지.

이대로라면 일 년 후에 죽을 하데스 보다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겠다. 역 시 사인은 심쿵사.

꽤 합리적인 의심이라서, 나는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심호 흡하며 아벨의 머리를 마주 끌어안았다.

“대체 공자님은 왜 이렇게 예쁜 말 만하세요? 공자님은 정말 사랑스러 운 아이예요. 이러니까 전하가 공자 님을 사랑하시죠.”

“음, 그러면, 영애는요? 영애도 저를…….”

“저요? 아니, 그걸 말이라고? 저도 물론 공자님을 사랑하죠. 너무너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요! 하고 주책없이 나불대려는데 문득 또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하데스였다. 그는 여전히 느릿하게 눈만 깜빡이며 나와 아벨을 빤히 응 시하고 있었다.

불편한 하데스의 마음은 아랑곳 않 고 또 아벨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대 고 말았구나.

요 가벼운 주둥아리 같으니라고.

“세, 세상에서…….”

이미 한번 꺼낸 말은 끝을 맺어야 할 텐데…….

여기서 ‘세상에서 공자님을 제일 사랑해요.’ 했다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만 같았다.

아니, 그렇다고 세상에서 공작 전하를 제일 사랑한다고 할 순 없잖아.

물론 다들 그렇게 알고야 있겠지 만…….

모두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거짓말 한 번만 하면 되는 것을, 쓸데없이 정 직한 내 입이 어버버거리고 있는 사 이.

배시시 웃으며 아벨이 끼어들었다.

“두 번째로 사랑해주시는 거 맞죠? 헤헤……. 첫 번째는 아버지시니까요.”

“그, 그렇죠!”

다행이었다. 역시 아벨은 여러모로 눈치 빠르고 완벽한 남자였다. 괜히 주인공이 아니지.

차마 내 입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아벨의 말에 동의했지만, 하데스는 그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냉정히 테이블 위의 서류를 마저 챙 긴 그가 방을 나서려는 듯 걸음을 옮 겼다.

“난 이만…… 가봐야겠군. 신전을 더 조사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하니 까…….”

당황한 내가 얼른 그의 손을 잡아채 고물었다.

“호, 혹시 삐지셨어요?”

흠칫한 하데스가 나를 돌아보며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어, 뭐랄까 좀……. 서운해하시는 것 같아서. 미안해요, 전하. 그래도 두 번째 시도는 성공했잖아요? 제 간 절함을 담아서.”

“간절했다기보다는 한번 능력을 개방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쉽게 할 수 있었던 거 아닌가?”

헉.

예리하긴.

“서운한 거 맞으시군요. 미안합니다.”

“아닌데?”

뭐가 아니야.

태연한 척 고개를 기울이며 동그랗 게 눈을 뜨고 말하는 하데스는, 좌로 우로 구르면서 스쳐봐도 분명히 삐져 있었다.

“에잉, 전하! 삐지지 마세요. 여기 서 서류 보신다고 하셨잖아요. 같이 있다 가세요.”

“하! 하! 하! 진짜 웃기네. 내가? 내가 왜 이런 걸로 삐지지? 나 아무렇 지도 않은데? 아무 생각도 없는데?”

“아, 예…….”

믿어주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데 웃음이 나왔다.

서운해할 그의 앞에서 웃으면 안 되 는데, 답지 않은 귀여움에 자꾸 터지는 웃음을 막기 힘들었다.

광대 씰룩이는 얼굴로 억지로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뭔가 얄밉다는 표 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하데스가 휙 몸을 틀었다.

나가려다가 그가 아벨을 돌아보며말했다.

“아빠 갈 거니까 너도 나가자! 이리 와라!”

“……네?”

아벨이 흠칫 놀라 내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저 방금 왔는데요?”

큰 눈을 껌뻑이며 말하는 아벨에 하데스는 할 말을 잃은 듯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곧 홱 돌아 다시 문을 향 해 느릿느릿 걸었다.

어째선지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걸 음 속도라, 내가 한 번 더 그를 붙잡았다.

“전하, 정말 가세요?”

“어!”

하데스는 내가 잡기를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돌아보며 말하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 렸다.

그 소리가 어마어마해서 나와 아벨 은 깜짝 놀라 흠칫하고 말았다.

어떻게 해. 정말로 많이 섭섭했나 봐.

당황하는데 다시 문이 열리고 하데스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나 진짜 안 삐졌어. 이거 바람 때 문에 문이 닫힌 거야.”

그는 그런 말을 남겨두고 다시 홀연 히 사라졌다.

남겨진 아벨과 나는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하데스가 아이샤를 감금한 지 삼 일째 되는 날이었다.

옅은 잠에 겨우 들었음에도 종일 뒤 척이던 에스클리프 남작, 벤자민은 새벽부터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일으켰다.

뿌옇게 밝아온 창밖에 찾아온 손님 은 괴상하게 생긴 짐승이었다.

피처럼 붉은 여섯 개의 눈동자를 데 록데록 굴리고 있는 큰 몸집의 까마 귀.

연신 시커먼 날개를 퍼덕이는 몸짓 은 보기만 해도 소름 끼쳤다.

벌떡 일어난 벤자민이 서둘러 창을 열고 밖을 살폈다. 다행히도 보는 눈은 없었다.

물론 이 눈치 빠른 괴물 까마귀가 당연히도 주위를 잘 살피고 왔을 테 지만…….

—가아아악.

작게 한 번 운 까마귀는, 벤자민의 방 안으로 들어와 작은 협탁 위에 몸을 앉혔다.

두껍고 날카로운 부리로 날갯죽지를 벅벅 긁어대는 짐승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벤자민 또한 마치 그를 기다렸던 것처럼, 곧바로 서랍을 열어 손바닥만 한 양피지 한 장을 꺼내 돌돌 말았다.

가느다란 끈에 그것을 묶어 까마귀의 발에 매달자, 짐승은 바로 날아올 랐다.

벤자민이 창을 다시 열자마자 그것은 홀연히 새벽하늘을 가르며 날았다.

멀어지는 짐승의 뒤꽁무니를 좇는 벤자민의 눈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에 도착하셔 야할텐데…….’

그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저 흉악해 보이는 짐승이 자신의 말을 무사히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공작령에서 연락을 주고받는 건 너무 위험하지만…… 그래도 괜찮겠지. 유능하신분이니까.’

짐승의 모습이 시야에서 아예 사라 지자 벤자민은 조용히 창을 닫았다.

그의 방을 다녀간 세 쌍의 핏빛 눈 깔을 가진 짐승.

다크로우(Darkcrow)라고 불리는 마 물 까마귀로, 그것을 길들여 전령새로 쓰는 모습은 일견 놀라울 만했다.

하나 아예 없는 일은 아니 었다.

암(暗)속성의 능력자 중에는 흉포 한 마물들을 세뇌해 다루는 경우가 더러 있었고, 그들은 이 강하고 빠른 마수 다크로우를 종종 전령새로 이용하고는 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벤자민이 연락을 띄 운 누군가는 마수를 세뇌해 부릴 줄 아는 암속성 능력자일 터였다.

누군가에게 발각된다면 지극히 걱 정스러울 이유는 그것이었다.

크레센타 제국. 이곳에서 암속성 능력자들은 결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성녀, 구원자 등으로 추앙받는 백속성의 능력자들과 달리, 암속성 능력자들의 이능은 대단히 꺼림칙하기 때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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