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뭐, 뭐, 뭐 하는 거야?!”
“그믄 있으브으.”
“아니, 이 여자가 진짜…….”
당황한 하데스는 허둥거리면서도 내게 잡힌 손을 거둬가진 않았다.
상처 위를 혀로 살살 핥자 제법 많 이도 흐르던 피가 서서히 멎기 시작했다.
쥐 죽은 둣 고요한 우리 사이로는 내가 그의 상처를 할짝거 리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
하데스는 한껏 당황한 채로 눈만 도 록도록 굴리며 그렇게 한참을 내게 잡혀 있었다.
어느 정도 피가 멎었나 보려고 물고 있던 손가락을 빼내자, 그는 기다렸 다는 듯 휙 손을 거둬가며 허둥거렸다.
“아니, 진짜 뭐하는 거야?”
“민간요법입니다, 전하.”
“민간……. 하! 에스클리프에서는 상처 나면 혀로 핥나? 진짜 막 영지 민들 전부 원시 부족이고 이런 거 아냐?”
“뭘 모르시는군요. 침에는 살균 작 용이 있어서 상처에 나름 효과적이라 고요. 그리고 저 이 닦았으니까 걱정 마세요.”
“누가 그런……. 하아…….”
하데스는 제 눈동자만큼이나 벌겋 게 달아오른 얼굴로 홱 돌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을 말자, 중얼거리더니 그 다짐이 일 분도 안 가 다시 내게 버럭 소리 질렀다.
“어디 가서 이런 거 하지마! 알았 어……?”
“능력만 쓸 수 있으면 하고 싶어도 안 할 거예요.”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씩씩 거리던 하데스가 멈칫했다.
그는 곧 길게 한숨을 내지르며 말했다.
“급할 거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쫓기는 사람처럼 구는지 모르겠군. 설사 그대가 영원히 능력을 사용하지못하더라도 난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러니까 초조해하지 좀 마.”
그건 자기 죽을 운명을 모르니 태평 하게 하는 소리지.
아벨 대신 엄청난 고통에 괴로워하 다가 한순간에 훅 가버릴 아버님의 미래를 상상하던 나는 또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데스를 살리려면 나는 하루라도 빨리 핵석의 사용법을 깨우쳐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핵석을 숨기는 것과,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은 조금 다른 모양인데…….
나름대로 학습능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능력 개방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홉수.
홉수의 이능만 사용할 줄 알면 될텐데…….
채 일 년도 안 남은 시간 동안에, 내가 정말 이 눙력을 깨우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전하.”
“뭐.”
“건강하세요.”
“하아…….”
여전히 그의 걱정에 사로잡힌 날 알 아본 건지 하데스가 미간을 좁힌 얼굴로 슬쩍 이마를 문질렀다.
“나는 아주 건강해.”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니까요.”
아벨은 폭주할 것이다. 이건 소설 내용을 알고 있는 나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일이다.
아직 아벨은 능력을 각성하지 못한 상태인데, 그 능력을 각성하려면 필 연적으로 빌어먹을 폭주가 수반된다.
이유는, 조금 늦게 설명하는 듯하지 만…….
‘대단한 우리 아벨.’
아벨의 속성 때문이었다.
하데스를 꼭 닮았지만 화속성도 아니고, 수속성도, 토속성도, 풍속성도, 백속성도, 암속성도 아니다.
하데스와 나, 그리고 아벨 빼고는 지금 아무도 모르는 사실.
그는 작중에서 거의 전설처럼 취급된다는 무(無)속성의 능력 보유자였다.
무속성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빈 그릇 같은 것이었고, 그건 다시 말해 능력 각성에 제한이 없다는 뚯이다.
아벨 루버몬트.
작가님이 대단한 설정들을 싹 모아 주인공 버프를 걸어준 그는, 백속성 과 암속성을 제외한 기본 4속성의 능력을 전부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이자 세계관 최강자였다.
‘그렇게 대단한데 핸디캡이 없을 수 가 없겠고.’
하나 작가님은 결코 개연성 없게 무 작정 버프를 퍼주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네 가지 속성의 능력치를 전부 발현할 수 있는 대신, 아벨은 주기적으로 자신의 안에서 서로 맞부딪히는 그 능력들로 인한 폭주를 감내해야 했다.
일 년 후.
아벨의 능력이 처음으로 각성하는 날.
그날은 아벨이 태어나 처음으로 폭 주하는 날이고, 동시에 하데스가 그대신 죽게 되는 날이다.
“아, 진짜 미치겠네.”
답답한 마음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때의 아벨을 도와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기본적으로 백속성의 1차 각성 능력인 ‘상쇄’가 아니면 아벨의 내상과 정신 붕괴를 없앨 수가 없는데, 그마 저도 폭주 시 그가 내뿜는 마력을 버 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마력량을 지 닌 백속성 제국인이어야만 했다.
데보라 빼고는 고만고만한 마력량을 지닌 지금의 신전 사제들에게 부탁해볼 수도 없다는 뜻이다.
‘나뿐인데.’
생각지도 못했던 마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의심되며, 백속성 능력자이 고, 죽자마자 이곳에서 눈을 떴다. 또 한 살아생전에는 열심히 아벨을 덕질 했다.
왜인지 내가 아이샤 에스클리프가 된 것이 우연만은 아닌 모양이라고 여겨지면서, 내심 강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아벨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는, 그런 강박이.
“공자님 보고 싶다. 언제 오시죠?”
문득 생각이 나서 묻자, 하데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내 방에 오자마자 하데스는 아벨이 날 보고 싶어 했다며, 점심을 먹고 잠 깐 올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고 알려 왔다.
우울한 와중에 아벨의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없을 터.
어째선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 데도 열릴 기미가 안 보이는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똑똑.
마법처럼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헉!”
흥분한 내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공자니임!”
반갑게 내지르는 내 목소리에 삐그 덕 문이 열리고, 아벨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오, 이럴 수가…….
아벨은 안 본 새 한 열 배는 더 잘생 겨진 것 같았다.
마냥 귀엽기만 했는데 하루가 다르 게 크는 모양인지 잘생긴 하데스의 얼굴이 더 잘 보이는 것이…….
“흡.”
입을 틀어막고 감동하던 내가 한달 음에 아벨에게로 달려갔다.
아벨의 얼굴을 안 본 지는 고작 이 틀밖에 안 되었지만, 체감상 2년은 되는 줄 알았다.
반가운 나머지 냅다 달려온 나를 보 며 아벨이 배시시 웃었다.
“보고 싶었어요, 영애.”
“점심 먹고 바로 온다고 하더니 왜이렇게 늦게 왔어요? 내가 얼마나 기 다렸는데……!”
아벨은 화들짝 놀라며 미안한 표정을 지 었다.
“어,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어요? 먹고 바로 영애를 보러 올 순 없어서요. 이도 닦고…….”
아하. 우리 매너 넘치는 아벨.
이놈의 주책없는 손이 또 드릉드릉 움직이 려고 하는구나.
“치카치카 했어요?”
“네, 치카치카. 그리고…….”
어느새 눈높이를 맞춰 무릎 굽히고 앉은 내게, 아벨은 등 뒤로 숨겨왔던 무언가를 건넸다.
웅?
그건 꽃다발이었다. 온실 정원에서 꺾어온듯한.
“아, 아니? 공자님.”
“헤헤…….”
“이거, 으옹……. 서, 설마 또 저 주 려고 만든 거예요? 식사하고 정원 갔다 왔어요?”
“네! 영애는 꽃을 좋아하시 니까요.”
아벨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감동적이면 절로 눈가가 시려 지는 경험을 해본 적 있는가? 지금 내가 그렇다.
“이런 거 안 챙겨줘도 되는, 큽, 되 는데…….”
감동받은 내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자 아벨이 얼른 받으라는 듯 꽃다 발을 내 품에 가까이 들이밀었다.
알록달록 예쁘게도 색 배합을 해 묶 은 꽃다발 뒤로 뺨을 붉힌 아벨의 얼굴이 보였다.
아…….
이게 벌써 몇 번째 세례지?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부활하 신 메시아를 만난 예루살렘 신자들보 다 지금의 내가 더 감격스러움을 느 끼고 있을 것이다. 이건 분명해.
나 같은 성덕은 다시없으리라.
“고마, 흄, 고마워요. 공자님. 정말로…… 정말, 너무 예뻐요.”
“아니예요. 영애가 더 예뻐요.”
이건 무슨?!
‘아니, 아벨……. 제발……. 내 심장 이 남아나지 않겠어.’
네 나이 방년 10세. 벌써부터 이렇 게 독자들 마음을 설레게 하는 포인 트를 귀신같이 잡아채면 어쩌자는 거 니?
내가 알던 아벨은 여주 데보라를 만 나고 나서도 수줍어 말 한 마디 제대 로 건네지 못했던 숙맥 같은 매력이 사랑스러웠는데, 이것도 좋구나.
사실 이래도 저래도 아벨은 사랑스 러울 것이다.
아벨이니까.
“정말 너무…….”
이 감동을 말로 표현하기 위해 잠시고민하는데. 문득 시야에 아벨의 작 은 손이 들어왔다.
“공자님?!”
꽃다발을 무릎과 가슴 사이에 끼우 고 나는 놀란 얼굴로 아벨의 손을 덥 석 붙잡았다.
그의 오른손 검지 끝에 핏망울이 맺 혀 굳어있었다.
“이게 뭔가요?!”
“아…….”
아벨은 머쓱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 했다.
“정원에 새로 심은 꽃을 발견했는 데 가시가 있는 줄 몰랐어요. 꺾다 가…….”
“악! 이게 무슨 일이에요! 속상하 게!”
다른 것도 아니고, 나 주려고 꽃을 꺾다 다쳐버렸다니.
사실 그렇게까지 꽃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못내 밀려오는 죄책감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럼 치료부터 하고 왔어야 죠. 이게 뭐예요. 세상에. 가시가 꽤 나 깊숙이 박힌 것 같은데? 이거 얼른…….”
그 순간이었다.
아벨의 귀염뽀짝한 주먹과 닿은 그 곳에서부터, 약간의 생경한 감각이 내 손으로 타고 들어온 것은.
뭔가를 훅 뻘아들이는 낯선 감각이 느껴지고 나서는, 핵석이 박혀있던 왼쪽 손목에서부터 뭔가 파삭 사그라 지는 둣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아니다.
착각이 아닌 모양이었다.
놀란 눈을 몇 번 껌뻑거리던 아벨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우와!”
가시가 박혀 부어있던 데다가 피딱 지까지 얹혀있던 아벨의 오른손 검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나아 있었다.
‘유레카!’
알았다!
알았다고!
“영애!”
“세상에!”
나와 아벨은 서로 마주보며 동시에 감격에 찬 탄성을 내뱉었다.
아벨은 나만큼이나 흥분한 얼굴로 방방 뛰었다.
“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방금 핵석의 능력을 쓰신 게 맞죠? 그럼 이제 숨기는 데 성공하신 거예요? 그렇 죠?”
“네, 네! 사실 숨기는 건 오늘 새벽에 진작 성공했었어요!”
“와! 다행이다! 정말, 와, 정말 다행 이에요.”
아벨은 내가 능력을 사용했다는 사실보다는, 불안하게 계속 몸 밖으로 빼놓고 다녔던 핵석을 숨기는 데 성 공한 걸 더 행복해하는 눈치였다.
이 천사 같으니라고.
정말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코를 쓱 훔치며 나는 하데스를 돌아봤다.
“전하! 저…….”
이 감동을 나누기 위해 그를 돌아본 건데, 어째선지 하데스는 전혀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 었다.
아니, 기뻐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무 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이랄까.
‘왜 저래.’
그러나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깜빡깜빽, 느릿하게 두어 번 눈을 깜빡이던 그는 제 오른손을 들어 쓱 내려다보았다.
“아.”
아벨과는 달리 여전히 상처가 남은 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