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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21화 (21/221)

21화.

“아이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 어제는 하데스를 믿고 애거사 에게 제멋대로 행동했으면서도, 왜 오늘에 와서는 그의 입에서 나올 말 이 이리도 걱정되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마 고작 하루 사이에 더, 아벨의 옆에 있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져 서일까?

만약 여기서 쫓겨나기라도 한다면 아벨과는 영영 이별이겠지.

아무래도 뭐가 됐든 변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려는 차.

“저기, 전하!”

“잘했어.”

올려다본 하데스는, 언제 표정이 굳 어있었냐는 듯 웃고 있었다.

나는 약간 얼떨떨해진 기분이 됐다.

“……네?”

“그리고, 고맙군. 그대가 아니었다 면 이 녀석이 아픈 줄도 몰랐을 거야. 내가 걱정할 소리 절대 안 하는 놈이 니.”

하데스는 장난스럽게 미간을 좁히 며 품에 안은 아벨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다시, 나를 향해 말했다.

“그대가 있어줘서 정말 다행이야.”

“저, 저…… 있잖아요. 아직 백작부인을 안 만나고 오신 모양이에요. 저 고백할 거 있어요. 사실 어제 백작부인에게 가서…….”

“알아.”

“네?”

안다고?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하데스를 바라보다가, 그래도 혹시 몰라 실토하기로 했다.

“저 어제 백작부인에게 가서 엄청 막말 했어요. 하대도 하고 막…….”

“안다니까. 내가 그러라고 했잖아. 막무가내로 행동해도 좋다고.”

“아, 물론 그러셨죠. 그러셨는데, 그래도 적당히 선은 지켰어야 했는 데, 사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조금과한 감이…….”

“아주 잘했어. 앞으로도 그렇게 해. 누가 그대 심기를 거스르면 절대로 참지 마. 그대는 그래도 돼.”

“……정말요?”

“한 입 갖고 두말하는 남자 아니라 고 했잖아. 그래도 돼.”

하데스는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잡으라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먹먹한 기분이 되었다.

왠지 이 손을 잡으면, 나도 찰싹 달 라붙어있는 저 부자의 옆에 서서, 단 란한 가족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나는 하데스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전에도 느꼈듯 놀라우리 만치 따뜻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해. 나랑 아벨 옆에서.”

그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일어난 내 손등에 살짝 입 맞추고는 덧붙였다.

“내가, 그래도 되는 여자로만들어 줄 테니까.”

***

공작령에 온 이후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하루였다.

우리는 식당에서 나와 산책을 했고, 방으로 돌아와서는 아벨과 단둘이 간식을 챙겨 먹었다.

난 사실 단 걸 싫어하는 편이었는 데, 아벨과 함께 먹은 마들렌과 버터 쿠키, 초콜릿은 놀랍도록 맛있었다.

역시 뭘 먹는가보다는 누군가와 먹는지가 중요하지, 암.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하데스에게 애거사와 어 떻게 얘기가 끝났는지 일부러 묻지 않았다.

마냥 걱정 없이 행복해도 정말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행복했던 하루. 그 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간식을 먹으며 아벨은 내게 소원이 하나 있다고 했는데, 그게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나는 지금…….

“영애! 저 깨끗이 씻고, 옷도 갈아 입고 왔어요!”

……아벨의 방에 있었다.

소매와 바짓단이 짧은 편한 침의로갈아입은 아벨이, 그의 침대에 앉은 나를 향해 전력 질주해 달려오는 데…….

“흑.”

“여, 영애?”

심장을 강하게 때리는 고통에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오그라뜨렸다.

놀란 아벨이 허둥거리며 걱정스러 운 표정으로 내 앞을 기웃거 렸다.

괜히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나는 계속 가슴을 불잡고 아픈 척했다.

“하윽…….”

“여, 영애? 어, 어디 아파요? 어디 안좋아요?”

“시, 심장이…….”

“심장이요?! 어, 어, 어떻게 아픈 거예요? 왜, 왜…….”

“쿵, 하고…….”

“쿠, 쿵이요? 자, 잠시만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제가 얼른 아버지 랑 의원을 불러올게요. 자, 잠시만. 아…….”

당황해서 방을 나서려는 아벨의 팔을 붙잡자 그가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돌아봤다.

“……떨어져버렸어요. 공자님이 너무 귀여워서.”

“……네?”

아벨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곧 내가 장난 쳤다는 걸 깨닫고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소리 질렀다.

“그, 그게 뭐예요! 놀랐잖아요!”

“이잉, 미안해요. 많이 놀랐어요? 그렇지만 공자님 때문에 방금 심장이 콩, 떨어진 건 맞는데…….”

“아, 장난치지 마세요. 진짜, 진짜 놀랐단 말이에요.”

겨우 긴장이 풀렸는지 아벨이 몸을 축 늘어뜨리며 침대 위로 올라왔다.

“아프지 마세요. 오래오래 여기 있 어주셔야 해요.”

“아…….”

생각 없이 친 장난이었는데 사뭇 분 위기가 진지해졌다.

와중에도 팔을 벌리자 곧바로 안겨 드는 아벨은 귀여 웠다.

“당연하죠. 공자님도요.”

“저, 그리고…… 귀찮으실 텐데 소 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한 건 난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최애가, 소 원이 있다며 ‘같이 자주실 수 있나 요?’ 하는데 멀쩡할 정신일 덕후는 몇 명이나 되겠는가?

제가 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주책없이 굴려는 입을 꼭 다문 채, 나는 그저 빙긋 웃었다.

“저언혀 안 귀찮아요. 너무 좋아요.”

“헤헤…….”

“혼자 자는 게 외로웠으면, 가끔 전하께 같이 자자고 말씀드려보지 그랬 어요.”

“음……. 아버지는 바쁘시니까요.”

물론 하데스가 공사다망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그는 아벨의 부탁이라면 열 일 제쳐 두고 달려올 사람이 었다.

그걸 아벨도 모르지는 않을 테지만, 나이답지 않게 너무 철이 든 터 라…….

“그래도 오늘은…….”

“오늘은?”

“아! 아니예요. 헤헤…….”

“뭐예요, 싱겁게.”

아벨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다시 내 품으로 안겨들었다.

잘 몰랐는데 아벨은 손을 잡거나 껴안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손을 잡을 땐 내가 어디 가버릴까 봐 무서운 사람처럼 힘주어 꽉 잡곤 했는데, 이런 행동이 애정결핍 증상의 일종이라는 연구 결과를 전생 어 디에선가 들은 적 있는 것 같아 나는 또 아벨이 안타까웠다.

안겨있는 아벨의 손을 꼭 잡은 채 나는 베개 위를 톡톡 두드렸다.

“자, 늦었으니 이제 자볼까요? 공자님이 잠들고 나서도 계속 손 잡아줄게요.”

“……정말요?”

“그럼요. 자…….”

아벨이 냉큼 누웠다.

통통한 뺨을 한번 쓸어주곤 이불을 덮어주자 배시시 웃는데, 미천한 덕 후는 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하아…….

무사하니, 내 심장?

아마 이 귀여운 존재에게는 평생 가 도 적응할 일 없을 텐데. 힘내라, 심장아.

“으음…….”

문득 이불을 덮어주는 내 손목 위로 아벨의 시선이 스쳤다.

한참 웃던 그의 얼굴이 시무룩해져 있었다.

“음? 표정이 왜 그래요?”

“영애…… 팔목에, 그거요…….”

“아아.”

밖에 있을 땐 항상 감추고 다니던 핵석을 훤히 내놓고 있으니, 그걸 보는 마음이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밖에서는 꼭꼭 잘 숨기고 다니셔 야 해요…….”

“응, 그럼요.”

“아무한테나 말하면 안 되고요.”

“응,그럴게요.”

꼬박꼬박 잘 대답해줬지만 아벨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따라 누운 나를 마주 보며 고 사리 같은 손으로 팔목 위의 핵석을 한참 만지작거 렸다.

“저, 영애.”

“네.”

“영애도 비밀을 알려주셨으니까, 저도 하나 알려드릴게요.”

아벨은 왜인지 결연한 표정으로 말 했다.

아벨의 비밀?

내가 그걸 모를까?

작가님이 SNS에서 사담으로 풀어 놓았던 아벨의 키, 몸무게, 신체적 특 징은 물론, 성장 과정과 인간관계, 심 지어 여주 데보라와 첫 키스를 언제 어디서 하는지, 그런 지극히 사적인 부분까지 다 알고 있는 진성 덕후인 내가?

지금 아벨이 내게 비밀이라고 말하 려는 건, 백 퍼센트의 확률로 그가 가 진 코어 쥬얼의 얘기일 터였다.

이 나이의 아벨에게 비밀이라고 할 건 그것뿐일 테니까.

무릇 소설 주인공들은 특별한 법이다.

당연하지만, 작가님은 아벨에게 특 이한 설정을 부여하셨다.

내가 코어 쥬얼을 몸속으로 숨기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특이한 설정.

물론 특이하다는 사실만 같지, 나는 무능력의 상징일 테고 아벨은 제국유일 능력자의 상징이 되시겠다.

내가 아벨의 속성을 얘기한 적 있던 가?

아벨은…….

“공자님.”

“네!”

“공작 전하께서, 공자님의 비밀은 꼭 숨겨 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어 요?”

내 물음에, 아벨은 우물쭈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 비밀을 아무나에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거예요? 나중에 전하께 안혼나겠어요?”

“그렇지만 영애는 아무나가 아니잖 아요.”

앗,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 는군.

똑똑하긴. 역시 우리 아벨.

수줍게 뺨을 붉히며 ‘영애는 아무나 가 아니잖아요.’ 하는 아벨은 놀랍도 록사랑스러웠지만, 좋다고 헤벌쭉 웃으며 그의 입으로 비밀을 말하게 해선 안 됐다.

아벨이 악역들에게 뒤통수 맞는에 피소드는, 지금 얼른 생각나는 것만 해도 세 개나 되었다.

그는 사람을 잘 믿는 편이었고 그런 설정은 어떤 식으로든 소설 속에서 고구마를 재배해냈다.

아벨이 착실한 농사꾼으로 자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교육을 해둘 필요가 있었다.

“공자님이 절 믿어주는 건 고맙지만, 안 되는 건 안 돼요. 슬픈 현실이 지만 세상에는 믿을 만한 사람보다 음흉한 사람들이 더 많거든요.”

“영애는 음흉한 사람이 아니잖아 요?”

“아, 물론 그렇지만. 아무튼 지금은 안 돼요. 정 비밀을 말하고 싶으면 우리가 조금 더 친해질 시간을 두는 게 어떨까요? 한…… 일 년 정도면 좋을 것 같아요. 내년 공자님의 생일에…….”

그때는, 이 비밀이 약점이 되지 않는 때이니까.

“으음……. 그래도 영애는 저한테 비밀을 말해주셨는데…….”

“공작 전하께 허락받고 오세요. 전하가 제게 말해도 된다 허락하시면, 그때 하면 되죠.”

물론 아들 바보 하데스는 절대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테지만.

“아! 그러면…….”

아벨이 뭔가 말하려 할 때였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편한 침의 차림의 하데스가 난데없이 등장했다.

……뭐지?

그는 꼭 자기 방에 자러 들어온 사람처럼 태연해 보였다.

놀란 내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킨순간, 나를 발견한 하데스의 눈도 휘 둥그레졌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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