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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39화 (39/221)

39화.

물론 나도 정말 그런 게 아닐까, 하 고 의심은 하고 있지만 당장 가시적으로 확인해 볼 도리가 없었다.

아직 나는 핵석만 숨길 수 있다 뿐 이지 그 이능을 사용하지는 못하니 까.

핵석을 숨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 았다.

몸이 정상이 되자마자 하데스에게 훈련받았던 대로 그저 정신을 집중했을 뿐인데, 일평생 몸 밖에 나와 있던 핵석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건 마치…… 자전거를 타는 데 처음 성공했을 때 들었던 느낌, 뭐 그런 거랑 비슷했다.

능력을 사용할 때도, 핵석을 숨긴 것처럼 시도해보면 성공하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 다친 사람이 있어야 훈련도 할 수 있는 거니까.’

다른 속성과 달리 훈련하는 데 고정적인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아 쉬운 것이다.

시도해보겠답시고 억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만들라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단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으니 까요. 능력을 사용해보면 확실해지겠 죠. 어디 안 아프시나요?”

“아파줘?”

“아뇨, 아뇨. 일부러 아프실 필요는 없고.”

하데스는 픽 한 번 웃더니, 다시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아무튼 그대의 마력을 지금까지 신전에서 제어해온 이유. 아무래도 그대의 몸에 성녀가 재림할 거라 의심해서가 아닌가?”

“제에가요?”

실로 놀라우면서도 황당한 의심이 었다.

하데스는 가볍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계속 말했다.

“그대의 마력을 억지로 묶어놓은 건 용서할 수 없는 짓이긴 하지만, 난 어디까지나 신전이 인도적인 차원에 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거라고 생각하고 싶군.”

“그렇죠. 저도 무작정 신전이 나쁜 의도로 제게 약을 먹였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이 얼마나 꿈과 희망도 없는 상황일 텐가.

아벨 다음으로 사랑했던 캐릭터, 여주 데보라를 의심하고 적으로 돌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끔찍했다.

몸을 부르르 떠는 나를 보며 하데스 가 말했다.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정말로성녀가 나타난다면 제국이 혼란해질 게 분명하거든.”

그렇게 말하는 하데스의 눈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의 말은 정말로, 일견 아이러니하 게 들린다.

보통 성녀는 혼란한 세상을 구하는 이미지 아닌가. 한데 성녀의 등장이 제국에 혼란을 야기한다니.

그러나 나는 하데스의 말에 바로 동 의할 수 있었다.

왜냐면.

“성녀가 나타나면 서로 차지하려고들겠죠?”

“맞아. 이미 500년 전 아벨라 에스클리프 때에도 무수한 침략 전쟁의 기록이 있어.”

당연하지.

내가 아이샤 에스클리프가 아니라 타국의 왕으로 환생했다고 친다면, 그리고 제국에 성녀가 있다면.

‘당장 납치해오라고 시킬걸.’

백속성이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성녀의 존재는, 곧 전쟁의 승리를 의 미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백속성의 최대 개방 이능. 그건 바로.

‘무효화.’

모든 외부의 작용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만큼, 강한 무기가 있을 턱 있 나.

새삼 나는 무서워졌다.

“음, 이유는 역시, 성녀가 백속성의 능력을 최대로 개방할 수 있기 때문 일 테고요…….”

무심하게 중얼거리자 하데스는 조금 놀란 눈을 했다.

“생각보다 아는 게 많아?”

사실은 이미 작가님이 풀어놓은 설정을 알고 있던 덕이었지만, 나는 하데스가 가져다준 고서를 턱짓하며 말했다.

“나와 있던 걸요. 백속성의 최대 개방 이능.”

여기서 잠시 백속성에 대해 짚고 넘 어가야겠다.

백속성의 이능을 사용할 수 있는 데보라는 2차 개방까지 마친 능력자였다.

신전의 사제들 대부분이 1차 개방 이 전부인 걸 생각해 보면, 데보라는 확실히 대단한능력자였다.

백속성의 1차 개방 능력은 ‘상쇄’.

앞서 여러 번 말했지만, 모든 속성의 핵석들은 기본적으로 고유 이능인 ‘흡수’를 가진다.

백속성 능력자들의 1차 개방 능력 ‘상쇄’는, 이 흄수를 통해 내상 및 외 상을 자신에게 전이시킨 뒤 그것을 제거하는 능력이었다.

외상은 물론 내상, 정신 붕괴, 중독까지 흡수 가능한 것들은 전부 상쇄하므로 쉬운 말로는 ‘정화’라고 일컬 어지기도 했다.

물론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 었다.

정신 붕괴 같은 종류의 내상은 시전 자의 마력 수치가 별 볼 일 없다면 상쇄에 성공하기는커녕 그마저도 함 께 옮아 위험해지고 마니까.

‘그래서 데보라 빼고 아무도 아벨을 도와줄 수가 없었지.’

제국에서 몇 안 되는 백속성 2차 개방 능력자이자, 심지어 그것을 자유 자재로 활용하여 공공연히 ‘성녀’라 고 불렸던 캐릭터.

‘2차 개방까지만 해도 성녀라고 추 앙받을 정돈데, 아벨라 에스클리프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 었잖아?’

다시 한번 의심스러웠다.

대체 왜 그녀의 이야기는 책에 한 줄도 서술되어있지 않았는지.

백속성의 2차 개방 능력은 ‘회복 (Heal)'이다. 말 그대로 회복.

상처를 회복시키는 건 물론 단순히 기력이 떨어진 대상도 멀쩡한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는, 아주 쓸 만한 능력이었다.

핵석의 이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마력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흡수와 상쇄의 두 과정을 거쳐야하는 1차 개방 능력보다 훨씬 효율이 좋았다.

‘심지어 데보라는 다른 2차 개방 사제들이랑도 차원이 달랐지.’

회복 능력을 쓸 수 있는 사제가 데보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데보라가 뛰어난 이유는, 같 은 2차 개방 사제들 중에서도 유독 특출하게 능력을 다뤘기 때문이었다.

원거리와 광역 회복도 가능. 당연한 말이지만, 작중에서 데보라를 노리는 세력들만 수십이었다.

물론 우리 아벨이 데보라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지켜냈기 때문에, 문 제 될 건 없었지만…….

아무튼 데보라가 멀리서 힐만 넣어 주면 우리 아벨이 알아서 다 쓸고 다녔고, 둘의 막강한 조합은 작중에서 수많은 활약을 써 냈다.

‘그런데 3차 개방은…….’

문득 나는 다시금 의아함에 사로잡 혔다.

백속성을 3차 개방시키면, 모든 공격 마법을 무효화시 키는 실로 무시무 시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작가님이 SNS에 따로 풀어놓았던설정 노트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능력이었다. 하나, 작중에서는 한 번도 등장한 적 없었다.

제일가는 백속성 능력자로 일컬어 지던 데보라도 2차 개방이 최대였으 니까.

‘너무 사기적인 능력이라 밸런스가 안 맞아서 그랬던 걸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만들어뒀던 설정을 어떻게든 사용해서 읽는 독자를 소름 끼치게 만들었던 작가님의 안배를 생각해보면, 역시 미심쩍은 것이다.

하나를 의심하게 되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심이 이어지는 상황은 제 법 피곤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는지 하데스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대수롭 지 않은 목소리로 나를 달랬다.

“혹시 내 의심이 맞는다 하더라도 그대가 걱정할 건 없어. 내가 있는 한 그대가 위험해질 일 같은 건 없으니 까.”

“감사합니다. 그런데 역시 제가 성녀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좀 비약 같 아요. 역시 당장은, 능력을 사용부터해보고 고민해봐야겠어요.”

“그래.”

하데스는 찗게 말하고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은 꼭 매처럼 날카로웠다.

새벽 내내 고생한 데다가 잠도 얼마 못 잤을 텐데, 저렇게 열을 올리는 모습이 새삼 고마웠다.

아무튼 나 때문에 저렇게 다크서클 이 턱 밑까지 내려온 얼굴로도 열심이라니, 뭐랄까, 기분이…….

“아.”

싱숭생숭한 상념에 빠져 들어가던 순간이었다.

종이를 한 장 넘기던 하데스의 입에 서 무심코 신음이 터졌다.

뺏뺏한 종이가 살을 가르고 지나갔 는지 그의 오른손 검지에 길게 상처 가 올랐다.

금세 붉은 피가 긴 실선으로 맺히는 걸 지켜보며 나는 놀랐다. 동시에.

“오!”

미안한 말이지만, 조금 반가웠다.

내 반응에 황당하다는 듯 피식 웃은 하데스가 제 손을 쭉 내밀었다.

“해봐.”

“어이쿠, 어디 한번 성심성의껏 도 전해보겠습니다.”

약간 긴장이 되었다.

내밀어진 하데스의 오른쪽 팔목을 꽉 쥔 채, 나는 그의 검지에 난 상처를 가만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한 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핵석을 숨겼을 때처럼 정신을 집중하고, 집중하고, 집중하고…….

“으음…….”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살짝 민망해진 내가 하데스의 눈치를 보자 그가 눈썹을 쓱 올리며 말했다.

“진심을 담아서 좀 해봐.”

“저 지금 엄청나게 진심인데요. 전하의 상처가 아플 것 같아서 무지 걱 정된단 말이에요.”

“입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본데?”

“오해세요.”

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하데스의 손가락을 응시했다.

핵석을 숨겼을 때는, 뭐랄까, 몸 안에 휘돌고 있던 무언가가 내 손목 쪽으로 확 모이는 느낌이었는데 말이다.

지금은 그런 느낌이 들기는커녕, 나를 빤히 바라보는 하데스 때문에 정신을 모으는 것도 어려웠다.

“어허…….”

진전 없이 하데스의 팔목을 조물거 리고만 있기를 한참.

끌끌 혀를 차던 하데스가 나를 핀잔줬다.

“간절함을 담아보라니까?”

“지금 이 순간 저만큼 간절한 사람 이 있을까요.”

“내가 나았으면 좋겠지 않아?”

“아, 당연하죠.”

“진심을 담아봐!”

진심이라니까, 진짜!

울컥해진 마음과 달리 능력은 뜻대 로 발현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성녀는 무슨, 어림도 없지.

하데스가 그런 의심까지 했던 게 민망해질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나는 괜히 뺨을 붉힌 채 연신 그의 팔목만 만지작거렸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 서두르 지 마. 아, 그만 좀 조물딱거리고.”

“아니…….”

잡혀있던 손을 빼내려 하는 하데스에, 나는 반사적으로 힘을 줬다.

뭔가 해주고는 싶은데 능력이 안 되 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능력 쓰는 것도 덕질처럼 돈 발라서 해결하면 좋을 텐데.

도로록 피가 올라온 상처가 어쩐지안쓰러워 보여서, 무심코 입술이 움 직였다.

음…….

사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냥 피가 흐를 것 같아서 본능적으 로.

입가로 가져간 하데스의 오른손 검 지를 물자마자 비릿한 피 맛이 입안에 퍼졌다.

혀를 내밀어 쓱 핥자마자 쥐고 있는 그의 단단한 손이 바짝 굳는 게 느껴 졌다.

눈만 들어 하데스를 살피니 그는 이 보다 더 놀라울 수 없을 정도로 당황한 눈치였다.

튀어나올 듯 커진 붉은 눈이 지진이 라도 난 듯 좌우로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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