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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27화 (27/221)

27화.

나가기 전, 아벨에게 전해줬던 손수 건이었다. 오늘 아침에 겨우 완성한 바로 그것…….

가만히 손수건을 들여다보던 내게 하데스가 말했다.

“아벨에게 준 것, 아냐.”

“……네?”

“그대가 공작성에 왔을 때, 나와 같 이 식사한 첫날.”

“첫날?”

“식당에 떨어뜨리고 간 거지.”

“아!”

놀란 나는 다시 눈을 비비고 테이블 위의 손수건을 확인했다.

과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진 아벨의 모습을 보니, 미완성인 채로 잃 어버렸던 손수건이었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

‘이 사람이 갖고 있었어?!’

당황한 나를 뻰히 바라보며 하데스 가 덧붙였다.

“오늘 아벨에게 들어보니, 이게 아벨을 주려고 만들고 있던 거였더군.”

“……네.”

왜인지 추궁하는 듯한 하데스의 말 투에 나는 괜히 긴장했다.

“북부에 오기 전부터, 미리 준비해 왔었다는 거지.”

그는 추리하듯 눈을 날카롭게 빛내 며 나를 응시했다.

“아벨에게, 그렇게까지.”

긴장하면 땀부터 홀리는 몹쓸 체질 이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등줄 기가 뜨거웠다.

“생각해 보면, 선물로 보냈던 보검 도 아벨에게 준 거였어. 그 귀한 걸 대놓고 내게 보내면 의심스러워 보일 테니, 일부러 아벨에게 보낸 거라 생 각했는데…….”

“…….”

“그리고 익명이긴 했지만 이거, 그 대가 쓴 게 맞겠지? 함께 보낸 편지. 다시 읽어봤는데 참…….”

하데스는 품 안에서 편지봉투를 꺼내 손수건 위로 툭 던졌다.

보검과 함께 보냈던, 내 마음이 가 득 담긴 편지.

우리 아벨 공자님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멋있고 어쩌고, 낯 뜨거운 덕후의 진심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명백한 증거물이었다.

툭, 허벅지 위에 오른 손등 위로 땀 한 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엔 정말.

‘걸렸다’는걸.

“저, 저, 전하…….”

아들을 졸졸 따라다닌 일에 대해 나는 변명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하데스가 믿어 줄지는 미지 수였다.

지금 하데스가 느끼고 있을 심정은,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여주 데보라(6세)가 가는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든 뒤를 졸졸 밟는 하데스그는 스토킹도 모자라 사심 가득한 선물 공세에,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깜찍한 데보라 어쩌고 혹심 가 득 담긴 멘트까지, 편지에 빽빽이 써 보내는데…….

종국에는 데보라가 사는 곳에 맨몸으로 따라오기까지?

‘아악! 최악이야!’

그런 하데스를 발견했을 때 정상적 인 사람이라면 무슨 의심을 하겠는 가. 나로서는 상상만 해도 징그러웠다.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이상성욕자……라고밖에는.’

……생각 안 되지?

공작령에 와서도 열심히 일코를 유 지하려 했던 이유였다.

이성애적인 의미가 아닌 순수한 ‘덕질’ 행위를 하데스가 이해해줄 거라 전혀 생각하지 않기에.

“내 아들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여 자라니, 황당하고 어이없고 이해 안 돼.”

하데스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왜인지 목이 서늘했다. 어째 금방 날아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만나본 그는 생각보다 물러 보였지만, 그래도 하데스 루버몬트다. 무서운 남주 아빠란 말이다.

나는 곧바로 변명했다.

“저, 전하. 정말 안 믿기시겠지만, 제발 믿어주세요. 전 불순한 의도가 전혀 없어요. 제 마음만큼 순수한 건 없을 거라고요.”

“알아.”

“……아신다고요?”

“날 바보로 아는 건가? 그대를 벌써 며칠째 코앞에서 지켜봤는데, 내가 그거 하나 못 느낄 사람으로 보이 나?”

아벨을 향한 내 순수한 마음을, 불 순한 의도 없는 덕질을, 이해한다고?

“그대가 진심이라는 거 알아. 다른 의도 없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

“아아, 네……. 아, 알아주셔서 감 사합니다.”

다소 놀라운 반응이라 얼떨떨했지만 다행인 일이었다. 긴장이 풀려선 지 앉은 몸이 흐물흐물해졌다.

“후우…….”

“대체 언제부터였지?”

“뭐, 뭐가요?”

“언제부터 좋아한 거냐고.”

하데스는 반쯤 포기한 얼굴로 한숨을 푹푹 내쉬며 물었다.

애지중지 아끼는 아들을 스토킹(?) 한 여자를 너그럽게 이해해준다고까 지 하는 그에게 고마워서라도, 나는 사실을 말하기로 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아벨의 팬이 되었 던 그 첫 순간을 떠올린다.

종이책으로 나온 소설〈페르소나〉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직후였지.

“5년…… 됐습니다.”

전생에서 덕질 2년차에 죽었으니 까…….

하데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적잖이 놀란 듯, 거만하게 꼬 고 있던 다리를 풀어 바로 앉은 다음 다시 물었다.

“5녀어언?”

“네.”

“하…….”

그는 가만히 고개를 젖혔다.

피곤한 듯 이마를 문지르는 모습을 보니, 그의 기준에서는 이 ‘덕질’이라는 행위가 도무지 이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해한다. 전생에서도 내 맹목 적인 덕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왔다.

내가 일코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 존재들.

“내가 생각해 봤어.”

“무엇을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오늘 낮에 그 대와 후원자의 관계를 의심하면서 조금 불쾌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야.”

“아, 그럼요. 그러실 수 있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참 못나고 옹졸한 사내처럼 느껴지더 군. 그대와는 정반대이지 않은가.”

“아녜요, 아녜요! 괜찮아요, 전.”

손사래 치는 내 모습을, 하데스가 묘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한참을 그렇게 나를 빤히 바라보던 하데스가 말했다.

“기분, 안 나쁜가? 그대는 어떻 게…… 사람이, 이렇게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할 수 있지?”

“네? 제가요? 아니, 뭐…… 그냥 전하를 이해한다 뿐이지, 그게 꼭 착한 건 아닌데?”

“그대는 내게 아무것도 묻질 않잖 나. 아벨의 친어머니에 대해서는, 전 혀 신경 쓰이지 않는 건가?”

“공자님의 친어머니요?”

“그래. 혹시나 그대가 까먹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어 얘기하는데, 아벨은 사생아야. 그런데도 그대는 아벨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해주고 있 잖아.”

뭐라는 거지? 엄마 없는 아이들은 사랑받을 자격도 없다는 건가?

대화의 흐름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발끈해서 대답했다.

“전하,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아벨 공자님이 사생아인 게 뭐가 문제 예요? 공자님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 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예요. 사생아라는 이유로 사랑받지 못할 이유가 전 혀 없다고요.”

“하……. 그대는 참.”

하데스는 말문이 막힌 듯,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얼굴을 가린 채 그가 내쉬는 긴 한 숨소리가 들렸다.

곧 다시 나를 직시한 하데스는, 조금 망설이면서 말했다.

“아벨의…… 친어머니가, 누구인지 궁금할 수도 있잖아. 내가 그대라면,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고 생 각해. 괜찮은 건가, 그대는? 정말로?”

아벨의 친어머니 같은 건 등장도 하 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나였다.

“그게 뭐가 중요하죠?”

아벨 그 자체만으로 예쁘고 사랑스 럽기에 덕질을 하는 건데, 그 외의 요소를 신경 써야 할 이유가 뭔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나를 보며 하데스는 계속 이해할 수 없다는 표 정을 지었다.

그는 꼭 내 입에서 ‘맞아요. 아벨은 좋아할 만한 아이가 아니죠. ’라는 대 답을 듣고 싶은 사람 같았다.

덕질을 그만두라는 식으로 나를 은 근히 종용할 생각인가 본데…….

그리 쉽게 접을 수 있는 마음이었으 면, 내가 5년 덕질에 혈혈단신으로 북부까지 올라왔겠나?

절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리라굳게 마음먹은 내게 하데스가 말했다.

“말해두지만, 양보할 수 없는 부분 이 있어. 나는 아벨을 이 루버몬트의 후계자로 삼을 거란 생각에 변함이 없어. 나에게는 아벨이 소중해. 아마 그 애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죠. 저도 알아요.”

알다마다. 당장 누군가가 내게 아벨 대신 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그 럴 수 있을 용기, 전혀 없다.

무려 5년 동안이나 아벨을 좋아했던 나인데도…….

그러나 하데스는 ‘멋지고 헌신적인 아빠’ 캐릭터 설정답게 뒤가 없는 직진남이다.

친아들도 아닌 아벨을 위해, 죽을 걸 예상했으면서도 그를 살리고자 했 으니까.

대체 어느 누가 그럴 수 있을까?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라면 힘들 테지.

“만약 아벨에게 불순한 의도를 품 고 있는 자가 있다면 지옥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없애버릴 생각이 있지. 살려두면 언제 후환이 될지 모르니.”

“그, 그, 그렇죠.”

날카롭게 눈을 빛내는 하데스를 보 며 나는, 내 덕질을 그에게 이해받았 음에도 오금이 덜덜 떨렸다.

만약 내 덕질을 하데스가 이해하지 못했다면…….

‘어우, 끔찍해.’

몸을 부르르 떠는 나를 보며 하데스 가 덧붙였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아벨이 내게 소중한 것과 별 개로, 아벨의 친어머니와 관련해서는 그대에게 떳떳할 수 있다는 거야.”

“아, 네…….”

떳떳하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아벨의 친모가 누군지 얼굴도, 이름도 모 르기는 자기도 마찬가지면서…….

뭔가 빙빙 맴도는 듯한 대화에 머리 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 그런데 전하. 이런 얘길 왜 하 시는 거예요? 전하께서 이런 말씀 하 셔봤자 저는…… 공자님을 계속 좋아할 거예요.”

“그래, 고맙군.”

하데스는 두 손으로 몇 번 얼굴을 쓸었다가, 또 말했다.

어째선지 그는 비장해 보였다.

“일단은 정말…… 고마워. 나는 이런 무조건적인 애정을 퍼붓는 사람을 만나본 게 처음이라서…….”

“흐흠, 별 거 아니예요.”

“고맙고 미안한 부분도 있어서, 조금 걱정스러운 점이 생겼어. 그대도 가끔 지칠 때가 있지 않겠나? 이렇게 맹목적으로 퍼붓기만 하는 사랑이라 니, 가엾잖아.”

나는 조금 놀랐다. 그리고 감동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데스가, ‘덕질’하는 내 심리 상태를 이해하려 노 력했다니?

조금 홍분한 내가 말했다.

“전하, 아니예요. 원래 뭔가를 바라 고 사랑하는 거 아니예요. 저는 그저 주기만 해도 상관없는 걸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아니, 그건 내가 용납 못 해. 받은 만큼, 돌려주도록 하지.”

뭘? 내가 아벨을 덕질한 것에 대해 자기가 뭘 보상하겠다는 말인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하데스가 내 앞에 섰다.

그는 예고도 없이 손을 뻗어왔다. 정수리 위에 올린 하데스의 손이 따 뜻했다.

그가 천천히 내 머리를 쓸어내렸고, 나는 비를 맞아 젖어있던 머리가 순 식간에 마르는 걸 느끼면서 놀랐다.

“어머.”

내 머리를 쭉 쓸어내리던 하데스의 손이 머리카락 끝을 가볍게 쥐었다. 그는 그것을 가져가 살짝 입 맞췄다.

어째선지 위험한 분위기에 나는, 무슨 노력을 한다는 거냐는 질문도 하 지 못하고 그저 숨만 삼켰다.

“그러니까 나도, 노력해보지.”

촛불 빛이 하데스의 얼굴 위로 그림 자를 만들어 일렁였다.

잘생기긴 정말 잘생겼고, 역시 상상하던 아벨과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그 오묘한 분위기에, 왠지 심장이 콩콩 뛸 정도로.

“나를 향한 그대의 마음에 보답할 수 있게…….”

그러나 다음에 이어지는 하데스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그의 끝나지 않을 자의 식 과잉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나 또한, 그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보겠다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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