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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36화 (36/221)

36화.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씻은 듯, 한순간에 사라진 고통이 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헉.”

그저 하데스에게 옮겨갔을 뿐임을.

“저, 전하…….”

하데스는 홈수의 이능을 사용해 내 심장 쪽의 고통을 가져간 모양이었다.

내 몸을 꽉 끌어안은 그가 고통스러 워하고 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안긴 몸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힘이 들어간 두 팔.

내 목덜미께에 힘없이 처박힌 얼굴, 그 닿은 입술에서 흐르는 뜨거운 숨.

억지로 고통을 삼키느라 잘게 떨리는 몸.

전부 다, 내 고통을 고스란히 겪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아…….”

“이, 이게…….”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직접 겪어봐서 알기에, 나는 하데스가 걱정되지 않을 수없었다.

“이게 뭐, 뭐예요. 자, 잠깐 놔 봐 요, 전하. 네?”

“……안돼.”

그는 여전히 내 몸을 꽉 끌어안은 채로 말했다.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가 안쓰러웠다.

“안된다니, 뭐가…….”

뭐가 안 된다는 거지.

“아플 거야…….”

내가.

아플 거라는 말이다.

이 고통은 단순한 외상 같은 단발적 인 통증이 아니 었다.

하데스는 이 고통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흡수의 이능을 사용하겠다는 거였다.

아벨의 발에 났던 상처나, 작중에서 그의 머릿속에 일어났던 정신 붕괴와는 다른 종류의 고통.

여태껏 내 몸에 흘러야 했던 마력. 그것을 통제하던 무언가가 사라지면 서, 정상적으로 마력이 흐르는 몸이 되기까지 아마 나는 계속 이 고통을 견뎌내야 할 것이었다.

아니, 내가 아니라…….

쉴 새 없이 심장을 찢어발기는 고통을,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가져가고 있는 하데스가.

“저, 전하. 놔줄래요? 저 엄살 부린 거 아니예요. 그거 진짜아파요, 엄청…….”

그 순간 하데스의 무게가 내 쪽으로실렸다.

자연스럽게 뒤로 넘어간 몸이 눕혀 지고 나서도 하데스는 맞닿은 가슴을 떼지 않았다.

누인 채로 그에게 갇히듯 안겨있으 면서도 답답함은 느낄 수가 없었다.

와중에도 나를 배려하려는지, 그는 꽉 쥔 주먹을 침대 위로 지그시 내리 누른 채 무게가 실리지 않도록 버티 고 있었다.

“하윽…….”

“아니, 어떡해. 아…….”

내 목덜미에 파묻힌 하데스의 입에 서 뜨거운 숨이 터졌다. 그것만으로 도 그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나란 사람이 참 이기 적이라는 생각에 못내 부끄러워졌다.

한순간에 고통은 사라졌고, 하데스는 대신 가져간 그 고통에 정신없어 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그의 밑에서 빠져나 올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 다시 시작될 고통을 상상하니 엄두가 안 났다.

“아……. 으아……. 미, 미안해요, 전하. 어엉…….”

나는 그저 팔을 뻗어서 하데스의 둥을 꽉 끌어안았다.

금세 하데스에게서 비처럼 흘러내 린 식은땀이 내 목덜미를 흥건히 적 셨다.

“전하는 진짜…….”

나는 이 순간, 폭주한 아벨의 고통을 고스란히 흠수하고 죽어버렸던 원 작의 하데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 었다.

나야 ‘죽을 만큼’의 고통이지만, 그 때의 아벨은 그냥 ‘죽을’ 고통이었다.

그리고 아벨의 능력을 눈여겨보고그를 데려온 하데스는, 알고 있었다.

그 이능들이 폭주할 때의 고통을.

견디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죽음으로 직결될 폭주를.

‘알았으면서도.’

그래, 어쩌면 지금 하데스가 날 끌 어안고 내 고통을 다 가져가고 있는 건, 그라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자기가 죽게 될 걸 알면서도 아벨 대신 아파줬던 남자가 아닌가.

‘뭐 이런…….’

눈물이 나는 건 결코 내가 주책없어서가아니다.

‘……사람이 다 있어.’

누구라도 서 럽고, 미안하고, 고맙지 않을 수 없을걸.

“흐아아아앙…….”

억지로 신음을 참고 있는 하데스의 몸은, 쉴 새 없이 잘게 떨고 있었다.

아프겠지. 아플 거야.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흐엉, 흐아아…….”

“……아파?”

고통에 정신없어하면서도 하데스는 갈라진 목소리로 내 귓가에 대고 물 었다.

우느라 대답하기 힘들었다. 나는 안 긴 채로 그저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윽……. 곧, 괜찮아질, 헉……. 거야.”

“흐아, 으아아앙…….”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핥듯이 한 스무 번은 읽었던 그 장면이, 머릿속에 겹쳐 보였다.

「……아벨. 」

「아, 아버지. 괜찮으세요? 아버지! 아버지」

「이제 아프지…… 않지. 」

「저, 저는……. 」

하데스는 죽어가는 와중에도 웃으면서 우는 아벨을 달랬다.

그때 제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을 잊지 못한다는 묘사가 책 속에서는 수십 번 등장했다.

그래, 내가 아벨이었더라도.

「이제 곧…… 괜찮아질 거야. 」

아마 영영 이 온기를 잊을 수 없었을 테지.

나는 떨고 있는 하데스의 몸을 더꽉 끌어안으면서 계속 울었다.

이제는 아프지도 않은 주제에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이 계속 났다.

“흐어엉……. 저, 전하…….”

“……괜찮, 아.”

그놈의 괜찮아.

‘이 남잔, 뭐가 괜찮다는 거야, 대 체.’

와중에도 연신 나를 달래는 그 목소리 때문에라도 더, 우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까지 해준 적, 있었던가.

내가 대체 뭐라고.

애지중지 아끼는 아들이면 몰라도, 나는 그냥…….

“전하. 미안해요. 흐끅……. 저는 진짜 겁쟁이예요. 정말 미안한데 도…… 아픈 게 또 무섭고…….”

하데스는 괜찮다는 말 대신 내 목위로 묻은 얼굴을 작게 저었다.

정말…….

이 남자는…….

대체 왜 이렇게, 아벨만큼이나 멋있어서는.

“제가요, 전하.”

나는 다짐했다.

짐승도 은혜를 아는데 하물며 나는 인간이지 않은가.

“오늘이 지나면요, 다시는 안 아프 게 해줄게요. 이렇게 꼭 붙어서요. 제 가…… 흐끅! 으어어엉…….”

나는, 오늘부터…….

***

엄청난 고통이 었다.

하데스는 아이샤의 고통을 전부 흡수하면서 알 수 있었다.

이 약해빠져 보이는 몸에 다 담기도 힘든 마력이 넘쳐흐른다는 걸.

당연히 그녀는 견디기 힘들 것이었다.

웬만한 통증은 그저 간지럽게 느껴 지는 그에게도, 정말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었으니까.

하데스는 딱, 아이샤의 말마따나 죽을 만큼 아프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 했다.

이걸 고스란히 겪어내고 있는 걸 어 떻게 지켜보나?

일평생을 막혀있던 마력이 정상적으로 아이샤의 몸에 흐르게 되기까 지, 고통은 새벽 내내 이어졌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통증이 잠잠 해진 건 창밖이 뿌옇게 밝아올 때쯤이었다.

잦아들어 견딜 만한 통증이라도 아이샤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하데스는 고통이 완전히 사그라 지고 나서야 천천히 몸을 떼어냈다.

울다 지쳐 언젠가부터 잠잠해졌던아이샤가 눈을 뜬 건 동시였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눈꺼풀이 열 리자 새벽 달빛이 스민 푸른 눈이 깜 빡였다.

힘이 쭉 빠진 몸을 겨우 침대 헤드에 기댄 채로, 하데스는 아이샤를 옹시했다.

몇 번 눈을 깜빡이던 그녀가 놀란 얼굴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미친! 나 잤어? 잔 거야?”

피식 옷는 하데스와 달리 아이샤는 사색이 된 얼굴로 허둥거 렸다.

“나 미친 거 아니예요? 진짜 잔 거예요?”

“잤다기보다는…….”

……탈진했다, 는 말이 맞을 것이었다.

애도 아니고 여섯 시간 가까이 조금 도 쉬지 않고 눈물을 줄줄 흘려대며 우는 여자는 처음 봤다.

졸려서가 아니라 진이 빠져 잠시 정신을 잃었다고 하는 게 맞겠지.

하나 아이샤는 그마저도 용납할 수 없는지, 충격 받은 얼굴로 대뜸 제 뺨위에 손바닥을 내질렀다.

짝!

“미친!”

하데스가 놀랐다.

“뭐 하는 거야?!”

“미쳤어, 난!”

짝!

때릴 데도 없어 보이는 조막만 한 얼굴에 아이샤는 연신 제 손을 내려 쳤다.

놀란 하데스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미쳤어?!”

“네! 저 정말 미친 거 같아요! 이 와 중에 잤다고요? 저, 정말, 저는 진짜쓰레기예요! 난 쓰레기야! 미 안해요!”

“잠든 게 아니라 탈진한 거겠지. 그 렇게 우는데 진이 안 빠지고 배겨?”

“전하…….”

“뭐.”

“……이, 이제, 이제 괜찮아요?”

그렇게 울고도 더 흘릴 눈물이 남았 는지 아이샤는 다시 울먹이면서 물었다.

“그래. 울지 좀 마. 몸에 수분이란 수분은 다 빠졌겠군.”

“…….”

“그렇게 안 보이는데, 몇 시간을 목 놓아서 울어재낄 정도면 생각보다 체 력이…….”

걱정시키기 싫어 괜히 대수롭지 않 게 중얼거리던 하데스는 놀랐다.

예고도 없이 무작정 제 품으로 안겨 든 아이샤 때문이었다.

“이, 이, 이봐. 뭐야?”

당장 아파하는 아이샤를 보고 무작 정 가슴을 맞붙였을 때에야 별생각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딱히 껴안아야 할 이유 없이 제게안겨든 작은 몸이 당황스러워 하데스는 뻣뻣하게 굳었다.

허둥거 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아, 아이샤. 이제 다 끝났어. 더 아 플 일 없으니까…….”

“알아요.”

“…….”

“그냥 안고 싶어서 안은 거예요. 흐 엉…….”

하데스의 가슴팍 위에 얼굴을 붙인 아이샤가 퍽 친근하게 제 빰을 비비 적댔다.

“어음! 크흠…….”

품 안에 찬 온기에 뻣뻣하게 굳어있 던 하데스의 손이 쭈뻇쭈뼛 올라갔다.

작은 아이샤의 뒤통수를 천천히 쓰 다듬기 시작한 손이 그에게도, 그녀 에게도 익숙해졌을 때쯤.

품 안에서 고개를 든 아이샤가 퉁퉁 부은 눈으로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저 결심했어요.”

“……뭘?”

“당신의 노예가 될 거예요.”

“뭐?!”

하데스가 질겁해 굳었다.

“이봐. 난 그런 취미 없어.”

“오해하지마세요. 그런 거 아니 고…….”

어쩐지 아이샤의 눈빛은 결연해 보였다.

귀족 영애가 뭔 소리를 하는 거냐며 핀잔주려던 하데스의 입이 다물렸다.

“제가 지켜드릴게요.”

“하!”

아파서 골골대던 주제에 누가 누굴지키겠다고 말하는 건지.

황당해 헛웃음을 터뜨리는 하데스를 보면서도 아이샤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전적으로 저를 믿으세요, 아버님. 저도 여기서 전하만 꼭, 믿을 거니까요.”

“뭐?”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샤는 배시시 웃었다.

여전히 울음기가 배어 퉁퉁 부은 눈으로 웃는데도, 그 얼굴이 퍽 예뻐 보 여서 하데스는 슬그머니 시선을 비틀었다.

하나 당황스럽게도 아이샤는 다시 한번 안겨들었다.

하데스가 또 허둥거 렸다.

“아니, 좀……. 크흠!”

“오늘부터 열심히.”

한껏 당황하는 하데스와 달리 아이샤는 꼭 끌어안은 이 모습이 부끄럽 지도 않은지, 가만히 붙인 뺨을 비비 적거리며 말했다.

“전하도 덕질하겠어요.”

목소리는 그녀의 눈빛만큼이나, 대단히 결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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