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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28화 (28/221)

28화.

‘그 마음이 참 가상하군. 내가 한번 좋아해줘 보도록 하지!’

그래, 하데스의 표정은 딱 그랬다.

나는 멍하니 그의 잘생긴 얼굴을 올 려다보며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속으 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벨을 덕질하던 내 행적을 결국 눈 치챘고, 그걸 모두 이해해주는 듯하던 하데스는 사실 여전히 자의식 과 잉에 사로잡힌 채였다.

그러니까 내가 아벨을 위해 보검도 보내고, 편지도 쓰고, 손수건도 만들 어준 이유가 다 자길 좋아해서 그런 거 라고 생각하는 모양이 었다.

‘대체 이 남자, 왜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해?!’

황당했다. 만약 대화의 처음부터 이런 오해를 하고 있었다면…….

「언제부터 좋아한 거냐고」

그 질문도 아벨이 아니라 자길 언제 부터 좋아한 거였냐는 말이었겠고, 눈치와 독해력이 하필 그때 바닥을 쳐버린 나는, 좋다고 5년이라고 대답해버린 거지.

지금 나는, 여기 없었던 2년까지 추 가해 5년이나 하데스를 멀리 남부에 서까지 짝사랑해 온 여자가 되어버린 것이냐?

“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느낌이요, 출구 없는 미로를 탈출해야 하는 느 낌이로세.

내가 칭하는 모든 대상은 아벨이었 으나, 하데스가 칭하는 모든 대상은 바로 그 자신이 었다.

‘모두 너였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현기증이 일었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 종이인형처럼 팔랑, 휘청거리자 하데스가 놀라 내팔을 잡았다.

“괜찮나? 좋아하도록 노력해보겠다는 말이 이렇게 놀랄 정도야?”

“아니, 저기요.”

아버님!

“하아…….”

속으로 그의 자의식 과잉을 탓하려 다가, 나는 중간에 중구난방으로 이어지는 대화의 흐름이 조금 의아해했 던 걸 떠올렸다.

갑자기 아벨의 친어머니 얘기를 꺼 내지 않나, 아벨이 사생아라는 사실 이정말 괜찮냐고 재차 묻질 않 나…….

그건, 과거의 여자가 있고 심지어 아들까지 있는 남자인데도 정말 내가 좋으냐는, 그런 의도의 질문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인정한다. 그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던 건 내 실책이다.

어쩜 이렇게 독해력이 떨어질 수 있 나. 수능 때 언어영역 1등급을 맞았 다는 사실이 실로 의심스러워지는 순 간이었다.

“저기요, 전하.”

나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데스가 혼자 착각하고 말 때에는 몰라도, ‘나도 너를 좋아하도록 노력해보겠다. ’고까지 말한 상황에서 더 오해가 깊어지도록 둘 순 없었다.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걸.

“그러니까 여기에는…….”

크나큰 오해가 있어요.

강하게 마음을 먹고, 사실을 얘기하 려는 순간이었다.

「만약 아벨에게 불순한 의도를 품 고 있는 자가 있다면 지옥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없애버릴 생각이 있지. 살려두면 언제 후환이 될지 모르 니. 」

하필 그렇게 말하며 눈을 번뜩이던 하데스의 표정이 생각났다.

지금 그의 얼굴은 전혀 무섭지 않았 지만, 언제 돌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크나큰 오…….”

이를테면, 실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 아들을 좋아해서 북부까지 왔어 요……라는 내 해명을 듣게 된다든 가, 하면 말이다.

“오?”

“오……예!”

아, 울고 싶다.

허공으로 힘차게 파이팅 포즈를 취 하는 나를 보며 하데스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렇게 좋나?”

“하, 정말…….”

뭐가 목에 콱 걸린 느낌이었다. 정말로 울고 싶어졌다.

나는 처음 알았다. 말 못 하는 답답 함에 눈물이 날 수도 있다는 걸.

다짜고짜 테이블 위로 엎어져 훌쩍 대기 시작하자 옆에서 하데스의 당황 한 기척이 느껴졌다.

“아니, 울 정도로 좋다고?”

미치겠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답답해서 눈물까지 나는 와중에 도 하데스의 이 완벽한 오해에는 어 이없어 웃음이 났다.

“아니거든요!”

못 참고 고개를 번쩍 쳐들고 황당하 다는 듯 웃자, 하데스도 나를 마주 내 려다보며 웃었다.

“아니긴.”

“허어…….”

“울다가 웃다가 아주 혼자 다 하는 군.”

“아, 몰라요! 됐어!”

바짝 붙어있는 하데스의 팔을 장난스럽게 퍽퍽 때리는데, 그는 뭐가 옷 긴지 다 맞아주며 계속 웃었다. 진짜 미칠 노릇이었다.

이번에도 한참 서로 다른 의미를 담 은 웃음으로 대화하고 있는데, 조용 히 문이 열렸다.

데운 목욕물을 가져온 앤이 었다.

바퀴 달린 욕탕을 질질 끌고 들어오 던 그녀는, 나와 하데스를 발견하고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놀랐다.

“저, 전하? 왜 아가씨 방에…….”

민망할 건 없는데, 왠지 민망한 상 황.

나와 하데스를 한참 바라보던 앤의 표정이 곧 음흉해졌다.

그녀는 마저 욕탕을 밀고 들어와 말했다.

“제가 어쩜 딱 2인분의 목욕물을 준비해 왔거든요.”

“야!”

그거 우리 둘이 같이 씻으려고 준비 한 2인분이잖아…….

멈칫하고 놀라는 하데스를 올려다보며 나는 정말이지 황당했다.

마치 나와 하데스의 사이를 오해와 오해로 점철된 구렁텅이 속에 빠져들 어 가게끔 온 우주가 도와주는 느낌이었다.

믿었던 앤, 너마저…….

괜한 소리 말라고 나서려는데, 하데스가 먼저였다.

그는 피식 웃으며 나를 가소롭다는 눈으로 내려다보곤 말했다.

“하녀 교육을 아주 잘 했군.”

“아니, 저기요…….”

“음, 그렇지만 아직 결혼도 안 한 사이에 같이 씻는 건 좀. 다음 기회에.”

변명할 의지도 잃었지만 어쨌든 변 명할 여지도 주지 않고, 하데스는 앤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쳐준 뒤바람같이 방을 나섰다.

“수고하지.”

“예, 전하. 들어가세요.”

능청스럽게 하데스를 배웅까지 한 앤은, 그가 나간 뒤 나를 돌아보며 흥분했다.

“세상에!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눈 치껏 안 오는 건데!”

“너어는진짜…….”

나이는 같았지만 나는 세상 좀 더 살아본 언니였고, 앤은 숫자 그대로 스물한 살이 었다.

어쩔 때는 어른스러워 보여도 역시 그 나이대의 소녀.

어린 아벨 덕질에 동참하는 것보다는, 내가 그의 아버님과 찍는 로맨스를 구경하는 걸 더 흥미로워하는 얼굴이었다.

꿈꾸듯 뺨을 붉힌 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제는 웃음도 안 나왔다.

“아, 진짜! 나 몰라! 어떡해!”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에, 팔다 리가 허공을 향해 절로 허우적댔다.

***

하데스에게 황당한 오해를 산 뒤로 2주의 시간이 흘렀다.

무려 ‘그대를 진심으로 좋아해보겠다. ’고까지 발언한 그였지만, 우리 사 이에는 생각보다 특별한 진전이 없었다.

나는 매일같이 하데스의 방으로 가 한 시간씩 성과 없는 핵석 숨기기 수 련을 했고, 좋아해주겠다고 했던 그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뭐, 이제는 익숙해졌다. 스물한 살 먹고도 여전히 기저귀 차고 다니는 여자를 보는 듯 황당해하는 눈빛.

하긴. 가르치는 보람없는 학생이 얼마나 답답하겠나?

아무튼 그놈의 의미 없는 핵석 수련을 하러 나는 오늘도 식사를 마치고 하데스의 방으로 가야 했다.

챙겨 먹던 약을 물과 함께 넘기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앤은 아닐 테고…….

혹시나 아벨일까 해 들뜬 목소리로 들어와도 좋다 하니, 얼굴을 보인 건 하데스였다. 아쉽군.

갑자기 찾아온 걸 보고 의아해하는 내게 그가 다가와 말했다.

“오늘은 그대 방에서 연습하지. 매 일 내 방으로 오는 것도 귀찮을 테니 까.”

“괜찮은데…….”

“됐어. 그런데 그건 뭐야?”

들고 온 두꺼운 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길쭉한 다리를 꼬아 앉은 하데스가 내 약봉지를 턱짓했다.

“아, 약이요.”

“약? 어디 아픈가?”

“그런 건 아니고 원래부터 먹는 약 이에요. 음……. 몸이 약해서 챙겨 먹는 영양제? 보호제? 비슷한 거니까…… 아파서 먹는다는 게 아주 틀 린 말은 아니죠. 그래도 뭐, 죽을병은 아니니 걱정 마시고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하데스는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전에도 몇 번 언급했지만 틈만 나면 휘청거리는 게 일이요, 겉으로만 봐 도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 있는 내 몸 은 가히 인간 개복치라 칭해도 부족 함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다 했고, 심장 쪽이 약한 모양인데 정확 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열여덟 살에 숨이 한 번 멎었 으니 확실히 문제 있는 몸이긴 했다.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하데스가 약봉지를 들고 안에 든 타원형 알약을 집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투명한 듯 백색으로 빛나는 신기한 색의 알약을 한참 살펴보던 하데스가 물었다.

“뭔지는 알고 먹는 건가?”

“제가 공자님 나이 때부터 꾸준히 먹어왔던 거예요. 의원이 아니라 의 술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우리 영지에 굴러다니던 고만고만한 약이 아니니 걱정하실 건 없어요. 신전에서 만 들어 보내주는 약인걸요.”

“그래?”

뭔가 의심스러워하던 하데스는, 신 전에서 보내줬다는 말에 곧바로 표정을 풀었다.

“하긴. 약을 달고 다닐 것처럼 생기 긴 했지. 손목이 이게 뭐야? 꼬챙이 도 아니고.”

마주 보고 있던 하데스가 물컵을 들 고 있던 내 오른쪽 손목을 가볍게 쥐 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신전에서 약까지 지어주기적으로 보내줄 정도면 생각보다 에스클리프와 사이가 돈독한가 보군. 신전이 그렇게 한가하진 않을 텐 데…….”

하데스는 잠시 생각하는 듯 턱을 쓰 다듬더니 덧붙였다.

“그러면 이번에 왜 이렇게 우리 영 지에 오려고 안달이 났는지도 알겠 어. 신전에 친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있나?”

“네? 무슨 말씀이세요?”

“가신 회의가 있기 전에 주변 영지에 결혼 발표를 했었지. 그때도 신전에 내 결혼 소식이 들어갔을 텐데, 별 말없다가…….”

하데스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덧붙였다.

“이번에 그대의 이름을 알리고 다시 소식을 전했더니, 신전에서 급하 게 연락을 보내왔어. 당장 내일이라 도 방문하겠다고 하더군.”

“네? 신전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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